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여름, 조 힐의 장편소설 <뿔>이 출간되었다. <뿔>은 다니엘 래드클리프 주연으로 영화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찰나였던데다,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하는 충격적인 소설의 시작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나는 아껴두고 싶은 마음에랄지, 결국 이를 제쳐두고 조 힐의 다른 소설을 먼저 읽어보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어차피 국내에는 세 권만 소개된 책이니까 뭐! 하고 부담없이 시작해보고자 했다(그런데 실제로 장편 소설과 단편 컬렉션만 생각하면, 조 힐의 책은 세 권이다.). 아버지의 명성을 가려두고 영국으로 가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이 도대체 어땠기에 브램 스토커상, 월드 판타지상 등 쟁쟁한 수상 경력을 품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호기심을 가지고 조 힐의 소설집 <20세기 고스트>로 그의 작품 세계 속에 들어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20세기 고스트>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나는 이토록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공포의 감성을 만나본 적이 여지껏 없었다. 그것은 내가 딱히 공포 소설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단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의 임팩트와 여운은 그의 컬렉션 속 작품을 하나 하나 아껴가며 읽게 만든다. 오싹하면서도 아름답고, 두려움과 함께 밀려오는 왠지 모를 따뜻함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거지? <20세기 고스트> 속 세계는 공포와 환상의 세계의 경계 위에서 그리움을, 사랑을, 우정을 담아낸다.
알렉은 여자에게 몸을 숙여. 여자는 얼굴을 들어 마주 향하고 눈을 감아. 아주 젊은 여자는 그에게 전적으로 몸을 맡기지. 알렉은 안경을 이미 벗고 있어. 그는 여자의 허리를 가볍게 잡아. 사람들이 꿈꾸는 키스, 영화에 나오는 키스 장면 그 자체야.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장면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지. 그리고 이 위로 도로시의 작고 용감한 목소리가 어두운 극장 안을 가득 채워. 집에 대한 어떤 대사를 아고 있지. 다들 알고 있는 그 말을 하고 있어._p.72, 「20세기 고스트」
내가 아트에게 풍선을 건네주면, 아트는 땅에서 떨어져 하늘 위로 떠올랐다. 점점 올라가면 바람이 그 애를 저 멀리 밀어 보냈다. 됐다 싶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면 아트는 풍선을 두어 개를 놓아 높이를 유지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 사진 프레임 아래쪽에는 언제나 대롱대롱 흔들리는 아트의 운동화가 찍혀 있었다._p.95, 「팝 아트」
「20세기 고스트」와 「팝 아트」는 단편들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들었던 두 작품이다. 오래된 영화관을 떠돌며 관객에게 말을 거는 유령, 그리고 그를 목격한 사람들과 그를 사랑한 남자. 풍선으로 된 몸을 가진 친구 아트와의 우정. 어찌 보면 오싹하고 기괴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조 힐은 그들의 인간적인 따스함을 포착해내고 있다. 공포와 희망은 공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조 힐의 대답이다.
막스는 정말로 놀라 동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일말의 시기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바보 같은 모험을 먼저 하고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구는 건 원래 형의 역할이 아니었던가._p.150, 「아브라함의 아들들」
형과 내가 슈퍼히어로 놀이를 할 때마다 형은 언제나 내게 악당 역을 시켰다. 누군가는 악당이 되어야 한다._p.280, 「마법 망토」
조지 프라인이 모리스가 마지막으로 만든 마분지 미로를 없애버리지 않았다면, 아직도 지하실에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그 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릴 수 있다. 항상 그런 것이다. 무엇이든 한 가족에는 유전될 수 있다. 심지어 사라지는 것까지도._p.452, 「자발적 감금」
형제, 자매만큼이나 좋은 친구이면서도 미묘한 경쟁상대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조 힐에게 형제란 어떤 의미였을까. 실제로 조 힐에게는 동생 오웬(Owen)이 있는데, 그 역시 작가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소재를 몰래 들여다본 「아브라함의 아들들」에게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법 망토」를 목격한 형제들도, 마분지로 만든 미로의 세계 속에 빠져들다 끝내는 그 속으로 「자발적 감금」하는 동생을 지켜보는 형의 마음도, 모두가 다른 이야기이지만 미묘한 형제간의 심리를 포착해 낸 단편(하나는 중편)들이다.
프랜시스 케이는 불안한 마음 없이 기쁘기만 했던 꿈에서 깨어나보니 자신이 벌레가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프랜시스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계속 생각했던 터라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_p.109, 「메뚜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리라」
쉬워. '아무데나'라고 쓰여진 팻말에서 가장 가까운 오솔길로 가. 그러면 아무데나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될 거야. 그래서 그렇게 쓰여 있는 거니까. 다만 오두막이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인지 확실히 정해. 그러지 않으면 도착할 수 없을 테니까._p.378, 「내 아버지의 가면」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의 첫 문장을 패러디하면서 갑충으로 변한 프랜시스 케이의 이야기를 담아낸 「메뚜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리라」와 숲 속에서 우연히 오두막을 발견해 묘한 게임을 하게 된 소년의 이야기는 조 힐의 장편소설 <뿔>을 떠올리게 하는 단편이다. 실로 <뿔>의 주인공 이그의 경험은 이 단편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변신」과는 또 다른 끈적임이과 세계가 갈라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온 듯한 묘한 경험을 그려내고 있는 두 단편의 분위기는 상반되지만 <뿔>을 읽고 난 다음 다시 읽어보니 묘한 공통점이 있어 재미있다. 그러나 <20세기 고스트>의 단편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금씩 불행이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 누가 그렇지 않을까. 어느 누가 아무런 고민도 없이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이는 보편적인 소설이 품고 있는 감성이 아닌가. 그저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조 힐은 여기에 공포와 환상을 끌어왔다. 그것은 친구와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연인과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가족 사이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전혀 모를 낯선 불행이 갑자기 덮쳐왔을 수도 있다. 그 실체를 공포로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곳에서 헤쳐나온다. 또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조 힐의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세기 고스트>는 그러한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컬렉션이라고 생각한다. 조 힐의 소설 속의 공포는 두렵지만 아름답다. |
|
|
|
어떤 책이든 그렇지 않은 책이 없겠지만, 이 책에 대한 나의 평가는 순전히 '취향의 차이'다. 영상 뿐만 아니라 책의 분위기, 묘사, 이야기 등에도 영향을 크게 받는 나로서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팠고 속이 불편했었다. 분위기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내 몸 전체를 압박해오는 느낌을, 혹시 알려나. 내가 읽기 힘들어하는 작가는 지금까지 딱 한 명 있는데, 그는 일본작가 '기리노 나쓰오'다. 편견이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리얼월드] 를 읽고 난 후, 그의 책을 다시 손에 들기가 겁이 난다. 어쩐지 이 '조 힐' 이라는 작가도 앞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야기들이 엉망인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기를.
진주빛의 토슈즈와 블랙 표지가 묘하게 어울려 발레와 관련된 예.쁜. 공포소설인가 했으나 모두 15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소재는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신간 공포 걸작선>으로 시작되는 음습하고 기괴한 공포가 마치 벌레처럼 스멀스멀 우리 몸을 타고 기어오른다. 그 뒤를 잇는 이야기들의 주인공들 또한 왕따,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가족,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의사까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도 않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들 뿐이다. 작품 속의 사람들은 모두 불행하며,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조차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편하고 다른 의미에서 무서운 소설집이었지만 <팝 아트>라는 작품 하나만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혈액 대신 공기가 몸 속을 채우고 있는 공기주입식 소년 아트. 어머니는 사라지고 아버지의 무관심과 사랑 없는 분위기가 가득 채워진 가정에서 자란 '나'는 그를 만나면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였지만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가족보다 더 가깝게 위로해주었던 아트와 '나'는 누구보다 진한 우정을 나누지만, 사고로 인해 이별하게 된다. 이 작품은 공포나 호러소설보다 성장소설, 청춘소설이라는 이름이 더 알맞다. 가슴 속에 안타깝고 아련한 슬픔이 번져가지만 사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별 네 개를 주었을 정도로 읽을수록 괜찮은 이야기다.
이 작품과는 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엄청난 기괴함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 숨결>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사람들의 마지막 숨결을 모으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소재 자체와 분위기만으로도 음울해지지만 결말 부분은 뭐라 말 할 수 없는 잔혹함과 끔찍함이 전해져온다. 오멘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책을 펼치고 읽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끌었지만,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기묘하면서도 이상한 작가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또 읽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상상력과 그가 만들어낸 세계가 독특하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
|
난 상당히 늦게까지 부모님이랑 같이 잤다.... 20세기 고스트...일반적인 공포와 비현실과 현실속에서 애매모호한 불안과 아픔과 비유를 표현한 단편집이다....상당히 많은 분량의 단편들 속에 본질적으로 이루는 중심은 가족에 대한 느낌이 주를 이루고 있다...그 속에 단절된 소통과 두려움과 불안등을 다루면서 공포감을 표현한 절적한 단편을 만들어냈다...각각의 단편들이 특유의 독특한 호러적 분위기를 내포하면서 위화감보다는 애틋함을 더 보여주는듯한 느낌이다....뭐 난 그렇다.. 애초부터 조 힐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고 있었다...그 유명한 스티븐 킹쌤의 아드님 되시겠다...뭐....어쨌든 아버지의 후광을 피하기 위해 필명으로 시작한 작가의 의지에는 찬사를 보낸다.. 뭐 나라면 뛰어난 아버지의 후광을 입을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할텐데....조 힐은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짧게가자....한마디로 재미는 별로지만 그 느낌만은 상당히 매력적이다...시간날때 한편씩 읽는것도 애초 출판의도가 아니었을까?...그래서 두껍다....한번에 다 읽는것보다 즐기면서 읽어라는 의미???!!! |
|
내가 이 책을 계속 책장 속에 쌓아놓기만 한 데에는 조 힐의 작품이라는 것 때문이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 힐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이유도 큰 지분을 차지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글의 분위기가 똑같으리라는 법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장르가 호러라는 것이다. 장르소설을 좋아하지만 스릴러와 추리에 비해서 호러는 그닥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다. 그나마 관심가는 작품이 있다면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질뿐. 그런 작품을 읽는다고 악몽에 시달리거나 마구 무서움을 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나 할까. 소설의 읽을 때 재미를 가장 중요시 하는 나로서는 차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인 것이다. 이 책은 단편집이다. 그야말로 짧은 이야기들이 아주 옹골차게 들어있다. 가장 짧은 작품은 단 한페이지 인 경우도 있다. 나처럼 호러라는 장르를 막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직한 접근법이 될 수도 있겠다. 시간 날 때마다 잘라서 읽으면 그나마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아주 개인적인 느낌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멋진 작품일 수도 있다. <신간 공포 걸작선>이라는 제목의 첫작품은 편집자가 주인공이다. 호러 장르 문학 편집자인 그는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 작가를 만나러 가게 된다. 그를 만나서 무슨 일이 생길까. 평범하게 시작했다가 뒤로 가면서 무섭게 확 불타오르는 이야기다. 표제작인 <20세기 고스트>는 영화관 유령이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하나의 영화관이 크게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후 지금과 같은 멀티플렉스가 생기게 되었다. 본문 속에서는 그 중간 과정이 나오게 된다. 영화관에서 보이는 투명한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메뚜기 노랫 소리를 듣게 되리라>라는 다소 긴 제목의 작품은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 한다.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작품이 몇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역시나 프랜시스라는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하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물론 카프카의 작품과는 다르게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이 벌레는 호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건이 벌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총 열 다섯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호러 단편선의 향연을 마음껏 맛볼 수 있게 한다. 조 힐의 작품을 좋아하거나 호러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흠뻑 빠져들어 읽어버리지 않을가. 혹시나 나처럼 선호하지 않는 장르라면 두고두고 한편씩 읽어본다면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
조 힐의 20세기 고스트는 표지의 핑크빛 발레슈즈에 반하고 (여자의 로망이 아닐까) '난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어요." 오래된 영화관을 떠돌며 관객에게 말을 거는 유령과 그녀를 목격한 사람들의 매혹적이고도 치명적인 이야기라는 글귀에 반해 읽기 시작한 책이다. 당연히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단편소설, 그것도 15개의 중,단편이 수록된 책인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사실 이 책을 집에 들게 된 제일 큰 이유는 조 힐이 학창시절 내가 그리도 즐겨읽었던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시드니 셀던, 스티븐 킹, 존 그리샴, 애거서크리스티등등 작가의 책을 읽지 않고 지나간 사람을 없을 터, 그 작가의 아들이 글을 쓴다는데 어찌 호기심있게 바라보지 않을수 있겠는가~ 본명이 조셉 힐스트롬 킹인 조 힐은 스티븐 킹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의 문학적 명성에 기대 성공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명인들중에 그런 이유들로 인해 예명이나 가명을 쓰는 사람이 은근 많으니까 ~
신작 공포 걸작선, 20세기 고스트, 팝 아트, 메뚜기 노래소리를 듣게 되리라, 아브라함의 아들들, 집보다 나은 곳, 검은 전화, 협살 위기, 마법 망토, 마지막 숨결, 나무의 유령, 과부의 아침식사, 바비 콘로이, 죽은자의 세계에서 돌아오다, 내 아버지의 가면, 자발적 감금등 수많은 작품중에서 난 개인적으로 신작 공포 걸작선, 20세기 고스트, 팝 아트, 검은 전화, 마법 망토, 과부의 아침식사등등이 맘에 들더라. 그 중에서도 최고는 '팝 아트' 공포 컬렉션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제일 공포스럽지 않은 내용을 담은 이 단편을 꼽다니 ~ 아이러니 하긴 하지만 제일 쉽게 이해가 됐고 이 단편이 의미하는 부분이 넘 깊게 와닿아서 선택하지 않을수가 없다는 ~ 너무나 좋은 소재라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은 그런 기분좋은 예감이 팍팍~~ 고독한 한 소년이 열 두살때 사귄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의 이름은 아서 로스, 공기 주입식 유태인이다. 몸속이 공기로 가득 찬 플라스틱 풍선 소년의 눈물 나는 우정을 그린 팝 아트에서 이 둘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트가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부분과 이제까지 알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애라는 얘기가 나온다. 마음이 따뜻하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기만을 바라는 아이인데 이 아이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이 단편집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공지영님의 도가니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설마 나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거짓말이라면서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면서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배라는 얘길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자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정말 틀린말이 한군데도 없는 듯 ~
개인적으로 이 책을 며칠을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넘 컸던 것일까? 다 읽고난 뒤에 단편 단편을 곰곰히 되새김질 해보니 모두 독특한 재미가 있는데 읽을땐 왜 그리도 집중이 안되던지 ~ 내가 무식해서인지 읽는내내 내용이 이해가 안 되 읽고 앞장으로 건너가 또 읽기를 무한 반복 ;;; 외국소설을 읽을때면 내가 즐겨 읽는 일본소설과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 헤매곤 하는데 이 책은 장편이 아닌 단편인지라 단편 하나하나마다 새 책을 읽을때의 기분이 들어 적응하기 힘들었나보다. 이 책을 계기로 폭넓은 책읽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또 한 번 하게됐다는 ~
|
|
그가 스티븐 킹의 아들이거나 말거나, 난 일찌감치 이 저자가 여기서 그칠 인물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내 리뷰==> 초자연 스릴러. 중반 이후부터가 훨씬 더 재미있다. )
그냥 이베이에서산 물건에 귀신이 붙어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산. 역시나 (으음? 스티븐 킹은 떼어버릴 수 없는걸까?) 통쾌하게 끝난다.
이의 바톤을 잇는 것은, '아브라함의 아들들' 그리고 '검은 전화'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힐은 스티븐 킹과는 떼고싶어도 떼지못할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둘 사이에 뭔가 연관되는 작품상 특질은 없다. 어쩌면 어릴적에 책이나 만화에 집착한 (그것도 호러에..) 스티븐 킹보다는 온갖 영상과 해악한 오락(히히히)을 접하고, 그리도 아버지와 달리 실질적인 생계적 공포나 외진곳을 걷는 등의 공포를 겪지않았기에 그의 작품은 보다 더 자극적이면서도 어쩜 공포의 소름보단 치밀한 오락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 속에선 조지 로메로의 [새벽의 저주]등과 같은 클래식 호러가 녹아들어가있으며, B급 오락영화적 (그 뭐랄까, 실질적으로 그외의 생활에선 B급이나 C급을 즐기기는 커녕 A급의 일상과 물품이 가득차있으면서도, 반항적이면서도 중독적인 면으로 선호하는 면으로) 요소가 들어있다. 스티븐 킹속 인물들은 진짜 B급인데, 조지 힐 속 인물들은 가장 최악까지 빠지지않는 안전한 인물이란 느낌이 든다 (예를 들자면, '자발적 감금'에서 에디 등).
여하간, 15편의 이야기는 무지하게 즐겁게, 그리고 가끔은 지겹게, 그리고 가끔은 새로운 상상을 새끼치며 풀린다. 아니, 말린다. 돌돌...끝이 어딘지 모르게.
좋았던 작품들은,
'마법망토'
..형과 내가 슈퍼히어로 놀이를 할 때마다 형은 언제나 내게 악당 역을 시켰다.
누군가는 악당이 되어야 한다'p.280
정말로 있을지 모를 것 같은 기계와 그게 캐치하는 '마지막 숨결'
...우리는 남과 구별이 되는 고유의 침묵을 가지고 있어요. 남편분만 해도 기분이 좋을때와 마누라에게 화났을떄 침묵이 다르니않더이까? 사람의 귀는 특정한 종류의 무존재를 구분할 수 있지요....어떤 침묵은 감정과 공명하기도 한다고..p.290~291
페이퍼 머셰란 노래가 기억나는, 뭐랄까 환타지스런 '자발적 감금', 마치 '굿바이 내친구'를 보는 듯한 '팝아트'
p.s: '과부의 아침식사'에 나오는 이는 아마도 다음의 책에서 나오는 떠돌이의 신호를 잘못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먹는 것은 M, 그리고 X는..... (그러고 보면 과연 X는 누가 표시해놓은걸까?)
|
|
결론부터 얘기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조 힐 이라는 이름에서는 연상하기 어렵지만 본명인 조셉 힐스트롬 킹 이라는 이름에서는 혹시..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결국 이 작가가 스티븐 킹의 아들이라는 점이 밝혀지고 나서는 싫든 좋든 비교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업 처럼 '킹'이라는 이름은 조 힐 에게는 후광이자 짐이다.
그러한 점을 스스로의 힘으로 넘어서 보고자 그는 가명으로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출판을 시작했고 결국 성공하여 미국에서 다시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가 그런 노고 끝에 내놓은 단편집이다.
제목이 <20세기 고스트>라고 해서 슬래셔나 고스트 호러물 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다양한 작품 중에는 SF나 판타지의 향기를 풍기는 것도 있고, 심지어는 순문학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있으며 물론 슬래셔도 있다. 결국 조 힐이 그의 단편들에서 의도하는 것은 하나의 형식과 장르를 굳건히 하여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다기 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주제를 잡고 싶어 하면서 크게 장르와 형식에 구애받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십 몇년 전에 PC 통신 게시판에 내가 끄적여 놓은 글에서 나는 스티븐 킹의 작품을 딱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원적 공포'라고 한 적이 있다. 거창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소재를 사용하던 간에 그는 뭔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숨어있는 공포를 느끼도록 하는 본능적 trigger를 찾아 당겨 버리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깜짝 놀라거나 잔인하거나 귀신이 나오거나 해서 무서운 것보다 무의식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서 미처 독자들도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숨겨진 공포를 저 멀리 근원부터 끄집어 내오는 것이다.
조 힐의 작품에는 그러한 아버지의 재능이 숨겨져 있다. 어찌 이러한 문재 까지도 유전이 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그 역시 소재나 형식 보다는 그의 작품들 대부분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 처럼 읽혔다. 아직 완전하게 잡아낼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
단지 스티븐 킹의 그 정서가 공포에 가깝다면 조 힐의 정서는 공포보다는 또 다른 애수 같은 것이 조금 깔려 있다고 하면 현재까지는 될 듯 하다. 그것을 차분히 잡아내서 끌어올리는 필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과연 아버지처럼 평생을 두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그 필력을 유지할 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 |
|
작품들은 첫 작품만이 호러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다음 작품들은 환타지적 느낌과 함께 인생을 추억하게 하고 있다. 어린 시절 공상의 세계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고 자신이 읽었던 책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만들고 사라져 가는 것들, 나이를 먹고 그저 스쳐 지난 일들이 어떻게 공상과 환상의 터널을 지나 공포로 인식되어 가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 작품 <신간 공포 걸작선>이 공포의 패턴을 따른 전형적 작품이라고 하면 마지막 작품 <자발적 감금>은 이 모든 작품들의 플랫랜드라고 할 만한 현실적 환상을 공포로 극대화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신간 공포 걸작선>은 공포 잡지 편집자가 자신의 마음에 든 공포 소설을 쓴 작가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로 소설을 읽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할 만한 공포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고 <20세기 고스트>는 유령이 나타나는 영화관에서 평생 영화관과 같이 늙어간 한 남자에 대한 따뜻하고 애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팝 아트>는 풍선 인간이라는 독특한 묘사로 인간의 고립과 소년들의 우정을 표현하고 있다.
<메뚜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카프카의 <변신>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그 시대와 다른 현대 가정의 문제점과 변신한 주인공의 정서,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하면 곤충도 자연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변이되듯이 마찬가지로 그것을 작품에 잘 표현하고 있다. 카프카의 시대에는 <변신>이 어울리지만 현대에는 이런 '변신'이 더 잘 어울린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물론 카프카의 시대에도 변신은 슬픈 일이었지만.
<마지막 숨결>은 이 단편집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고 싶은 작품이다. 적절한 환상과 호러가 결합된 잔잔하면서도 소름 돋게 만드는 묘한 면이 돋보인다. 침묵의 박물관이라는 이상한 곳에 들어온 가족과 그곳의 관장인 전직 의사, 그가 소장하고 있는 것들은 유명인도 있고 무명인도 있지만 모두 죽기 직전 마지막 숨결을 담은 것으로 그는 그것들을 전시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그 침묵을 듣게 한다. 무섭지만 서글프고 안타깝지만 기이하게 듣고 싶어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세상 어딘가 이런 박물관도 어쩌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발적 감금>은 조금은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동생과 문제아 친구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형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은 그 형이 쓰는 글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자신의 친구에게 일어난 일, 그리고 동생에게 일어난 일이 쓰여 있는데 이 글에서 처음 플랫랜드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2차원세계를 다룬 작품을 상자라는 정사각형 모양의 것으로 잘 묘사한 기발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드윈 애벗이 쓴 수학 소설에서 시작된 것이 SF와 환타지 소설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니 모든 학문은 위대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 현대인의 마음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시가 외치던 마지막 마법의 주문은 현대에 와서 공포로 바뀌었다. 집은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안전한 곳이 아니다. 집은 떠나고 싶은 곳이고 떄론 못 떠나게 가두는 곳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집들은 대부분 공포를 동반한다. 집이 그렇고 그 안에 사는 가족이 그렇다. 누가, 무엇이 먼저 변한 건지 모르겠다. 물론 때로는 떠난 이들이 그래도 돌아올 곳이 되어 주기도 한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공포를 환타지로 잘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작가는 오즈의 마법사의 마지막을 못봤던 이모젠처럼 우리 모두 오즈의 마법사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바꿔주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집이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조금은 색다른 조 힐의 단편들을 읽었다. 어떤 작품은 전형적 공포소설이었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환타지였고 어떤 작품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심심한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환타지는 공포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은 잘 표현하고 있다. 조 힐은 평범한 가운데 현대인의 공포와 환타지를 담아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 그건 놀라운 능력이다. 하나의 작품에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그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증명한 것이다. 나는 그가 아버지보다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청출어람, 징조가 보인다. |
|
이젠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를 간단히 하자. 조 힐은 조셉 힐스트롬 킹이 본명이고, 그의 아버지는 그 유명한 스티븐 킹이다. 킹의 아들이란 것을 숨기기 위해 조 힐이란 필명을 사용하였지만 이미 그가 킹의 아들이란 사실이 널리 퍼졌다. 첫 작품에서 그 사실을 숨길 수 있었겠지만 킹의 아들이란 사실은 책을 파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처음 나온 장편에서 그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기본 사항을 알고 책을 읽게 되면 아버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적지 않은 열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의 수상경력도 상당히 화려하다. 브람 스토커 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런 수상경력은 나 같은 사람에겐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특히 잘 모르는 작가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뭐 킹의 아들이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의 대상이 되겠지만 수상경력은 더욱 강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조 힐이 미국이 아닌 영국에서 데뷔했다는 점이다. 킹의 아들이란 사실을 숨기고 말이다. 그러니 작품으로도 충분히 인정을 받았다. 열다섯 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세 편이다. <신간 공포 소설>, <20세기 고스트>, <자발적 감금> 등이다. 사실 첫 작품인 <신간 공포 소설>을 읽으면서 전통적인 전개란 느낌도 있지만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암시하는 장면들 때문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그 긴장감이 최고로 달했을 때 예상된 전개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열린 결말로 여운을 남겨 두었다. 과연 그가 달아나는데 성공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소설이 주는 섬뜩함도 대단하다. <20세기 고스트>는 공포보다 아련한 추억을 불러온다. 영화관에 나타나는 여자 유령을 배경으로 영화관의 역사와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공포보다 향수에 젖었다. 이전에 본 영화들이 나올 때면 그 영화를 떠올려보고, 유령을 본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의 연대에선 이제 멀티플렉스에 밀려 문을 닫아야하는 영화관의 운명에 아쉬움을 느낀다. 그리고 여자 유령의 존재와 그녀에 의해 영화관이나 영화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에선 20세기 가장 매력적인 것이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발적 감금>은 참 당혹스럽다. 동생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동생과 그로 인한 실종을 빼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약간 자폐적인 성향이 있는 동생의 삶과 그의 작업들과 이 작업에서 비롯된 실종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고 이끌어 나간다. 이 이야기가 당혹스러운 것은 동생과 대비되는 형과 그 동생에서 비롯한 실종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박스로 만든 미로 속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사라지는 현실이 공포보다는 판타지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그들의 실종이 어떤 곳으로 이어졌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만약 나도 그 공간으로 들어간다면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앞에서 말한 세 편 외에도 다른 분위기로 각각의 매력을 발산한다. 공기주입식 아이란 설정이 있는 <팝아트>란 단편에서 이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하고, 카프카의 작품을 연상하는 <메뚜기 노랫소리를 듣게 되리라>에선 영화 <플라이>도 같이 떠올랐다. <아브라함의 아이들>에선 흡혈귀가, <집보다 나은 곳>에서 야구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생각나고, 납치된 아이의 이야기인 <검은 전화>에선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 놀랐다. <협살 위기>는 과연 뭐가 진실인지 의문이 생기고, <마법 망토>에선 힘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힘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숨결>은 죽기 직전 사람의 숨결을 담아둔 박물관 이야기인데 그 허구가 그럴듯하게 다가오고, <나무의 유령>는 단 두 쪽으로 콩트 느낌을 받았다. <과부의 아침식사>는 공포도 스릴러도 판타지도 아니지만 마지막 대사가 가슴으로 강하게 파고든다. <바비 콘로이, 죽은 자의 세계에서 돌아오다>는 반가운 이름과 영화가 나오고 한 남자의 질투와 사랑이 재미나다. 판타지 성격이 강한 <내 아버지의 가면>은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 서늘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판타지의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킹의 영향을 곳곳에서 보았다. 물론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로 이끌어 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킹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현대 공포 작가 중에서 킹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우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첫 작품의 강렬함이 뒤로 가면서 조금씩 퇴색되기는 했지만 조 힐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