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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단히 '훌륭한" 책이다. 일단 남한산성이라는 소재에 접근하는 스토리텔링 방식도 유연하고 세세한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도 구체적이면서 리얼하다. 특히 그림의 기법이 창의적이다.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동양화같은 그림. 흑백의 만화가 이리도 풍부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느꼈다. 그런데 이 하드커버의 애장판같은 이 책은 내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상당히 불편하다. 그림이 멋지고 리얼하고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면 뭘 하나? 이 책엔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빛이 빛나면 빛날 수록 어둠은 더 수풀처럼 암울하게 우거진다. 그 어둠이 나는 생리적으로나 감각적으로 너무 어둠고 습해서 보기가 싫을 정도였다. 우리 민족의 수난사라면 수난사지만 강간, 방화, 전쟁, 살육이 어우러진 이 책의 구체적인 내용과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몽환적인 묘사들. 직접적인 묘사는 보기가 불편했고 꿈에 나타날까 무서웠으며, 주인공들의 애증과 허무함의 깊이가 가슴을 짓눌러 왔다. 한마디로 무거운 안개가 사방에 가득한데 갈 곳은 찾을 수 없고 마음만 애타고 안달하는 느낌. 그러면서도 불교적인 허무함이나 달관의 경지도 느껴지는 이유는 뭔지. 그리고 얼마나 힘들면 저런 경지에까지 도달하려나 싶으면 다시 가슴이 답답해오고......악몽도 아니고 호러물도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짓눌리는 가슴과 잔인한 슬픔을 주는 책이다. 그래서 호러물 이상으로 다시 펼쳐 보기가 무섭다. 그런 무거움과 불편함을 해소하고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멋진 그림체와 캐릭터의 덕이다. 최근에 이렇게 작가주의에 충실한,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극화체를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 뿐만이 아니라 선에 느낌이 살아 있다.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스토리에서 상당히 멀고 먼 길을 가고 있지만 표현 방식이 그럴 뿐이지, 사람의 인생살이와 감정을 리얼하게 묘사한다는 면에서는 사실 같다. 감정을 파고드는 스토리를 좋아하는데 단순히 독자를 울리는 스토리가 아니라 뭔가를 느끼게 해주는 좀 더 철학적인 울림이 있는 감동, 내가 좋아하는 그런 것을 이 책은 갖고 있다. 다시 봐도 표지는 정말 멋지다. 달관의 미학이 느껴지는 처절한 한풀이 춤. 아름답고 또 고독하다. 어쩌면 인간은 행복하게 살아도,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고달프게 살아도 괴롭고 또 외로운 존재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