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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부터 스승으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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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없어..   이 책에서 <참고문헌>을 언급했다는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글쓴이가 완벽한 인용을 본문에 풀어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편지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다소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그닥 큰 문제가 될 것도 없고, 설령 틀렸더라도 너그럽게 양해해 달라는 것일까? 이도 아니라면, 예전에 칼럼으로 썼던 글을 새로 엮은 글이기 때문에 달리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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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다. 없어..

  이 책에서 <참고문헌>을 언급했다는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글쓴이가 완벽한 인용을 본문에 풀어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편지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다소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그닥 큰 문제가 될 것도 없고, 설령 틀렸더라도 너그럽게 양해해 달라는 것일까? 이도 아니라면, 예전에 칼럼으로 썼던 글을 새로 엮은 글이기 때문에 달리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일까?

 

  이 책에 <참고문헌>이 실리지 않은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글쓴이가 조목조목 논리정연하게 풀어놓는 이야기들 가운데 거진 다 모르는 내용인지라 도대체 그 진위를 알아보려면 어느 책을 참고해야 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도통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몇 자 적었을 뿐이다.

 

 역사공부하지 마라 말이야~

  사학자인 글쓴이는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선생님마냥 "<만들어진 역사'라면 배우지 말아라. 그리고 그런 책이라면 찢어버려라."라고 외쳤다. 책을 시작하면서부터 말이다. 고깃집에서 "고기 좀 주세요."라는 주문에 "안 팔아!"라고 외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러나 실은 바로 이 한마디에 크게 공감했다. 아이들과 함께 독서교육을 하다보니 <역사>를 다룬 책들로도 수업을 하곤 하는데, 그 때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된 역사책을 보여주려고 해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던 경험 덕분일게다. 좀 쉬운 책이라고 싶어 볼라치면, <너무나도 교과서적>이어서 손이 안 가고, 나름 교양적인 책이다 싶으면 <당장 볼 국사/세계사 시험을 대비>할 수 없어서 망설이게 된 경험 말이다.

 

 그닥 권하고픈 역사책은 아닌데..

  결론부터 말해서, 이 책도 그닥 아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다. 웬 독설이 이다지도 심한지..쯔쯧..이라고 혀부터 찰 지경이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참나..라고 머리를 싸맬 정도로 전문적이다. 어떻게 보면 '나만큼 방대한 역사지식을 지껄일 수 있는 사학자도 없을 걸~"라면서 제 자랑만 늘어놓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도 알만한 내용을 언급할 때는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감이 되기도 하였다. 정말 무서울 정도의 흡인력이었다. 빠져빠져..

 

 대단한 분 vs 얄미운 자식..

  글쓴이 험담을 좀 더 늘어놓자면, 참 얄밉다. 논란이 되고, 논쟁이 벌어지는 대목에서도 제삼자인냥 <가운데>를 차지하고, 또 신랄하다싶을 정도로 독설을 내뱉고서도 어느새 <당신에게 유감은 없다>면서 슬그머니 물러선다. 조금만 더 몰아부치면 주먹 한 대 날아갈만도 한대 참 교묘하게도 빠져나가는 통에 읽는이 처지인데도 훈수격으로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얄미운 자식~이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젊잖은 읽는이 처지에 고매한 교수자식을 때릴 수도 없으니 착한 분이 참을 뿐이다. 그러다 또다시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 현직 대통령이나 씹을수록 맛이 나는 정치인들을 글쓴이가 다루었다면 어떻게 풀어 글을 썼을까? 히히..상상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허나 이 역시도 <가운데>를 지키며 은근슬쩍 꽁무니를 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꽤씸한..

 

 마음으로부터 스승으로 삼고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역사 교과서를 찢으라는 얘기를 해보자. 읽는이는 찢고 싶다. 역사를 배운답시고 역사책이나 읽지말고, 차라리 신문을 읽으라는 얘기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말로 맞는 말만 골라서 하지 않는가? 글쓴이에게 감히 허물없이 부를 수 있는 별명을 하나 짓는다면, <똑부러지게 아는 것이 많아서 얄미운 자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너무 기니 줄여서 <똑얄식>. 부르기 쉽게 <또걀식>이라고 말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자식이 초면에 버릇없이 굴었다면 과감히 용서해주세요. 나 오늘부터 당신을 사부로 모실랍니다. 단순히 팬이라기엔 당신에게 배울 점이 너무 많아요.



YES마니아 : 로얄 z******8 2010.07.21.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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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이 세계를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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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국사, 세계사...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역사적 인물들을 알아야 하는 이유란 나는 누구인가? 처럼 근본적인 물음의 큰 덩어리가 아닐까? 내가 누구인지, 지금의 내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재가 속해 있는 현재의 사회가 왜 지금의 모양인지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아야 내가 처한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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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국사, 세계사...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역사적 인물들을 알아야 하는 이유란 나는 누구인가? 처럼 근본적인 물음의 큰 덩어리가 아닐까? 내가 누구인지, 지금의 내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재가 속해 있는 현재의 사회가 왜 지금의 모양인지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아야 내가 처한 현실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것이 개인이건 사회건 성장과정을 알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성장 과정을 대부분 교과서를 통해 배운다. 그나마의 배움이란 것이 이른바 주입식 배움이다. 주입식이나마 자유로이 생각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좋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에 저자는 영화 죽은 사회의 시인의 키팅선생처럼 교과서를 찢어버리라하고 심지어 자신의 책마저 찢어버리라고 한다. 고정된 사고를 원치않기 때문일것이다.

 

17명의 역사속의 인물들과 현대의 주체가 되어야 할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을 통해 현대를 이루는 중요한 사상들을 쉽고 자연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고있다. 간단한 인물에 대한 소개가 있고 저자의 꼽은 인물들과 글을 통해 그들의 사상, 그들로부터 파생된 사건들을 들여다보고 저자의 비평적인 시각을 통해 사고의 자극을 갖기고하고 기존의 알고있던 이야기와 내가 몰랐던 혹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인물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사람도 사회도 세계도 어느날 돌연 뚝딱 생겨나지 않는다. 완성은 없으며 늘 진행중이다. 개개인의 소멸이 있을지언정 전체의 소멸의 순간이 오지 않는이상 그렇게 계속 되어질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과정을 돌아보고 생각해봐야만 하는 이유다.

 

최근 방대한 장르인 철학이나 역사에 관한 비교적 질지 않은 에피소드형식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추세이다. 그런 책들의 최대장점은 보다 쉽고 재밌게 그 장르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인데 그 중에 연재되던 칼럼을 모아 책을 내는 경우 재미와 시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세계사 편지도 그런 경우다. 그러네 세계사 편지에는 한 가지 더 추가할 것이 있다. 재미와 지식뿐 아니라 저자의 시선만을 강요하지 않는 비판의식이다. 그렇지만 나는 무엇보다 우선으로 치고 싶은 것은 역시나 '재미'다. 이 책 참 재밌다.



2***s 2010.07.20. 신고 공감 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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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책? 같이 찢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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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역사,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 "지금까지 해온 모든 <역사공부>를 거부하라!"   시원하다. 그 진의가 어떻든 일단 시원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이 참 마음에 든다. 그저 도발적인 선언적 문구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주장하는 논지가 일관적이며, 알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연달아 고개 끄덕임을 실행케 해주기 때문에 참 좋다.    근데, 저자가 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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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역사,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

"지금까지 해온 모든 <역사공부>를 거부하라!"

 

시원하다.

그 진의가 어떻든 일단 시원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이 참 마음에 든다. 그저 도발적인 선언적 문구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주장하는 논지가 일관적이며, 알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연달아 고개 끄덕임을 실행케 해주기 때문에 참 좋다. 

 

근데, 저자가 보내는 편지의 수신인 총 17명 중에 내가 아는 이는 채 10명도 되지 않으니 좀 답답하기는 하다. 비록, 수신인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대충 아는 척~ 하고 넘어가려 했더니...근데 왠걸? 이건 뭐, 그 편지 내용도 잘 못 알아 먹겠다. 아~~ 이 무식이 통통 튀는 내 지적 능력을 탓할 수 밖에...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자 임지현 교수가 친절히 설명해 주니 내 비록 무식할 지언정 부분, 부분을 반복해서 읽으면 이해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미와 흥미도 유발하고 있으니 나의 무식함에 가슴 쓰리지만 그래도 아주 유용하고 즐거운 책 읽기 였다.

 

책을 읽으며 포스트잇을 참 많이도 사용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 용어, 그리고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 등 다시 한번 들춰 볼 일이 참 많을 것 같아 책을 읽는 도중에 틈틈히 꽂아 놓았다. 물론, 여기서 하나 하나 그것을 설명하지는 않으련다. 솔직히 지금 당장 다시 들춰보고 정리하려 하니 내 머리가 아파와서 그냥 전체적인 나의 느낌 위주로 리뷰를 쓰고자 한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그리고 추구하는 우리 삶의 문제 해결 방법은 국경이라는 제한적 의식에서 벗어나 민족주의에서 탈피하고 보다 폭넓은 상상력으로 새로운 사회를 인식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나 역시 민족주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본 경험이 있다.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와 파시즘으로 발전될 개연성이 많기에 그 위험성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와 같이 식민지 지배를 받은 민족에 있어서의 민족주의의 발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따라서 어느 정도(다소 불명확하지만...)의 민족주의는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 인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내 머리속에 정리된 민족주의는 가치판단의 측면에서 좋지 않은 것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막상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 문제, 중국과의 고구려 역사 문제 등에 접하면 무의식적으로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고 우리에게 유리한 방면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 즉 무의식적인 민족주의적 감정이 자연스럽게 발현되곤 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정말로 무엇이 과연 올바른 판단이고 냉철한 의식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실, 내 무의식적인 감정은 국정교과서 1종으로 '국사'를 배워 온, 우리들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유의 결과일 것이다. 굳이 박정희 정권에 충실한 '국민'을 만들기 위한 시작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역사교육은 그야말로 일방적이고 편협(?)함을 인정해야 한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후, 특히 현대사 부분에 있어서의 새로운 사실들을 접했을 때 느끼는 배신감과 실망감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민족주의에 매몰된 사고, 특히 식민주의적 죄의식은 '집합적 유죄(민족적 연좌제)'라는 비정상적, 비상식적 사유와 행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악순환의 연속이기에, 더더욱 민족주의를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사고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마지막 19번째 편지의 수신인은 '한,중,일 시민들'이다. 그 편지의 마지막 글귀를 옮기며 내가 봐도 한없이 부족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솔직히 재미있으면서도 배울 것이 참 많은 책인데, 나의 게으름과 표현력의 한계로 생생하게 그 유익함을 나타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21세기 우리의 삶이 처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국경에 갇혀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합니다. 국사 패러다임을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국가의 경계속에 가두고 질식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단 상상력을 해방시켜 봅시다. 그 다음에 이 고삐 풀린 상상력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지켜봅시다. 실은 나도 궁금해 죽겠습니다."

   

 

 



d*****3 2010.08.04.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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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살펴보는 20세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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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역사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쓰자니 내 블로그의 리뷰 분류 항목엔 `역사'가 없음을 깨달았다.  믿기질 않지만 사실 그랬다.  역사가 홀대받는 시대에 나또한 은밀히 동참했단 생각이 들어 부끄럽다. 고등학교에선 2004년부터 역사 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었고, 주요한 국가고시에서 한국사는 제외되었다.  역사란게 얼마나 공부하기 까다롭나?  외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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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역사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쓰자니 내 블로그의 리뷰 분류 항목엔 `역사'가 없음을 깨달았다.  믿기질 않지만 사실 그랬다.  역사가 홀대받는 시대에 나또한 은밀히 동참했단 생각이 들어 부끄럽다. 고등학교에선 2004년부터 역사 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었고, 주요한 국가고시에서 한국사는 제외되었다.  역사란게 얼마나 공부하기 까다롭나?  외울것 투성인게 역사다. 출제자가 수험생을 골탕먹이려면 영어나 수학 못지 않게 어려울 수 있는게 역사과목이다.  그래서 수험생은 제도가 바뀌는 시점에 당당히 역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  

 

우스개 소리로 요즘 초등학생들은 3.1절을 유관순 누나 생일날 쯤으로 안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은 그래도 괜찮다.  고등교육을 받는 고등학생들조차 자기가 발딛고 있는 땅덩어리의 역사를 모른데서야 말이 될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걸 정치권에서 깨달은건지,  요며칠 전 당정이 한국사 교육을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뉴스를 자세히 들어보니 수능 필수과목 선정에는 난색을 표했다 한다.  여전히 정치권은 국민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데 소홀하지 않다.  점수에 목매달아 울고 웃는 영악한 아이들이 수능에도 나오지 않을 역사과목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 ?  답은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고등교육 자체가 수능 점수를 잘 받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니 학교에서 역사 교육을 하고,  또 수능에 필수 과목으로 지정이 된다해도 제대로 된 역사공부가 될 리 없다.  역사는 이해가 아닌, 암기로 전락한지 오래니까.  그리고 학교 교육이 주도하는 역사 교육은 `객관적 역사'가 아닌 `국사(National History)' 아닌가?  국사를 배운 이들이 닿게 되는 지점은 자민족 중심주의로 무장한 배타적 애국주의다.  과연 우리의 역사 교육이 가야 할 지향점은 애국주의인가?   우린 정부가 주도하고 심의해 논 국정 교과서안의 국사가 아닌, 진정한 역사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인류의 삶에 대한 애정이란 결국 독서를 통해 심화된 역사안으로 발디딜 때만 가능하다.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이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인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의 책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는 국정 교과서 안의 역사를 넘어서, 아니 그 안에선 결코 배우지 못할 지식을 발굴하며 우리에게 20세기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하는 책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자'다.   학문과 국경의 경계와 틀을 넘어서는 역사학을 주창하는 그는 다소 파격적으로 이 책에서  `만들어진 역사'나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국사가 결국 세계사의 진실을 외면케 하고 역사를 통해 인류의 삶을 성찰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서양철학자로서 풍부한 지식과 남다른 역사관을 바탕으로 20세기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을 이끌었던 역사안의 인간들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 대상은 스탈린과 같은 공산주의자,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에드워드 사이드,  우리 현대사의 두 독재자, 김일성과 박정희,  영원한 혁명 아이콘 체 게바라, 아우슈비츠를 탐색한 한나 아렌트와 지그문트 바우만,  동양 유림의 스승 공자에게까지 뻗어있다.  이 박식한 역사학자는 그들에게 1:1로 편지를 쓴다.  마치 친분있던 지인에게 부치는 편지인냥 가볍게 인사말을 하고 안부를 묻지만 그것 뿐이다.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본론에 들어가서는 역사적 과오를 묻고 따지며, 때론 은밀한 약점을 파고들어 공격한다.  당신, 왜 그 따위로 살았냐? 고 매섭게 공격할 때 죽은이가 묘지에서 일어날까 섬뜩할 지경이다.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면 이 책을 보다 쉽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는 시대니, 이 재기충만한 역사학자가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문장은 편지체 임에도 다소 딱딱하고,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무게와 지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읽다보니 20세기 세계사가 인물을 통해 해체되고,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인물위주로 역사를 톺아본다는 것은 겉핥기가 아니라 그 내면의 결로 파고든다는 장점이 있다.  시작할 때보다 책장을 덮고 나서 더 큰 만족과 지적충만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 그의 책에 도전한 것은 몇 해 전인데 임지현은 그 많은 인물 가운데 역사가 사이드를 첫장에 불러온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이 서양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상의 지리'라 주장했다.  이 기막힌 용어엔 서양의 동양 지배 논리가 숨어 있었다.  언제나 동양의 발전 과정엔 서양이란 기준이 있었고, 동양인 스스로 자신을 비하할 수밖에 없는 매카니즘인 오리엔탈리즘으로 굳어진 경위를 파헤쳤던 팔레스타인 출신 하버드 대학 교수, 언젠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함께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사진 속의 그에게, 임지현은 그의 <오리엔탈리즘>이 `상상의 지리'라는 개념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을 해체함으로써 세계사라는 개념 자체가 바뀔 수 있었음을 고마워한다.   그 바뀐 개념속에서 우리는 서양사나 동양사가 아닌 그저 인류의 `역사'를 공부해야 할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이유에서다.

 

1930년대 항일 무장투쟁을 했고, 1937년 보천보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던 김일성.  재미학자 서대숙에 따르면 일본군이 당시 그의 목에 걸었던 현상금이 중국인 공산주의자보다 세 배가 많은 1만엔이었다고 한다.  항일 투쟁에 대한 긍정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북한을 건국한 후 스탈린의 개인숭배와 일제의 천황제에서 얻은 지배 노하우를 바탕으로 유례없는 개인 숭배 문화를 개발하고, 정치종교화 시킨 장본인. 임지현은 그에게 역사의 주체가 당신인가, 민중인가? 라고 따져 묻고 있다.  잘 살아보자는 대중의 욕망을 등에 엎고, 유신을 선포 같은 시기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했던 독재자 박정희에게 쓰는 편지에선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김일성과 일본 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를 지냈던 박정희를 비교하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대학생의 충격과 당혹감은 어떤 것이었을까? 되묻고 있다.  김일성과 박정희를 독재자라는 공통의 분모로 묶어 내면서도,  박정희에 대해선 김일성에게 가졌던 광복전의 콤플렉스를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여 민족주의와 개발독재로 극복하려 했다고 분석해 낸 점은 독창적이며 신선하다.

 

폴란드의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보내는 두 통의 편지는 스탈린과 레닌, 모택동을 중심으로 한 현실 사회주의자가 걸었던 길과 다른 제 3 의 마르크스주의를 택했던 로자에 대한 임지현의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다.  마르크스 이래 최고의 두뇌, 피에 굶주린 로자 등 공적인 평가와 갈리는 로자는 작은 키에 매부리코, 불완전한 걸음걸이와 고급 취향에 항상 돈이 쪼들려 궁색했고, 친구의 아들과 스캔들을 만들기도 한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역사에 대한 이해는 개개인의 삶에 나타나는 모순과 양면성을 회피하지 않고 용기 있게 마주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로자를 변호하는 임지현의 글은 현실 사회주의에 실망한 한 역사학자가  때묻지 않는 순수 마르크시즘에 갖는 관념적 애정으로 보인다.

 

아우슈비츠의 기획자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취재하면서 악의 평범성 문제를 들고 나온 한나 아렌트, 나치의 우두머리인 아이히만을 잡아놓고 보니 그가 괴물이 아닌 보통이하의 평범한 남자였음에서 유추한 `악의 평범성' 테제는 폴란트 출신의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악의 합리성: 근대는 야만이다' 라는 연구 주제로 가 닿는다. 이들의 소신있는 역사 연구를 통해, 시오니즘으로 무장한 이스라엘과 유대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버림받았던 기억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우리는 이 글속에서 이스라엘 건국의 이면, 나치의 아우슈비츠 학살을 묵인했던 시오니스트들의 정치적 악마성을 되돌아 볼 수 있다.  나치가 유럽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려 한 것, 멸절하려 한 것, 과 더불어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려한 시오니스트들의 이해가 맞물려 있다는 점은 역사가 가진 이면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20세기 세계사의 안쪽을 역사적 인물들로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개인의 치부와 공적을 두루 살피는 과정에서, 역사가 한 개인의 능력과 철학을 통해 형성되었고, 옳고 그른 방향으로 지금 이 시간도 구획되고 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면 섬뜩하기조차 하다.  역사의 주체는 민족, 종교, 이념과 같이 거시적이다. 그러나 그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언제나 개인이다.  임지현이 세계사 편지를 개인에게 띄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21세기 우리가 처한 삶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민족에 갇힌 역사적 상상력을 국경을 넘고 이념을 넘는 지점으로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을 주창하는 역사학자로서 당연한 결론이다.  역사를 국경앞에 가두면, 20세기의 비극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2차 세계대전의 포화, 간간히 들려오는 우리 시대의 대량학살과 인종청소는 경계 안에 갖힌 역사가 맞이할 필연의 결과일지 모른다.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역사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얻어야 하는가?   임지현은 `역사적 책임'이란 말로 답한다.  외울것만 가득한 역사과목을 선택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수능필수 과목 선정엔 난색을 표하는 역사에 대한 개념과 소신이 없는 정치인들에게, 이 책의 결론을 선물하고 싶다. 

 

"결국 책임이라는 말은 누구에겐가 대답한다는 거지요.  이때의 누군가란 곧 이웃이겠지요. 그중에서도 소외되고 배제되고 타자화된 이웃 말입니다. 우리가 대답해야 할 그들은 폴란드의 유대인일 수도,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일 수도, 미국 남부의 흑인일 수도, 멕시코 정글의 원주민일 수도, 헝가리의 집시일 수도, 르완다의 투치족일 수도, 세르비아의 보스니아계 이슬람교도 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 책임이란 바로 이들의 고통스러운 물음과 신음에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반응하고 답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이들의 신음과 고통에 뒤돌아 반응하고 답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요? "  임지현, <세계사 편지>,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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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3.7

s*****7 2011.03.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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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트랜스내셔널인가에 대한 참고서
"왜 트랜스내셔널인가에 대한 참고서" 내용보기
얼마 전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이라는 것을 처음 알고 임지현이라는 학자의 책을 좌라락 읽을 책 목록에 올려두었다가 도서관에서 두 권 빌려왔다. 하나는 세계사 편지, 또 하나는 대중의 국민화.   역사학자로서 동양, 서양이라는 구분부터 깨어야 하고, 죽은 시인의 사회 키튼 선생이 국어 교과서를 찢어버리라 가르쳤던 것처럼 역사교과서를 찢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디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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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이라는 것을 처음 알고 임지현이라는 학자의 책을 좌라락 읽을 책 목록에 올려두었다가 도서관에서 두 권 빌려왔다.

하나는 세계사 편지, 또 하나는 대중의 국민화.

 

역사학자로서 동양, 서양이라는 구분부터 깨어야 하고, 죽은 시인의 사회 키튼 선생이 국어 교과서를 찢어버리라 가르쳤던 것처럼 역사교과서를 찢어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디 쉬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교토에서의 안식년.

어떤 이웃님은 부산에서 딱 3년만 살아보면 좋겠다 하셨는데 나는 정말 교토에서 딱 1년만 살아보면 좋겠다.

우리 신랑이 유우망한 학자가 되어 교토대에 초빙교수로 좀 가주시면 참 좋겠다...(유럽도 좋아, 미국도, 영국도 좋아, 막 이래)

 

말 그대로 세계사의 유명인에게 저자가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 게바라, 한나 아렌트, 박정희, 무솔리니, 김일성, 공자 등의 인물에게 쓴 편지들은 각각의 인물에 대한 주요지점을 짚어주면서 그 역사적 인물 개인에 대한 매우 풍부한 지식에 바탕을 둔 농이나 위트도 곁들여져 있어 재미있게 읽혔다.

 

무엇보다도 관심이 갔던 것은 이스라엘을 재건한 유대지도자, 나치와 같은 유럽의 반유대주의자가 유럽에서 유대인을 이주(박멸)시키고 히브리 땅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지적이었다. 나에게 유대인은 그저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희생자 한 부류 뿐이었는데 정작 이스라엘을 건립한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의 기억을 가진 상처받은 영혼들을, 우수한 자원이 못된다는 면에서 반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아우슈비츠에 간 유대인들을, 히브리로 넘어와서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우자는 민족의 부름을 무시하고 자신이 유대인임을 잊고 유럽인인양 살고 싶어했던 사람들이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보았다는 것도...

 

그리고 정작 아우슈비츠와 관련 없이 이스라엘로 넘어가서 잘 살고 있으면서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나치의 희생양'이라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을 땐 저자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무슨 말인지 와닿는다.

마치 우리가 일본의 젊은이에게 너희 조상이 그랬으니 너는 한국인에게 미안해 해야해,라는 태도를 깔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와 완벽히 동일한 내용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런 태도를 민족적 연좌죄라는 말로 표현한다. 제삼자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이런 저런 민족간의 대립이나, 그에 대한 개개인의 반응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보면 논리적으로 간결하고 지당하지만 실제 내 삶 속에서 질감을 갖고 존재하던 감정은 분명 '일본은 한국에게 잘못했으니,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미안해해야해',라는 명제가 당연하다는 쪽이었다.

이런 말 한다고 저자를 신매국노,라 부르는 분들도 계시다 한다니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땅에 태어났다'는 문구로 이루어진 국민교육헌장의 위력이 얼마나 큰 줄 실감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의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한 그것은 중국의 주권 문제입니다. 근대적 국제질서를 규정해 온 국가주권의 원칙이 신성불가침의 보편원리로 작동하는 한,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황사 문제에 한반도의 주민들이 관여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주권의 신성불가침성과 민족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는 한, 황사 문제 등을 풀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은 빈곤할 수 밖에 없습니다.

21세기 우리의 삶이 처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국경에 갇혀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합니다. 국사 패러다임을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국가의 경계 속에 가두고 질식시키기 때문입니다.381

라는 저자의 논리에 공감한다면 우리 민족, 우리 국가라는 개념의 테두리를 넘어서야 할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한다.

 

막연히 역사를 알아야지,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왜 역사를 알아야할지가 더 분명해졌고, 그리고 그 역사가 한국사, 미국사, 동양사가 아니라 트랜스내셔널해야 할 이유가 명백해졌다. 

 

Two thumbs up!

s*****i 2011.05.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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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를 위해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하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하다" 내용보기
지나간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재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줌과 동시에 세계사에 긴 호흡을 가지고 탐구하고자 하는 호기심을 갖도록 해준 이 <세계사 편지>! 이 책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읽으면서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아오면서 세계사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을 해오지 않았던 저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임지현 님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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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재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줌과 동시에 세계사에 긴 호흡을 가지고 탐구하고자 하는 호기심을 갖도록 해준 이 <세계사 편지>! 이 책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읽으면서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아오면서 세계사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을 해오지 않았던 저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임지현 님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도발적인 편지들이라는 소개에 호기심이 절로 생겼는데, 역시 역사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각은 참 다채롭고 나름의 날카로움으로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지하고도 무관심했던 역사와 그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역사를 보고 평가하는 눈과 가슴을 차츰 넓혀나갈 수 있었다는데 무엇보다 큰 의미를 두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역사와 역사적 인물들에 의미를 두고 그들의 삶과 그 삶을 통한 역사 바라보기를 음미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색다른 경험을 한 듯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에 무관심했던 편협한 삶에서 벗어나 역사를 읽고 이해하고 평가하는 눈이 있어야 오늘을 살아가는 힘도 생길 수 있다는 깨달음부터 곱씹어야겠습니다. 이런 저에게 이 책의 역사적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모두 스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 이 인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준 저자에게는 더없는 감사를 드리고요.

 

마치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 같아서 그 전에는 낯설었던 괴링, 나오키, 체 게바라 등의 역사적 인물들을 친근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네요.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만큼 무관심했던 이념들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분명 역사를 만들어갔던 이념들을 오늘날에는, 그리고 그 시대적 역사적 상황에서는 어떻게 평가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보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제대로 된 인식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마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 시대의 아이들에게도 역사관을 심어주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y****7 2010.08.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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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일본축구팀의 패배를 바랐나
"나는 왜 일본축구팀의 패배를 바랐나" 내용보기
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면서, 세계를 넓히는 계기도 제공했던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 인민을 위한 축구선수도 있다!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는 와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아니 사실, 이상한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됐고, 그런 나를 보는 것이 왠지 불편했고, 고민도 됐다.문제는,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 한국은 이미 16강전에서 패배했고, 더 이상 과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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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면서,
세계를 넓히는 계기도 제공했던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

인민을 위한 축구선수도 있다!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는 와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니 사실, 이상한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됐고, 그런 나를 보는 것이 왠지 불편했고, 고민도 됐다.

문제는,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
한국은 이미 16강전에서 패배했고, 더 이상 과격하고 광적인 대~한민국을 보고 듣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던 찰나였다.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경기였는데, 어쩌다 보게 됐다.

그런데, 그 경기를 보면서 중간에 나는 푸드드득~했다. 
일본이 지기를 바라고 있는 거다. 일본이 파라과이 진영에서 공을 차고 있으면 불안했고, 파라과이가 일본을 공격하면 골을 넣으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는 거다.

아니, 왜지? 의문이 뭉게뭉게. 
왜 나는 일본이 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나, 아시아인으로서,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팀 모두가 떨어진 마당에 아시아의 마지막 보루인 일본이 이겨야지, 가 이성이라면,
이 쪽발 쉐이들, 아시아의 축구맹주 조센징이 떨어진 마당에 뉘들이 감히 뷁! 이라는 감정일텐데,

후자가 경기를 보는 그 순간을 지배했다.
된장, 나도 어쩔 수 없는 조센징이구나, 하는 생각이 아련하게 들었고,
그걸 느끼면서도, 나는 승부차기에서 일본 선수가 실축하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경기가 끝났다. 일본이 졌다.
라리사 리켈메를 등에 업은 파라과이의 승이 아니라, 일본이 진 것이다!
속은 후련했다. 한도의 한숨 같은 것.
하지만, 이 감정이 머리속에선 불편함으로 둥지를 텃다. 

나는 일본문화에 대해 되레 호감을 가진 편이다.
커피와 카페 문화, 스토리텔링의 향연, 오감을 만족시키곤 하는 영화나 만화, 알흠다운 내 어떤 여신들. 기회가 된다면 일본을 자주 방문하면서 일본과 더 친해지고 싶은 바람도 있다. 과거에 접촉했던 일본인들도 하나같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더구나, 나는 민족주의에 별반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국경 따위도 불만이다. 국경은 곧 한계를 상정하는 것 아닌가.
다른 세계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왜 그런 울타리로 막아버리는 건가.
누구나 원한다면 이중 국적, 아니 다중 국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데도 왜!!!
이게 다 제도권 교육, 특히 국사교과서 때문에 그런 거야, 라고 치부하고,
일단 접었지만 찝찝하던 찰나, 만났다.

다시 만난 임지현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임지현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임지현, 그 이름 때문에 만났다.
만들어진 민족주의가 아닌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을 주창하는 역사학자.
처음 임지현 교수를 접했던《우리 안의 파시즘》, 상당한 충격이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파시즘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계기.
그의 이름을 둘러싼 논란도 많았지만, 어쨌든 그는 20대의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번 책 역시 만들어진 역사인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으라, 는 기존 율법 차원에서는 과격한(!) 주장을 펴고 있는데,

책의 기조는 역시나 한결 같다. 18명의 과거사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띠는 가운데, 이성을 마비시킨 채 기득권의 체제유지수단으로 작동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민족주의가 각 인물의 시대나 상황 속에서, 혹은 그 인물의 내면과 행동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콕콕 찝는다.

일본, 집합적 유죄!

아 참,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 전으로 돌아가자. 책을 통해 나는 그 불편함의 정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한일 관계, 임지현의 표현에 따르자면, 식민주의적 죄의식이 작동하는 굴절의 메커니즘.

그러니까, 나는 내가 받은 제도권 교육의 '국사'를 통해, 제국주의의 후예인 일본인 전체를 '집합적 유죄'로, 한국인은 '집합적 무죄'로 간주하는 인식이 박혀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개개인의 행동과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에 따라 좌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섬뜩한 이야기지만,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사실 이 논리예요. 너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죄인이고,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했는지에 상관없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한다는 그 논리 말입니다. 식민주의적 죄의식이야말로 전형적인 집합적 유죄의 논리지요."(p.48)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 식민주의 역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본인이 죄인이라는 식의 집합적 유죄를 수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일본 축구팀을 일본과 동일시하면서, '죄인인 뉘들이 한국 축구팀도 좌절한 8강에 감히 어떻게!'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식민지 과거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과거에 대한 기억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고, 나는 국사라는 교과서를 통해 일본의 민낯을 접했던 세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국사가 펼친 민족주의의 주술에 묶여 살 수밖에 없는가. 일본 축구팀의 선전을 부러 무시해야 하는 건가. 일본이 잘 되면 배가 아파야만 하는가.  

임지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국사를 넘어서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국가간에도 국사를 떠나, 국경을 넘어 각 지역의 삶과 직접 연관되는 문제의 해결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체르노빌에서 비롯된 핵발전소 사업이 그랬으며, 우리에게도 중금속 미세먼지를 잔뜩 안고 한반도를 공습하는 중국의 황사 문제를 거론한다.

"주권의 신성불가침성과 민족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는 한, 황사문제 등을 풀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은 빈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 우리의 삶이 처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국경에 갖혀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합니다. 국사 패러다임을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국가의 경계 속에 가두고 질식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단 상상력을 해방시켜봅시다."(p.381)

역시, 문제는 상상력이다. 어딜가나 그놈이 문제다. 어떤 상상력이 어떤 미래를 불러오게 될지 알 순 없지만, 지금 역사에게 필요한 것도 상상력이란다. 그래야 나는 그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국사의 파장에서 벗어나려면 필요한 것도 상상력. 언제 일본팀의 경기를 다시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 책 덕분에 나는 조금씩 그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기대보다 더 흥미진진한 부분이 존재했다. 아는 인물의 경우는, 몰입도가 상당히 높았다. 속살까지 훔쳐본 기분이랄까. 해당 인물에 대한 앎이나 이해가 부족했던 탓이었겠지만, 임지현이 특히나 애정을 둔 듯한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랬고, 무솔리니가 그러했으며, 체 게바라가 그러한 한편, 지그문트 바우만 또한 흥미진진. 

알고 싶다, 마르코스!

뭣보다 가장 흥미로운 존재는 마르코스였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이자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신비로운 인물. 새로운 정치집단의 권력 장악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방식이 바뀌는 것이 혁명이라고 역설했던 인물.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닌 현실을 만들어가는 담론적 실천이라는 생생한 예를 보여준 마르코스의 말. 열광에 반대하는 사파티스타의 전통 또한 마음에 들었다.

"기존의 체제는 사람들이 이미 결정된 생활방식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때 안정된 재생산구조를 유지하지, 결코 힘에 의해서만 작동하지는 않지요. 혁명을 국가권력의 쟁취라는 정치의 영역에서 일상생활과 문화의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당신의 시도가 소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혁명은 단지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의 교체에 그치고 말 뿐이지요.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일이야말로 사파티스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당신의 말은 이런 점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pp.244~245)

책에서 지적했는데, 현재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된 과거'일 가능성이 높다. 현실도 그렇다. 사람들의 실천을 지배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인식한 현실이라는 것.

선거에서 표를 던지거나 특정한 정책이나 문화적 제안을 지지하는 등의 사회적 실천을 지배하는 것은 일상의 경험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일 때가 더 많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봤고 경험했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이 사회에서 통용된다. "국사는 흔히 이데올로기의 편이다. 한국 민족, 일본 민족, 폴란드 민족, 유대 민족 등을 동질적이고 단일한 실체로 본질화시키기 때문이지요." (p.374)

꼭 세계를 넓혀야 될 의무는 없다. 좁은 세계에서 복작거리다 뒤져도 그만이다. 하지만, 세계를 넓히는 것은 삶을 좀 더 풍성하게 재밌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기반을 제공한다. 엄청 큰 것은 없다. 그런 걸 바라는 것도 우습고. 18명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인터셉트해서 살짝 훔쳐본다고 생각하고 봐도 좋겠다. 연애편지는 아니지만, 당신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나 인물이 나오면 그 재미가 쏠쏠찮다.

알퐁스 도데, 다시 생각해봐라


참, 그리고 왠지 반가웠던 이야기. 나는 계급적 폭력 때문에 알퐁스 도데의 《별》을 무척 싫어하는데(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다면 다시!), 임지현은 알퐁스 도데의 반동성(!)을 알려준다.  

왜 일본과 한국에서 알퐁스 도데가 그렇게 유명하고, 일 제국주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던 《마지막 수업》이 왜 한국 교과서에도 실려서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언어적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아주 좋은 교재! 뭐, 연좌제는 아니지만, 악시옹 프랑세즈라는 프랑스 극우파 조직에 알퐁스 도데의 아들이 중요한 활동가로 있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까지.  

옛 기억속에 혹시 알퐁스 도데가 아름답게 미화돼 있다면, 부디 다시 생각해보시라. 《별》이 진짜 아름다운지, 《마지막 수업》이 정말 감동적인지.  

j******2 2010.07.18. 신고 공감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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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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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며칠 밤을 세계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했던 지난 주가 일단은 매우 뿌듯하네요.. 사실 책을 읽는 것과는 별개로 책에 대한 단상들을 표현하는 방법이 매우 아날로그적이었던 과거를 뿌리치고 이렇게 블로그에 표현한다는 점이 또한 설레는 마음이고요..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제 차치하고..     영화에서는 시작 5분이 중요하고, 음악에서는 전주가 중요하듯 책에서도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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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며칠 밤을 세계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했던 지난 주가 일단은 매우 뿌듯하네요.. 사실 책을 읽는 것과는 별개로 책에 대한 단상들을 표현하는 방법이 매우 아날로그적이었던 과거를 뿌리치고 이렇게 블로그에 표현한다는 점이 또한 설레는 마음이고요..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제 차치하고..

 

  영화에서는 시작 5분이 중요하고, 음악에서는 전주가 중요하듯 책에서도 머리말과 초반의 패러다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 이 책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는 첫 편지부터 확실하게 작가의 역사인식과 이책의 방향에 대해 논지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두 딸들과 과거와 현재의 세계사적 요점에 자리잡고 있는 인물들과 한중일 독자들에게까지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려운 세계사의 사상 이론이 아닌 내 주변의 일상적인 역사를 바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제 일반상식적인 부분이 부족해서인지는 몰라도 역사적 용어나 국제적인 사실따위를 쉽게 이해할 수는 없어서 오랜만에 사전을 조금 찾아 볼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저에게는 오히려 반전의 유익함이 다가왔기에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론적으로 쓰이는 용어조차 인지하지 못하던 저에게 질책의 시간이었고 또한 발전의 첫발걸음이 되었기에 유익함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흥미위주의 역사를 배우고 읽었고, 작가가 말하는 국정교과서에 정말 한치의 오차없이 길들여져 있던 저의 역사의식은 어떠했던가를 초반이 지나고 중반 로자 룩셈부르크에게의 편지 쯤에는 확실히 느끼고 절실히 반성하고 읽어 나갔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항상 옳다고 배워왔고, 역사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역사의 왜곡에만 관심을 가지던 한국 사회에서의 역사의 역할을 절실히 느끼면서 저부터도 과연 이분법적인 역사인식을 버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판단하기에 지금껏 내 인식의 틀은 너무나 작은 것이였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민족주의와 도덕주의가 얼마나 이 국제사회와 인간사회를 폭력과 반목의 시대로 계속적으로 이끌어 가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 였습니다.. 집합적 유죄의식과 희생자 의식의 민족주의 등 결국은 왜곡된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변질된 부산물들의 해결을 위한 방법은 지독한 편견을 버리는 것이고 그 편견을 버리는 방법이 역사의 해석과 판단의 방법이 앞에서 말한 민족주의와 도덕주의에 치우친 것이 아닌 기존 기준의 탈피와 좀 관용화된 역사의식에서 비롯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임지현 교수님의 결론은 그러한 세계사적 역사연구는 정말 어렵다는 것이지만(물론 세계 곳곳에서 그러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동아시아의 고정된 역사관념으로 서로를 물어 뜯는 하지만 적대적인 공범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해결책이 사실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역사학자로서 단순한 역사의 파악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고통과 평화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세계사의 얼마전 이야기들로 앞으로의 방향에 힌트를 던져주고 있을 뿐입니다.. 특히 동아시아 세계에서 교수님의 주장은 콧방귀도 안뀌는 상황이지만.. 정말 새로운 세대들이 이 편지들을 읽고 조금은 다른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 역사교과서를 찢고 이 책을 한번 읽어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는 책이었습니다..

 

 

 

p********7 2010.07.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임지현의 책속에서 경험케 되는 지적인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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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편지형식의 책을 펴낸다는 것이 작가에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자신의 생각이 있음에도 동의와 불복을 넘나들며 맥을 이어간다는 것이글솜씨만으론 책 1권을 모두 커버할 만큼의 뒷받침이 돼 줄 수 없을테니까.   책을 받자마자 제일 먼저 골라 읽었으며 이미 읽고 싶었던 부분은김일성과 박정희에게 보내는 임지현의 글이었다.과연 어떤 글을 써냈을까 무척 궁금했었는데,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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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편지형식의 책을 펴낸다는 것이 작가에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있음에도 동의와 불복을 넘나들며 맥을 이어간다는 것이
글솜씨만으론 책 1권을 모두 커버할 만큼의 뒷받침이 돼 줄 수 없을테니까.

 

책을 받자마자 제일 먼저 골라 읽었으며 이미 읽고 싶었던 부분은
김일성과 박정희에게 보내는 임지현의 글이었다.
과연 어떤 글을 써냈을까 무척 궁금했었는데,
내심 누구를 더 옹호하고 누구에게 더 비판의 날을 세웠을까 궁금했으며
분명 둘중 한쪽은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으리라 예상도 했는데
과연 너무 쉽게 이런 당연한 결과를 보여줄까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 박식하신 임지현이란 저자의 글속에선 정보와 지식을 구경했고
한국 현대사에 있어 상반되는 두 인물, 특히나 반감의 대상일 수 있었을
김일성에 대해 조차도 학자의 눈으로 정중한 시선으로
한겹한겹 벗겨내고 씌우기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이전에도 글 잘쓰는 사람들을 여럿봤고
한권만으로 끝나지 않은 저작물들을 가진 지식인들 몇몇의 책들은
가급적 모두 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제 임지현이란 이의 글도
이 책을 보면서 놓치지 말고 잘 챙겨 봐야겠단
인식을 심어놓게 해 줄 정도로 잘 쓴 책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의견에 동조하고 따라간다기 보다는
완전무결한 논리와 소재에 따른 전개가 아님었음에도
대개의 이런 글들이 어느 한쪽의 사상만을 부각시켜
동조하는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판매부수도 높이면서
스스로도 이 책보다는 좀더 쉽게 글을 써나갔던 예들과 비교하면
임지현의 이런 상반되는 인물들에 대한 핸들링은
읽는 재미와 함께 이렇게 세상사도 돌아간다면
좀더 덜 각박할 수 있겠단 생각을 가져보게 만들었다.

 

김일성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임에도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속칭 김일성 장군이라 말하며
얘기하는 것들에 대해 그다지 반감이 들지 않았다.
칭찬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당한 선에서
독자의 비위를 맞추려 드는 글도 아니었다.
어떤 면이 동조하는 이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었는지
어떤 면이 환영받았지만 저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인지를
거부감없게 묘사하며 인간 김일성에 대해서
비방이 아닌 삶의 궤적을 그려보이며 독자에게 얘기한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편지글도
김일성에 대한 형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과 과를 오갔으며 어느 한부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칭찬을 위한 칭찬도 하지 않았고 비방을 위한 너스레도 없었다.

 

세상이 혼돈스러우면 침묵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 흐름에 따라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읽혀 좀더 유연한 생각과
강한 주장보다는 큰 목소리를 내도 들어주는
다수의 인내심에 고마워할 줄 아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좀더 가까워라도 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고 싶다.

j******3 2010.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새로운 세계를 위한 세계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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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저자는 <적대적 공범자들>에서 처음 알았는데, 첫인상이 책 참 어렵구나였다. 이번이 2번째로 2000년부터 10여 년간 월간지 '우리교육'에 연재해온 <역사 에세이>를 수정, 보완한 책이니, 에세이 연재분을 모아 출간한 책이므로 어렵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 네루의 <세계사 편력>과 비슷한 느낌에 선택하였다. 책은 역사 속 인물 19인을 테마로 삼아 이야기를 편지
"새로운 세계를 위한 세계사 편지" 내용보기
 

임지현 저자는 <적대적 공범자들>에서 처음 알았는데, 첫인상이 책 참 어렵구나였다.

이번이 2번째로 2000년부터 10여 년간 월간지 '우리교육'에 연재해온 <역사 에세이>를 수정, 보완한 책이니, 에세이 연재분을 모아 출간한 책이므로 어렵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 네루의 <세계사 편력>과 비슷한 느낌에 선택하였다.


책은 역사 속 인물 19인을 테마로 삼아 이야기를 편지형태로 풀어간다. 체 게바라, 스탈린, 김일성, 박정희 등 알만한 역사속 인물 중심으로 풀어간다.


이 책은 고정관념인 역사학에서 벗어나서 창의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라며, 특히 기존 저서를 비롯 민족주의에 대한 저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21세기 우리의 삶이 처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국경에 갇혀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합니다. 국사 패러다임을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국가의 경계 속에 가두고 질식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단 상상력을 해방시켜봅시다. 그 다음에 이 고삐 풀린 상상력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지켜봅시다. 실은 나도 궁금해 죽겠습니다.

― <국경을 넘는 역사적 상상력을 위하여> 중에서(381쪽)


개인적으로 역사책을 좋아한다. 학창시절 역사성적도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사유로서의 역사를 좋아했나 반문해보면 사건, 장소 등 역사적 사실(?)을 암기한 거에 지나지 않았다는걸 깨닫느다.


고정관념을 깨고 뇌가 말랑말랑해지는 이런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역시 이번책도 읽기에 만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뿌듯하다.

p******k 2010.07.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