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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센티멘탈'에는 총 4개의 단편들이 있다. 청수淸水, 다카세가와, 추억, 얼음 덩어리 그 중 추억, 얼음덩어리는 형식이 무척 특이하다. 옮긴이는 "추억'은 한 걸음 더 들어가 대단히 파격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시어들을 낱낱이 해체하여 단순히 여기저기에 흩어놓은 듯이 보이지만,-실로 이 부분에서 나는 당황했다. 페이지 하나에 적게는 3단어가 흩뿌려져있고 그러한 페이지가 무려 45페이지나 이어져있다.-실은 여기에도 공들인 트릭이 숨어 있으니,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치채지 못한 독자분께서는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보아 꼭 발견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란다."라고 쓰고 있다.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감상적인, 센티멘털이 아니라 감각적인, 센티멘탈의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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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꺼내든 소설 <장송> 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세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가 쓴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국내에 익히 알려진 일본 작가들 중에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국내 독자는 많지 않은 듯 했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에 대한 리뷰가 20개가 채 되지 않는 사실이 의외였으며, 히라노 게이치로는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많이
알려진 듯했다. 그의 문체나 스타일이 미시마 유키오가 다시 돌아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철학적면서 현학적인 내용을
품고 있다. 또한 히라노 게이치로에 대한 관심의 연결고리는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으며, 앞으로 히라노게이치로의
신간에 대해 쭈욱 읽어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이 철학적이던, 난해하던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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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일본의 젊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를 만나고자 광화문의 대형서점을 찾았다. 고등학교 시절 '일식'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달', '장송' 그리고 지금의 '센티멘털'까지 그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던 나였기에, 그와의 만남은 차라리 감동이었다. 그와의 짧은 만남 후 내게 남겨진 것은 그의 필체가 담긴 사인 한장과 그와의 악수 후 미미하게 남아있는 촉감의 여운 뿐이었지만, 마치 그토록 찾아 헤매이던 행복의 출처를 찾은 마냥 유쾌하고, 인상깊었던 그때였다.
' sentimental(감상적인)'의 의미를 지닌 이 책은 본래의 의미인 '감상적인'을 뛰어 넘어 '감각적으로' 독자에게 접근 한다. '청수(淸水)'에서 보여주었던 존재론적 기억의 여운을 튀는 물방울로서 표현한 점이나, '다카세가와'에서 동갑내기 젊은 남녀의 육체적 사랑을 극명한 리얼리티로 묘사했던 장면에서 느낄수 있듯이 그는 그의 언어로서 독자의 감성을 감각적으로 파고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추억'과 '얼음덩어리'에서 보여준 다소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전달 방법은 그의 지극히 센티멘털한 언어가 독자에게 단순히 읽혀서 받아들여지는 데에 그치지 않았음을 짐작할수 있게 한다.
그의 작품 '추억'은 마지막 장에서 한데 모아논 한편의 시를 낱낱히 해체하여 단순히 흩어놓은 듯 보이지만, 왠지 그 둘사이에 미묘한 차이점을 느끼게 만든다. 한편의 완성된 글이 단순히 언어들의 조합일 뿐이라고 생각해온 나에게 있어 이 작품은 각각의 언어들이 가진 독립적인 의미에 대해 너무 간과해오지는 않았던지 다시금 생각케 만든다. 각각의 언어들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의미의 시를 완성하듯 추억의 단편들이 모여 과거와 다른 현재의 내가 존재함을 엮는다면 역시 억지일까?
소년의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이 빚어 낸 순수함의 착각과 여자의 불륜이 빚어 낸 죄의식의 착각이 서로 독립되어 있는 듯 다시 맞물리며 전개되었던 '얼음덩어리'는 내용 면에서나 그 파격적인 표현 면에서나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실험적인 구성이 독자에게 하여금 감성의 호수에 파장을 일으키기 충분하다면, 분명 그것은 현대 문학의 진화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젊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텍스트 혁명의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던 '청수(淸水)'와 '추억'의 꿈에서 쉽게 깨어날수 없었던 나를 보며, 그의 언어의 세계에서 헤어나오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님을 새삼 깨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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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도전정신과 치밀한 과학적 접근에 찬사를...
히라노 게이치로는 글 자체의 내용이나 깊이, 의미도 물론 다른 여타의 작가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책' 이라는 텍스트의 구성을 재구성하는 도전을 감행한다. 놀라웠다.
이런 구성, 이런 치밀함...
4가지 이야기 중,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는 일반적인 소설이며 특히 첫번째 이야기 '청수' 는 번역자의 변에서도 나오지만 그의 형이상학적 사고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두번째 작품, '다카세가와' 는 치밀하면서도 섬세한 남녀간의 섹스 장면과 일상을 잘 표현하는 작품이다.
내가 눈여겨 본건 세번째 작품과 네번째 작품이다.
세번째 작품인 '추억' 은 내용 그 자체의 심오함이나 문학적 가치를 떠나서 구성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퍼즐 같은 글의 나열. 하나 하나 이어서 안구가 빠르게 움직여야 말을 만들 수 있는 글의 효과.
그정도만 생각한 독자라면 아직 그의 숨은 의도는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추억' 은 단어와 단어, 혹은 단어와 조사가 상당한 거리를 띄우고 있는 퍼즐 같은 글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일반적인 글이 두 페이지가 있다. 여기서 숨겨진 히라노의 의도가 나오는데, 앞의 퍼즐같은 단어들의 나열은 가장 마지막에 있는 두페이지의 글에서 따 온 것이다.
즉, 쉽게 말하면 가장 뒤에 있는 두페이지의 글에서 단어 하나하나 떼어다가 말을 이어서 만든 것이다. 또한 단어들이 일정한 위치가 없이 지면상에 퍼져 있는거 같지만 그것도 가장 뒤 두 페이지의 위치와 일치한다.
다르게 말하면, 퍼즐같은 앞의 단어들을 전부 합치면 가장 뒤의 두페이지 글이 된다.
이런 구성은 지면과 글, 혹은 그림으로 비쥬얼 표현력이 약하던 도서 분야의 혁신이 아닐까?
네번째 작품인 '얼음 덩어리' 또한 독특하다. 지면을 양분하여 이쪽과 저쪽의 내용이 다른 옴니버스 구성과 비슷한 동시성을 추구한 구성이다.
그는 읽는 이가 편하도록 중간중간 시간의 동시성을 갖는 공동 영역을 따로 만듦으로써, 읽는 이는 한쪽 이야기를 읽고, 다시 다른 한쪽을 읽고 중간에 있는 글을 읽어서 시간이나 공간의 공존을 확인하게 된다.
책을 많이 읽어본건 아니지만 이런 구성은 참으로 톡특하고 재밌었다. 영화를 보는것 같은 책의 구성에 숨가쁘게 읽은 기억이다.
히라노의 '일식' 을 우연히 읽은 후 팬이되어 그의 작품을 여러권 읽었지만 '센티멘털' 처럼 재밌고 쉽고 흥미롭게 읽은 기억은 없는거 같다.
4가지 이야기를 구성하는 책의 제목 '센티멘털' 그 자체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센티멘털 해지는 독자를 위한 배려일거라 짐작해 본다. |
| 히라노 게이치로와는 다섯번째 조우이다. <일식>,<달>.<문명의 우울=""><장송>에 이은 네번째 소설인 <센티멘털>. 우선 깜짝 놀랄 사항 한 가지는 고풍스러운 문장에 저 멀고도 먼 옛날을 (19세기 정도는 기본이고 중세는 옵션이다) 배경으로 글을 쓰던 그가 드.디.어. 현대로 시대를 옮겨 온 것이다. 기대로 가득차서는 글을 읽다가 깜짝 놀라 책을 잠시 접었다. 이럴 수가. 그가 이런 글을 쓰다니. 그의 단편 소설을 묶어 놓은 소설집 <센티멘털>은 이전까지의 그를 상징하던 현학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이전 소설이 하나로 묶어서 풍기는 고적하고 현학적이다 못해 고고하기까지 하다는 평을 들었던 것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이다. 첫번째 소설인 <청수>같은 경우에는 이전 소설에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어느 남녀의 하루 밤을 이야기를 쓴 <다카세가와>는 그가 쓴 글이 아니라고 애써 부정을 하게 된다. 그의 이런 글을 쓴 의도랄까, 혹은 기분이랄까. 이런 것을 이해를 하겠지만 일단은 히라노가 이런 글을 쓸 것이라고, 아니 정확하게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너무 큰 충격이었다. 남녀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부터 시작을 해서 글 전체적으로 리얼리즘이 아니라 그냥 바로 앞에 큰 프로젝터로 영화를 한편 틀어 놓은 느낌이다. 단편집에서 그에게 희망을 보는 것은 <추억>과 <얼음 덩어리=""> 두 편이다. <추억>의 경우에 소설이라기 보다는 시에 가까우며 그것도 상당히 형식 파괴적이다. 읽으면서 일본어를 알아서 이 원작을 읽어봤으면 했는데, 상당히 아쉬웠다. 일본어로는 단어의 배치를 어떻게 했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시라고 하기 보다는 단어의 나열이라고 부르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을 듯한 글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면서 나름대로 의미를 해석하려 했으다. 그러다가 맨 뒷 부분의 가지런히 정리된 글을 보면서 이리저리 맞췄던 내 생각과의 간격을 비교했다. 요컨데, 글을 작가가 쓰게 되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몫이라고 하지만 이런 형식파괴 적인 글을 읽고 있자면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지런히 정돈된 글을 애초에 보여주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제시했고, 그것을 읽은 독자는 어쨌뜬 작가의 기본 생각에 많은 부분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글 덕택에 이 짧은 글을 읽는데 이 책에 수록된 소설을 읽는 시간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하지만 마지막 작품인 <얼음 덩어리="">는 깜짝 놀랐다고 할 만큼 굉장한 작품이었다. 완전히 소설을 두 문단으로 구분을 해서 한 페이지에 두 가지 이야기를 담아 낸 것이다. 친어머니가 과거에 죽었지만 있었다는 이야기를 막 들은 한 소년의 이야기와 의사인 남자와 불륜 관계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병렬해서 전달하는 것인데, 상당히 파격적이다. 한 페이지에 전혀 다른 두 글이 존재하기 때문에 글을 읽는 것부터 상당히 난점을 표하게 된다. 소년의 이야기를 끝까지 먼저 다 읽어야 할지, 아니면 소년의 이야기와 여인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야 할지부터가 문제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이 끝나기 3장 앞에서 겨우 접점을 가지게 된다. 전혀 다른 세계에 의식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접점을 가지는 순간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싱겁지만 그 순간이 내포하는 의미만큼은 상당히 큰편이다. 나쁘게 말하면 착각은 자유라고 이 글을 비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두 세계의 두 사람이 조우하는 순간이라고 해야할까? 그 순간을 가능한 세밀하게 부각시켜 글을 쓰려는 작가의 의도와 그렇게 글을 쓴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첫 현대 소설에는 역시나 두손 두발 다 든 셈이다. 그의 글을 현학적이고 지나치게 고풍스럽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이 책을 주면서 반드시 그가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집은 그런 히라노 그만의 색체를 상당 부분 제거한만큼 상당히 이전 독자들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전 작품들에 비해 이전 히라노에 비해 그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를 아직은 결정하지 못했다. 그저 일단은 꾸준히 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스게 소리로 이런 작가가 글을 쓰지 않는건 죄악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내놓는 글마다 잔뜩 긴장하게 하는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그에 대처하는 한 독자의 자세가 그렇다.얼음>추억>얼음>추억>다카세가와>청수>센티멘털>센티멘털>장송>문명의>달>일식> |
| 그에 대해선 잘 모른다. 이 책을 포함해서 소설 4권, 그리고 어느 신문에 실렸던 인터뷰 기사 하나 본 게 전부다. 그가 쓴 산문집이 하나 나와있는데 아직 읽지를 않았다. 그책을 읽어보면 그의 생각에 대해서 좀더 많이 알수 있을까. 젊은 나이에, 문예지에 처음으로 투고한 소설이 덜컥 아쿠타카와 상을 받았다. 마루야마 겐지나 무라카미 류도 그랬다더만. 능력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따로 있나 보다. 일본도 우리 못지 않게 대학 서열 중시한다던데, 그 어렵다는 교토대 법대 재학 중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니, "심심풀이로 그냥 끄적거렸더니 상까지 받았네요"라고는 당연히 말하지 않았겠지만, 어딘가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타일이다. 책 안쪽 날개에 실린 그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일식. 바로 그 소설이다. 현학적 표현과 고어체 사용으로 나올때부터 될성싶은 나무로 점찍혔다. ''움베르토 에코''가 그 소설의 선전 문구에 올랐었고. 뭐 요즘에는 그런 표현이 흔해졌지만 10년전에는 그런 비유가 그리 쉽게 통용되지 않았었다. 어쨌거나 그의 소설은 그런 거창한 비유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뒤로 나온 ''달''도 역시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그렇게 갑작스레 각광받던 작가는 몇년간 책을 내지 않고 글쓰기에 몰두하다가, 읽기에도 버거울 만큼 두꺼운, 그렇기에 그걸 쓰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을까, 절로 감탄하게하는 두꺼운 소설 ''장송''을 펴낸다. 시간과 공간을 이리저리 오가는 그의 창작 능력이 대단할 뿐이다. 이제 드디어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두가 길었는데, 그 이유는 물론 본론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첫 단편집이다. 4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그런데 그걸 ''소설''이라고 불러야할지 난감하다. 첫번째 이야기는 좀체 종잡을 수 없다. 이리저리 옮아가는 화자의 시선과 발길을 따라 좇아가기에 바쁘다. 그러다 보면 독자는 길을 잃게 되고 저만치서 그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작가를 발견하게 된다. 두번째 이야기는 과연 그가 이런 소설도 쓴단 말인가, 할 정도로 기존의 그의 소설과 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에로티시즘의 극치, 영화로 만들면 19세 이하 관람불가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가 생각될 정도로 묘사가 예사롭지 않다. 세번째, 이것은 정말이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시인지 산문인지 알 수 없는 글이다. 편집 자체도 황당 그 자체고. 세번째 이야기에서 작가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것도 새로운 형식상의 실험을 꾀하는 소설이다. 두편의 이야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함께 진행된다. 반반 나뉜 티비화면에서 서로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그런대로 재미있겠구나 생각되는데, 독서라는게 동시에 두 이야기를 다 따라 읽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왼편 먼저 읽고 다시 오른편을 읽게 된다. 작가가 상당히 공을 들여 쓴 듯한데, 그 노력에 비해 독자는 그런 ''동시성''을 따라갈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식적 실험은 상당히 신선했고, 비록 동시성을 시각적으로 즉시 경험할 순 없지만 작은 뇌 용량에 맞춰 저장해 놓고 머리 속으로 두 이야기를 중첩해서 파악하는 시도를 한다면 좋은 감상이 될 듯하다. 작가는 이렇게 범상치 않은 소설 네편을 엮어서 펴낸 뒤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듯하다. 자심감 가득한 표정으로, 약간은 자만심으로 비춰질 수 있는 자세로, 마치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라고 당당히 선포하는 듯하다. 물론 거기까지 힘겹게 좇아서 따라가면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 많았는데, 사실 내가 가진 것은 이것보다 훨씬 많거든? 앞으로 훨씬 더 많이 보여줄텐데, 따라올 자신 있어? 벌써 힘겨워 보이는데...후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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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과 달을 정말 감명 깊게 읽고 아직 장송은 읽지 못한 상태에서,
센티멘털을 털컥 사버렸다.
역시나 많은 기대를 함께하며.
생각보단,, 별루였다.
네개의 이야기가 있는데, 마지막 ''얼음 덩어리'' 가 괜찮았고
나머지의 이야기는
현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와닿지 않는다.
특히, 첫번째 이야기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유인 즉,
너무 글을 잘써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
글을 갓쓴 사람인 것 같은 느낌까지 느껴졌으니!!
미사어구의 배열이.. (물론 작가가 의도한거였겠지만)
오히려; 살짝 거부감을 일으키게 한건 나뿐인것일까.
(어쩌면, 너무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일지도)
그렇지만, 읽어볼 만은 합니다. [인상깊은구절] 녹아가는 얼음 덩어리가 차디 찬 마비에 싸여 당장이라도 사라 질 것만 같았다. (책의 마지막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