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전을 좋아한다. 낱말의 개념을 알고 싶은 내면은 뭘까. 단순한 취향일 수 있겠고 세상에 관한 호기심의 출발선에 기인한 것도 같다. 내 의식에서 불명료한 말에 관해 국어 사전을 찾곤 하니 내 평생에 가장 많이, 수시로 읽은 책은 국어 사전인 것 같다. 국어 사전의 간단한 안내만으로 부족해 오래전에 두툼한 철학 사전을 구입한 적이 있다. 정작 너무 방대해 제대로 읽지 못했고 고향집 창고에 처박힌 채 먼지를 입고 벌레의 먹이가 됐다.
채석용의 <철학 개념어 사전>은 강창래 선생의 <위반하는 글쓰기>를 읽으며 알게 됐다. <책의 정신>,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를 읽고 강창래 선생이 긍정적으로 거론하는 책에 신뢰감을 가진 터였다. <철학 개념어 사전>은 모호하고 불완전하게 알던 개념들을 매만져 정돈해 주었다. 용어의 배경 설명과 함께 개념의 과정이 일목요연하니 거칠게나마 철학의 흐름이 정리되었다. 개념의 한계를 지적해 문제점을 추출하는 서술이 내겐 유익했다.
이 책에서 설명한 에포케(epoche, 판단중지)와 차연(差延)은 복잡다기하면서도 편견에 휩쓸리기 쉬운 세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둔다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정보를 취사선택하려면 한 호흡 멈추고 보류하고 지연하는 과정이 곧 에포케일 수 있겠다. 반면 속도에 집착하는 세태는 언어 표현을 단순화한다. 형용사와 부사는 한두 개로 비슷한 상황을 다 표현한다. 예컨대, 매우/몹시/굉장히/퍽/엄청/대단히/상당히/무척은 '너무' 하나로 대동단결한다. 상기한 부사들은 비슷한 뜻을 갖지만 동일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란 단어가 활약하는 문장에선 각각의 미세한 차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언어의 단순화는 사고의 획일화로 고착되는 위험이 있다. 언어(사고)의 차연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고대 그리스 회의론자들은 논쟁이 생겼을 때 평정을 얻기 위해 무관심한 태도를 표방했다. 20세기 현상학의 창시자인 에트문트 후설이 '에포케'란 말로 차용해 일상적·상식적 믿음에 대해 잠시 보류하고 회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논지를 펼쳤다. 데리다(J. Derrida)가 제기한 '차연(差延, defferance)'이란 차이(差異)와 연기(延期)를 합성한 조어다. 단어의 의미는 차이에 의해 규정되면서 지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세계를 하나의 완결된 형이상학적 실체로 규정하는 일체의 고정된 존재론을 데리다는 부정한다. 세계가 의미들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면 결국 이 세계에 대한 이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시시각각 변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불완전한 모습을 일깨우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세계를 고정된 실체로 보는 세계관을 해체해야 한다."
곁에 두고 수시로 찾아 읽어야 할 사전의 본분에 충실한 책이다. 다시 한 번 정독한 뒤에!
|
| 철학 쪽으로 원체 무지하기도 하고 사상이나 관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구매했습니다. 초반에 나오는 개념어 리스트는 같은 내용이 세번씩 반복되고 있어서 쓸모없게 느껴졌지만 뒤에 나오는 단어 설명은 얄팍하게나마 지식을 쌓기 적당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