|
l2017-05-16
작게 빛나는 행복의 편린들 어제 지인들과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나온 이야기가 저마다의 구멍을 가진 남녀가 결혼을 통해 합일을 꿈꾸지만 기대했던 헌신적이며 조건 없는 사랑을 얻지 못해 실망한다는 것이다. 한 번씩 결혼생활에 위기가 찾아오지만 자식을 통해 이겨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겪었던 구멍을 되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결의와 자식을 향한 사랑이 결과적으로 이전 가족과 자신이 일군 가정에서 미처 해결되지 못했던 앙금을 푸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부부의 권태와 위기가 자식을 매개로 양보되고 조율되면서 순간적이나마 완전체를 이룰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김주영의 <뜻밖의 생>을 읽는데 자꾸 어제 나눈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소설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다들 덫이자 닻인 집을 찾아 평생을 떠도는 게 아닌가 싶다. 친밀한 사랑(familiar love)을 나눌 수 있는 가족(family)을 찾는 일은 탄생과 함께 부여받는 숙제이자 모두의 마침표이지 않을까. <뜻밖의 생>의 가장 겉 테두리에는 어느 포구에서 만나는 떠돌이 남녀의 인생이 자리하고 있다. 주인공 박호구씨가 남장을 한 박순희씨를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근 현대사를 다루는데 신기하게도 파울로 코옐로의 소설이 생각났다. 순희씨는 박씨의 입을 열게 하는 뮤즈인 것이다. 순희라는 잔에 따르는 호구라는 술. 순희씨의 역할이 이야기전개에 있어 중요한 반면 그녀의 삶은 소상히 언급되지 않는다. 최윤서라는 껍데기 속 박순희. 그녀의 “따뜻한 손”이 그의 순정이었던 단심이네의 환영을 호출해낸다. 그리고 단심이네의 손은 난장이라는 외양과 구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괄시와 천대를 줄줄이 불러낸다. 노름꾼이었던 아버지와 무당에게 푹빠져 지낸 어머니 사이에서 그는 거짓말로 버틴다. “마음속에 뿌리박힌 공허”를 채우는 생존방식이 바로 거짓말인 것이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을 듬뿍 받아본 기억이 없는 주인공은 외로움에 시달리고 늘 굶주린 상태이다. 어머니의 “어서 오너라”를 듣고 싶어 지핀 불이 무당의 몸을 해하여 결국 집을 나오게 되는 주인공은 이후 난민생활을 하게 된다. 바다 안개가 내려앉은 항구에서 박씨와 순희씨의 대화가 깊어갈수록 나이든 주인공의 흐릿해진 의식은 장막을 걷어내고 삶의 윤곽이 분명하게 잡힌다. 돌봐줄 주인이나 보호자가 없는 똥개와 다름없는 처지에 놓인 칠칠이와 호구는 함께 거리를 떠돈다. 곡마단 강희찬의 폭력에 맞서 자신을 지켜준 칠칠이를 호구는 단심이네를 향한 마음에 놓쳐버리고 만다. 주인공에게 따뜻한 체온을 가장 오래 내준 것이 칠칠이의 품이고, 주인공은 칠칠이가 자신을 지켜보리라는 믿음으로 생을 견딘다.
당나귀를 찾는 중이라는 호구씨의 말이 처음에는 흰소리처럼 들렸지만 당나귀는 다름 아닌 칠칠이(와 새끼에 관한 신화)이기에 순희씨와 함께 찾아나서는 걸음이 희망적이다. 순희씨는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기에 이들의 동행이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빨간 구두를 신은 자신을 불란서 식당에 데려갈 남자를 꿈꿔왔다. 하지만 자칭 예술가라는 사기꾼을 만남으로써 이것은 진짜 꿈이 아닌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밑바닥 삶을 처절히 경험한 호구씨가 밝히는 행복론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었지만 삶을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군대에 징집되고 억울한 옥살이를 치르지만 인생의 덧없음을 꿰뚫어보며 순간순간 다가오는 재미와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든다.
|
|
박호구의 기나긴 여정을 옅게나마 살펴보았다. 작가는말한다. 방법은 고난보다 많다.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고난에도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어릴적 부터 외로운 박후구에게 칠칠이가 있었고, 단심이네, 강선생, 장아저씨가 짧은 순간 존재했다. 그리고 4년 동안 자신의 딸로 키운 희숙이가 박호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삶이란, 행복이란 무엇인가? 지나가는 게 삶이고, 지나가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행복이다. 박호구는 항구에서 동행 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난다. 이 또한 그가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삶에서 고난을 이겨낼 방법을 찿아 간다. 박호구는 언제나 칠칠이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여전히 살아있길 희망한다. 그믿음이 호구를 살아가게 한다. 삶이 이처럼 고통스러운 고난으로 가득한데도 지긋한 외로움에 깊이 사무치는데도 우리는 이토록 징그럽게 살아가는 이유는 막연한 희망때문일까? 혹시 모를 머나먼 미래에 대한 기대감때문 일까?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위로일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운명이라는 박호구의 삶에서, 칠칠이를 찾으러가는 그 마음에서, 동행하는 여자의 존재에서, 어쩌면 아무런 진실을 얻지 못하더라도 삶의 길을 택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음에 안도한다. 그렇다. 그 존재의 의미가, 가치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준다. 외롭지만 조금 덜 외롭지 않은, 외로워 울지만 그칠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어쩌면 뜻밖의 생. |
|
나(박호구)는 외로웠고 외톨이였다. 언제나 혼자라는 고립감이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직업은 타짜였으며, 박치기꾼이기도
했는데, 어쩌다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 점순네에게 폭력을 휘들렀다. 아버지의
승부욕은 노름판을 넘어서, 승부를 가리는 자리라면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반드시 모습을 드러냈는데, 동네 구멍가게에서 물 안 마시고 고구마 많이 먹기 시합을 하다가, 전설적인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 그런 아버지도 살아 있을 때, 나를
방치하는 일에 어머니와 똑같이 가담했다. 나는 박호구라는 이름이 어엿한데도 어른들은 나를 똥통으로 불렀고 또래의 아이들은 땅강아지라고 불렀으며, 나는 그런 놀림을 받으며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했다. 내가 거짓말을
시작하고 거기에 온 열정을 동원해 몰두한 이유는 거짓말을 구사하고부터 시큰둥했던 아이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는데, 보고 듣고 경험하는게 천편일률적인 산골 아이가 지어내는 거짓말이란 사실 한계가 뻔했고, 외형적으로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성장이 더뎌서 그 또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일로 끊임없이 일탈을 저지르는 나를 선생님은 화장실 청소와 더불어 방과후에 유리창 닦게 하는 벌을 주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거짓말을 통한 관심끌기 노력이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