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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 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가 처음에는 도전 정신을 불러 일으키더니 시간이 지날 수록 '칼을 가는' 듯한 인내심을 필요로 했습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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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저자가 내리는 판결은 간단하다: 재미없는 바른 생활 사나이. “사후 장례식이 치러지는 과정을 보면 육친이나 측근 외에 과연 그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긴 사람이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그는 정말 대중적인 인기가 없는 인물이엇다. 히데요시처럼 죽은 뒤에도 다이묘는 물론 서민들에게도 인기가 지속되는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이에야스라는 인간을 고찰할 때 정말 흥미로운 문제다. 사람들은 분명히 그를 신뢰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처럼 이치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신뢰받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 신뢰는 컴퓨터에 대한 신뢰와 마찬가지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는 로봇 같이 ‘완벽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같다. 예를 들어 히데요시의 헤픈 눈물을 보아 온 사람들은 인간같지 않은 이에야스의 눈물을 볼 수가 없었다. 죽음의 병상에 누웠을 때 아들 “다테마루의 어머니가 그 죄를 용서해달고 애원하자” 이에야스는 ‘눈물을 비췄을’ 뿐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아들을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다. “정말 눈물을 닦을 정도로 울었던 적은 있었을까? 아마도 노신인 도리이 모토타다와 헤어질 때뿐이었으리라. 이에야스는 정말 ‘냉혈인간’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따라서 사사로이 ‘정에 빠지는’일이 없었다. 그의 냉철함이 무엇보다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은 여성과의 관계다. 이에야스가 사랑했다고 할만한 여인은 없었다. 여자 때문에 정치를 그르치는 일은 없었지만 남성으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그렇다고 이에야스가 아스퍼거 증후군이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의 정을 느끼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자식에게 실망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도 사람이니 때때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도 있어서 사실은 다혈질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지만 “강한 의지력으로 자신을 통제했다.권력을 쥔 이후에도 누부나가나 히데요시처럼 감정적이거나 잔혹한 행동은 하지 않앗다. 권력을 쥐면 3년만에 멍청이가 된다고 하고 또 많은 권력자들은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만 이에야스는 결코 냉정을 잃는 일이 없었다.” 그는 더불어 즐길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엇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폭음, 폭식은 물론 여자에게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금욕주의자도 아니니 한마디로 절제가라 할 수 있다. ‘술 때문에’란 변명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식사도 마찬가지로 지나치지 않게 먹는 것을 최상으로 여겼고 과식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으로 보앗다. 만사는 적당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절연은 금연보다 어렵다고 하듯이 만사를 적당하게 절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에야스는 평범하지만 어려운 이 ‘적당히’를 평생 지속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신뢰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에야스가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세운 것은 그의 모토가 ‘주의와 경계’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에야스를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로 표현하며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 인질 생활로 고난을 겪었고 그 경험이 훗날 그의 성격이나 삶에 큰 영향을 끼졌’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묻는다. 실제 이에야스의 일생은 당시 다이묘의 삶으로서는 순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선 인질이라는 것도 “당시의 인질은 현대의 인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대해야 하는 ‘동맹관계’의 보증인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인질을 ‘증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일반적인 정황에서는 ‘인질이 되어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고생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에야스를 인질로 받은 요시모토는 인질보다는 피후견인으로 돌봐주었고 “이에야스는 유년 시절동안 미카와를 보존하고 동시에 자신을 보호해주고 양육해준 요시모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고 인질로 있던 시절의 이에야스는 후대가 상상하는 만큼 불행하지 않았다.” ‘주의와 경계’의 진짜 이유는 하극상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야스의 조부와 아버지는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당시에 그런 일은 흔했다. 그런 세상에서 믿을 것은 실력뿐이었고 그것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력 즉 무력이었다. 이에야스가 유년기를 보낸 이마가와 가문은 센코쿠 시대에는 별천지였다. “전통적인 형식과 질서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는 백성들이 귀인으로 받드는 명문가의 슈고가 있었고 교토 조정의 귀족인 구게(公家)와 혼인관계를 맺어 활발하게 교토 문화를 수입해으며 많은 구게들도 직접 이 지역으로 이주한 결과 이마가와 가문 자체가 상당히 귀족화되었다. 노부나가가 무시한 오가사와라류의 ‘제례집’이 이곳에서는 모든 질서의 기본이었고 귀족들이 즐겨 읊던 고전 시가인 와카나 상류층의 공놀이인 게마리(蹴鞠)도 유행했다. 귀족적인 문화에 휩쓸려 기개를 잃은 모습도 보였지만 동시에 하극상과 같은 살벌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에야스에게선 그 귀족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이마가와 가문을 반면교사로 생각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미카와의 영주라는 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방의 소영주가 통치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능력은 무력이었다. 개인적인 무술과 무공이 없다면 백성들을 다스릴 수도 지배권을 확립할 수도 없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당연히 개인적인 무공보다 전투 지휘 능려과 뛰어난 용병술이 높이 평가되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부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려면 지휘관 자신의 개인적인 무력도 필요했다.” 지방의 소영주에 불과했던 이에야스의 “출발점은 소부대의 최전선 지휘관이었다.” 개인적으로 뛰어난 무인이기도 했고 지휘관이기도 했던 이에야스는 “스스로 훈련을 통해 무공을 닦았으며 무술훈련은 일종의 취미와 같았다.” 그러나 이마가와 가문에서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한시나 와카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렌가나 다도에도 취미가 없었으며 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마디로 이런 교양 계통에는 모두 서툴렀다.” 물론 이에야스가 학문을 즐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게 학문이란 당시 통용되던 한시에 능하고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학문은 정치학이고 군사학이었다. 영주로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휘하 토호들의 영지를 보장해주는 것(소령 안도)이었고 센코쿠 시대에 그 능력은 무력이었다. “따라서 센고쿠 시대의 장수에게 무력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무력과 동시에 모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모토나리처럼 하나의 모략에 이어 또 다른 모략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늘 정정당당하게 대진해서 결전을 벌였다. 그는 그런 전투를 통해 승리를 얻지 못한다면 심복도 얻을 수 없다고 믿었고 그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아케치 미쓰히데가 잘못 생각한 점이다.그는 혼노 사에서 노부나가를 쓰러뜨렸지만 아무도 그 휘하로 달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를 쓰러뜨리면 주도권을 쥘 수 있으므로 오히려 모두가 노리는 먹잇감이 되었다. 미쓰히데가 노부나가를 쓰러뜨린 것은 대규모 암살사건이었지 정정당당한 전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에야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에야스는 너구리 영감이라 통용된다. 이런 이미지는 “히데요시가 죽은 후나 오사카 성 함락 후에 생긴 듯하다. 그전까지 이에야스는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으며 센코구 무장치고는 분명히 의리파였다. 마음만 먹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는 히데요시나 히데요리 모두 암살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는 명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부나가가 쇼군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정치적으로만 대결한 것과 같은 이유엿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는 히데요시에게도 이에야스에게도 적용된다. 말하자면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무력의 위압으로 정권 질서를 수립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상식 이전에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단지 무력으로 제압하려면 암살과 같은 잔꾀는 소용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히 전투에서 승리하는 과시적 이벤트 효과가 필요했다. 이에야스가 ‘천하라는 것은 스스로가 지닌 운명이 있어 인력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단순한 운명론자라는 뜻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전자으이 승패 또한 운명에 따른 ㄴ것, 따라서 천하를 손에 넣으냐 마느냐 또한 운명이라는 의미엿으리라.” 그런 이에야스였기에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깨끗하게 복종햇고 일단 따르기로 햇다면 그에 맞게 상대방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그는 이마가와에 복종했으며 오다와의 동맹에서도 그의 지위는 좀더 특별대우를 받는 오다 가문의 무장에 지나지 않았다. 고마키-나가쿠테의 경우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종합적인 전력에서는 자신이 히데요시에게 뒤처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엇다.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대등하게 강화를 맺었지만 이에야스의 위치는 또다시 도요토미 정권 속에서 조금 특볋란 대우를 받는 일개 부장, 히데요시의 명에 복종하는 일개 제후였다. 그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그로선 자기보다 약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 자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일종의 증오심마저 느꼈던 듯하다. 요도기미와 히데요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에야스는 상대가 자신보다 강력하다고 판단하는 한 동요하지 않았다. 이에야스가 문제삼는 것은 오로지 무력뿐이엇다.” 그러나 그가 그런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생애 대부분을 그다지 권모술수가 필요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며 그의 적성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본다. “그의 전투는 늘 평범하고 재미없는 정공법이었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것은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 그리고 또 하나가 미카타가하라의 패전 정도다. 게다가 이런 전투에서 세운 무공의 대부분은 오다 노부나가의 그늘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다.” 센고쿠 영주로서 이에야스는 특별하게 순탄했다. 그것은 그의 운이기도 했지만 ‘주의와 경계’란 그의 태도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센고쿠 시대라 하면 흔히 무법천지를 떠올린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사건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신겐은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했고 아들 요시노부를 죽였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지만 당시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노부나가도 모토나리도 자신의 동생을 죽였고 히데요시도 조카를 죽였다. 이에야스도 자신의 자식인 노부야스와 아내, 손녀 사위인 히데요리까지 죽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권력층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건이었고 일반인들까지 같은 상황이었던 것은 아니다. 백성들이 이런 짓을 했을 때는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당연한 일이다. 민중들까지 무법천지에 빠진다면 가장 곤란한 것은 센고쿠다이묘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영내의 투쟁과 혼란은 호시탐탐 국경을 넘보는 이웃 지역에게 틈만 보일 뿐이다. 지배자들은 무력으로 대내외적으로 투쟁하면서도 영내에서는 가능한한 평온한 법치체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에야스가 인질 생활을 한 이마가와 가문이 좋은 예이다. “이마가와 가문도 당대에는 혁신적인 통치자였다.”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한 후 보여준 법치주의의 신념은 이마가와 가문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로 있던 시절의 이에야스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인지도 모른다.” 법치주의는 단지 이마가와 가문만의 것은 아니었다. 법치주의는 영지경영의 한 방법일 뿐이었다. 영지가 안정되어야 경제력이 생기고 “무력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력이다. 따라서 생산력 증강은 당시 센고쿠 무장들의 지상과제였으며 유능한 다이묘들은 모두 영내 개발에 힘을 쏟았다. 이런 점에서 센고쿠 시대는 경제성장과 기술개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제는 영내의 치안 유지엿고 이것이 방위의 기본이었다.” ‘만일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명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에야스는 미적 감각이 가장 떨어지고 번득이는 재능도 재치도 느낄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이에야스를 건실하고 의리 바르며 충실한 2인자로 취급했다. 만일 이에야스가 히데요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역사가들은 히데요시가 만년에 가장 실력있는 신하를 잃어 큰타격을 입었다고 기록했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당시 사람들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이런 재능을 싹틔우고 자라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가? 우선 이에야스는 ‘가이도 제일의 활잡이’로 전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뛰어난 지휘자였다. 이에야스가 자신의 무용을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스스로 이에야스의 무공과 지휘 능력에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통치력과 부하들을 이끄는 통솔력이다. 이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간토 영지 이동과 또 새로운 봉지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지배권 확립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세번째가 그의 재정능력이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사람 중에서 이에야스는 화려한 것을 싫어했으며 가장 검소했다. 구두쇠나 다름없었지만 세사람 중에서 재정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는 이에야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능력을 키운 바탕이 바로 그의 ‘학문’이었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능력에는 정략도 포함된다. 무장으로서 이에야스는 정공법을 선호했다. 그것은 모략으로 이기는 것은 이긴 것이 아니라는 그의 판단이기도 했고 그의 위치가 그리 모략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당대 센고쿠다이묘들처럼 모략을 쓸 줄 몰랐던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그러나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그가 전쟁을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치가가 되었을 때 그에겐 다른 능력이 있어야 했다. 무장의 전쟁과 정치가의 전쟁은 다르며 이에야스가 무장으로서 싸웠던 전투와 그가 정치가로서 싸웠던 전투는 다르다. 이에야스 정권의 미래가 걸려있었던 세키가하라가 “‘작전의 전투’가 아니라 ‘정략의 전투’”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눈앞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전투와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정책이란 결과를 낳는 일이지만 정책이란 결과를 얻기 위해선 권력을 얻고 유지해야 한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일은 소모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런 소모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정책을 실현할 수 없다. 그 소모적인 일을 정략이라 한다. “모스카가 말하듯 권력을 지향하지 않으면 권력을 얻거나 행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권력욕이 없는 자는 통치력이 없다는. 권력욕이 없는 자를 통치자로 삼고 싶다. 민중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이다.” 그리고 (다른 리뷰에서 다루었듯이) 그것이 유교의 성왕론이 허구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모스카는 능력있는 정치가란 정책적 능력과 정략적 능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라 했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그런 인간은 극히 드물며 만일 그런 정치가를 가진 국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 햇다. 그의 기준으로 보면 이에야스는 정책능력과 정략능력을 함께 갖춘 희귀한 정치가였다. 이에야스가 정략가로서 유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점만 지나치게 부각해서 그를 너구리 영감으로 평가한다면 정책가로서 그가 보여준 탁월한 재능을 간과할 수 있다. 그저 모략만 뛰어난 너구리 영감이 267년이나 이어지는 도쿠가와 막부의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겠는가. 이에야스는 아시카가 말기부터 오다와 도요토미 시대를 거치면서 천하의 백성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 그 바람으로 정책적으로 실현하는 수단과 능력을 지녔다. 사람들의 바람은 한 마디로 전쟁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평화로운 법치체제 아래서 생존할 권리를 보장해달라였다. 그리고 이에야스가 실현한 사회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법치제도 아래에서 사적인 권력 생사를 제한하며 보수적인 질서가 형성된 사회였다.” 물론 천하의 바람을 실현하는 것은 그 자신과 가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야스토키나 이에야스나 모두 근본을 따지자면 모두 현지에서 세력을 키운 관리이거나 혹은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하극상을 통해 천하를 손에 넣은 자들이다. 이 하극상의 권력자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후계자’가 나타나 자신이 그랫듯이 하극상을 일으켜 자신을 쓰러트리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대에서 하극상ㅇ르 끝내고 이후로는 자신의 통치 아래 질서있고 영속적인 법치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노부나가의 노선을 따를 수 없었다. 노부나가는 天下爲公이란 비전을 위해 살았던 이상주의자였다.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도 아니엇고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그린 이상에 따라 세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살았다. 그가 그렸던 천하에는 온세상을 불태우는 다이묘들의 자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쇼군이 될 수 있었으면서 쇼군이 되지 않았다. “’’시바 료타료는 노부나가가 봉건제를 배제하고 중앙집권제를 수립했을 것이라 예측했다. 사실 그런 시각에서 노부나가의 행동을 살피면 히데요시와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노부나가는 ‘다이묘 절멸 작전’을 시행해 센코구다이묘들의 가문을 잇달아 멸망시켰다. 확실이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는 일단 부하에게 하사하지만 대대로 소유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상속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명령을 내려 빼앗고 다른 영지를 준다. 그 지위를 유지한다면 다이묘지만 파면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히데요시는 내심 이런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다이묘들이 항거한다면 스스로가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반대정책을 폈다. ‘본령 안도’를 미끼로 상대방의 전의를 꺽고 항복시켰으며 그 대가로 자신의 부하로 이용했다. 히데요시의 방식은 학실히 능률적이며 센고쿠의 통합이라는 점에서보면 가장 희생도 적고 손쉽다.” 이에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야스는 당시 다이묘, 특히 ‘히데요시의 은혜를 입은 장수들’로 불리는 신흥 중소제후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히데요시 님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출세를 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다. 동시에 오랜 전란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제는 오로지 손에 넣은 것을 보존하고 유지하면서 누군가가 일가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만을 바랐다.” 히데요시 사후 2인자인 이에야스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모아진 이유이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시스템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언제 자신의 위치가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사람을 끄는 강한 매력이 있었던 히데요시와 달리 이에야스는 인기가 없었다. “이에야스의 명성은 천하를 제압했지만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두려워 굴복했을 ㅃ누 좋아서 따른 것은 아니었다. 이에야스는 특히 인간미나 유머 감각, 장난기, 그리고 상대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부족햇다. 히데요시라면 현대 서비스 업계에서도 최고경영자로 당당히 성공했을 인물이지만 이에야스라면 불가능햇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평생 놀이도 모르고 장난기도 없었다. 반면 히데요시는 늘 유머러스하고 흥겨웠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항상 빈틈없고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인기가 없는게 당연하지만 그 자신도 인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는 얄미울 정도로 자율적인 인간이었다. 이에야스는 사람들이 신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경우너시하게 되는 타입이었다. 도요토미 가문은 대체적으로 관대했지만 이에야스가 천하를 손에 넣으면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시대가 올거라고 사람들도 예감했다. 물론 센고쿠의 혼란이야 지긋지긋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맛보았던 자유는 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센고쿠다이묘들이 원한 것은 ‘신중하고 온화하고 관용적인’ 지도자, 즉 전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면서도 자신들을 일일이 간섭도 않고 소령 몰수도 않는 지도자 고도의 자치권과 자주성을 인정해주고 자신들이 영지 내에서 왕처럼 ㅅ행세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지도자엿다ㅣ. 배부른 소리다.” 센고쿠 시대의 자유는 피가 없이는 불가능한 자유였다. “누구나 원한다면 싸워서 이긴다면 그리고 적을 죽여 없앤다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시대엿으며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가 완전히 무시된 시대였다. 그점 만을 평가한다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시대였다.” 비천한 농민에서 지존까지 올라선 히데요시는 이 혁명의 시대의 총아였다. 히데요시 정권은 센고쿠 시대란 하극상 사회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그 혁명은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인 자유를 지워버려야만 가능하다. 히데요시의 기적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혁명이 공존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환상을 줄 수 없는 이에야스는 항상 비교당해야만 했다. 특별하게 이에야스를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많은 다이묘들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반대쪽에 섰고 서고 나서도 미지근하게 싸운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러니 이에야스가 자신의 체제가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붉은 여왕의 체스판서 달리는 것처럼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뛸 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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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향기에 반해 천리향이란 모근을 한그루 산 적이 있다. 늦겨울이나 초봄에 맞이하는 천리향의 향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빼어나다. 꽃이 떨어지고 나면 그 자리엔 가지 한줄기만이 덩그러니 남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나뭇잎 몇 장만이 가지위에서 세월의 흔적을 삼키게 되는데 이 나뭇잎들이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들은 다시 꽃이 필 때까지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천리향이 피게 되면 제 역할을 끝내게 된다.
흔히 정치를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 기다린다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은 아니다. 기다림은 말 자체에 정치인의 소명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정치를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지만 때론 고개를 숙이고 수십 년의 세월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배신 그리고 고통과 패배감등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지만 기다림은 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가능성은 그들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칼이다. 칼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운명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데 센고쿠시대의 100년 전쟁을 끝내고 에도막부를 창시한 도쿠가와 이에야쓰 역시 자신이 만든 칼을 사용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추억하고 있다. 그가 이끌어낸 에도시대에 대한 회상보단 그의 존재를 부각시킨 100년 전쟁의 혼란을 기억하면서 그만이 보여주었던 뛰어난 전략과 책략을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야쓰는 너구리란 별명답게 굉장히 엉큼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에야쓰는 누구보다도 의리파였고 자신의 주군이었던 히데요시는 물론, 그의 아들 히데요리조차 결코 먼저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진정한 군주가 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주인공의 이야기가 달라지듯이 이에야쓰의 평가 또한 상당부분 오해가 있었으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에야쓰를 이해하기 위해선 센고쿠 시대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이다. 센고쿠 시대는 고쿠진이란 지방 영주와 슈고다이묘를 중심으로 한 군주들이 난국을 통일하고 권력을 쟁탈하기 위해 그야말로 피튀기는 전쟁이 세상을 휩쓸던 시기였다. 정치에 대한 소명의식보단 권력에 종속되거나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형제가 서로를 믿지 못했던 그야말로 처절한 생존의 법칙이 지배했던 시대였다. 이에야쓰는 누구보다도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때 뛰어난 장수였지만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는 군주들을 보면서 권력의 비정함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지녀야할 전략적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그릴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야쓰가 언제나 책략만을 되풀이한 것은 아니었다. 최선봉은 항상 그의 몫이었고 뛰어난 활솜씨와 용맹 덕분에 히데요시조차 그의 의기 앞에선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이에야쓰와 히데요시는 모리 모토나리라는 명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고 있다. 모토나리는 55년간 226번의 전투에서 전승을 한 백전불패의 75세 현역으로 전쟁의 신으로 불리었던 인물이다. 특히 이에야쓰는 3년 동안 성을 포위해 아마코를 멸망시킨 모토나리의 집념과 인내심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모토나리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용장이었지만 세상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외에는 누구도 믿지 않고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것이든 이에야쓰는 당대의 영웅 모토나리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받았을 것이다.
기다림의 칼은 이에야쓰의 영웅적 서사시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그는 어린 시절 적국에 전략적 인질로 잡혀가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보다 무기를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자신이 이끌었던 영주의 지배자가 되어야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특히 히데요시 하에서 다이묘로 살아가는 방법은 그가 쇼군이 된 후 세상을 지배하는 중요한 원칙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야쓰를 이해하는 것은 에도 시대를 이끌었던 그의 철학을 배우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그는 분명 우리가 알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정치를 펼쳤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센고쿠시대의 뛰어난 명장들로 한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다. 일본을 제패한 이들은 저마다의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권력을 이끌어 왔는데 울지 않는 새가 있으면 죽여 버린다는 노부나가는 전쟁의 참흔을 겪고 일어 선 일본의 격동기를 연상시키며 울지 않는 새가 있으면 울게 하려고 노력하는 히데요시는 경제적 통일을 이루려는 일본의 부흥기가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자타가 인정하는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물론 부자 나라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올 때까지 굳건히 기다리는 것을 선택한 것 같다. 마치 울지 않는 새가 있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말이다. 기다림의 칼처럼 일본을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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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사연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책을 알고 손에 넣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흔히 '너구리'라 부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관한 일대기를 후대가 사사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그가 이룬 업적이야 모두들 알 것이고, 그는 어떻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그에 대한 부하들의 신뢰는 대단히 두터웠는데, 이는 그의 사람보는 안목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다.
낯선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보기에는 힘들었지만, 이에야스에 대한 좀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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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영웅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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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서 선거날 하루종일 이 책만 읽었습니다. 일본 문화를 개방한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색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여전히 국내에서 센코쿠 시대를 다룬 역사서는 손에 꼽을 정도이죠. 사실 중국사나 다른 나라의 역사에 비해 일본사는 대중적인 관심 자체가 적습니다. "노부나가의 야망"에 푹 빠져 있는 오덕이라면 몰라도, 그나마 우리가 아는 일본인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도가 아닐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은 원래 국내에서는 해적판임에도 불구하고(요즘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한때 대히트를 치면서 삼국지와 함께 필독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대망은 허구가 70%에 가까운데다 이에야스에 대한 미화가 지나쳐 아마 이에야스 본인이 보더라도 낯 간지러웠을 듯.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센코쿠 시대의 최종 승자가 되어 일본 전토를 통일하고 도쿠가와 막부 250년을 연 장본인이죠.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의외로 별로 인기가 없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가령 코에이사에서 실시한 캐릭터 인기 투표에서도 통상 상위권은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나다 유키무라,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모리 모토나리 등입니다. 정작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한참 밑에 있습니다. 만화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미지는 대체적으로 겉으로는 성실한 척 하면서 뒤로는 음흉한 흉계나 꾸미는 늙은 노인네이죠. 덧붙여 일본은 센코쿠 시대를 삼국지 이상으로 문화적 콘텐츠로서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상당히 부러운 일이죠. 우리는 아직도 제조업만이 살 길이라고 여기니.
▲ NHK 도쿠가와 삼대에서 나온 도쿠가와 이에야스(맨 위). 여기서 이에야스는 음흠하면서 꽤나 경박한 이미지였죠. 일본어 잘 모를 때에는 히데요시인줄 알았다는. 대망에서는 이에야스가 과묵하고 진중하게 나오다보니.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죽이고 천하를 빼앗았다는 관념 때문으로, 여기에는 히데요리에 대한 인간적 동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의 이에야스는 음흉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책략에 익숙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상대를 항복시킨 후 비겁하게 퉁수를 날리거나 책략으로 상대를 내분에 빠뜨리는 것은 비일비재했으며 비겁하기는 커녕 오히려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점에서 훌륭한 방법으로 여겨졌습니다. 박쥐마냥 이편, 저편 오가면서 어제의 적을 오늘의 상전으로 모시고 어제의 상전을 오늘은 목을 따려고 덤비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공격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공격했습니다. 의리와 충성보다는 내 이익과 생존만이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에야스는 오히려 보기 드물만큼 우직했는데,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도 마지막까지 충성했고 오다 노부나가와 손을 잡은 뒤에도 단 한번도 소홀히 하지 않은 채 지나칠 만큼 성실하게 동맹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적을 항복시킨 후 비겁하게 죽인 적도 없고 약속을 어긴 일도 없습니다. 오다 노부카츠와 손을 잡고 히데요시와 싸울 때에도 결국 퉁수를 날린 쪽은 노부카츠였지 이에야스가 아니었죠. 흔히 우에스기 겐신더러 "의리의 대명사"인양 말하지만 진짜 의리를 지킨 사람은 이에야스였습니다.
▲ 전국 란스에서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너구리. 이건 뭐 너구리라기보다 너구리의 탈을 쓴 곰이 아닌지.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철저하게 격하되었지만 전후에 오면서 재평가되고 있죠. 역사란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평가는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늘 달라지는 법이니까요.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쓴 이에야스 평전입니다. 원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인데 너무 식상한 느낌이라 센스있게 "기다림의 칼"이라고 바꾼 것같네요. 이 책은 이에야스의 인생 전반을 다루었다기보다는 주로 일본 사회에서 잘 못 알려진 이에야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이마가와 가문에서 보냈던 인질 생활이 과연 흔히 생각하듯 가혹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음흉한 너구리"라고 불리고 있는 그가 당대에는 오히려 "의리의 사나이"라고 불리었다는 것 등. 왜 그가 오사카 성을 공격하게 되었는가, 저자는 이에야스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구태의연하게 과거의 영광에 매달렸던 도요토미 가문이 자초한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사이토 도산이나 모리 모토나리, 마쓰나가 히사히데처럼 평생을 모략과 배반으로 보냈던 사람들과 달리, 이에야스는 우직하면서 정공법 중심이었고 이것이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달리 도쿠가와 막부가 2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안정된 치세를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합니다. 700여 페이지의 만만찮은 분량인데도 읽다보니 꽤나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버렸네요. 이 책에서는 이에야스의 통치 철학이나 영지 경영, 미카타카하라 전투나 고마키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 등 그의 생애에서 중요했던 전투 등은 거의 다루지 않으며 오직 이에야스 평전으로서 그에 대한 시중의 오해를 지적하고 바로 잡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꽤 지루할 수도 있는 책입니다만, 센코쿠 시대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에야스를 모리 모토나리나 다른 유명 다이묘와 비교한 부분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그는 다른 다이묘에 비해 이렇다할 일화 하나 없을 만큼 인간적으로는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철저하게 모범생에 가까웠다는 점, 화려하지는 않지만 착실하게 자신의 영지를 다지면서 소 다이묘에서 쇼군이 되기까지 때로는 지나칠 만큼 신중하게, 때로는 정말 그가 맞는가 싶을 만큼 모험적인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야스는 다케다 신겐같은 천재성도 없고 모리 모토나리처럼 모략의 달인도 아니었으며 히데요시처럼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도 아닙니다. 노부나가처럼 위대한 개혁가적인 모습도 없었고 우에스기 겐신처럼 전장에만 서면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휘하지도 않았습니다. 범용한 듯 하면서 과단하였고, 우직하면서 치밀하였습니다. 이것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람만의 개성이기도 합니다. 현대적으로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엄친아가 아닐지.
가령 오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 사람이 현대에 태어난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봐도 남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닌 노부나가는 아마도 스티브 잡스처럼 학교도 중도에 때려치우고 사업에 뛰어들여서 특유의 추진력과 도전력으로 승승장구하여 대기업의 회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히데요시는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특유의 재주와 말솜씨 하나로 CEO까지 오를 양반이죠. 하지만 이에야스는 착실하게 대학을 졸업한 후 기업에 입사하여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임원까지 오르지 않겠나 싶네요. 또한 다케다 신겐은 이건희처럼 재벌 2세로 태어나 더 큰 재벌로 만들 양반이고 모리 모토나리는 골목의 소기업 사장에서 시작하여 M&A로 경쟁기업들을 죄다 잡아먹고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워내지 않을지. 다 저의 허황된 상상입니다만.
이 책에서 한가지 지적할 부분은 중간중간에 오탈자가 너무 많이 보인다는 점. 심지어 가토 키요마사를 가토 요시아키라고 쓰지 않나... 21세기북스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감수를 제대로 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출판된지 6년 남짓되었는데 벌써 절판.... 인기가 없었던 모양인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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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칼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었던 것 아니었다. 이에야스란 인물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법한 인물이다. 자세히는 몰라도 무로마치 막부가 멸망한 뒤, 100년이 넘는 전쟁 속에서 최후의 1인자가 되어 통일을 손에 쥐었던 무사다. 게다가 정말 오랜 기간인 2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평화로운 시대를 열었던 사람, 실제로 센고쿠 시대에 태어난 이에야스. 센고쿠 시대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칼을 겨누면서 아무렇지 않게 죽일만큼 잔혹스런 세상이다. 그런 시대에 이에야스는 엄청난 평화를 만들어냈고, 그걸 유지시켰다. 또한 노부가나의 옆에서 굉장한 지휘관으로 유명한 사나이. 이 사람을 조명했다. 어째서 이 시대에 그를 조명한 것이고, 저자는 그의 어떤 점을 마음에 두었던 것일까. 엄청난 권력과 정치모력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극히 평범했던 초인, 이에야스, 그를 알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책은 재밌었다. 하지만 길었다. 실제로 이렇게 두꺼운 책은 별로 읽지 않는다. 다량의 다방면의 독서를 하라고 하지만, 실제로 두꺼운 책은 포기하게 되고, 손을 놓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나의 단점이다. 이 책도 한 두번 정도 손을 놓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끝가지 읽을 수 있었던 동기는 아마 이에야스란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은 이에야스 위인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위인전보다는 좀 더 내용이 깊고 많다. 평전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책들을 일컬어서 말이다. 센고쿠 시대를 이에야스란 인물로 들여다보면서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던 이야기들, 천하통일을 이룬 승리자가 되기까지, 최후의 왕의 되어서도 두려움을 간직했던 이에야스 등, 이에야스의 많은 점을 볼 수 있고, 다양한 인물같이 기억되기도 한다. 역사책보다 훨씬 재밌었던 이유는 단순히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진술하는 것을 넘어, 저자의 깊은 시각이 빛을 바랬던 것 같다. 지루하고 지치게 만드는 책같이 보여도, 읽고 나면 후회는 들지 않는다. 한가지 덧붙이면 일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이에야스를 들어본적이 없는 사람, 센고쿠시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하는데서부터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어쩌하리, 평생 모르면서 살아갈수는 없는 법이다.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던 기회였고, 또한 저자가 말한, 지금 시대에 맞는 지도자, 야망보다는 성실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시대의 요구를 잘 맞춰 실력을 갖춘 그런 지도자를 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책이면서도, 그 인내심 뒤에 많은 교훈또한 얻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두꺼운 책에 대한 두려움, 매번 포기했던 과거를 돌아보았을때, 참 뿌듯한 책 한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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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칼 /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박선영 옮김 21세기북스 刊
센고쿠 시대 100년의 치사한 시기를 마감해버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칼이다.
일본인에게 이에야스의 위상은 가히 이찌반이다. 에도 막부통치 260년의 기간
역시, 일본의 역사책을 읽다보면 그 이름들이 중복되어 보통 난감한 게 아니다.
결국은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와 행동 양식과 정신세계는 후일 가미가제 특공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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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한국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반면에 한국사람들은 일본에 대해서 적대시만 할 뿐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으며, 일본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기다림의 칼'을 읽으면서 일본의 역사의 기초적인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센고쿠시대의 처음부분을 읽어가면서 그 시대에는 당연했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형제, 부모를 죽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으며, 이런 무력과 무공이 최고인 무사시대를 겪어온 일본의 실체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도 가져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때 가미카제가 가능했던 것일까? 그 당시 한국사람이라면 어떠했을까?라고도 반문해본다.
평범을 지향하면서도 특별한 사람 이에야스는 무공이 뛰어난 '가이도 최고의 활잡이'로 전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지휘자였을 뿐만아니라 최대의 적인 다케다 신겐에게 많은 점을 배우고 그의 유능한 옛 신하들을 포용할 수 있는 포용력 또한 있었다.
독서승으로 갖추어진 학문을 바탕으로 한 통치력과 통솔력과 함께 재정능력이 가장 뛰어났고,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검소했다. 사사로운 정에 빠지지 않고 초인적인 강한 의지력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고, 폭음, 폭식에 빠지지 않고, 일대 영웅처럼 여자에게도 빠지지 않았다. 평범하지만 '적당함'을 평생 지켜왔다는 것에 존경을 표할 수 밖에 없다.
"천하의 주인은 선정이다. 무가가 아니다"라는 말은 즉 '선정'을 베풀지 않으면 '천하의 주인'자리에서 쫓겨나 권력을 잃는다는 뜻이다. < P663>
전란의 세상, '사람의 뼈를 장작삼아 불태우는' 세상에서 개인적인 무술과 무공이 없었다면 백성들을 다스릴 수도, 지배권을 확립할 수도 없었던 센고쿠시대의 3대 영웅인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시대를 조명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각 나라에 많은 인물들이 존재왔고 그 인물과 함께 역사속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구나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 책을 읽고 최근에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신사와 함께 일본 여러곳을 보면서 함께 생각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일본에 대해서 기본 바탕을 이해하고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 받기위해서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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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너구리"로 불렸을 인물이 또 있을 것 같지 않다. 너구리....개구리도 아니고... 보통 리더는 호랑이나 용으로 비유되기 쉽상인데, 분명 리더였음에도 불구하고 너구리로 표현되어진 사내, 도쿠가와 이에야쓰. 나는 그래서 그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다. 다르다는 것은 때때로 흥미롭다는 것과 일맥상통할 때가 있다. 지금처럼. 고대 소설 속 영웅들은 모두 영웅의 일대기를 거친다. 시련을 통해서 그들의 영웅됨이 반증이라도 되듯 모두 그렇다보니 교과서 수업을 진행될때 영웅의 일대기...라는 표현이 귀에 쏘옥 박혀 버렸다. 도쿠가와 이에야쓰도 그 일대기를 거친 인물이다. 적국에 인질로 잡힌 삶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래에서부터 올라가 결국 천하 일인이 되었으니 그는 자수 성가한 영웅인 셈이다. 100년 전쟁 속에서 뛰어난 전략과 책략을 보였으나 결국 그는 제갈공명이 아니었다. 참모형 인간이 아닌 리더형 인간으로 평가되어 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도통 헷갈린다. 화첩속 인물들은 몽타주 그림들처럼 이리보면 이 사람같고 저리보면 또 저사람 같기도 해서 히데요시인지 노부나가인지 이에야쓰인지....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똑같아 보이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예전과는 다른 점은 조선왕조 500년 보듯 [오오쿠]를 보고나선 좀 더 상상하기 쉬워졌다고나 할까. 그들이 말하는 사무라이나 닌자도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정도의 얕은 상식으로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명장 이에야쓰가 아니라 인물 이에야쓰가 보이기 시작했다. 배가본드나 바람의 검심에서처럼 멋진 무사의 모습이 아닌 때로는 정치가로 때로는 책략가로 때로는 야심가로 변신하는 이에야쓰의 모습 속에서 사람들은 "너구리"의 그것을 발견해 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웅은 난세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격세의 시대에서는 살아남는 것도 능력이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일 것이며, 이에야쓰는 그 어떤 오명에도 불구하고 강한 군주였음이 분명했다. 오래 기다렸던 두꺼운 책 속에서 이미 죽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파헤치며 나는 단 한 권으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이름 속에서 기억해야할 몇가지 진실의 고리에 대해서는 선물받은 것처럼 기억을 간직하려고 노력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