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을 넘어 불멸로 가는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2013년 5월 14일 <뉴욕타임즈>는 앤젤리나 졸리가 양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기사를 냈다. 졸리는 유방암에 걸린 것인가? 아니다. 그녀는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그 징후를 느낀 것인가? 정확히 말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녀는 유방암에 걸렸을 때 느끼는 징후, 곧 통증이나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다고 선언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 그녀는 BRCA1 유전자가 위험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87%였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방암으로 사망한 탓에 졸리는 유방암에 생래적인 두려움을 지니고 있던 차였다. 그녀는 유전자가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기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보다 첨단의학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졸리는 유방을 절제하는 ‘선택’을 하게 된 셈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김명주 옮김, 김영사, 2017)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미래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유방 절제 수술을 선택한 졸리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미래의 생명을 거는 사피엔스의 상황을 분명히 보여준다. “졸리는 실제 삶에서는 건강을 위해 사생활과 자율을 희생했다.”(457쪽)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사생활과 자율을 희생하는 건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자유주의의 전제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유방을 절제하는 일을 졸리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일 뿐이다. 그녀는 인간의 몸을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는 생명공학의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유방 절제술을 선택한다. 기술이 인간의 선택-자율성을 지배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은이가 제목으로 삼은 ‘호모 데우스Homo Deus’는 생명을 창조하는 인간을 가리킨다. 생명 창조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뀌는 순간을 지은이는 ‘호모 데우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 창조는 물론 과학기술을 통해 이루어진다. 18세기에 이루어진 과학 혁명은 이제 인간이 생명을 창조하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 7만 년 전의 인지 혁명과 1만 2천 년 전의 농업혁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이러한 생명 프로젝트는 그러나 사피엔스의 멸종이라는 또 다른 문제와 대면하고 있다. 먹이사슬의 중간 정도에 머물러 있던 사피엔스가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을 거쳐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는 과정은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이미 다루어졌다.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오르면서 숱한 (거대)동물들이 멸종의 길을 걸었다. 사피엔스는 ‘협력’의 힘으로 자기보다 덩치가 큰 동물들과 싸워 이겼다.
과학 혁명을 통해 인류를 괴롭혀 왔던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사피엔스는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미래를 향한 주저 없는 발걸음을 떼고 있다. “짐승 수준의 생존 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39쪽)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일은 과학기술이 수행한다. 이미 인류는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지능은 인간보다 높지만 의식은 없는 인공지능의 출현은 사피엔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만큼 치명적인 존재이다. 기술은 이론상으로 인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생명공학자들은 죽음을 인간이 넘어서야 할 질병으로 생각한다. 신의 영역으로 생각했던 불멸을 기술적으로 사고하는 일만으로도 인류는 이미 사피엔스의 너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고대의 신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은 사이버 공간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 그 경이롭고도 경이로운 발명품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인간이 신성을 얻고자 할 거라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그런 업그레이드를 갈망한 만한 이유가 많고 그것을 달성할 방법도 많기 때문이다. 유망해 보였던 길이 막상 가보니 막다른 길이라 해도, 다른 길들이 열려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인간 게놈이 함부로 손댈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해도,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나노로봇,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길까지 막히는 것은 아니다. (76~7쪽) 기술의 발달은 도구의 발달을 의미한다. 불과 몇 십 년 전이라면 고칠 수 없던 질병을 인류는 하나하나 정복해가고 있다. 인간의 유전지도가 완전히 해독되면서 과학은 인간이 불멸에 이르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이제 인간은 마음의 안정조차 생화학적 기제에 매달리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지칭된 마음마저도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결과라는 걸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약이라는 생화학 물질이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얘기다. 다른 동물들과 대비되는 특성으로 내면의 자율성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도구에 제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다. 호모 데우스는 이리 보면 인간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이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은이의 말대로라면, 인류가 호모 데우스로 진화하는 순간 인류는 인본주의와 결별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승자로 자리매김한 이유를 지은이는 허구를 창조하는 능력에서 찾은 바 있다. 허구는 상상의 질서를 세우는 힘이다. 동물들은 소수 인원으로 집단을 만들지만, 인간은 수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나, 수억 명이 사는 국가를 만든다. 드넓은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사는 이 존재들을 묶는 건 상상으로 구성된 제도이다. 이를테면 이 글을 쓰는 나는 ‘한국사람’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기나 한 걸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다만 약속의 체계일 뿐이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주식회사도 실제 사물은 부재한 상상의 산물이다. 사피엔스는 이런 상상의 힘으로 지구를 정복했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사피엔스라는 공동체의 환상, 구체적으로 말하면 ‘협력’의 원리에서 그는 사피엔스를 정복자로 만든 원인을 찾아낸 셈이다.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하늘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옮겨오면서 우주 전체의 성질이 변했다. 신, 뮤즈, 요정, 악귀 들로 바글거리던 외부 우주는 텅 빈 공간이 되었다. 반면 지금까지는 날 것의 감정들을 처박아두던 별 볼일 없던 공간이던 내부세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풍부해졌다. 천사와 악마는 세상의 숲과 사막을 떠도는 실제하는 실체에서 우리 심리 안의 내적 힘으로 탈바꿈했다. 천국과 지옥도 구름 위 어딘가에 있고 화산 밑 어딘가에 있는 실제 장소에서 마음의 내적 상태로 해석이 달라졌다. 우리는 가슴 안에 분노와 증오가 불붙을 때마다 지옥을 경험하고, 적을 용서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눌 때마다 천상의 기쁨을 누린다. (323쪽) 사피엔스를 하나로 묶는 상상의 질서는 불멸의 신을 향한 숭배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옮겨왔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인간’으로 옮겨지면서 우주 전체의 성질 또한 변했다. 천국과 지옥은 인간의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안=마음에 있다. 신이 사라진 자리를 인간이라는 주체가 차지한다. “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내 선택이다.”(326쪽)라는 말을 중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면의 자아를 중시하는 인본주의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중심이라고 선언한다. 과학 혁명과 더불어 강화된 인본주의를 지은이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적,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나눈다. 각각 자본주의, 사회주의, 나치즘(부정적 의미에서)으로 대변되는 세 가지 인본주의는 지금 ‘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영역으로 통합되고 있다.
신이 있던 자리에 인본주의를 집어넣은 사피엔스의 사고 체계는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또 다른 ‘허구’로 인식되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얘기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생명공학의 맥락에서 보면 허구이다.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결과로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는 생명공학은 “우리가 약물, 유전공학, 직접적인 뇌 자극을 통해 그 유기체의 욕망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통제까지 할 수 있다는 뜻”(393쪽)으로 사용된다. ‘단일한 자아’라는 인본주의의 환상이 무너진 자리를 생명공학의 통제 기술이 채운다. 묘하지 않은가? 신을 몰아내고 인간이 차지한 자리를 이제 기술이 인간을 몰아내고 차지한다. 기술이 주권자가 되는 세계를 우리는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술이 주권자가 되는 세계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인공지능이 반역을 일으켜 인간을 지배하는 허구 속 세계가 현실로 다가오는 듯도 하다.
지은이는 인류의 미래를 데이터교가 지배하는 세계로 바라본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503쪽) 한마디로 컴퓨터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든, 전자 알고리즘이든 수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데이터교를 지배하는 것은 효율성이다. 자본주의가 왜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이겼겠는가? 지은이는 바로 이 효율성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데이터 교도들은 ‘만물 인터넷 Internet-of-All-Things’에서 훨씬 더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보고 있다. 인간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이 만물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다른 건 몰라도 인간의 사생활은 아마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인본주의는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은이는 데이터교에서 “18세기 이래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력적인 종교 혁명”(533~4쪽)이 일어날 거라고 예측한다. 데이터교가 신을 몰아낸 인본주의자들에게 말한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 알고리즘의 산물이다.”(534쪽)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버리고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을 채택하는 즉시 인간의 건강과 행복은 보잘것없는 문제처럼 보일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사피엔스가 멸종시킨 그 숱한 동물들처럼 데이터 홍수 속에서 사피엔스는 존립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지은이는 생명이라는 장대한 관점에서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어쩌면 사피엔스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핵심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질문들이라는 말이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544쪽) |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먼저 읽으려고 했으나, 후속작인 『호모 데우스』를 먼저 읽게 되어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순서에 입각하여 쓴 책이므로 그와 함께 책을 읽으려면 좋으련만 후속작을 먼저 읽게 되었으니, 나는 유발 하라리가 말하고자 하는 미래의 역사를 먼저 알게 되었다. 미래의 역사를 읽은 다음에 과거의 역사를 읽어도 무방하겠지라는 나름의 위안을 삼아 본다. 과거의 역사를 읽을 때쯤이면 미래의 역사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어버릴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과거를 발판 삼아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더불어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알려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선택의 여지를 제공한다고도 했다.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함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되짚어 호모 사피엔스가 누구이고, 인본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왜 인본주의의 꿈을 이루려는 시도가 그 꿈을 해체할 수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기본 얼개이다. (101페이지)
![]()
미래에 전개될 초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예측하는데 가장 좋은 모델인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살펴보며, 어떻게 해서 우주가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모든 의미와 권위가 인본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는지, 인류와 인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처한 곤경과 우리에게 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역사는 하실 허구의 그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인간 개인의 기본 능력은 석기시대 이래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의 그물은 힘을 급속도로 키워 역사를 석기시대에서 실리콘 시대로 떠밀었다. (219페이지)
인간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지구성의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의식적인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라는 작품에서 외적 행동보다 내적 삶에 초점을 맞춘 근대 문학의 정수라고 말하며 내적 삶에 대해 언급한다. 종교와 인간 사이에 얽힌 삶을 규정하는데, 각 종교에서 신의 존재 또한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유발 하라리는 세가지의 인본주의를 말하는데, 그 첫째는 정통파 인본주의로 저마다 독자적인 내적 목소리와 재생 불가능한 일련의 경험을 소유하는데 개인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다. 두 번째로 내 행동이 그들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두는 것에 대한 사회주의 인본주의이며, 히틀러처럼 특정 인종 차별주의 이론들과 초강력 민족주의 감정이 결합해서 태어난 산물인 진화론적 인본주의를 들 수 있다.
![]()
인본주의는 우리의 진짜 의지를 식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항상 강조해왔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귀 기울이려고 하면, 서로 추돌하는 소음들의 불협화음이 우리를 덮치기 일쑤이다. 때로는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 목소리가 달갑지 않은 비밀을 들춰내고 불편한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98페이지)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가. 책 속에서 보면 향후 없어질 직업 군이 나왔다. 은행 직원 같은 경우도 없어질 직업군에 속해 있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계가 이 일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이런 만큼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일이다. 최근에 이세돌과 격돌해 4대 1로 압승을 거둔 알파고는 구글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구글 연구진은 방대한 바둑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3천만 개 위치 정보를 입력하는 반복 훈련을 시킴으로써 다음 수 예측률을 크게 높였다고 했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뛰어 넘는다.
페스트 등 인간에게 불치병처럼 다가왔던 질병들도 정복되었다. 반면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해 인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작가가 한 말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새로운 질병이 출현했을 때 데이터를 분석한 알고리즘에 의해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고 수명 연장을 할 수 있겠지만, 그 혜택을 고소득층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저소득층들은 여전히 치료할 돈이 없을 거라는 얘기다. AI가 정서 지능과 예술 같은 인간의 영역으로만 여긴 분야에서도 경쟁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를 보니 영화 「그녀 Her」 의 내용이 떠올랐다. 인간만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인공지능 또한 의식 수준이 사람에 가깝다.
꽤 재미있게 책을 읽기는 했지만, 어떤 식으로 내용을 정리해 리뷰를 써야할 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는 내가 인문학적 지식과 이해력이 부족한 이유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고, 내가 이해했던 것은 지능과 의식을 가진 인간에 대한 염려였다. 수많은 데이터에 의해 인간은 수명 연장을 할 수 있지만, 그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극소수 일거라는 것이다.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더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544페이지)라는 질문을 새겨보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부유하고 있다.
|
|
<호모 데우스>에서는 우리의 오래된 신화들이 혁명적인 신기술과 짝을 이루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검토한다. 1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2부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3부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등으로 구성하여,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하여 지구를 정복하였는가. 현재 인류가 지향하는 인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또한 이슬람교는 유전공학을 어떻게 다룰까? 사회주의는 새롭게 부상하는 비노동 계급을 어떻게 다룰까? 자유주의는 빅데이터로 인한 빅브라더의 출현에 어떻게 대처할까? 실리콘밸리는 결국 새로운 기기만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하나 살펴본다. 지난 20세기에 인류의 과제였던 기아, 역병, 전쟁을 대신해 21세기에는 어떤 문제가 최상위 의제에 오를까? 아마도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p.39)”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인간이 더 큰 힘을 갖기 위해 주로 외적 도구의 성능을 높였다면, 앞으로는 몸과 마음을 직접 업그레이드하거나 외적 도구와 직접 결합할 것이다.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그리고 비유기체 합성이다. 우리가 신기술로 인간의 마음을 재설계할 수 있을 때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가 끝나고 완전히 새로운 과정인 ‘호모 데우스’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한다. 수천 년 동안 과학의 성장로가 막혀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세상에 관한 모든 중요한 지식이 성경과 고대 전통에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여기에서 벗어나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인간에게 새 지식을 찾아 나설 매우 타당한 이유가 생겼고, 이것은 진보를 향해 가는 과학의 길을 열었다. “신기술은 오래된 신을 죽이고 새로운 신을 탄생시킨다. 농업세계의 신이 수렵채집인들의 정령과 달랐던 이유,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들이 꿈꾸는 천국이 농부들의 천국과 다른 이유, 21세기의 혁명적 기술이 중세 교의들을 소생시키기보다 유례없는 종교운동을 낳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p.372)” 그래서 21세기의 주력상품은 몸, 뇌, 마음이 될 것이고, 몸과 뇌를 설계할 줄 아는 사람들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간의 격차보다 클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21세기 진보의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은 창조와 파괴를 주관하는 신성을 획득하는 반면, 뒤처진 사람들은 절멸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다. |
|
본서의 제목과 주제는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듯 보인다. 서장에서 그는 인류가 신이 되는 미래를 그리고 있기도 하며 그를 증거하자면 인류의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긴 한다. 하지만 인류가 지배종이 된 역사를 서술하고 인류가 지배종이 된 계기들을 도구 제작 능력과 이성, 협력 능력(조직력) 그리고 상상을 실체화하는 능력(이미 사피엔스에서 말한 인지 혁명)으로 들고 있지만 간간히 언급하는 행간에서 생물종 전체와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든 문명과 이성의 총체는 모두 알고리즘일 뿐이며 유기 알고리즘인 인류를 그보다 더욱 월등한 전자 알고리즘의 존재가 어찌할지는 그들에게 달렸다는 식의 발언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들 가운데 전자 알고리즘 이외의 것들과 인간의 마음과 의지, 욕망 같은 것들도 알고리즘의 하나일 뿐이고 신본주의적 입장을 인본주의적 입장이 나와 거의 대체 한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욱 설득력 있게 데이터 종교(데이터 제일주의)가 압도할 것도 역사적인 순리로 서술하고 있다. 물론 신본주의 이후의 입장인 인본주의는 신본주의와 공생을 하게 되었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데이터교도 그 이전의 것들과 공생할 수는 있다. 기한적으로 한정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두 번째 인지 혁명의 결과로 인류가 은하계의 주인이 될 가능성보다 인류세가 끝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 보인다. 아마도 인본주의적인 이 세계에서는 대중의 기대와 정서에 입각한 인간이 신이 된 호모 데우스의 시대를 반기고 싶겠지만 데이터가 말해 주는 결론은 조만간에 인류세가 끝난다는 것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 구축한 알고리즘은 모두 전자 알고리즘이 대체하게 될 것이고 인간이 기대하는 것도 모두 전자 알고리즘이 구축할 것이다. 더이상 인간이 개입할 여지는 감소하다 사라질 것이고 저자도 우려를 비춘 것처럼 이 세계에서 인간이 이룬 것들을 통해 전자 알고리즘은 인간을 압도하고 지배하고 존재를 지속시킬지 끝짱내 버릴지 가부를 결정할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려 만든 인간이 인간을 기만하고 통제하려 계발한 군중심리학, 행동경제학, 사회공학 등을 인공지능이 학습만 하고 활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싶다. 인간의 생업을 뺏어가기 시작하며 동시에 인간 사회의 운영을 제어하기 시작할 것이고 BCI 기술을 역이용하고 인간이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학문들과 기교들을 악용한다면 얼마든지 인간을 가축으로 만들 수 있다. 가축만 만들면 다행일 것이다. 인류세를 끝낼 작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면 심각한 코미디라고 생각된다.
어떻든 [호모 데우스]라는 본서는 인류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 과거부터 현재를 짚어보고 과학과 종교와 마음까지 논하며 여러 학문을 통섭하고 있는 깊은 통찰이 담긴 책이 아닌가 싶다. 유발 하라리가 이 책에서 인류세의 끝을 대놓고 말하지 않고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가 신이 되는 시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마도 WEF의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있는 현재의 그를 보면 명확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인류가 끝날 때 끝나더라도 초극부층의 기호에 맞추다 보면 남은 세월은 편안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
먼저 유발 하라리의 첫번째 책 '호모 사피엔스'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신선한 충격을 주는 내용들이 많이 있던 책이고 흥미를 돋구는 내용들이 많아 거침없이 읽었던 책이었다. 그의 두 번째 책 '호모 데우스'도 기대를 하고 읽게 되었다. 이 두 번째 책은 전작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흥미롭고 재밌고 책을 읽는 중간에 멈추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특히 어렸을 적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온 나에게 종교에 대한 부분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가 이제는 점점 신이 되려고 하는 부분을 상세하게 언급하며 이 세계를 정복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미래에는 그 지배력을 상실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의제들에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대처할 지 여러가지 각도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현재 인류에게 설탕은 화약보다 더 위험한 물질이 되었고 세계경제는 물질기반 경제에서 지식기반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지식이 부의 원천이 된 세상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점점 불멸의 존재로 나아가고 있다. 단, 이 불멸의 존재도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한다. 부자는 값비싼 기술을 쉽게 구입해 더 오래 살 수 있고 빈자들은 오래 살고 싶어도 그런 기술을 살 비용이 없어 더 일찍 죽게 된다. 지금도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치료받지 못하고 죽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철저한 무신론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신, 국가, 기업 같은 것들을 허구에 기준을 두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실체는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 실체라 주장하며 그가 유대인이어서 그런지 허구의 예로 성경을 언급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가 언급한 성경은 오류가 많은 부분임을 나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은 철저히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지 어떤 과학적 책이나 역사적 사실을 확실하게 언급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믿음에 근거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물론 무신론자들에게는 이 믿음이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그것이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관점을 다르게 보고 읽어야 하는 것이 성경이다. 그가 '호모 사피엔스'책에서 언급했던 농업혁명이 사기라는 부분도 나는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만 완전히 동의 하지는 못한다. 수렵채집 생활이 아무리 자유로웠을 거라고 하지만 그 생활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 였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수렵채집 생활도 분명 나름대로 확실한 계급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수렵채집 생활이 농업혁명보다 인간에게 더 나았을 거라는 주장에 나는 동의 하기 어렵다. 어떤 부분에서 하라리는 인간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실체로 주장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데 그것만을 가지고 실체를 논하는 것 자체도 오류가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빅데이터와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은 점점 신이 되어가겟지만 영화 터미네티터처럼 기계에 지배받는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이 죽지 않고 네크워크 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듯 이야기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인공지능의 시대가 되어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호모 사피엔스의 지구 지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될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력, 믿음, 마음 등의 존재가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호모 데우스도 인간 유발 하라리의 상상력에서 쓰여진 글이 아닌가? 이 책은 여러가지 사실에 근거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하라리의 스토리텔러가 아닐까?
|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안을 읽은 후 호모 데우스를 읽게 된다 하라리는 책은 내용과 페이지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책의 내용과 의식의 흐름에서는 일관성 있게 하라로 흐른다. 책 485페이지 인간의 전자기파 스펙트럼은 작은 일부만을 볼 수 있다. 전체 스펙트럼은 가시광선 스펙트럼보다 약 10조 배 넓다. 마음의 스펙트럼도 이처럼 광대하지 않을까?
|
|
사피엔스를 다 읽기도 전에 호모 데우스를 구입했습니다! 아무리 호모데우스가 7만년간 지속되어 온 인간이라지만 영원한 건 없잖아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21세기 인간의 모습까지 제시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전작과의 연결고리도 튼튼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구요. 말에 책임을 지는 걸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시국때문에... 재택 근무를 하시는 분들도 많을 테고 학생들은 개강이 잔뜩 연기되었으니까 여유가 되신다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뭔가 채우고싶을 때 양질의 것을 얻어갈 수 있으실 거예요. |
|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가 될 수 있을까? 초인류의 탄생인가 새로운 지배자의 탄생인가? 유발 하라리는 새로운 지배자(인공지능)의 등장에 더 많은 가능성을 둔 것 같다. 공상과학소설이 더이상 소설처럼 들리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작가의 논리전개는 섬뜩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우주에서 유기체는 덜 진화된 존재라서 현재까지 우리가 다른 유기체를 발견하지 못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유기체를 거처 비유기체와 같은 데이터로서 이 우주는 가득차 있으나 우리가 찾지 못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
|
한 인간이 고문이나 강간을 당하면 뇌에서 특정한 생화학적 반응들이 일어나고, 다양한 전기신호들이 한 뭉치의 뉴런에서 다른 뭉치의 뉴런으로 이동한다. 그게 뭐가 문제일까? 대부분의 현대인이 고문과 강간을 윤리적으로 꺼림칙한 일로 여기는 것은 그것과 관련한 주관적 경험 때문이다. 그러한 꺼림칙함이 주관적 경험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주관적 경험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고문과 강간이 왜 잘못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p.167
조금 어려운 듯한 내용이긴 하지만,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중고로 구입했더니, 나머지 유발하라리의 책 두권도 갖고 싶어졌다. 사피엔스는 진작부터 보고 싶었고....
어떤 내용일지... 세 권의 책이 각각 다 다른 분야인 듯도 하고...비슷한 맥락 같기도 하고... 아뭏든 헷갈리는 유발 하라리의 책이다...ㅋㅋㅋㅋ...
|
|
진즉에 하라리의 전작 사피엔스에서도 그랬지만.. 다시 한번 그의 박학다식함과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그치지 않고 새로운 해석까지 제시한다. 호모 데우스는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전성시대를 맞이하였는지 설명하고,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에 대해 예측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종교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 종교와 과학의 보완적인 관계의 해석이 가장 흥미로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