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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폭발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화산 폭발이 가져온 극단적인 재해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느낀다. 이탈리아의 베수비오 화산이 기원후 1세기 로마 제국 시대에 폭발하여 폼페이라는 도시를 화쇄류(화산쇄설물류,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탄, 화산재 등이 화산가스와 혼합되어 고속으로 사면을 흘러내림)로 순식간에 덮어버린 끔찍한 사건은 유명한 예이다. 이러한 화산 재해가 자신이 사는 곳에 나타난다고 상상했을 때 두려워 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베수비오 화산의 쇄설물에 묻힌 폼페이 인들의 화석 출처 : http://mirror.enha.kr/wiki/%ED%8F%BC%ED%8E%98%EC%9D%B4 그런데 기원후 1세기 베수비오 화산보다 더 큰 폭발이 우리나라의 백두산에서 일어났었다면? 게다가 이 폭발이 당시 인근이 문명국가였던 발해를 멸망시킨 원인이라면?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지질학자인 마치다 히로시는 10세기에 백두산이 엄청난 대폭발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대폭발이 당시 한반도 북부 및 만주를 지배하던 국가인 발해를 멸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거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발해는 백두산 폭발로 멸망했다"는 가설이다. 이 책의 논의는 이 가설로부터 시작된다. 지질학자 마치다 히로시는 일본 도호쿠 지방과 홋카이도에서 분포하는 10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테프라(화산폭발 시에 방출되는 화산재, 화산탄 등 화산쇄설물을 총칭하는 용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 테프라가 일본 북부 각 지역은 물론, 동해 해저에서도 발견되었고, 연구 끝에 그 기원지가 일본이 아니라 한반도의 백두산임을 밝혀낸다. 테프라의 확산 범위 및 체적을 살펴보았을 때, 이때의 화산 분화 규모는 기원후 1세기의 베수비오 분화에 비해 몇십배 이상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 과학적으로 밝혀진 '역사시대'의 화산 분화 중 가장 큰 '대폭발'이었다.
그리고 마치다 히로시는 자신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확장하여, 역사학적인 가설을 주장한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폼페이 및 로마제국의 몇몇 도시가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세기 백두산의 대폭발이 그보다 훨씬 큰 폭발이었다면, 그곳의 자연환경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린 것은 물론 그곳의 주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단순히 몇몇 주민이 불편한 것을 넘어서, 인근 문명권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줬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926년에 발해가 멸망한 원인이 백두산 대폭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역사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큰 화산폭발이라면 왜 사료에서 그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하냐는 것이다. 남아있는 10세기의 테프라를 통해 알 수 있는 이 대폭발은, 특이하게도 당대의 사료에서 전혀 그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멸망한 국가인 발해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거란, 중국, 일본, 고려 등 어떤 나라의 사료에서도 10세기 경의 화산 분화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이 주장을 그저 한 지질학자의 만용으로만 치부했다.
한국의 지질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은 단순히 일본인 지질학자의 가설의 진위 판단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지질학과 역사학의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을 그리면서, 역사 연구에 지질학적 방법이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는 마치다 히로시의 연구는 가치가 있고, 여기에 대해 역사학계의 폐쇄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1992년 마치다는 '화산의 분화와 발해의 쇠망'에 관한 가설을 제창했다. 그러나 매우 파격적인 이 '백두산'에 관한 자연과학의 가설은 불가피하게도 '발해의 역사'라는 문헌 역사학의 영역을 침범하고 말았다. 10세기의 백두산 대폭발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경계에 있는 문제이다. 화산학자가 화산의 폭발에 의해 국가가 쇠망했을지도 모른다고 가설을 제기하자, 역사학자는 그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론한다. 화산학자의 형이하학적인 증거와 역사학자가 반론한 형이상학적인 논리 사이에는 공약수를 찾아볼 수 없다.(p.405) 저자는 마치다 히로시의 주장을 계승하려고 하지만, 단지 그의 주장을 무작정 추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방법론인 테프라 연구가 지질학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역설한다. 테프라는 마치 역사학의 사료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개개의 화산재는 마치 사람의 지문과 같은 특성이 있어서 다른 화산재와 구별하게 한다. 백두산 화산재 역시 일본의 화산재와 구별되는 독특한 지문을 가지고 있다. 그 특성은 백두산이 대폭발한 당시 지하 마그마의 성질과 화도의 물리 화학적 환경까지 알 수 있게 한다.(p.261) 그래서 광범위한 테프라의 분포, 그리고 각 테프라의 동일 연대를 찾아가고 그 기원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과거의 환경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테프라가 아니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폭발을 만든 증거로서의 테프라라면, 분화 당시의 환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접근이다. 예를 들어 마치다 히로시가 백두산을 연구하기 전에 일본의 다른 테프라를 연구했던 것들이 해당된다. 약 2만년 전 큐슈 남부의 아이라 칼데라에서의 폭발은 일본 전역에 테프라를 퇴적시키는 대폭발이었음은 물론, 일본의 구석기 문명을 괴멸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약 6300년 전 큐슈 남부의 기카이 칼데라에서의 폭발 역시 일본 전역에 테프라를 퇴적시켰고, 이 또한 조몬 문명을 사라지게 하여 일본의 고대문명 발달 속도를 늦춘 데 공헌(?)했다.
저자는 만약 테프라의 연대가 역사시대 이후로 나타났다면, 그것은 역사시대의 여러 사료와 같은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주장이다. 흔히 지질학은 역사적 기록이 없던 시대를 담당하고, 역사시대 이후는 사료를 분석하는 역사학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시대의 사건 복원에 테프라 연구도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아직 백두산의 테프라 연구는 매우 초보적인 상태로, 백두산 분화의 편년이 제대로 연구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밝혀진 몇몇 테프라만으로는 연대 측정의 오차가 크기 때문에 확언을 하기 힘들다.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백두산이 접경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중국 및 북한에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은 상태이다. 지질학자의 눈으로 본 백두산은 마치 읽어보지 않은 사료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백두산의 테프라를 더욱 면밀히 분석해서, 그것이 정확히 어떤 시기에 몇 회에 걸쳐 얼마나 분출했는지를 복원해야 한다고 본다. ![]() 출처 : 구글 지도 이러한 연구가 면밀하게 진행되면, 이전에 설명하기 힘들었던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백두산 대폭발의 역할에 대해 보완적 설명이 가능해질 것이다. 예컨데 거란 침략 이전의 소규모 분화에 의한 발해의 점진적 쇠락, 발해 멸망 이후 유민들이 고려로 대거 유입한 이유, 거란이 발해 지역을 편입하지 않고 버린 이유, 오랜 기간 버려진 발해의 옛 땅에 후대에 새로운 민족인 '여진'이 등장하게 된 이유 등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는 주장이다. 결국 저자는 백두산 테프라의 완벽한 연구가 있기 전까지는 백두산 폭발과 발해 멸망과의 관계와 관한 가설을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둘 필요는 없다. 9세기로 이름 붙여진 화쇄류와 그때 발생했던 강하 화산재의 분포, 그리고 분출량을 조사하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살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거란이 침공해 들어왔을 때 발해인들이 싸우지 않았던 '이심'의 이유가 바로 이 화산 분화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B-Tm과 백색 부석은 중국 쪽보다 주로 북한의 넓은 영역을 뒤덮었다. 따라서 화산 활동의 전모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화산재의 풍하 측인 북한 쪽을 조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의 산과 평야에서 제2, 제3의 폼페이를 찾게 될 날이 곧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의 고대를 향한 꿈의 여행은 실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p.217) 한편으로 저자는 백두산에 더 많은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주체는 '우리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백두산은 분명 한민족의 영산(靈山)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백두산을 밟아보기 힘든 지정학적 상황에 놓여 있고, 화산 분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백두산 연구를 소홀히 하고 있는 현실이다. 오히려 일본인이 백두산 분화 연구의 중요성을 깨닿고 연구하고 있었던 현실이다. 저자는 일본인인 마치다 히로시가 처음 발견한 백두산의 테프라에 중국식 발음인 'Changbaishan'이 아니라, 우리 식의 발음인 'Baegdusan'이란 명칭을 붙인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도 한다. 동시에 한국의 지질학자들이 백두산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역사학자들도 테프라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포용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한국의 일반인들도 백두산 연구의 타당성 및 효과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칼데라호이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B%B0%B1%EB%91%90%EC%82%B0 지질학 및 테프라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역사학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했던 마치다 히로시의 학문적 열정에 대한 일대기에 주목하는 것도 흥미롭다. 일본에 있는 테프라에 의한 초기의 가설 주장, 그리고 반박되는 과정, 이후에 백두산 현지 조사에 의한 연대 측정 등의 과정이 드라마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백두산 폭발 연대가 발해 멸망 시기 이전으로 나오기만을 기대하면서 읽는 스릴을 느끼기도 했다. 이 리뷰가 다른 이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내용이 포함된 리뷰를 올린다. 백두산이란 소재를 통해 지질학과 역사학의 연결고리를 만들면서, 역사를 복원하는 데 있어서 지질학적 방법의 중요성을 환기할 수 있었다. 학술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서적이지만, 한편으로 지질학 용어가 많이 등장해서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 테프라, 화쇄류, 화산이류, 상층 편서풍, 열점, 부석, 스코리아 등의 지질학 용어는 일반인에게 생소하다. 이외에도 일본 및 한국의 여러 화산지형 지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에 대해 쉬운 풀이를 곁들여서 비전공자도 어느정도 접근할 수 있도록 써진 책이다. 지질학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와 관심을 높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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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과학서적들은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만의 용어를 이용하여 책을 쓴다. 일반인 대상으로 책을 저술했음에도 알게 모르게 그러한 용어선택에 익숙하여 읽는 사람들을 매우 곤란하게 하고 책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게 하곤한다. 그러한 측면에 이 책은 매우 잘 다듬어진 그림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질학 용어를 이용하면서도 그 단어하나하나를 쉽게 풀어서 쓰고 있어, 읽는 사람을 배려한 흔적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단지 화산활동이나 과학적 조사를 나열하고 만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과거의 인류나 현재의 인류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서술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화산학자와 일반인들간의 거리를 매우 가깝게 했다. 이러한 특징에 더해 지은이와 이 책의 중심에 서는 화산학자인 미치다교수의 인간사랑에 대한 면면을 엿볼 수 있어 진정한 자연과학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이런 인간적인 면은 백두산의 화산테프라를 명명할때 그 많던 백두산의 명칭 중 미치다교수는 꼭 백두산을 고집하였던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두산을 고집한 이유가 백두산의 폭발로 가장 많은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이 한반도에 거주했던 우리 민족이고, 우리 민족이 그 화산을 말하는 이름이 바로 백두산이었기 때문에 백두산을 고집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국가와 민족을 떠나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엿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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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백두산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들으니 정말 화산이 폭발하는 건 아닌가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산 폭발에 대한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그로 인해 우리에게 닥칠 위험성이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역사 속 끔찍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폼페이 화산 폭발은 잘 알면서도 그와 같은 일이 나에게만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굳게 믿는 심보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활동하는 산이 존재치 않는 한반도에 사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접어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비록 남과 북이 갈리었고 일부는 중국에 귀속되었다고도 하지만, 이 산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많은 나라 흥망성쇠를 경험했기에 여타 산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게 바로 백두산이다. 높이도 높이지만 웅장한 천지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찬데 직접 방문하면 감흥이 남다를 듯하다.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만주 대륙에서 일어난 많은 민족들이 이 산의 영험함을 숭상했었다. 지금에야 어떠한 과정을 거쳐 산과 바다가 형성되었는지를 알지만, 신이나 기타,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다른 기제를 통해 자연을 설명해야 했던 세대에게 백두사는 더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평온한 줄로만 알았던 백두산이 폭발을 일으킨다면 과연 어떠할까? 대폭발의 순간에 살아 있던 이들이 오늘날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턱은 없는지라, 우리는 이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발해라고 하는, 고구려의 뒤를 이은 나라의 멸망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고, 백두산의 폭발이라는 걸쭉한 사건을 통해 설명이 힘든 부분을 보완해 보려 들고 있었다. 한때 해동성국이라 불리었을 정도로 왕성했던 국가, 고구려의 고토를 거진 회복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광범위한 힘을 발휘했던 나라의 결말치고 발해의 망국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몫이라고 했지만,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이는 명확해지질 않는다. 대전투가 있었다고도 하고 없었다는 기록도 있다. 귀족 계층의 내분이 심하여 불과 며칠만에 폭삭 망해버렸다는 식의 기술은 마치, ‘탁’하고 치니 ‘엌’하고 죽었다는 70-80년대 코미디를 보는 듯도 하다. 발해의 멸망을 둘러싼 의문은 이뿐만이 아니다. 많은 발해 유민이 고려로 내려왔는데, 그들이 내려온 시기, 집단을 이룬 크기 등에 관한 설명 역시 쉽지가 않다. 나라가 망했다고 여겨지는 시점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시기에, 그것도 멀쩡한 땅을 버리고 그들이 남하한 까닭은 무어란 말인가? 저자는 발해의 멸망이 백두산의 폭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한다.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후 그 땅을 일찌감치 포기한 이유 역시 그곳이 화산재로 뒤덮인 죽음의 땅이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만약 그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발해로서는 망국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음이 분명하다. 상경을 제외한 서경, 중경, 동경, 남경이 모두 백두산 인근이라 칭할 만한 곳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가설은 저자만의 독창적인 게 아니다. 도호쿠 지방의 To-a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일본의 많은 학자들은 곧 그들의 시선을 백두산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자의 가설에 날개를 달아주었던 마치다 역시 To-a 를 연구하던 화산학자로 10세기 백두산의 강력한 화산 폭발이 도호쿠 지방에 영향을 주었음을, 수차례 백두산을 오르내리며 연구해왔다. 그들은 입을 모아 한결같이 말한다.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폭발을 백두산은 보여주었으며, 역사가 기억하는 폼페이 화산 폭발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함을 백두산은 지니고 있다고,… 지금의 평화는 내부에 칼을 품은 한 많은 자객의 위장과 흡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나라를 역사 속으로 보낼 뿐만 아니라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이상의 긴긴 세월 동안 사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땅을 불모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화산이다. 자연의 위대함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내주는 사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우리가 경험치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우리의 역사가 상세히 이를 다루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안이한 태도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백두산의 고요함이 영원하진 않을 것이다. 언제라 말할 순 없겠으나, 훗날 우리네 후손들은 왜 그때 그 나라가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겠느냐며, 오늘날 우리가 발해의 역사를 다루는 것과 흡사한 태도로 지금의 우리를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산이 무서워진다. 어디 산뿐이겠는가? 강도, 바다도, 하늘도,… 우리를 둘러싼 사방이 모두 우리보다 위대하지 아니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