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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비밀, 소외된 자리에서 퍼져가는 화평함:)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비밀, 소외된 자리에서 퍼져가는 화평함:)" 내용보기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한나의 아이'라는 책을 통해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알게되었고,신학자로서 독특한 그의 인생과 일상(책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과 교제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또한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그의 신학적 관점에 매료되어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더욱 알고 싶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비밀, 소외된 자리에서 퍼져가는 화평함:)" 내용보기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한나의 아이'라는 책을 통해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알게되었고,

신학자로서 독특한 그의 인생과 일상(책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과 교제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또한 결코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그의 신학적 관점에 매료되어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을 발견하는 대로 구매했다.


이 책도 그렇게 읽게 됐는데, 나로서는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따라왔다가 장 바니에를 만나게 된 재미있고

유익한 책읽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나는 착한 일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교회의 비전이다. 우리는 형제자매이며, 예수님은 위계 조직이 아닌 한 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장 바니에가 한 말이다. 어쩌면 이 말 속에 화평하게 하는 자가 받은 복에 대한 비밀이 있지 않나 싶다. 장 바니에는 내가 더 가졌으니, 나는 정상이니, 나는 상황이 괜찮으니와 같은 인식에서 퍼주고 마는 봉사활동과 같은 차원에서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삶 안에서 공동체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공동체에 향한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완전한 공동체의 모습을 자신의 삶 속에서 이루려고 노력하기 위해 그 말씀을 따라 살다 보니 화평케 하는 자의 자리에, 화해하게 하는 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사회 속에서 당연한 듯 소외되어 있는 '장애인(특별히 중증, 정신지체를 포함한)'이라고 하는 우리(우리가 기독교 혹은 교회라고 부르는) 공동체의 한 부분을 조명하고 있다. 라르쉬(방주)라고 하는 장 바니에가 꾸려가고 있는 공동체를 통해 실제적인 모습과 가르침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도전한다.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장 바니에의 실천적인 신학의 고백과,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날카로운 통찰을 담은 장들을 교차로 배열하고 그것을 존 스윈튼의 간결한 표현으로 열고 닫는 구성은 대단히 영리한 것 같다. 


소외시키는 것이, 제쳐두는 것이 마땅한 존재는 없다. 단지 내가,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결심했기 때문이며, 우리가 그 가치관은 나도 모르게 인정하고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완전한 공동체를 엿보고 싶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b*********9 2017.04.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하나님은 이 땅에 장애인들을 두셨을까?
"왜 하나님은 이 땅에 장애인들을 두셨을까?" 내용보기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 Living Gently in a Violent World (2008)) 저 자: 장바니에 , 스탠리 하우어워스 출 판: IVP / 발 간: 2010년 6월 10일 Q1 오늘 소개하여 주실 책은 어떤 책입니까? A  <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온유함의 영성>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으로 제목은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두 분이 공저를 하셨는데
"왜 하나님은 이 땅에 장애인들을 두셨을까?" 내용보기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 Living Gently in a Violent World (2008))

저 자: 장바니에 , 스탠리 하우어워스 출 판: IVP / 발 간: 2010년 6월 10일

Q1 오늘 소개하여 주실 책은 어떤 책입니까?

A  <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온유함의 영성>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으로 제목은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두 분이 공저를 하셨는데요. 장바니에와 스탠리 하우어워스입니다. 출판사는 IVP에서 만들었습니다.

Q2 저자들에 대하여 소개하여 주시죠?

A 두 분입니다. 좀 길게 말씀드리는 것이 본서를 소개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장 바니에 <Jean Vanier>

전 캐나다 총독인 조지 바니에의 아들이며,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국제적 공동체인 라르쉬l'Arche의 설립자입니다.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있다가 그만두고 지적장애인 2명과 공동체를 1964년 설립했습니다. 현재는 30국에 100곳이 넘는 공동체네트워크가 있습니다. 또한 마리 엘렌느 마티유Marie-Helene Mathieu와 함께 믿음과 빛Faith and Light 공동체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믿음과 빛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 가족, 친구들을 불러모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 믿음과 빛도 전세계 75개국에 1,300여 곳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두 번째 공동저자는 < 스탠리 하우어워스 Stanley Hauerwas >입니다.

듀크 대학교에서 신학윤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하우어워스는, 인문학 분야 최고의 영예로 여기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2000-2001년)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타임》으로부터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존 하워드 요더의 영향을 받은 평화주의자이자 비폭력운동의 지지자이며, 장애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글을 써 왔다. 20세기 후반에 가장 폭넓은 독자를 가진 신학자 중 한 사람이며, 저서로는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십자가 위의 예수』, A Community of Character, A Peaceable Kingdom, Sanctify Them in the Truth, With the Grain of the Universe and a Better Hope 등이 있습니다.

Q3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는 전체적으로 어떤 책인지 소개하여 주시죠?

A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는 라르쉬 공동체의 설립자인 장 바니에와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2006년 스코틀랜드에서 애버딘 대학교의 영성.건강.장애 센터가 개최한 특별한 컨퍼런스에 참여 한 후, 컨퍼런스에서 나눈 두 사람의 대화를 엮은 것입니다.

그들은 2일 동안 장애와 관련된 여러 주제에 대해, 특히 “라르쉬가 교회에 들려주어야 할 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나누었고, 교회가 하나님을 나타내려면 가장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지체들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복음의 근본적인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책은 인간다움이 무엇이며 어떤 삶이 인간 본연의 삶에 가까운지 성찰하게 해줍니다. 하우어워스의 냉철함과 바니에의 온유함 덕분에, 장애인들의 세계를 진지하게 인정하고 사물을 다르게 인식하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귀 기울여 우리의 시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열정적인 대화는 깨지고 멍든 세상 속에서 온전한 진리의 삶을 간절히 갈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따뜻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Q4 < 화평케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의 책 구성은 어떤 방법으로 쓰여 졌나요?

A 강연이지만 대화입니다. 장바니에의 40여 년간의 지적장애인들과의 생활속에서 얻는 지혜경험들을 말합니다. 오늘 현대사회는 너무나 폭력적입니다. 전쟁과 개인간, 국가간, 인종간의 경쟁과 갈등은 심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살인과 폭력을 불러옵니다. TV나 방송매체들은 그런 폭력을 당연시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폭력들은 성서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도 폭력과 억압의 사회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교회역시 비슷하여서 교회를 통하여 회복되어지지 않습니다.

왜 이런 결과들이 나온 것일까? 저자들은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해법을 지적장애인공동체에서 얻으려고 합니다. 물론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말입니다 문제는 있는데 대안은 없습니다. 성서의 말씀은 있는데 구체적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라르쉬 지적장애인 공동체의 삶을 통하여 현대사회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현대교회 성도들에게 본서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각을 전해줍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이야기하고 세부적으로 폭력의 시대에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평안을 얻을 수 있나 말하고 있습니다.

서론. 폭력적인 세상에서 온유하게 살아가기_존 스윈튼

1장. 연약한 공동체 라르쉬와 하나님과의 우정_장 바니에

2장. 낯선 곳에서 하나님 찾기: 라르쉬가 교회를 필요로 하는 이유_스탠리 하우어워스

3장. 예수님의 비전: 상처 입은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기_장 바니에

4장. 온유함의 정치학_스탠리 하우어워스

결론. 평화 운동과 라르쉬 공동체_존 스윈튼

Q5. 구체적으로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있나니>는 무엇을 이야기 합니까 ? 대표적인 예를 알려주십시오

A 장바니에게 이런 말을 본서에서 합니다. < 나는 착한 일을 하는데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교회의 비전이다. 우리는 형제자매이며, 예수님은 위계조직이 아닌 한 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장애인공동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장바니에는 본서에 여러번 공동체의 어려움과 복잡함을 이야기 합니다. 평범한 정상인들도 함께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물며 헌신된 봉사자들과 지적장애인들도 함께 공동체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상인들이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바로 장애인입니다. 장애인들은 어떤 대상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필요없고 낙오되고 복지소비만을 증가시키는 원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분들이 이 땅에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본서는 이야기 합니다. 성도들은 그들과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을 돕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야 >합니다. 화평케 한다는 것은 단지 중재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지적장애인들은 평생 문제가 지속됩니다. 약물과 수술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돕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야> 합니다. 바니에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한 몸입니다.

Q6 장애인들에 대한 시각을 변경해야 하는군요. 좀 더 장바니에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A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나누는 것입니까? 선천적이든지, 사고로 후천적이든지 누구든지 외적, 내적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느 가족이나, 친척중 장애인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수년 내에 프랑스에서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아가 판명되면 인공유산을 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장 바니에는 프랑스 사회가 심각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합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유산시켜서 경감하고자 하는 고통은 과연 누구의 고통입니까? 라고 저자는 질문합니다.

Q7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습니다. 특별히 교회관련 문제들을 자주 듣게 됩니다. 장애인공동체의 경험을 통하여 현대교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 교회가 진심으로 세상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실천하고 사랑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이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현대사회속에서 나타내려면 가장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지체들인 장애인들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복음의 가장 근원적인 원리를 깨닫고 실천해야합니다. 교회복음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한국교회가 말로서가 아니라 화평을 사랑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Q8 장바니에 저자가 40년간 사역한 지적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에 대하여 좀 더 말씀하여 주시죠?

A. 장바니에는 천주교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바니에는 캐나다에 있는 한 대학의 철학과 신학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현대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해 볼까? 생각하다가 한 신부의 소개로 아주 작은 지적 장애인 공동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보수적 개신교회의 신앙원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종교를 떠나 이슬람장애인, 무신론 장애인들도 라르쉬로 왔습니다. 종교보다 인간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라르쉬공동체도 이런 문제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연약한 자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30여국 100여 군데 지적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장바니에는 하나님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누구나 인간은 각 개인이 중요합니다.

Q9 오늘날 성도들에게 주는것은 무엇입니까?

A. 복음을 듣고 변화된 사랑은 실천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도덕적 원리를 배우는 것과 달라 마음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기독교 믿음의 진실성을 이해하려면 자아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급합니다. 그래서 전투적이지요. 그러나 장애인들과 함께 산다고 하면 내가 중심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장바니에는 <시간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시간의 친구는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합니다. 이것이 결국 <온유함>을 가져 옵니다.

현대인들은 기다릴 줄 모릅니다. 한국 사람들은 <빨리 빨리> 민족이라고 하지 않나요? 물론 장점도 많았지만 결국 지금 그 후유증들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공동체가 분열되고, 다툼을 자주 겪습니다. 라르쉬공동체에서 배워야 합니다. 정상인들은 장애인에게 무엇을 배울 것이 있느냐고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장애인들과 대등한 관계로 마음을 열고 들으면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에 경쟁하지 않고 연합합니다. 봉사자로 왔던 사람들이 장애인들과 수년간 함께 생활하면서 오히려 봉사자 자신들의 내면에 있던 장애들을 치유 받는 이야기들이 본서에 많이 나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마음을 들어주는 자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화해하고 용서하고 치유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경쟁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죽이게 합니다. 분노하고 저주하게 합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아서 원수가 되게 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언론에도 서로를 적으로 규정합니다. 말로는 <평화>를 원하지만 행동은 군비를 증가시키고, 위협을 가하며, 폭력으로 만사를 행사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힘도 없고, 뛰어난 지적능력이 없어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전락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배울 것이 없다고 확신하는 아주 고약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지적장애인들입니다.

Q10.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는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요?

A 한국이 이제 저성장 국가로 몇 년 전부터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무한경쟁>은 결국 모두 죽이게 됩니다. 거대자본, 독점자본은 거대한 기업을 만들지만 더 이상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비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볼수 있는 눈을 가진 분들은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체의 다른 말이 <조합(組合)> 입니다서로 믿어주고 이끌어 주는 조직이지요. 기업과는 다른 것입니다. 기업이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조합은 상호부조를 추구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KEY 워드가 <복지국가>입니다. 물론 복지예산을 대폭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얻느냐 입니다. 현대사회는 도태되는 시민들도 많습니다. 그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서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적장애인공동체 라르쉬가 보여주고 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라르쉬공동체에서 배워야 합니다. 한국을 낙오자 없는 사회를 만들면 지금보다 몇 배 행복한 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 방법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시민전체 모두가 같이 살 방법을 상대를 인정하는 온유함으로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지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Q11 그런데 또 다른 저자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요? 설명이 필요합니다.

A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장애신학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장바니에 사역의 신학적 뒷받침을 이야기합니다. 잘못하면 공동체가 복지로만 끝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르쉬가 역시 교회가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부족한 면을 깨닫게 하는 기능을 했다면 다시금 라르쉬공동체는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라르쉬가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출발했다면 결국 인간의 정체성은 교회만이 회복시킬 수 있는 방향성을 하우어워스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교회의 어느 한부분의 역할을 했지만 결국 교회의 본질을 다 빼앗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왜 그런가요? 교회의 존재이유는 하나님과 인간의 근원적 만남을 주선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거룩함의 장소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하기 위한 기초와 신학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라르쉬가 사역을 앞으로 계속하고 더 체계화시키려면 영성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복지단체에서 사역하는 기독교직분자들이 결국 영적인 전투에서 힘들어하여 사역을 그만두게 되는 이유는 영성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 즉 죄에 대한 문제, 용서, 치유 화해를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연합을 잘하고 공동체를 형성하여도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근원적 무제에 직면합니다. 해결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채워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Q12 그러면 왜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까?

온유함은 진실로 상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 특별하고 영웅적인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온유하게 일상적인 일들을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본서에서 말합니다. 2013년 이 방송을 듣는 분들은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기보다 매일하는 일을 온유하게 하십시오. 가족에게든, 이웃에게든, 자신에게든, 직장동료에게든 그러면 분명 복(福)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고통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상대가 내게 온유하기를 바라기보다 먼저 내가 상대에게 진심으로 온유함으로 대할 때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으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존재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폭력이 폭력을 부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바로 다시금 원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들을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 남기셔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평화하라고 가르치며 그 모습을 보고 정상인들인 우리가 사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s******1 2013.01.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