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무엇이라 해야 할까. 일상 같으면서도 일상이 아니다. 집보다 다른 나라에서 본 것을 말할 때가 많다. 나희덕이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아니 어느 한때 영국에 있었던 건지도. 영국 런던에 있으면서 유럽 여러 곳을 다닌 듯하다. 언젠가는 미국에 석달 남짓 머물렀다. 거기에서는 일보다 글쓰기에 빠졌다고 한다. 누군가는 나희덕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지낸 걸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이기에 더 잘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닐지. 늘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면 자세히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겠지. 같은 곳에서 맞는 하루하루는 늘 다를 텐데,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 좋겠지만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른 곳에 가는 건 자기 일상을 잘 보려는 것일 수도 있을까. 한번 떠나면 아예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자주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은 한 곳에 붙박여 사는 사람이 답답하게 보일까. 아니다 저마다 자기한테 맞게 사는 거지.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
|
사람과의 만남도 그렇지만 책과의 만남도 첫 인상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는다.
|
|
국경의 기울기 나희덕
새떼는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하수구의 물은 뒤섞여 흘러가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총탄을 피해 달아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옥수수를 구워 팔거나 돼지 껍데기를 튀겨 팔거나 비스듬한 표정으로 국경을 향해 서 있거나 걸어가는 사람들
|
|
![]()
여름 무더위가 몸 속 깊숙이 들어왔는데, 오히려 서늘함을 느꼈다. 오랫만에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읽었다. 제목이 마음에 먼저 닿아 망설임없이 고른 책이다. 산문집이라 더 좋고.
한 여름 뙤약볕에 행동도 굼 뜨고,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가는 사이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것은 다른 해(年)와의 차이다. 환경 탓이 아닌 이제 어떤 때라도 책 읽기가 가능해 몸이 체질화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의 풍경을 오랫동안 지긋이 봐야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임을 산문집을 읽을때마다 느낀다. 삶을 바라봄에 있어서 가볍지 않음이 좋다. 그 삶을 풀어내는 말들 하나 하나가 가슴에 품어지는 그 느낌이 좋다.
![]()
저자는 시인인가보다. 나희덕, 그러고보니 낯익은 이름이다. 시인도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아닌 듯 싶다. 여행지에서 보고 겪고 느낀 생각들이 범상치 않은 듯. 무늬만 시인은 아니었다. 그 시선들이 따뜻했다. 따뜻해서 오히려 더 서늘하게 느껴지는 글. 그 아린 듯, 스라린 풍경들이 마음에 들어온다.
![]()
시인의 책상 위 메모꽂이에 미국 시인 애이드리엔 리치의 일기 한 대목 적혀있다. 공감이 되어 나도 실천해볼려구. 특히, '작업과 고독의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 & '시에 대해 더욱 치열해지자' 많이 부족하고, 시작하지 않은 나에게 동기부여 될 것 같다.
![]()
출근할 때 마다 빈 손이 허전해 매일 읽을 책 한 권씩 들고 갔다. 바빠 책을 펼치지 못할지라도 늘 빈 손은 되지 않았다. 오늘의 하늘은 어제의 하늘과 달라 매일 고개 들어 하늘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똑같지만 행복하고 감사한 삶이 나에게 매일 펼쳐진다. 오늘의 삶이 여행이다. 여행 같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넉넉한 마음 같다. 보고 느낀 것을 아로새기고, 품을 수 있는 여유. 그럼 나도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겠지^^ 거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머무는 곳에......... 여름 뙤약볕 속에서 무던히 생각의 틈을 주었던 고마운 책이었다.
|
|
한때 나는, 내일 해도 되는 일을 오늘 미리 하지는 말자, 라고 큰소리를 치며 살았다. 물론 오늘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은 그날 무조건 하거나 아예 실행을 그만 두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이다. 그렇게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살고 또 살고 하다 보니 여기에 도착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한 걸음씩 차곡차곡 걸어서 여기 도착한 것인지 조금 의심스럽다. 나는 너무 느긋하게 굴거나 너무 서두르다가 여기에 도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
나희덕 님의 산문집 솔직히 나는 이번 산문집으로 나희덕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본다.
솔직히 그렇게 기대는 안했는데 잔잔하고 글을 잘쓰는 작가라 생각 했다.
jtbc 뉴스룸에 글이 소개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거 같다.
보통 시인들이 산문집을 많이 펴 내는데 대부분 나의 기대를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였다.
다른 산문집들은 감동도 없이 써 내려간 글들이 많았지만 어쩜 이렇게 글 하나하나가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물론 전혀 공간 안가는 글도 있지만 나는 책 한권을 구매 해서 단 한구절이 라도 마음에
울리는 구절이 있다면 책 값은 이미 뽑았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이 책은 나의 입장에서 봤을때
책 값은 이미 충분히 하고 남았다고 생각 한다. 좋은글 잘봤습니다.
|
|
산문시라는 말이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산문처럼 행과 연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쓰인 시를 일컫는다. 일정한 형식과 규칙을 엄밀히 여기는 정형시와 구분하여 자유시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명칭이 뭐 그리 대수인가. 중요한 건 '시'가 아니라 '시적인 것'에 있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예술 전반에서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요즘, 장르는 없고 오직 개인만이 있다고. 그러니까 시를 읽는 것이 아니고 나희덕을 읽는 것이며 발라드를 듣는 것이 아니고 김동률을 듣는 것이라는, 그런 얘기. 최근에는 알앤비도 아니고 힙합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의 음악들이 사랑받는 걸 보며 특히 이 말에 공감했다. 그렇게 해서 시가 산문이 될 수 있다면, 산문이 시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사실 좋은 문장은 어떻게 써도 알아서 시가 되고 만다. 그녀가 셰익스피어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손목시계를 보며 "시계의 무게보다 그것이 퍼나르고 있는 시간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게 여겨"진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그 무거운 '시간'을 "삶의 가해자이자 해결자인 그 이름"(63면)이라고 불렀을 때, 그녀의 글은 시가 되었다. 유럽에서 만난 노숙자가 두 마리 개를 곁에 두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그는 집을 잃고 가족을 잃었는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아직 삶을 버티게 하는 두 가지 무기가 남아 있다. 두 마리 개와 한 권의 책."(28면)이라고 썼을 때도 마찬가지. 좋은 산문은 시에 육박한다는 말이 아니다. 좋은 글 앞에서는 시냐 산문이냐가 무의미해져 버린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타인을 필요로 하기보다는 자기와 닮은 개를 더 원한다."(30면) 한 번 읽고 나면 쉽게 잊기 힘든 이런 문장들이 나희덕의 세 번째 산문집 속에 넉넉히 들어 있다. 저 멋진 문장을 살짝 비틀어서 이 책에 되돌려주고 싶다. 사람들은 '시'를 필요로 하기보다는 '시적인 것'을 더 원한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그녀의 글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문학에도 장르는 없고 오직 개인만이 있으므로, 나는 산문집을 읽은 것이 아니고 나희덕을 읽은 것이다. |
|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안네의 일기
사실 오늘은 다른 책을 읽기 위해 비워둔 날이었다. 그만 딴 짓을 하고 말았다. 게다가 <한 걸음씩 걸어서>를 읽다가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외출을 하고 말았다. 몇 시간 뒤 다시 적당한 온도와 내 취향의 음악, 리필 가능한 커피가 준비된 내 방으로 들어왔지만 풍경의 창을 활짝 열게 자극하는 산문집이다.
이맘때가 되면 동료들과 함께 오른쪽 어깨 통증과 불난 집 같은 마음을 토로하곤 한다. 어디 와서 붙어봐, 제대로 불타주겠어!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사람에 대한 면역과 인내력이 바닥을 찍는 시기이다. 일단 불난 집 같은 마음부터 진화해야 해서 <한 걸음씩 걸어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읽다가 몇 군데에서 흐느낌이 터졌다. 올봄을 관통하는 나의 마음은 대체적으로 ‘슬프고 울고 싶다’였다. 살면서 경험한 적 없는 외로움이 덮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일까 “내려놓기 싫으면 짊어지고 가거라(150)”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결국은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얽힌 삶을 인내심 있게 풀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말이 따끔했다.
무엇보다 나희덕의 문체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잔잔하고 수줍고 담백하며 따뜻하다. 진지하고 부끄럼이 많고 예민하며 생각이 많은 나에게 과하지도 헐겁지도 않은 어조가 매끄럽게 다가왔다. 어젯밤 어떤 프로에서 들은 말인데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너무 가까이에서 살면 안 좋다고 한다. 소금기에 사람도 집도 모두 절어 썩는다고. 아름다움은 좀 멀리 두어야 오래간다고. <한 걸음씩 걸어서>는 그런 거리감과 농도조절이 돋보인다.
쉬고, 놀고, 상상하고, 생각하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라는 주문도 마음을 끌었다. 8년 정도 계절을 잊고 살다가 몇 년 전부터 계절의 흐름을 끊어보며 감상하고 있다. 일이 줄어 가능한 일이었지만 자연과 사람, 그리고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믿고 싶다. 책 구절에 비유하자면 약간의 ‘속눈’이 생긴 듯해 기쁘다. 저자가 전하는 시간의 이중성이 뜻깊어 셰익스피어의 인물화와 희곡 대사가 들어간 시계가 탐나기도 했다. 그리고 몸을 숙인 나무와 갈대의 수군거림에 숙연해졌다.
그 보이지 않는 손이 삶을 강하게 구부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지? 더 낮게, 더 낮게, 엎드리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뿌리는 흙을 향해 더 맹렬하게 파고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엎드렸던 흔적들을 나무도 사람도 지니고 있다. (33)
변하지 않는 빵맛을 언급할 때는 나도 초심을 잊지 않게 얼마간의 마음은 떼어서 진공포장 해두어야 할 것만 같았다. 시인인 저자가 생업과 글쓰기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에서 내가 머무는 마지막 자리는 어디일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어떤 핵심을 관통하며 빛의 문으로 사라진 예술가들의 등을 보며 전율했다.
만일 고흐의 그림과 카프카의 소설과 안네의 일기가 없었다면, 그 방들은 단지 쇠락한 공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디로 나아갈 수도 없고 도망칠 수 없는 영혼의 마지막 자리. 그들은 막다른 방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방 속으로 깊이 걸어들어간 것이다. (128)
그리고 벽에 관한 글에선 황정은의 소설집 <아무도 아닌>이 떠올랐다. 벽 너머에 존재하는 타인의 존재와 이야기, 진정한 앎과 소통의 가능성이 연상되었다. 나 역시 커피마시는 즐거움으로 사는 사람인지라 “차 한 잔은 때로 세계 전체와 맞먹는 무게를 지닌다(166)”는 말이 전혀 과장되게 들리지 않았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추스르는 의식이자 자기정화에 필요한 수면이 채워지는 시간이기에 놓칠 수 없는 것이다. |
|
소장용 한 권, 선물용 한 권 이렇게 두 권을 구입했습니다. 좋은 책은 혼자만 보기엔 아깝잖아요. 좋은 책으로 인해 생각나는 사람, 하나의 좋음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는 행복 이런 게 사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책은 언제나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느낌입니다. 일상에 일상을, 평범함에 평범함을, 익숙함에 익숙함을 더해나가는 그 무던한 글들이 결국엔 소중함으로 귀결되는 흐름을 따라가는 게 행복 그 자체입니다. 아무튼 좋은 책을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평범하고 익숙한 행복을 다시한번 맛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
나는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 건강문제로 쉼없이 나를 채찍질 하며 달려온 댓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저 뛰어가기 바쁜 세상이었다. 나에게 그나마 힘이 되었던건 동남아의 느긋하고 편안한 휴식공간. 그곳에 매력을 느껴 매년 동남아 비행기표를 끊고 무작정 떠나 맥주와 마사지 밀린 잠을 자고 답답하면 자전거를 타며 일상탈출을 했다. 하지만 늘 일상으로 돌아와야했고 여행지에서 느낀 행복감과 내가 있는 지옥같은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바로 여행 산문집이었다. 그렇게 마주한 이 책. 진이 빠져 겨우 숨돌릴 수 있는 시간인 일요일. 공원으로 가 원터치텐트를 피고 책을 읽어나갔다. 날이 좋았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책속에서 묻어 나오는 여행지에서 만난 물건 동식물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자신의 성찰....글을 통해 내가 가보지 못한 유럽대륙이나 미국 등등 간접체험을 하며 작가의 시선을 따라갔다.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중 '내려놓아라. 방하착.' 여러번 읽고 읽었던 구절이었다. 그냥 다 내려놓으라고.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감당 하려 하지 말라고. 내려놓고 고요히 기다리면 언젠가는 지나간다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남의 집 불을 들여다보듯 할 수 있으면 된다고......(p149~151) 마음이 많이 아픈 나의 20대 중후반. 내려놓기 위해 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그리고 작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욕심없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남의 집 불 들여다보듯 보며 아픔을 이겨내고 삶의 무게 또한 초등학교 입학생들의 책가방 같이 어색하지만 야무지게 짊어지고 싶다. #여행 #삶 #극복방법 #20대에게 #따뜻한시선 #방하착 #내려놓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