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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식탁, 구슬아 지음, 자음과 모음 (2015) 대세는 요리다. 아니 대세는 요리사이기도 하다. 공중파 외에 종편과 케이블 채널까지 포함해서 각 방송사마다 간판 ‘먹방(먹는 방송)’을 방영하고 있다. 근래엔 '쿡방‘ 이라 하여 요리를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면서 이제 음식을 ’구경‘ 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지면 매체도 만만치 않다. 유명 요리사마다 레시피북은 물론 자신들의 요리인생을 담은 에세이까지(대부문 대필이 의심되지만) 출간되어 상당한 판매고를 올린다.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재방송 방영 비율이 높은 종편과 케이블 채널에서는 맛집 프로그램이 자동재생 수준으로 나온다. 그러다보니 수용자인 시청자와 독자들 입장에선 그 피로도도 증가한다. 하지만 이 현상은 꽤나 오랜 현상이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현상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만의 특이한 문화현상이 아니라 이미 관행처럼 굳어져 온 세계적 현상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요리쇼’로 불리는 음식프로그램은 공영방송의 규준으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BBC에서도 만연한 현상이다. 소위 교육오락물(infotainment)장르를 내세우며 서구에서도 80년대부터 요리쇼는 자리 잡아 왔다. 적은 제작비로 고정적인 시청률을 담보한다는 점, 그리고 산업의 연쇄 기능으로 그 부가산업(책, 비디오, 잡지 등)을 파생시킨다는 점에서 방송매체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많은 비평가들이 음식쇼 자체에 대한 비평과 더불어 이런 문화적 현상에 대해 한 마디씩 보태고 있다. 사회과학의 운명이란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이를 분석하는 정도의 역할이라고 자조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분석과 정리는 언제나 우선이어야 한다. 이는 향후를 예측하는 차원도 포함하지만 포섭 당하지 않는 시선이야말로 연구자와 학계가 견지해야 할 학문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식탁>은 이런 시기에 나온 연구서이다. 이미 많은 비평가들이 포섭당한(그것이 자본이든 대중이든) 시선으로 저마다의 말마디를 보태는 시기에 나온 의미 있는 연구서이다. 굳이 ‘연구서’라고 범주를 잡는 이유는 문화학의 기본 이론서들을 충실하게 읽고 그 이론틀 안에서 음식현상을 매우 성실하게 분석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문화학을 전공하는 저자의 석사논문을 다시 정리하여 낸 학술서의 특징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론의 유행에 따라서 외국의 이론가들에게 쉽게 경도되어, 한국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욱여넣는 무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의 식탁>은 제목이 말하듯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먹는 일이 곧 상품을 구매하는 인 사회에 대한 문화적 분석이다. 이제 음식을 분석하는 일이 외식산업과 상품화의 문제를 분석하는 일이다. 농업과 분리되어 생산되는 근대 먹거리체계 자체가 상품분석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음식이 문화적 생산물들 내에서 재현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특정 시점을 계기로 음식 생산과 유통, 그리고 우리가 그것과 관계 맺는 방식은 큰 변화를 겪었는데, 그 시점은 언제이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자문한다.
‘근대화’라고 통칭하는 시기는 각각의 학습 영역에서 그 정의와 분석현상이 달라진다. 음식 영역에 한정하면 근대화의 현상은 전통적 먹거리체계에서 근대 먹거리체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대공장제 먹거리 생산 양식의 정착 과정이며, 최고의 정점은 패스트푸드(화) 현상이다. 더불어 자본주의의 상품들이 생산-소비 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이는 음식 영역에서도 일반적 현상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다. 이원화된 음식 생산과정에서 1차 생산과정은 본사의 자동화 공장에서 반조리 상태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고 2차 생산과정은 가맹점주의 주방에서 단순조리 작업에서 비롯된 음식의 생산이다.
이 작동의 기제는 패스트푸드(근대음식)의 '원팩시스템(onepack system)'이면서 센트럴키친 시스템(central kitchen system)이다. 각 점포에 주방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상태이다. . 소위 ‘알바생’들도 채워진 주방엔 높은 숙련도가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 현대의 먹거리체계는 이런 프랜차이즈의 외식 시스템이 촘촘하게 작동하는 과정이고 이 과정을 저자는 면밀하게 분석해 놓았다. 이제 ‘요리’에 직접 수행하는 시대가 아니기도 하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에서 가맹점주는 손쉽게 식당 운영에 뛰어들 수 있고, 상품의 가장 기본 요소인 균일성을 재현할 수 있다.
저자는 대중문화 영역의 여러 생산물들(매체)이 음식을 다루는 방식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음식 표상을 분석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인다. 특히 TV맛집 프로그램의 본격분석을 통해 우리가 음식이라고 부르고 맛이라고 부르는 ‘현상’ 자체를 사회문화적 문제로 포착하고 이를 차분하게 분석한다.
본래 음식(맛집)을 다루는 역사는 오래 되었다. 근대로 한정 지어도 <별건곤>을 비롯한 지면매체에 다뤄지는 음식은 소재로서도 주제로서도 중요했다. 특히 지면 매체를 통한 음식칼럼은 맛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한계가 뚜렷했지만 사람들은 지면 매체에 표상된 음식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저자는 2000년대 들어서 이런 음식표상의 주요 매체가 영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TV 맛집 프로그램에서의 감각적인 음식 표상은 상당히 강렬하다. 당연히 활자로 표현해야 하는 음식칼럼의 한계를 영상은 금세 뛰어 넘었다. 실제로 냄새를 맡고 맛 볼 수는 없지만, 지면매체에 비한다면 즉각적인 대리만족을 줄 수 있다. 게다가 잦아진 외식 문화 속에서 특별히 방문할 만한 맛집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생산현장공개(시연)을 통해 음식 상품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부수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자가 2000년대로 음식표상의 주요 매체가 영상으로 이동해 왔다고 시기를 갈랐지만, 영상에서 음식을 다룬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방송매체가 출범하면서부터 교양차원이든 오락차원이든 요리를 다룬 프로그램은 적어도 80년대 이전부터의 현상이다. 미디어 보급, 특히 컬러 TV의 보급은 음식이란 안정적인 콘텐츠를 재현하는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영상매체가 대세를 잡는 것은 미디어의 현실 속에서 당연한 수순이지만 여전히 지면매체(요리 관련 서적)도 그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이 저서에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저자는 근래의 스타셰프 현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요리사 없는 요리, 프랜차이즈의 균질한 음식을 먹는 대중들은 요리사들에게 새로운 욕망을 투영한다. 기능인에 예술가, 그리고 혁신적인 경영인의 역할까지 잘 수행하는 요리사들이 스타로 탄생한다. 스타셰프와 장인들은 요리하는 인간의 진정성만이 자본과의 대결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저자는 일본 요리 만화를 자세히 분석하면서, 요리 만화의 기본 골조, 즉 일정한 문법이 있음을 제시한다. 요리 만화에 등장하는 요리사들은 장인의 삶을 살고(실제로 초인의 삶)이에 대중들은 몰두하고 열광한다. 자본주의 식탁 위에 놓인 ‘상품’으로서의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당연한 식사 구조이지만 사람들은 또 이런 장인들에게 열광하면서 자신들의 결핍을 투영한다. 그렇다면 쟁취할 수 없는 이 욕망은 하나의 현대 신화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열광과 결핍은 늘 함께 가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결핍이 지속되는 한 어떤 식으로든 음식에 대한 열광도 지속될 뿐 아니라 이를 재현하는 방식도 진화할 것이다. 저자가 공을 들여 분석한 프로그램은 ‘먹거리 X파일’이다. 저자가 논문을 작성할 당시 센세이션한 형식과 내용을 보여준 맛집 프로그램인 ‘착한 식당’을 찾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자연에 가까운 먹거리(MSG를 쓰지 않는 절대 원칙)를 오너세프(주인이 직접 경영)가 직접 조리하는 것을 착한 먹거리의 절대 원칙을 저자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음식의 생산과 소비에 이윤창출만을 추구하고, 대공장제 생산방식에서 자본의 비인격적 역량이 지배하는 상품질서는 음식 상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자본의 논리를 떠난 장인과 초인들의 존재하는 예외적인 장소, ‘착한식당’을 찾는 ‘먹거리 X파일’ 프로그램의 문법 분석을 통해 자연과 인격으로 충만하고, 사람 손이 전체 생산과정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먹거리고 오히려 특수한 먹거리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미 종영한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그 문법은 이제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분석틀이다. 출판사의 팸플릿 시리즈로 출간한 이 저서는 분량이 길지 않다. 문화학의 기본서에 기반해 차분히 음식문화 현상을 정리해 준 <자본주의의 식탁>은 음식 문제에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과 대중들에게 입문서의 역할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문화학을 비롯해 음식학의 기본서들을 충실하게 일독한 흔적은 이제 막 연구에 입문한 학생들과 연구자들에게도 재정리의 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련 전공의 학부생들에게 도움이 될 책으로 보인다. 이 책의 근간이었던 저자의 석사논문을 함께 일독한다면 훨씬 더 풍부한 논의를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활발한 연구 활동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