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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캐서린 밸런트 <소녀와 비밀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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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판타지를 좋아하지만, 그다지 이 책에 대한 기대를 하지않고 읽었는데(아마도, '소녀와 비밀의 부채'라는 책 탓이기도 했었던것 같습니다.), 완전 진흙속에서 진주를 캔 기분이네요. 단지 눈꺼풀에 검은 화장을 한듯한 소녀의 모습이 불길하지만, 혹시 악마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워 그냥 술탄의 궁궐정원에 방치된채 생활하는 소녀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온 소년에게 자신의 눈꺼풀 위에 적혀져 있는 이야기를 소년에게 들려주게 됩니다. 사실 소녀의 눈꺼풀에 촘촘히 적혀 있는 상황도 신비로웠지만,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소년뿐만 아니라 읽는 독자들도 매혹한답니다. 특히 소녀가 소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속 주인공인 왕자에게 마녀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마녀는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듣게 되며, 그 할머니는 또 다른 마녀에게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언뜻 복잡하지만,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품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이 책은 '천일야화'를 떠오르게하네요. 소녀의 눈꺼풀 위에 적혀 있는 첫번째 이야기는 아버지를 떠나 모험을 찾는 왕자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아버지 곁을 떠나 모험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왕자도 모든것이 정해진 운명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기전 실수로 마녀의 딸이며 기러기였던 소녀를 왕자는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소녀를 살리기 위해 무시무시한 괴물의 가죽을 찾는 모험을 하게 되지요. 소녀의 이야기는 때론 무분별하고 방대하게 펼쳐져있는것 같지만, 계속 읽다보면 모든것이 하나의 가지에서 나온것 처럼 연결되어 마치 퍼즐을 푸는 느낌이었어요. 모든것이 처음 듣는것이어서 더 재미있었던것 같습니다. 이 책은 1,2권으로 책이 나눠져있는데, 2권은 소녀가 들려주는 또 다른 이야기인지라 무척 기대가 됩니다. 마치 소녀의 이야기를 듣는 소년처럼 말이지요. 빨리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네요.
각도에 따라 반짝이는 색이 바뀌어요. 신비스러운 판타지소설에 어울리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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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꾼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또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이야기를 유난히 더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맛 또한 달라진다. 그리고 여기에 독특한 이야기를 하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눈꺼풀은 화장을 한 것처럼 시커멓다. 어릴적 요정의 마법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때문에 소녀가 저주받았다고 여겨 피하고, 그래서 소녀에게는 친구가 없다. 하지만 늘상 혼자있는 소녀에게 호기심으로 다가가는 소년이 있듯이, 소녀에게는 소년이 생긴다. 그리고 소녀는 소년에게 자신이 가진 비밀과 마법을 풀어나간다. 눈꺼풀에 빼곡히 들어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소녀와 비밀의 책>>이라는 제목에서 '비밀의 책'은 소녀 그 자체이다. 그리고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법이 되어 소년을 매혹시킨다. 그리고 독자는 소년이 되어 소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양하다. 모험을 떠난 왕자, 괴물 처녀, 집을 떠난 곰, 성녀 시그리드 등등. 그러나 재미있게도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아무런 관련이 없던 것 같던 이야기들도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잘 짜인 그물망처럼 퍼져나간다. 1권의 이야기와 2권의 이야기도 다른 이야기지만 인물을 통해 연결이 된다.
이야기에서 이야기꾼은 소녀만이 아니다. 소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 목소리를 가지고 이야기꾼이 된다. 왕자, 처녀, 마녀, 불새, 비버 등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각 캐릭터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주요 줄거리에서 별 역할을 못 하는 인물이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남에게 들려줄만한 이야기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보통 소설에서라면 무시될 조연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주연으로 탈바꿈한다. 그야말로 누구나 주인공인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처음에 소녀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 단순한 액자식 구성을 생각했는데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구조를 보여줬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또 이야기가 있고, 그 와중에 이야기가 있다. 영화 <인셉션>에서 꿈 속의 꿈, 그 꿈 속의 꿈으로 꿈이 몇 번이나 중첩되며 진행되던 것이 연상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중첩되다보면 최대 7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내가 정확히 셌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안 쪽의 이야기가 끝나야 그 밖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꾼들은 상황에 맞춰서 알아서 이야기를 끊고 자신들 좀 쉬다가 다음 이야기를 해주고는 한다.
이야기를 하나씩 뚝뚝 떼어놓고 보면 어떤 이야기들은 정말 별 거 없어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롭고, 어떤 것은 약간 허탈하기도 하다. 물론 이야기 자체도 독특하다. 모험을 찾아나선 왕자는 괴물과 싸우기는 커녕 다른 길을 걷게 되고, 탑에 갇힌 처녀는 마녀와 괴물이 풀어준다. 일반적인 이야기가 비틀려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들은 서로 엮이고 겹치며 더 매혹적인 이야기가 된다. 결코 보통 이야기꾼이 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한번은 소년이 자신의 누나에게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 적이 있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누나의 반응은 '너 미쳤니?'였다. 소년의 이야기는 소녀의 이야기와 같지만 전혀 다르다. 하지만 내가 소녀의 이야기를 옮기려고 노력한대도 소년보다 낫지는 못 할 것이다. 소녀가 해준 그 매혹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다른 사람이 펼칠 수 있을까. 소녀의 이야기 마법은 소녀밖에 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모두가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나 또한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훌륭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얽히고설킨 이야기에서 나와의 연결고리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것이 없더라도 소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마법에 걸리고 싶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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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작 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까만 표지의 테두리를 장식한, 아름답게 빛나는 덩굴무늬가 무척 우아해보였기 때문이다. 책 날개의 작가 프로필을 읽고서는 조금 당황했다. 스스로를 작가이자 시인이며 이따금 비평가라고 밝히지만, 모든 작가와 시인과 비평가가 현관에 마법주문을 걸어놓고 커다란 검은 솥에 책을 넣고 끓이며 가끔 자신이 사이렌(몸의 절반은 여자이고 절반은 새인)이 된다고 말하진 않는다. 본격적으로 책장을 넘기며 나는 난관에 부딪쳤다. 나는 이런 문장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때 그런 적이 있긴 했지만. "소년의 얼굴은 겨울 태양처럼 빛났고, 몸집은 강변에 피어난 갈대처럼 호리호리했다. 한때는 흰색이었을 누더기 실크 드레스와 낡은 외투를 입은 소녀 앞에 선 소년은 향기나는 검지로 소녀의 눈꺼풀을 어루만졌다. 소녀는 놀라면서도 소년의 손길을 참아냈는데, 그것은 그동안 소녀가 늘 외로움과 슬픔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다."(1권, p.10) 지금의 나에게는 벅차지 않을까 하고 조금 걱정하며 읽는데, 놀라운 전환이 일어났고, 그 뒤부터는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화려한 수식어구에 밀려 포기하기에는 정말 아까운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찾은 보석 같은 발견들을 모두 적기에는 능력상으로도 지면상으로도 벅찬 일이지만, 이 훌륭한 이야기를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기에 글을 쓴다.
1. 이야기 속 이야기 소녀의 두 눈은 비밀스러운 글자로 뒤덮여 있어 마치 검은 반점이 있는 듯하다. 사람들이 그녀를 두려워했으므로 소녀는 술탄의 정원에서 홀로 지냈다. 어느 날 만난 소년을 위해 소녀는 자신의 두 눈에 새겨진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왕자와 기러기 이야기로 시작한 소녀의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보았음직한 왕자의 모험기이다. 궁 안에서만 지내던 철부지 왕자가 실수로 마녀의 숲에 들어가 기러기의 모습을 한 마녀의 딸을 죽인다. 마녀는 크게 노하고, 왕자는 무슨 일이든 하겠노라며 흉한 얼굴의 마녀에게 간청한다. 마녀는 자신의 딸을 되살리게 할 주문을 위해 괴물의 가죽을 구해오라고 한다. (화려한 수식어를 빼고 내용만 말하자니 이야기에게 미안한 기분이 든다. 본문은 훨씬 아름답고 세밀하게 짜여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왕자가 자신의 피와 땀이 섞여 들어간 밀가루 반죽을 섞는 동안 마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어느 동화에서도 마녀가 화자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 자신의 밭에서 귀중한 채소를 훔쳐간 벌로 네 아이를 내놓으라고 하던지(라푼젤), 네 딸은 물레가시에 찔려 죽을 거라는 저주를 퍼붓는 경우가 아니라면(잠자는 숲속의 공주). 마녀가 자신의 부족들을 정복하기 위해 쳐들어온 왕자의 아버지-왕-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글이 흔한 동화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흥미로움을 느꼈다. 그 뒤로 쭉 읽어나가면서 동화의 단순한 선-악, 미-추, 평면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의 도식이 마법처럼 깨어져 갔다. 그것은 마녀와 마녀의 이야기, 혹은 소녀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스스로 입을 열어 자신들의 품속에 둔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꼭 다물고 있던 입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가 귀중한 별빛처럼 쏟아져 나오는 동안 내가 아는 동화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끊임없이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형 속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있는 러시아의 마뜨료쉬까 인형처럼.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은 어딘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도 들지만, 작가가 이야기의 굵은 뼈대를 튼튼하게 잡아 당신을 안내하므로 홀로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 아름다운 동화, 그 저편에 왕자와 기러기 이야기는 마녀의 이야기와 함께 1권의 중심 이야기이다. 흉한 얼굴에 갈고리 같은 손가락을 가진 마녀에게도 그녀가 사랑한 초원이 있었고 그녀가 눈이 빛나는 남자와 함께 행복한 사냥꾼 부부로써 있던 그녀의 부족이 있었다. “어느 날 네 아버지의 군대가……. 입 벌어질 것 없다, 애송이. 네놈이 내 땅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가 네놈의 정체를 몰랐을 것 같으냐?“(1권, p.29) 평화롭다 믿었던 왕자의 세계에, 마녀 나이프의 세계가 포개진다. 정복자가 오기 전에 부족의 딸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던 신비로운 이야기. 부족의 따뜻한 보금자리 대신 캄캄한 지하 감옥 속에서 나이프는 할머니에게서 온 세상을 태동하게 한 길고 부드러운 갈기를 가진 암말과 그가 스스로를 물어 내린 구멍-별-의 이야기, 그 암말의 갈기에서 빛을 안고 내려와 처음 그 힘을 지상의 온갖 것에 주고 죽음을 맞이한 아름다운 일곱 보석자매의 이야기, 그 힘을 처음 받은 그녀의 첫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왕자의 세계는 곧 독자의 세계이기에, 참담한 심정으로 마녀를 위한 빵을 만드는 왕자와는 상관없이 나는 마녀의 이야기에 흥미롭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소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소년처럼. 마녀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입을 타고 전해져 내려오는 초원의 신화가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살아 움직였다. 암말과 피와 빛에 대한 이야기는 원시적이면서도 생명력이 넘쳐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신화와도 달라 그 자체로 빛이 났다. 그리고 그 신비한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아이를 기러기로 만들어야만 했던 나이프가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풀을 다스리는 마녀로서 살아가며 복수를 다짐하는 마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듣고 있음을 이내 깨닫게 되고 마는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어린아이를 통통하게 찌워 잡아먹으려고 입맛을 다시는 마녀와는 분명 다르니까. 이처럼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를 바꾸고 변형하여 이어 이야기한다. 뒤따라 많은 것들이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된다. 왕자는 더러운 누더기를 입고 가는 마을마다 냉대를 당하며, 왕자의 허식을 따르다 허망하게 괴물에게 죽은 왕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그 미의 기준이 다른 이와는 무척이나 다르더라도)과의 약속을 위해 왕자와 칼부림 한 번 없이 스스로 자신의 가죽을 벗겨주는 괴물이 나오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동화를 써내려가면서도 “흥, 그게 다가 아냐”라며 콧방귀를 뀌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달변은 갈수록 감탄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모험을 떠난 왕자의 마지막 행보가- 그 어떤 동화의 결말과도 같지 않기에, 그리고 결코 나오지 않을 결말이기에- 끝나고 나면, 혀를 내두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3. 행동하는 여성 1권이 철부지 왕자의 성장기와 함께 한 동화의 반전이었다면, 2권은 여성들의 이야기다. 1권이 스토리에 더 중점을 두고 읽는다면 2권에서는 스토리보다 등장인물의 행동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2권은 다행이도 1권보다 이야기 고리가 깔끔하고, 1권에 나왔던 마녀의 세계관이나 몇몇 등장인물 등이 이어지기 때문에 보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스노라는 창백한 고아소녀에게 말하는 그물 짜는 여인, 혹은 갈림길의 성 시그리드라 불리는 여인의 이야기로 이어져간다. 여기서는 여인들에 주목해서 보기로 하자. 아름다운 여자가 항상 왕자와 결혼하는지 하지 않는지, 평범한 여자가 평범하게 살아가는지 아닌지는 이 책이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콕 찝어 특히 괴물인 여자들에 대하여 말한다. 1권에서 탑 속에 갇혀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마가딘은 사악한 마법사의 실험으로 괴물로 변한 자신의 하체로 때문에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간신히 탑을 빠져나와 항구로 향했을 지라도 괴물 여성에게 사람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토모모는 물 속에 비친 그림자가 여우 모습이라는 이유로 도외시되었다. 들끓는 바다의 성 시그리드는 유방이 세 개였다. 괴물인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적절히 사용하는 법을 알았고, 스스로 모여 자유라는 이름의 해적이 되었다. (해적이라니!) 마가딘은 그녀의 배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나를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듯 아무도 이 배를 원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돛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돛대에 유령선원들을 올려 보내 바람 대신 달빛으로 돛을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누가 뭐래도 이 배는 내 것 입니다. 나는 내 몸처럼 이 배를 속속들이 알고,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아요. 나는 이제 더는 처녀가 아니며 그 딱한 처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나는 처녀성을 피와 바닷물에 던져 버렸어요. 이젠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고 나 또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습니다.”(2권, p.329) 칼리프에게 속아 가짜 파페스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사악한 마법사에게 속아 오랫동안 고통받았던 여자, 라그닐드는 그녀 자신의 의지로 대군을 이끌고 종교 도시 알라누르로 온다. 진짜 파페스가 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그녀들이 괴물인가? 그녀들은 괴물이다. 특별한 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노와 그물짜는 여인은 그네들을 동경했고, 매번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소년을 혼내는 술탄의 딸, 디나르자드마저도 그녀들의 이야기에 눈물 흘렸다. 그녀들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반대로 권력과 황금과 여자에 눈이 먼 왕과 멍청한 왕자 혹은 연인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들은 매우 권위적이거나 그 자신이 목적이기에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왜 왕이 계모와 결혼할 수 밖에 없는지,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왜 평화로운지를 알려준다. 왕이라는 지위 때문인지, 그러한 자들만이 왕이 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4. 변화하는 청자 이쯤 읽었으면 대충 알겠지만, 모든 동화는 아니지만(난 ‘종이봉투 공주’같은 훌륭한 동화를 알고 있으니까) 대부분의 동화는 남성적이고 남자들을 치켜세워주기를 좋아한다. 남자들은 덕분에 환상을 가지고, 용감해 보이기 위해 애쓰며, 혈기를 참지 못해 길을 떠나고는 멍청하게 마법에 걸리거나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년은 왕자일지라도 그런 용기와 현명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검은 반점의 소녀를 처음 만난 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는 목도리 도마뱀처럼 용기를 애써 내세우고, 제 딴에는 음식을 한아름 품에 안고 숨긴다고 숨겨서 방을 빠져 나오지만, 매번 그를 찾는 누나에게 걸려 끌려가고 만다.
하지만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다! 소년은 늑대와 동굴의 정기를 받은 듯이 행동했고, 레안데르 왕자를 동경했다. 소년은 용기를 내어 누나에게 처음으로 반항을 하고, 그가 소녀를 만나러 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누나를 설득하려 애쓴다. 그 대가로 그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왕자의 신분에!) 마굿간에서 일을 하기도 하지만, 요령껏 누나의 눈을 피해 소녀를 찾아온다. 소년은 왕자였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아이였지만 소년이 변화한 것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소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년이 앞으로 어떻게 자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던 동화의 다른 면을 본 소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식으로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은 나는 나이가 들었다. 이 책을 읽을 사람들 역시 소년 보다는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오래전 읽었던 동화의 고정된 틀이 현재의 내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래서 내 주위의 어떤 괴물을 힘들게 하거나- 내 스스로가 힘들어 하고 있다면, 이 책을 접하고 조금은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면 기쁘겠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접하지 못한 게 아쉽다. 내가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아이였더라면 장래희망에 해적, 이라고 꾹꾹 눌러서 적어볼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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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아이가 “책표지가 보석같이 반짝반짝하는 책 보여드릴까요?” 합니다. 평소에 만들기랑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라, ‘오늘은 또 어떤 걸 만들었나’ 싶어 “그래” 했더니 ‘소녀와 비밀의 책’을 보여줍니다. 불빛에 반짝이는 예스런 문양이 아이에게 보석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봤을 때와는 표지 느낌이 다릅니다. 더 이쁘고 화려하네요. 책 내용도 표지처럼 화려합니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아름다운 문장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옵니다. 작가는 ‘아마존 작가 자작 프로필’에 나오는 ‘동굴에 떨어진 신화 속의 괴물 에루르’ 처럼 동굴에 숨어서 보석같은 문장을 토해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작가의 화려한 비유와 수식에 적응을 못해서 애를 먹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글이지만 짧고 간결한, 신문기사 같은 글을 좋아하는 제게는 약간 벅찼답니다. 처음 접해보는 ‘캐서린 M. 밸런트’의 글은, 익숙해지기 전까진, 문장의 호흡이 길고 비유와 수식 때문에 헷갈리고 어렵더군요. ……이 소녀에겐 태어날 때부터 신기하고 아름다운 반점이 있었으니, 눈꺼풀과 눈 가장자리가 하얀 도자기병에 담긴 잉크처럼 파르스름한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가의 검은 반점 때문에 소녀는 상앗빛 서까래에 앉은 올빼미나 물살 빠른 강에서 물을 마시는 너구리처럼 신비롭고 뚱한 인상을 풍겼다. …… 이런 이쁜 글을 읽을 때, 처음에는 비유부분을 읽다가 문장의 흐름을 놓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기를 여러 번... 그래서 “눈가의 검은 반점 때문에 소녀는 상앗빛 서까래에 앉은 올빼미나 물살 빠른 강에서 물을 마시는 너구리처럼 신비롭고 뚱한 인상을 풍겼다.”는 문장에서 비유부분을 빼고 “눈가의 검은 반점 때문에 소녀는 신비롭고 뚱한 인상을 풍겼다.”로 다시 읽기도 했었답니다. 1권을 117쪽까지 읽고서야 작가의 문장에 적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쯤 되니 비유가 좀 줄어들기도 하더군요.) 술탄의 저원에 살고 있는 소녀에게 소년이 찾아오고, 모험을 떠난 왕자와 기러기, 마녀, 마녀의 할머니, 암말(?), 늑대, 유모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119쪽부터 이야기는 갑자기, 아무런 경고도 없이, 심하게 재밌어집니다.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잘 만든 퍼즐처럼 조각이 맞춰집니다. 이미 작가의 문장에도 익숙해져서 책 읽는 속도도 빨라지더군요. 처음에는 어렵고 복잡하던 문장이, 지금은 참 아름답고 사랑스런 느낌으로 남습니다. 그래도 처음에 적응이 쉽지 않았던 했던 터라 ‘습지의 왕’의 말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 설명에 쓸데없이 미사여구가 많은 점은 자네가 양해해 주기 바라네. 우리 가족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워낙 좋아하거든. 허영심은 우리의 약점이자 오랜 습관이지.” 이 글은 아무래도 여기까지 읽느라 고생한(?) 독자에게 전하는 작가의 변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비유를 맛보기로 보여드릴께요. “……요리사는 잿물 냄새 풍기는 회색 물이 담긴 나무 양동이를 가리키고는, 강을 건너던 나룻배를 괜스레 뒤집는 심술쟁이 하마처럼 생각보다 놀라운 속도로 몸을 잽싸게 돌리더니 가엾은 하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불모지에서나 자라는 산쑥과 뽀얀 먼지로 뒤덮인 자갈무늬를 섬세하게 수놓은 드레스가 땅바닥에 떨어진 듯한 느낌의 사막이 사방으로 펼쳐진 어느 저녁, 바그스는 슬픔에 깊이 잠긴 표정으로……” 2권을 덮으면서도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내일 밤에 소년이 소녀를 찾아가면 얼마나 더 신기하고 근사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사뭇 기대됩니다. (작가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서평을 쓰고 싶었는데 역시 그런 아름다운 문장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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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최고급 환상동화!'
자신만만한 저 문구에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실제로 시험기간이라 나름 바쁘게 공부할 때였는데도 무언가에 씌인듯 한장 한장 읽어나갔다.
'동화' 어렸을 적 교훈도 주고, 감동도 주고 정말 포근하고 정겨운 그런 단어이다. 그래서 20대인 지금도 그 단어만 들으면 따뜻하고 추억이 물씬 생각난다. 은혜갚은 까치, 흥부와 놀부, 신데렐라 이야기, 콩쥐팥쥐, 햇님달님 정말 그러고보면 엄청 많은 작품들을 섭렵하고 있었다. 어쨋든간에 이제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동화라고 해서 구미가 당겨졌고,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게 된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도 좋았다.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정말 환상적이었다. 한 소녀와 소년의 만남... 그리고 신비로운 소녀의 눈꺼풀에 담긴 신비로운 이야기 왕자와 기러기 이야기, 말여인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 그리고 다시 왕자와 기러기 이야기 이런식으로 진행되는데, 정말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별 상관도 없을 것 같더니 또 은근히 연결시키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정말로 환상의 동화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 라고 불리는 온다리쿠! 그녀를 처음만났을 때처럼 이 캐서린 M.밸런트도 그런 충격이었다. 틀에 박히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콕 찝어 장점을 애기하기에는 너무도 말하기 힘든 매력... 굳이 입으로 전하자면 엄청난 상상력을 바탕으로한 몽환적인 이야기가 귀에 은은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다른 세상을 헤매는 듯한 느낌도 들고, 독특한 진행방식과 이야기에 감도 잡을 수 없다. 그야말로 신비하고 근사한 이야기 '소녀와 비밀의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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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따님을 구할 수 있을지 방법을 알려주세요. 곤경에 빠진 아가씨를 구하는 일이야말로 왕자가 해야 할 '의무'잖습니까. 부디 나를 머나먼 빙산이나 끝없는 습지로 보내주십시오. 따님의 생명을 구 할 수 있다면 어디든 기꺼이 가겠습니다." p.131]
환상동화란 이런것이구나.... 하고 제대로 알려준 반가운 책 입니다. 동화라면 기본으로 갖춰야 할 모든것이 담겨있지요. 용감무쌍 하지만 다소 무모하기도 한 왕자가 등장하고 그 왕자를 위협(?)하는 마녀가 나타나며~ 그 외에도 마법사, 반신반인 그리고 여러 동물들과 새.... 반은 인간이요 또 반은 동물인 신비의 존재들까지 매우 다채롭습니다. 이들이 엮어나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마치 각기다른 등장인물이 서로 더욱 신비로운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서 이 한권의 책을 읽는동안 환상동화책 여러권을 풍부하게 만난 기분 이랍니다.
눈꺼풀에 신비롭고 기이한 이야기를 가득 담고있는 소녀....(스모키화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어쩌면 동화속 늠름한 왕자들 보다도 더욱 용감한 소년이 등장하고 그는 소녀가 들려주는 환상의 이야기세계로 초대받아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소녀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싶어 조바심을 내는 소년처럼 저도 이 책을 읽는내내 가슴이 콩닥 거렸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이번엔 어떤 이가 어떤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지요. 특히나 전 뱀신의 이야기가 무척 재밌게 다가왔어요.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며 끔찍히 싫어하는 왕과 결혼해 세상에 이름을 떨칠 자식을 나아주고 단 하루의 자유를 원했지만.... ....(뒷 이야기는 앞으로 이 책을 만나실 분들을 위해 패쑤~ㅎㅎ)
작가는 어쩜 이리도 상상조차 해본적 없는 기이한 이야기로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지요~^^ 요즘같이 무더위에 밤,낮으로 시달려 몸과 마음 모두 지쳐있을 때, 현실에서 벗어나 이런 마법같은 이야기 속으로 잠시 피서를 다녀온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정말 좋을 것같아요. 철없는 왕자에게 들려준, 마녀의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끔찍함에 눈이 커다래지고 때론 용기있는 모습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기도 하면서 엄청나게 험난한 그녀의 삶이 평범한 인간들과도 많이 닮아있는걸 느꼈어요.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재밌고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2권에선 눈꺼풀에 신비로운 이야기를 가득담고있는 소녀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소녀와 비밀의책-2>권을 펼칠 시간이 기다려 집니다 ^__________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