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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틀 같은 고시원 방, 나는 책상 한 쪽에 놓여있던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방황하는 자연주의자 시튼을 처음 만났을 때는 한창 수능공부에 전념하고 있을 때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짜여진 틀 속에서 마치 대학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주변은 온통 책과 문제집들에 둘러 쌓인, 숨쉬기조차 버거운 생활을 해야 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숨 쉴 곳을 찾게 되었고 그게 바로 다니구치 지로의 시튼이었다. 첫해에는 ‘늑대왕 로보‘로부터 시작해서 다음해에는 ’소년과 살쾡이를‘, 또 그 다음해에는 ’샌드힐의 수사슴‘으로. 다시 또 '팔락 산의 제왕’까지.그렇게 시튼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답답한 틀에서 벗어나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자연의 넉넉함과 싱그러움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곤 했었다. 그 뿐인가? 이아기마다 담고 있는 내용은 변함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의 섭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즐거움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 속에 시튼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자리 잡게 된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갑갑할 때면 시튼을 따라 숲속으로 걷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시튼을 따라 고시원창문을 벗어나 뉴멕시코주 북부 커링포 고원으로 향한다.
1권 ‘늑대왕 로보’는 커링포의 늑대무리에 대한 내용으로 늑대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커렁포 고원을 흐르고 있는 강의 저지대 끝에는 소와 양을 방목하는 푸른 목초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최상급 소를 잡아먹는 늑대들, 그 중 늑대 왕 로보는 총을 든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전혀 없고 덫도 독미끼도 통하지 않아 현상금까지 걸고 있어 수많은 울버들이 나서지만 그 누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서른일곱 살의 시튼은 자신이 갖고 있는 예리한 관찰력, 늑대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로보를 잡는 일에 나선다. 그는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입선을 했었지만 인간중심의 사상에 물들어있던 파리 미술계에 절망하여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다섯 마리의 늑대들 중 우두머리인 로보는 영리하고 힘도 세고 불같은 성격에 경계심도 강할 뿐만 아니라 독이든 먹이의 냄새를 완벽하게 분별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주변을 따르는 다섯 마리의 늑대들 중 백색의 암컷늑대인 블랑카는 로보의 짝으로 유일하게 로보의 통제를 벗어나는 행동을 해도 무방했다. 시튼은 산속 오두막에서 생활하며 로보를 잡기 위해 매일 발자국을 뒤쫓았고 급기야 마주하게 된다. 로보를 잡기 위해 시튼이 선택한 방법은 덫을 이용해 블랑카를 잡는 것으로 급기야 블랑카가 덫에 걸려 죽임을 당하자 로보는 블랑카를 찾아 헤매다가 덫에 걸려 포획당해 죽음을 맞게 된다. 로보의 강인함에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막상 로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워진다. 시튼이 로보를 훌륭한 늑대라고 인정한 것은 그만큼 로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저 잔인하다는 것만이 아닌. 늑대로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 자리를 인간이 차지함으로써 로보와 맞서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쇠사슬에 묶여 자신의 왕국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로보가 남겨준 것은 자연과 공존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로보의 삶은 서부의 정신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2권 ‘소년과 살쾡이’는 열 다섯살이 된 소년 시튼이 파넬폰폰즈의 펜붕에 있는 톰위티의 농장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며 겪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에서처럼 살쾡이을 중심으로 농장주인 톰과 여동생 제인, 케이트는 땅을 개척하는 중이었다. 시튼은 사냥을 하기 위해 총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지만 그보다는 숲속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즐겼다. 시튼이 이런 습관을 갖게 된 것은 토론토에서 우연히 만났던 박물학자이자 자연주의자인 윌리엄 브로디의 만남으로부터였고 매일 쓰는 일기의 기록은 작가로서 이야기를 쓸 때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톰이 열병에 걸려 치료를 위해 오두막을 떠났고 뒤이어 제인, 케이트, 시튼 모두 열병에 걸리게 된다. 거기에 먹잇감을 찾아 오두막의 닭들을 잡아가던 살쾡이는 점점 대담해져 집안까지 숨어들게 된다. 정말이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살쾡이의 눈빛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숲속에 먹잇감이 없자 오두막의 닭들로, 닭들을 모두 잡아먹고 나서는 집안의 부엌에서 베이컨을 훔쳐가고, 그러다가 시튼의 침대 옆에 있는 물통에서 물을 먹기도 하고...... 열병에 걸려 몸을 추스릴 힘도 없는 시튼이 살쾡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작살 하나로 정면대결을 할 때는 숨이 멎는 듯한 긴장감까지. 열병에서 회복된 후, 숲속 나무둥지 속에서 옆구리에 작살이 박힌 채로 죽어있는 살쾡이와 새끼들을 보니 다시 또 안타까워진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 야생의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3권은 ‘샌드힐의 수사슴’은 캐나다 메니토비주 위니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스물두살이 된 시튼은 샌드힐 언덕 건너편에 아직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속에서 사슴 발자국을 발견한다. 형 아서가 농장을 개척하는데 일손을 돕기 위해 찾아왔다가 숲에서 만나 거대한 수사슴, 샌드힐 스테그을 보고 난 후 시튼은 계속 뒤를 쫓는다. 그러던 중 인디언 차스카를 만나 함께 사슴의 흔적을 쫓으며 원주민이 지닌 숲에 대한 지식을 베웠고 그것들은 시튼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암사슴이 총을 맞고 죽은 후 스테그는 주변을 맴돌았고 시튼은 계속 그 뒤를 쫓았으며 이들이 긴 여정 먼저 지쳐버린 스태그와 마주하는 것으로 가슴을 졸이게 했다. 두려움도 없이 노여움도 없이 조용히 서 있는 스태그에게 시튼이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사냥하고 사냥당하는 관계가 아닌. 스태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스태그가 하늘을 뜨는 순간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벅차오름은 발에 힘을 갖게 한다. 4권 '팔락 산의 제왕'은 사냥꾼 랜켈리언과 회색곰에 대한 이야기로 마음 한 구석을 아릿하게 한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탈락 산에서 켈리언은 우연히 회색곰 어미를 사냥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곳에서 두 마리의 새끼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로 한다. 그는 새끼 곰들에게 잭과 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잭은 잘 따르는 반면 질은 마음을 열지 않아 신경을 쓰게 했다. 그러다가 잭과 질이 자신의 식료품 저장소를 엉망으로 만들자 홧김에 그 둘을 떠돌이 장수에게 팔아버렸고 그 일을 나중에 후회하지만 그 뒤로 잭의 존재를 잊게 된다. 잭의 아련한 눈빛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자신의 어미를 죽인 사냥꾼의 손에 자라는 것을 시작으로 잭은 평탄치 않은 날을 보내야했기 때문이다. 잭이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난폭했고 질이 총을 맞고 죽은 뒤에는 사람들의 놀림을 받는 것은 물론 학대를 견디어내야 했다. 캘리언과 계속 살았다면, 아니 캘리언이 잭의 어미를 죽이지 않았다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예로 사냥하고 사냥당하는 관계라는 사실에 어쩔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켈리언과 함께 살았다면 잭은 사람을 적대시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아쉬움마저 든다. 회색곰이 바로 잭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켈리언이 사냥을 하다가 오히려 잭에게 죽임을 당하려는 순간 잭이 켈리언의 냄새를 통하여 오래전 자신을 돌봐준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모습은 동물의 도 우리와 닮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반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캘리언의 공격으로 송곳니가 날아가 버린 잭은 목장을 돌아다니며 방목하던 소를 공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포악함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 캘리언에 대한 분노라는 생각이 든다. 잭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사냥이 시작되지만 그럴수록 잭은 보란 듯이 자신의 힘을 보여준다. 동면을 하지 않으면서 소에 대한 사냥에 익숙해진 잭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켈리언은 치명적인 수면제와 덫을 이용해 잭을 생포하게 된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잭이 탈출을 포기하고, 식음을 전폐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그를 알아본 잭. 켈리언의 절규와 냄새를 통해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은 마음을 아릿하게 한다. 그 후 동물원에 갇혀 22년을 살아가게 된 잭과 그 모습을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켈리언의 모습은 큰 울림을 남겨놓았다. 인간중심의 사고가 낳은 비극적인 결말은 그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의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파괴되어가는 자연, 그 모습을 마주하며 자책과 후회는 지나온 시간 속에서 앞으로의 방향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시튼이 꿈꾸던 진정한 삶은, 우리 모두 바라는 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시튼은 진정한 자연을 그리고 이야기로 전해줌으로써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되찾는 것은 물론 곁에 두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해준다. 시튼과의 만남은 숫자와 단어들로 뒤엉켜 벼린 머릿속을 자연의 푸르름으로 채워주고 막막한 현실로 답답해진 가슴을 자연의 넉넉함으로 다독여주었다. 어린 시튼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만난 자연을 가슴에 품어본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내쉬며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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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의 먹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을이면 산이나 공원에서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사람들은 도토리묵을 만든답시고 비닐봉지까지 준비해서 쓸어 담듯 가져 간다. 낭만적인 수집품으로 한두 개씩 챙겨 가기도 하지만 동물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다. 고수레~ 하며 먹이를 주지는 못할 망정 그들 몫까지 싹쓸이 해오는 판국.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고 도시에 출몰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멧돼지를 가해자로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자연을 궁지에 몰아 넣는 인간에게 야생동물이 반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방랑하는 자연주의자로 불린 화가이자 동물 작가 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 1860~1946년)은 인간의 폭력에 반격하는 자연을 표현한 그림을 그렸으나 인간중심주의에 물든 미술계의 혹평을 받았다. 한편 그가 전하려 했던 자연주의 메시지와 달리 포획자가 되어 끈질기게 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지금 보기에는 모순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후반은 토지를 개척하며 농장과 목장을 활발히 짓고 자본가들이 본격적으로 개발에 뛰어들던 시기였다. 숲이 줄어들자 먹잇감이 부족해진 야생동물은 인간이 키우는 가축을 노렸고, 역시나 식량이 풍족하지 못했던 인간은 가축을 지키기 위해 사냥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시튼 동물기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제3권 샌드힐의 수사슴-22세의 시튼
제1권 늑대왕 로보-32세의 시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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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안 읽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땐 필독서로 꼽혔던 '시튼동물기' 그래서 다들 어린시절 한번쯤 읽어본 걸로 착각하기도 한다. 나 역시 줄글을 읽었던 기억은 없고 드문드문 이미지만 떠오르는데, 아마도 소년만화잡지에 실리던 해적판 시튼동물기의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왔다. ![]() 그래 로보였다. 늑대왕 로보! '이제는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한마디가 와 닿는다. 그토록 그리고 싶었던 작품을 그린 후 어떤 심정이었을까? 기대를 갖고 책을 펼치게 된다. ![]() 오. 칼라판인가? 책도 두껍고 종이질도 좋은걸 보니! ![]() 그렇지는 않지만 사실감 넘치는 그림이 일품이다. 원작은 칼라판이려나? 아쉽다. 살찐 암소를 잡아먹는 로보일당. 생동감 넘치는 근육묘사가 눈에 들어온다. 초원에서 두두두 달려가는 소떼가 그려진다. 죽어가는 단말마가 들리는 것 같기도... 세부묘사가 탁월한 그림체는 몰입도를 높여준다(배경은 좀 단조롭다. 황량한 계곡...) ![]() 그러니까 로보는 이 정도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늑대란 말씀. 과연 시튼은 로보를 잡을 수 있을까? 그나저나 작가는 마치 로보를 보고 그린 것 같다. 이 한 장면을 위해 작가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을지, 얼마나 공을 들여 그렸을지 짐작케 한다. ![]() 만화가 끝나면 간단한 해설도 실려있다. 하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 만화니까 이야기 전개를 따라 사진으로 보여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생각보다 분량이 방대하고 어느 한 컷 버릴 게 없어 장면으로 보여주기엔 무리다. 장편만화로 보면 되겠고 웬만한 소설만큼의 분량이다. 각권마다 독립적으로 즐길 수 있겠다. 어쨌든 1권에서 시튼이 왜 화가에서 동물주의자로 전환하는지, 어떻게 로보를 만나게 되었는지, 로보가 어떤 늑대인지, 시튼과 로보가 어떤 대결을 벌이는지 자세히 설명된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나게 될까? ![]() 내가 받은 것은 3권이다. 각 권마다 독립적이고도 완결성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릴적 읽던 해적판하고 비교할 게 아니다.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3권까지 출판되었고, 최근에는 4권이 출판된 모양이다. 한꺼번에 쌓아놓고 보기보단 짬짬히 읽으며 음미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만듦새는 견고하고 깔끔하다. 만화책 전문출판사답다. 가격도 높지 않다. 벌써 여름이라고 투덜거리며 에어컨 앞을 떠나지 못하는 당신에게 이 책은 말한다. 여기에 대자연이 있다고. 협곡과 계곡과 야생동물, 냉혹하면서도 따뜻한 자연의 질서, 시튼은 묻는다. 그 모든 것 앞에서 기꺼이 자신을 벗어던질 수 있겠느냐고. (본 리뷰는 리뷰어클럽을 통해 해당 출판사로부터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