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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어떤 사물이 살아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져보면 ‘살아있는(living)’이라는 단어(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흔히) 우리 모두는 어떤 사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안다고 말하고, 그렇게 표현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죽은’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죽은’이라는 단어는) 절반 정도는 그 사물이 한때는 살아있다가 지금은 죽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 살아있지 않고 한번도 살아있던 적이 없는 사물을 명쾌하게 묘사해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1) 물론 이러한 부분은 중세가 끝난 후 부르주아의 성장에 따라 “연옥(煉獄)”이라는 관념과 단어가 생겨났듯이 앞으로 과학의 발달에 따라 회색지대에 해당하는 한번도 살아있던 적이 없는 사물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단어도 나타날 것이라고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애매모호함이 17세기에 “생기론(生氣論)”이 성장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그렇다면 “생기론(生氣論)”이란 무엇일까 생기론(生氣論)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인류의 사고를 지배해 온 것으로 개개의 생물은 신이 창조한 것이고 생명현상도 하나님의 뜻에 의한 합목적적인 현상이어서 물리나 화학적인 방법으로 규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2)는 주장이다. 즉 생기론(生氣論)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물리학과 화학의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힘이, 살아있는 시스템의 성장과 행동을 지시한다는 의미가 내포3)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과학으로서 생기론(生氣論)은 사실상 소멸했기에 생기론(生氣論)에 대한 비판은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학(神學)으로서 창조과학이 아직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한, 전투적 무신론자인 프랜시스 크릭의 연설을 되집어보는 것도 나름 흥미 있는 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프랜시스 크릭의 연설을 살펴보자. 그는 생기론(生氣論)과 같은 학설이 퍼지는 것은 다음의 3가지 민감한 생물학 영역에 대해 과학의 명쾌한 설명이 결여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한다. 첫 번째 그리고 가장 많이 언급해야 할 영역은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사이의 경계선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영역과 긴밀하게 연관된 두 번째 영역은 엄청나게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현재는 그 과학적인 가치의 중대함을 언급하기 어려운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4) 아직도 분자생물학으로 대표되는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사이의 경계선에 대한 연구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이 분야에서는 생기론(生氣論)이 주장하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밝혀졌다. DNA의 2중 나선구조를 발견하여 생명의 신비에 한 걸음을 내딛게 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저자는 1960년대 당시에 세포의 다양한 작용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효소나 핵산의 합성은 가능하였고, A-b-B-a(A=아데닌-C=시토신-G=구아닌-U=우라실)5)의 RNA염기서열도 알려져 있기에 생명의 창조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네 개 알파벳 언어의 핵산과 20알파벳 언어의 단백질로 서로 연관된 유전암호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연계 전체에 완전하게 동일한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런 사실들은 모든 생명체의 공동 기원을 암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우리가 발견하는 시스템들 간에 왜 차이가 없는지를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6)라고 주장하여 첫 번째 영역과 두 번째 영역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기론(生氣論)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준다. 물론 이 부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에서 보듯이 신학(神學)과 과학의 대리전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비록 지금 현재 진화론이 우세한 입장에 서있지만 진화론이 옳다고 믿는 우리도 진화론을 불변의 진리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묘하게도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비롯한 도전에 직면하여 진화(進化)했던 것처럼 진화론도 이런저런 지적과 비판을 받고 그것을 일부 수용하면서 진화(進化)를 하고 있다. 즉, 진화론이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논리적인 공백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나온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여러 가지 가장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높은 분석도구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볼 뿐이다.
이처럼 생명의 기원에 대한 것은 생기론(生氣論)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만약 생명체가 무생물로부터 “진화(進化)”한 것이라면 창조과학의 틀 속에 피어난 생기론(生氣論)은 더 이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생명체를 창조하여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진화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한다면 그것은 생기론(生氣論)을 비롯한 창조과학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인 동시에 선악과(善惡果)를 먹는 것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영역은 우리가 정확한 과학적인 용어로 생각하려면 불편을 느끼게 되는 ‘지각’이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는 뇌의 실제 행동과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들과 감정들의 습성에 관련된 설명을 다룬다. 이는 또한 현재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영역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7) 이 세 번째 영역인 고등신경계에 대해 저자 자신도 인류의 지식이 대단히 원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컴퓨터에 대한 연구를 이에 대한 또 다른 접근방식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저자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발명품이자,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믿어졌던 컴퓨터를 통해 뇌의 작용을 알 수 있다고 본 셈이다. 왜냐하면 4개의 DNA 및 RNA염기서열의 조합으로 생명체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진 상태이므로, 0-1의 2개의 숫자로 이루어진 컴퓨터를 통해 ‘지각’의 영역에 포함된 뇌의 작용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영혼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우리 두뇌의 기능에 대해 말하는 방식8)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에서처럼 무엇을 인간이라고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1) 프랜시스 크릭, <인간과 분자>, 이성호 옮김, (궁리, 2010), p. 15 2) 자연과학교재연구회 편, <인간과 자연과학>, (학문사, 1995), p. 78 3) 프랜시스 크릭, 앞의 책, p. 29 4) 프랜시스 크릭, 앞의 책, p. 30 5) DNA는 A=아데닌-C=시토신-G=구아닌-T=티민의 염기서열을, RNA는 A=아데닌-C=시토신-G=구아닌-U=우라실의 염기서열을 각각 가지고 있다. 6) 프랜시스 크릭, 앞의 책, p. 73 7) 프랜시스 크릭, 앞의 책, p. 30 8) 프랜시스 크릭, 앞의 책, p. 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