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생활은 가면 쓰고 살아가기이다. 직업인으로 산다면 더더욱 그렇다. 직업인에게 흔히 요구되는 '프로 정신'이란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철저하게 감추는 것에 다름 아니다. 주어진 역할을 위해 직업이란 가면에 자신을 감추는 것. 대다수 직업인은 이런 방식으로 산다. 문제는 가면을 너무 오래 쓰고 산다는 점이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가면과 함께 산다. 젊은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가면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쯤 되면 가면이라기보다는 얼굴이라고 불러할 것 같다. 영원히 벗을 수 없는 가면은 얼굴과 다를 바 없고, 드러낼 수 없는 얼굴은 얼굴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에 익숙한지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거부감이 없다. 살기 위해 어떤 가면을 썼는지가 이제 그 사람의 전부다. 사실 직업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인데도.
『틈만 나면 살고 싶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생계를 위해 원치 않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인형 탈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 비정규직 은행 청원 경찰, 엘리베이터 안내원, 경마장 신문팔이, 야설작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이 쓴 가면은 훌륭하다거나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들로부터 모멸을 받거나 스스로에게 모멸을 준다. 다른 하나는 생계가 강요하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그래피티 작가, 이곳저곳 떠돌며 배 만드는 노인, 휴게소를 떠돌며 여행하는 두 남자, 일 년에도 몇 번씩 가족 몰래 사라지는 실종남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가면을 벗고 드러낸 얼굴도 그리 아름답거나 대단하진 않아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는 못한다. 가면은 너무 두껍고, 맨 얼굴을 드러낸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들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직업인이 아닌, 한 개인의 진짜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 사람 자체보다 존엄할 때가 있다. 개차반인 줄 알았는데 남모를 사연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이야기를 천천히 듣다보면 곧 깨닫는다. 이야기가 존엄하다면, 이야기의 주인공도 존엄하다는 것을. 이야기를 사랑한다면, 이야기의 주인공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틈만 나면 살고 싶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리 대단하지도, 예쁘지도 않다. 좀 심하게 말하면 별로 존엄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 중 존엄하지 않은 이야기는 없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들의 존엄성을 증언한다.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것이 가면에 감춰진 얼굴을 보는 방법이고, 이것이 바로 문학의 역할이다.
『틈만 나면 살고 싶다』는 르포르타주와 픽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굉장히 특이한 책이다. 이 책의 장르는 르포 에세이로, 실존 인물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저술된 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책이 딱딱한 대화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희극 대본을 연상시키는 대화문도 삽입되어 있고, 픽션의 요소도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 르포의 특성이 작품에 무게감을 부여한다면, 유머와 픽션은 작품을 가볍고 재밌게 만든다. 덕분에 독자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다. 픽션이었다면 설렁설렁 지나쳤을 문장들도 실존하는 인물이 겪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대충 읽을 수가 없다. 또 르포였다면 지나치게 우울하여 읽기 힘들었을 부분도 유머와 드라마적인 요소 덕분에 술술 넘어갈 수 있다. 게다가 저자가 고의적으로 싸(?) 보이는 문장을 사용하게 때문에 빵빵 터지는 부분도 많다. 요즘 바퀴벌레는 지능이 높아서 해충 방제 회사도 4년제 대졸자만 뽑는다는 식의 유머가 특히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묘미는 중간 중간 눈을 턱 멈추게 하는 문장들에 있다. 그냥 툭 뱉어놓은 말 같은데 굉장히 의미심장한 문장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달콤하다. 이렇게 쥐고만 있어도 녹아버리는 게 인생이구나.” 같은 문장. 읽고 나서 인생의 허무함과 가능성의 소멸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나 싶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술술 읽히지만, 술술 읽을 수는 없는, 멋진 책이다.
분량도 짧고 내용도 재밌어서 오랜만에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단순한 문장에서 삶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쉬운 글에 심오한 내용을 담아내는 작가를 좋아하는데, 김경주 작가도 조만간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갈 것 같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어려운 사회과학서는 싫어하는 독자, 웃음 속에 눈물이 있는 글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빨리 읽기 좋은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천천히 읽을 것을 권한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문장들이 많은 책이다.
책 속 한 문장은 읽으면서 가장 적나라하다고 느꼈던 문장을 꼽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패한 삶을 잘 못 믿어요. 희망은 항상 무료니까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자신을 속일 수 있잖아요.” (p206.)
추신: 책의 뒷표지에 "처음도 끝도 없는 위로"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나는 작가가 인물들을 위로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위로보다는 오히려 예찬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란 희망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견뎌내는 강인함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의 기록은 희망 없이 절망을 견뎌내는 이들에 대해서 조용한 박수를 보내고 있다. |
|
나에게 김경주는 참 어렵다. 시도 어렵고, 밀어를 속삭이는 몸짓도 어렵다. 나아가 뱃속의 아이에게 들려주는 목소리마저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을 더 읽고 싶었다. 이 책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아서. 살고 싶다고 바둥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 모습을 김경주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다. 삶이 어느 땐가부터 살아내는 순간순간인 것 같을 때, 그래도 좀더 잘 살고 싶어서 욕심부리는 내 모습을 목도할 때 사람답다 생각한다. 결과는 아무튼 이 책도 어렵다. 당연하겠지, 삶이 언제 한번 쉬웠던 적이 있었나. |
|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로 독자의 애정어린 시선을 받아온 김경주. 이번에는 37명의 사람들과 함께 신작 <틈만 나면 살고 싶다>을 선보였다.
"달콤하다. 이렇게 쥐고만 있어도 녹아버리는 게 인생이구나." (p.191)
이 책은 2011년 <한겨례>에 연재한 <후달리는 부량배들>과 2015년 <한겨례21>에 연재한 <분투>를 묶은 것이다. 작가가 실존 인물을 직접 인터뷰하고, 이를 짧은 소설로 재구성한 르포문학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든 모르든 간에 글 속 인물들의 삶이 독자에게 주는 충격은 만만치가 않다.
살아있는 소리를 찾아다니는 소리 채집가 욜. 절도범에서 우편 집배원이 된 헐. 5부 리그 축구팀의 '0'번 골키퍼 완. 전국 고속도로의 휴게소를 탐방하며 도착하지 않은 삶을 지향하는 와이와 제이. ...
37명의 이야기는 독자의 뒷목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들의 삶이 실제했으며, 지금도 실제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도대체 인생이란 게 뭐야?"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두 손에 쥔 책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들의 고군분투가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몇몇 장면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라서 말이다.
"일과 후 다음 날 배달할 업무량을 살피다 보면 헐은 자신이 지금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여 착오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남들이 말하는 평균치 삶의 근삿값에 다가가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p.153)
"경쟁률이 턱없이 높아지자 핀은 아예 전공을 살려 세스코 같은 살충 회사에 취업해보려고 했다. 회사는 바퀴벌레가 생각보다 지능이 높다며 4년제 대학 졸업생만 뽑는다고 했다. 핀은 자취방으로 돌아와 약 먹고 뒤집어진 바퀴벌레처럼 날개를 빼놓고 발버둥치며 분개했다." (p.7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은 사소하지 않다. 매 장마다 명시해놓은 수치들마저 개개인의 인생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이 11.3퍼센트이고, 개인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인원이 1,020,000명이며, 자살에 의한 사망자 수가 1만 3513명인 오늘이지만, 우리는 정말인지 "틈만 나면 살고 싶다". 이들의 이야기가 장대한 서사로 읽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오직 문학만이 "설명하기 곤란한 것들을,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p.199) 설명가능하게 만든다.
그 밑바탕에는 김경주의 따스한 시선이 깔려 있다. 연민이나 동정 없이 이들과 눈 마주친 그의 시간들이 여전히 글 속에 살아 숨쉰다. 작가가 되고 싶은 응급 의학도 '궁'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다 취했어도 자신은 취하지 않은 채 언어의 심폐소생을 하는 작업"이라고. 김경주 또한 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써내려가면서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했을 것이다. 세상이 짓밟은 생(生)을 살려내기 위해 "혼자서 묵묵히 심폐소생"을 했을 것이다.
"궁의 실존은 타인의 생존에서 비롯된다. 바꾸어 말하면 궁의 기록은 가장 뜨거운 생존에서 가장 차가운 실존을 끌어내는 일이다."(p.187)
나는 이 책 속에서 르포문학의 가치를 찾았다.
|
|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틈만 나면 살고 싶다』의 작가, 김경주가 보여주는 삶은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인 것 같다.
배짓는 사람 ‘홀’의 삶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홀’은 여기저기 마음 닿는 대로 다니면서 배를 고쳐 주고 숙식을 해결한다. 사람들이 강을 건너게 도와주고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강을 바라본다.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일한 만큼 번다.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책임지는 그 삶은 또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러나 한걸음 멀리에서 그가 ‘가졌던’ 것을 보면 그의 현재가 단지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한때 굳건한 대형선박처럼 물길을 가르며 나아갔던 그는 가족이라는 선실을 잃고 흔들리는 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노을로 붉게 물든 강 건너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어쩌면 그가 잃어버린 과거가 가끔 그립지는 않을까? 가졌던 과거가 있고 가질 수 없는 미래가 그려지는 삶이 비극이 아니면 무엇일까 야설작가 ‘Y군’의 이야기도 그렇다. 글을 써서 받은 팬레터에 “중장비 다루는 사람이오. 다음 호엔 좀 더 묵직한 것을 원하오.”라니. 도대체 그가 어디에 연재를 하는 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읽기만 해도 재밌는 야설을 쓰는 것은 얼마나 더 재밌겠는가. 그의 삶은 언뜻 유쾌해 보인다. 그가 합법적인 글쓰기로 생계를 이어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그가 과연 합법적 글쓰기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흔히 알려진 것처럼 글쓰기가 돈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얼마나 더 오래 등단하지 못할지 알 수 없고 그나마 글쓰기로 돈을 벌어보려 해도 최저 시급도 못 받는 방송작가가 수두룩하다. 어쩌면 그는 생존을 가능케 하는 야설 쓰기를 놓지 못할 수도 있다. 꿈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아 왔는데 끝내 그 꿈의 언저리를 맴도는 삶은 비극이다. 그들은 모두 틈만 나면 살고 싶다. 어쨌거나 내 삶이기에 놓지 못하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간다. 작가는 그런 이들에게 “괜찮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행복한 것처럼 포장하지도 않고 다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봐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전혀 괜찮지 않고 전혀 힘낼 수 없는 상황에서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힘내라.”고 하지 않으니까. 김경주 작가가 인터뷰를 했던, 이 글의 주인공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오히려 위로받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삶이 계속되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괜찮아 보일 것 같은 순간이……. 그런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되더라. 별다른 희망이 없어도 그런 순간들이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지더라. 멀리서 보면 비극인 삶이라도 우리는 언제나 삶 가까이에 바짝 붙어사니까. 그래서 이 책은 위로 한 줄 없어도 위로가 되는 책이다. |
|
대학 생활을 하면서 친구와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말들이 있었다. "학교 오자마자 집 가고 싶다." "월요일 실화?" "종강 언제 하냐." 이상하게도 그렇게 오려고 분투했던 대학인데 우리는 틈만나면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어떤 친구의 입버릇 같은 말이 있었는데, 바로 "자살 말려". 틈만 나면 죽고 싶어하는 그 친구에게 처음에는 생의 의지를 불어넣느라 애썼지만 곧이어 나도 '자살각'이 날카롭게 서는 순간들을 마주하고는 했다. 다행히 그 친구도 나도 지금 같은 하늘 아래에서 빌빌거리며 지내고 있다. 눈을 감고 싶은 사람들은 실은 제대로 된 광경을 보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현실의 무언가가 비틀어져 있고, 정상에서 빗겨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 그렇기에 틈만 나면 죽고 싶은 사람들은 실은 틈만 나면 살고 싶은 사람들인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씁쓸한 37가지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소개한다. 누군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 르포형 책은 극단적인 예시들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그늘이기도 하다. 본문을 구분하는 장표지에 등장하는 통계 수치는 이를 뒷받침한다. "칠구는 쪽방 시절의 첫날, 옆방에서 들려오던 밭은기침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밤새도록 기침은 이쪽의 벽지를 부풀렸다가 가라앉히기를 반복했다. 칠구는 꽃무늬 벽지에 말라붙은 핏물을 보고 몸을 움츠렸다. 벽 속에서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핏물 몇 송이를 품은 채 잠들어 있었다." 고시원에 사는 벨보이 칠구의 방풍경은 애처로운 느낌을 주면서도 청년 실업률 11.3% 시대의 오늘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재생될 순간이다. "경마의 열기가 다 식은 구석에서 낌은 주머니에서 오래된 마권 한 장을 꺼내본다. 101전 최다 연패 '차밍걸' 일명, 똥말.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말. 아버지가 처음 사준 마권이다." 하지만 이 책이 마냥 슬프다고만 하기는 어렵다. 한 번도 이기지 못하더라도 매번 완주하는 '차밍걸'처럼 이 책의 인물들도 슬픈 생에서도 늘 자신의 트랙을 떠나지 않는다. 혹은 제대로 된 완주를 위해 령 할머니처럼 직접 생을 마무리한다. 가장 부조리하고 가장 격차가 큰 시대,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 작가 김경주는 가벼운 문장으로 이들의 삶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그들은 오늘도 좁은 방에서 말한다. "틈만 나면 살고 싶다"고. |
|
틈은 균열이다. 균열은 상처다. 원래의 상태가 아닌, 어떠한 이유로 갈라져 터져버린 것이다. 그는 회복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생긴 틈을 메우려 애쓰며 살아간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늘도 이 힘겨운 세상에서 잘 살아냈다고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나 틈은 기회다. 깨질 수 없을 것만 같이 단단한 것도 깨질 수 있다는 희망.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일상이 깨지면 변화가 생긴다. 그는 당황스럽지만 반가운 것이기도 하다. 그 변화가 반드시 긍정적이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늘을 날던 이를 추락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땅을 걷던 이를 땅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변화는 변화다. 서른일곱명의 사람들이 있다. 밝은 세상에서 살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곳이 완전히 어두운 곳만은 아니다. 그들은 어두운 와중에 선연하게 드리워진 그늘을 바라본다. 그늘을 좇아 고개를 들면 그늘을 만들어낸 빛이 있다. 그들을 빛을 보며 살아가는 어두운 사람들이다. 그 누구도 자신보다 불행할 순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 보다 불행한 이들이 있다는 동정심을 버리지 못하는 서른일곱명은 세상에 각자의 틈을 만들고 그 안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부끄러울 그 균열을 메우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러면서도 그들은 또 다른 틈을 찾는다. 숨 한번 몰아쉴 틈 없는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잠시 쉬어갈 휴식을. 완전히 불행하지는 않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 이들은 변화를 꿈꾼다. 오늘 하루 버티면 이 균열이 조금은 메워지겠지. 잠깐 휴식도 취하며 버텨보자.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틈 일거야. 틈이 메워지길 바라지만 막상 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시인 김경주다. 이들을 그려낸 것은 화가 신준익이다. 그들은 실존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이름을 주었다. 부끄러워서였을까, 솔직하고 싶어서였을까. 저자들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틈을 주며 다른 사람들을 그 틈으로 데려간다. 나는 감히 그 균열을 어루만질 수도 없었고 그들의 휴식을 방해할 수도 없었다. 어설픈 동정 또한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간신히 버틴다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감탄할 수도 있다. 사실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그저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된다. 이 세상에 당신만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삶도 있다는 걸. 사연 없는 삶이 없다는 것만 알아도 세상은 좀 더 메워질 수 있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위대한 개츠비’의 첫 문장을 떠올렸다. 개츠비 틈 속에 살며 틈만 나면 살고 싶다고 외쳤던 인간이다.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S.피츠제럴드, 김욱동 옮김 |
|
이따금 나는 삶에 정답이 있지 않을까를 묻곤 했다. 성공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는 멀어진 지 오래. 나날이 쌓여만 가는 불만이 혹 나만의 전유물은 아닌지 싶어 조바심이 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랬다. 누가 접해도 부러워할 수준의 무언가를 일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평범하다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었으면 싶었다. 부모처럼 살진 않겠다는 다짐이 철없는 고백이었음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방향 잃고 표류하는 배처럼 무언가 갈망하고는 있으나 그게 무언지는 알지 못해 갑갑함을 느끼는 나에게 이번에 읽은 책은 무언의 시위처럼 다가왔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왜 정해진 틀 안에 모두를 가두려 드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통해 사례를 접하며 나는 ‘비루하다’는 표현을 떠올렸다. 왠지 누구도 자신의 삶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 같고, 원하지도 않았으리라는 확신이 섰다. |
|
책은 하나의 르포 문학으로 김경주가 실제로 만난 삶의 틈을 토대로 쓰여졌다. 한겨레와 한계레21에 차례로 연재해오던 원고를 엮어 김경주의 인간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김경주는 6,655 (2016.03 기준 가구 평균 부채), 11.3 (2017.03 기준 15~29세 실업률), 19.4 (2016년 기준 배우자나 미혼자녀가 타 지역(해외포함)에 살고 있는 분거가족 가구 비율) 등, 글들을 몇 가지 주제 아래로 나눠 묶는다. 제목은 윤성택 시인의 홀씨의 나날에 나오는 구절이다.
홀씨의 나날
윤성택
새벽부터 골목 구석구석 햇살이 날렸다 허리띠를 맨 끝까지 채웠던 사내는, 뿌리처럼 툭 불거져나온 속옷을 쑤셔넣었다 틈만 나면 살고 싶었다 공사장 보도블록 사이 가는 목 하느작거리는 홀씨 하나 어쩌자고 이곳까지 온 것인지 바람이 지나칠 때마다 현기증이 일었다 백지장 같은 날들, 사내는 후들거리며 벽돌을 지고 일어서고 있었다
논픽션이자 픽션인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홀씨와 사내를 닮아있다.
. 나는 아무래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고 싶었는데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어떤 아르바이트도 어떤 정치인도 어떤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열심’을 가족에 빗대어 본다. 우리는 그저 함께 살고 싶어 가족이기를 원했는데, 나는 도저히 세상의 우선순위를 이해할 수 없는 날이 많았다. 평생을 숨 쉴 틈 하나 갖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가끔 너무도 견고해서, 그래서 오히려 나는 그 매끄러움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목적의식 없는 목적의식의 확고함에 쉽게 반기를 들 수 없고, 질서 없는 질서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당연하고 보편적인 사실들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아서, 나는 아무래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틈을 내고 싶었다 균열을 만들고 싶다
“모두들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 살지. 굳이 묻지 않아도 다들 목표는 ‘올해까지’거나 ‘이번 시험’이야.” 지금-여기를 딛고 일어나라고만 해서, 나는 그냥 우리 여기 있으면 안 되냐고 묻고 싶었다. 여기에 틈을 만들어, 균열을 만들어서 내가 원한 적 없는 질서를 깨뜨리고 싶었다. 왜 우린 스스로의 세계만을 부수고 나가려고 하는 걸까 생각했다. 본인의 피와 살을 깎아 숨 쉴 틈 하나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 그렇게도 늘 부질없는 이유는, 그게 언제고 한 번도 개인의 문제였던 적이 없어서, 개인이 떠맡은 ‘왕국’의 문제여서.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도 스스로를 불태워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겨우 한 목숨 부지하고, 왕국의 땔감이 되도록.
. 당신에게서 나의 숨 쉴 틈을 찾는다
“기회는 옵니다. 돈만 찔러주면. 어디든 그렇지 않나요?”
어디도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회가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안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해서. 우편집배원 헐에게 당혹스러우리만치 기뻤던 일상은 자신을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당혹스러움은 이내 오열로 바뀌지만, 그 오열에 마음이 동하는 이유는 한 사람이 다른 존재에게 온기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게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덩어리를 뿜어내도록 한다. 세상에의 기회와 김경주의 살고 싶은 틈은 곁에 있는 당신이다. 서른일곱 명의 주인공은 모두 틈을 찾고, 틈이 없어 스러진다. 틈은 서로에게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