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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소설책이라 책장이 잘 넘어갔다. 성장소설이라는 형식은 평범하기 시작하면 극히 평범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자전적'이라는 색깔을 띠기 시작하면 좀 더 진지하게 작품을 대하게 된다. 강원도라는 배경과 6.25 직후라는 시대 속에서 어디까지가 작가의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그 지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것이 자전적 성장소설의 매력일 것이다.
소설이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여자, 딸, 손녀로서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경험과 심리에서 공감을 느꼈다. 이제는 대놓고 성차별을 하는 시대도 아니련만 그러한 상처가 유전자 깊숙한 곳에 각인이라도 되어 있는 것일까. 딸을 불쌍하게 생각하면서도 정붙이지 않으려 하는 어머니의 이중적인 태도나 제사 같은 때 극명하게 들어나는 남아선호사상이 마음 아팠다. 어려서부터 중학생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할머니가 생각나기도 했다. 순이네 할머니를 보며, 그래 우리 할머니도 저러셨지 생각하면서 어렸을 때 할머니가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책읽는주말'의 꾸준한 참여 덕분에 yes24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읽으면서 '청소년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양장판 말고 청소년판으로도 출간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지금이야 플롯 없이 딱딱한 '읽어야 할 글'이 많아졌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 읽는 것을 좋아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 편하게 소설 읽던 예전이 그리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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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참으로 많은 순이를 만났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그 분 또한 순이였다. 오빠는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를 부를때마다 항상 엄마를 떠올린다고 했다. 그렇다. 나의 엄마 이름이 금순이였다. 그러니깐 울 엄마가 순이였고, 엄마를 비롯해 우리 마을엔 순이란 이름을 가진 아주머니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학교를 가도 출석부 이름엔 간간히 나오는 이름에도 순이는 꼭 있었다. 지금이야 바른생활인지 즐거운 생활이란 이름으로 큰 사이즈로 둔갑한 책 - 국어책에 단골 여자 주인공은 순이였다. 물론, 남자 주인공 철수와 국어책 한 권을 다 이끌어 가는 실력있는 여배우이다. 그 순이는 6년동안 한 번도 여우 주연상을 놓치지 않은 저력있는 그런 배우이기도 하다.
오늘 내가 책속에서 만난 순이도 그런 순이 중 한 명이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로 아주 가난한 시대를 살았지만 그래도 꿈만은 잃지 않은 그런 소녀였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항상 남자들의 경제력은 수그러 든다. 반면 여자들의 사회 진출과 경제력은 상승하게 되는데... 물론, 전쟁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는 남자들을 대신해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참전하여 전사를 하지 않아도 남자들의 경제관념은 없어지나 보다. 아님 강원도, 제주도 같은 지역적 특색으로 인한 여자들 특유의 생활력인지도... 암튼 순이네 아빠는 평상시는 조용한(?)편이지만, 술만 들어가면 순이 엄마나 순이나 동생에게, 하물며 할아버지나 할머니조차도 감히 막을수 없을만큼 난폭해 지는 타입이다. 물론, 경제력 제로이다. 다행히 순이네 엄마는 재주가 많아 전쟁통에도 전후에도 순이네 가정에 유일한 수입원이였다. 물론, 순이네 할머니도 산나물을 캐서 팔거나, 함바집 등으로 보탬이 되기도 했지만말이다.
순이네 엄마는 없는 남편복탓을 하며 순이를 참으로 엄하게 키운다. 물론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여자도 남자처럼 공부를 하거나 혼자서 독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남존여비 사상으로 순이보다도 어린 남동생을 더 귀이 여긴 건 틀림없었다. 그런 순이가 불쌍하고 가엾어 할머니는 아주 살갑게 대한다. 그래서일까? 순이는 급할때 엄마보다는 할머니를 더 찾는다. 나에겐 할머니의 기억이 6살때까지가 다이다. 물론, 그때도 할머니는 많이 편찮으셨고, 190이 훨씬 넘는 할아버지(뵌적이 없어 말로만 들었지만)에 비해 150도 안되는 아주 작은 체구로 반듯하게 누워 주무시는것조차 힘들어 하셨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별로 없어서 인지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은 친구들을 보면 - 순이를 보니 참 부럽기도 했다.
순이에겐 유일한 친구가 있다. 눈치 챘겠지만 여주인공 순이의 단골 여자 친구는 영이이다. 영이의 아버지는 선교나온 신부님의 일을 도와주는 등 성당 살림을 꾸려나가시는 분이다. 우리네 옛어른들이 그러하셨듯이 순이네 할머니는 성당을 예배당이라 칭하며 파란눈을 가진 신부님과 말을 하면 귀신이 든다고 생각하신다. 그런탓에 순이를 성당 근처에도 못가게 하며 영이랑 놀지도 못하게 한다. 하지만 순이는 신부님을 만나는 게 설레기도 하고 영이를 통해 알게되는 미제 제품이나 천국에 대한 환상으로 자신도 언젠가는 구원을 받을거라는 기대를 가진다. 자신이 익힌 문자를 통해 그토록 믿고 경외했던 천국과 미국이 자신을 배반하리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었기에... 결말이 조금 약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서울 소녀처럼 앙증맞고 예쁜맛은 없지만 투박하지만 한 없이 순박한 순이를 통해서 잠시나마 어린시절 - 물론, 내가 직접 경험한 것보다는 전해 들은 얘기들이 대부분이지만 - 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던 소설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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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 가져왔던 '전쟁' 위기론의 압박과 6·25전쟁 60주년!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는 '전쟁' 그 가상의 현실이 남다르게 느껴지던 요즘, 여섯 살 소녀의 순수함을 통해 전쟁의 상흔이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기대하였다. 봇몰 터진 듯 쏟아지는 그 어떤 전쟁 관련 다른 책들보다 '문학의 힘'으로 전쟁의 폐허와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을 엿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순이의 삶을 통해 질곡의 현대사를 몸소 느껴볼 수 있었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가 절로 떠오르며, <순이> 속 '순이' 또한 오래도록 가슴 속에 살아 숨쉬며 수없이 떠오를 듯하다. 순이의 순박함에 절로 가슴 한 가득 웃음꽃이 피다가도, 그녀의 두려움, 아픔, 불안 등에 함께 아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느덧 의젓해진 순이의 모습을 통해 밝은 희망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순이는 전쟁의 상흔 속에서 꽃 핀 순박함의 전형적인 본보기가 될 듯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을 오롯이 담아내며, 뜨문뜨문 들어왔던, 배골았던 그 시절의 풍경들이 내 속에서 더욱 생생해졌다. 그 누군가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눈시울을 붉히게 할 이야기이다.
<순이>를 통해 아련한 할머니와의 추억을 더욱 뚜렷해졌다. 순이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투박하지만 거친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잊고 있었던 진한 추억이 가슴 저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차올랐다. 시골 할머니집의 풍경들 속에서 순이는 이내 나 자신이었다. 순이를 향한 할머니의 다정다감한 눈길, 손길 하나하나가 타임머신이 되어, 추억 하나하나들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그리움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참으로 포근하고 정겨웠던 풍경은 오늘의 우리를 살찌우고 위로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순이의 이야기가 과연 전쟁의 상흔을 이야기하는 것인지조차 잊게 하였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불안, 공포 등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순이를 향한 할머니의 한없는 다사로움 때문이었다. 간첩이 되어 돌아온 분이의 아버지에 대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웃과 사람 간의 정으로 확대되었다. 물론 그 속에서 불신과 경계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 지울 수 없고, 잊혀지지 않는 상처, 그늘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묵어 갈등의 골을 메울 수 없어 보였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은 이야기의 한 축이 되어, 끊임없이 여러 화두들을 던지곤 하였다. 돈의 이치를 알고 진취적으로 삶 속에 뛰어든 어머니와 전통과 옛 것의 습성을 고수했던 할머니와의 갈등,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갈등, 딸아이 순이에게 모질었던 어머니 등 여러 모순과 갈등, 차별과 폭력의 응어리를 이야기 속에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슬픔의 덩어리들은 웃음 한 방에 봄눈처럼 녹기도 하며, 길고 깊었던 갈등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사그라졌다.
<순이>를 만나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어린 시절, 그리움의 물결이 온몸을 감싸안으며 할머니의 품처럼 다가왔다. 또한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순이처럼 어려움 속에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해맑은 미소처럼 가슴을 채워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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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는 여섯 살 순이에게서 우리나라의 1950년대 모습을 바라다 본 이야기이다. 순이의 말투로 보아 순이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은 강원도 어디쯤이라는 것쯤은 미루어 짐작하기 충분하지만 왠지 모르게 순이에게서 친정 엄마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졌다. 우리 엄마도 이 시절 이렇게 자랐을까? 언젠가 엄마랑 마주 앉았을 때 묻고 싶어졌다. 1950년 무렵 여섯살 난 순이를 떠올렸을 때 1944년생인 친정엄마는 소설 속 ’순이’와 거짓말같이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 1950년대 순이의 여섯살 시각으로 바라 본 마을의 모습에도 어수선함과 뜻모를 두려움이 몸소 느껴지는 시절이다. 마을에 들어선 성당이나 새로운 종교에 대해서, 미군의 존재와 물건너 온 구호물품에 대해서도 사람들마다 분명한 생각의 차이를 느끼던 시절이다. 남북분단의 여파로 공산당, 빨갱이를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하며, 역시 남북분단으로 인해 부모와 생이별한 아이들이 고아원에 맡겨지고, 때론 친척집에 머물지만 이런 아이들은 동네 사람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순이의 시각에서 낱낱히 그려지고 있다. 또한,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정의 모습을 ’순이네’에서 발견하게 된다. 남녀선호사상이라던가, 할아버지와 순이 아버지의 포악함은 순이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온 순이 또한 아버지를 좋아하거나 가까이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 순이를 항상 곁에 두고 포근한 사랑을 전하는 외할머니를 보면서 무조건 아들, 장손을 외쳐대던 할머니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 할머니가 나 또한 너무 너무 좋았다. 어머니에게도 항상 천대만 받던 순이에게 그런 외할머니가 있어서 너무나 다행스럽고 다행스러웠다. 아무리 남녀선호사상이 활개하던 시대에 태어난 순이이지만 순이 어머니의 차갑고 매서운 말들이 나 조차 몸서리치게 만들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순이]는 마치 내가 두 눈으로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이야기이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순이의 말과 몸짓 하나 하나에서 순이의 표정이 어떠할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차마 남편에게 억울함을 쉽게 호소하지 못한 채 대신으로 시어머니와 순이에게 모진말을 서슴치 않는 순이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런 모습이 싫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의 한풀이가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도 없어 편치않으면서도 순이 어머니의 심정을 같은 여성의 입장으로 이해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순이]는 억척스럽지 않으면 가족을 책임지고 살아가기 힘든 시대의 이야기였다. 끝내 위대한 건 가장의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힘에서 비롯되었음을... 비단 [순이]가 아닐지라도 이 시대의 어머니들은 모두가 위대하였음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순이’ 티 없이 맑고 순수하고 천방지축이던 꼬마 아가씨.. 어쩌면 여섯살 순수했고 걱정없던 시대의 ’순이’ 였기에 가장 행복했던 여섯 살 시절을 소설에서 비추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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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를 읽으면서 책속에는 내가 자랐을때 우리동네 환경이나 주위에서 들었던 말투, 아이들과 밤 늦게 까지 했던 땅따 먹기 놀이, 사금파리 조각을 주워 소꼽놀이 했던 일, 쇠조각을 주어 엿 바꿔 먹었던 일, 미국 사람들을 보고 신기해서 쫒아 다니며 얻어 먹었던 달콤했던 초코릿 가루등이 생각나는 아주 낯익은 풍경의 이야기였다. 단지 내가 자랐을때 보다 더 오래전의 이야기였지만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진 조그만 마을에 살았던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책이였다.
내가 어렸을때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후의 아이들은 한번 정도는 실수하여 키를 머리에 쓰고 옆집에 소금을 얻으러 다녔던것 갔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은 나는 우리집으로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왔던 나의 또래 아이들을 많이 봤었다. 우리 주인공 6살 순이도 그런 또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자주 실수를 하여 성질이 모나고 폭행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많은 구박을 당했지만 순이 곁에는 늘 순이의 다정한 친구인 할머니가 있었다. 순이에겐 없어서는 안되는 할머니였지만 생계를 이끌어 가는 현시대의 생활에 발맞춰가는 어머니와는 생각이 달라 고부간의 심리적인 갈등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강원도 양양이라는 지역적 배경에 욕이라고 생각했던 말투의 사투리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강원도 양양의 시골 마을 순이네 집을 중심으로 3대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갈등속에서 한국전쟁 후 사회적인 모습, 가정에서 행하여지는 행사를 준비 하는 과정과 순이의 할머니를 통해 옛 사람들이 계절에 따라 어떤 준비를 하면서 어떻게 생활을 하였는지, 그 당시는 누구나 다 그랬지만 순이 역시 가난한 삶 속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무서워 하면서도 희망을 찾을려고 노력하였다.
특별히 커다란 사건은 없었지만 잔잔함 속에 우리들은 순이의 성장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아들이 아니기에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았던 순이는 그래도 어머니를 좋아했다. 원래 성격이 남자 아이 못지 않게 씩씩하고 친구를 생각하고 어른들을 존경할줄 아는 영특한 아이였기에 학교에 들어가서도 자신이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야단 맞는데 익숙했던 순이는 조금은 어색하지만 이제는 칭찬 받는 예쁜 시골 소녀 순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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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를 읽으면서 내내 참 따뜻하고 아련했습니다 어린 시절 순이와 비슷하게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요. 순이 처럼 할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이였습니다 나만의 방패요 나의 밥이요 나의 구원자 이셨지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어언 10여년이 흘렀는데.. 오늘 순이를 읽으면서 그 일들이 마치 어제의 일인양 떠올라 마음이 아롱아롱 거렸습니다 휴전 무렵의 강원도 양양의 호젓한 마을에 순이와 할머니,,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이 같이 삽니다 그시절 모두 그렇듯 먹을 것 부족하고 입을것 헐벗었지만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가는 순이는 자연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어머니의 그 속을 알수 없는 구박에도 순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바라고 ,,남존여비의 사상속에서 딸로 태어나 본인과 같이 여자로서의 고생속에 자랄 순이에게 아에 사랑이나 정 조차 떼어 버리려는듯한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도 되면서도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도 또한 한 자락입니다 [순이] 속의 말들이 너무 재미 있었습니다 강원도 사투리가 너무도 구수하고 재미 있어서 웃음이 저절로 납니다 얼마전 끝난 추노 라는 드라마에서 사냥꾼 출신 노비 공현진 씨가 구수하게 했던 강원도 사투리와 비슷하기도 하고요 순이 속의 친구들 분이 영이 옥자,,, 모두 지금은 그시대의 할머니 만큰 나이가 들어 당신들의 또다른 손녀딸 순이를 보고 웃음지은실 연세가 되셨겠지요 순이를 덮고나서 할머니의 냄세가 그리워 집니다 정말 오랫만에 맛본 따스한 소설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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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순이>의 배경은 여섯 살 소녀가 바라보는 세상만큼 재미나지 않다. 전쟁이 휩쓸고 간 이후, 사람들은 ‘빨갱이’로 낙인 찍힐까봐 두려워 인민군이 되거나 월북한 사람의 가족을 냉정하게 외면한다. 순이의 삼촌들도 각기 국군과 인민군으로 불려간 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그런가하면 순이가 사는 강원도 산골에도 성당이 생길 정도로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 아래 놓인다. 미국인인 신부님은 점차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하고 사람들은 구호물품을 얻기 위해 성당으로 모여든다. 신부님을 모시는 집의 딸인 영희는 일찍이 세례도 받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부님의 식사거리를 훔치거나 구멍가게에서 상습적으로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순이는 이런 현실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오로지 눈으로 귀로 코로 즐거움을 찾아내고 강아지처럼 마냥 뛰어 놀 뿐이다. 책에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강원도 사투리는 읽는 이로 하여금 한명의 ‘순이’가 되어 전후의 강원도를 마음으로 느끼게 한다. 순이는 불안할 때면 할머니의 무명치마를 손으로 꼭 붙들고 놓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손에 잡힌 책이 할머니의 무명치마인 듯 했다.
2010년은 1950년 6월 25일에 전쟁이 일어난지 60년 되는 해이다. 6.25전쟁을 다룬 다큐나 영화도 많이 제작되어 방영된다. 한국전쟁이라는 지난날의 사건을 되돌아 볼 때 끔찍했던 과거를 상기하면서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목적보다도 이 책에서는 ‘순이’에게서 볼 수 있는 순수함 그리고 이 ‘순이’들이 자라날 세상을 기대하게 하는 무언가를 소개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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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이 고향이라는 작가의 말에 문득 동질감과 경외심이 솟구쳐오르는 걸 느꼈다. 보통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비교적 얼마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을 배출한 고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도 그럴 것이 깊은 첩첩산골로 대표되는 그 고장은 역사를 유독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딱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본인도 고등학교 시절 단체로 소풍나갔을 때 '북쪽 여자아이들이 더 이쁘네 어쩌네' 속닥거리는 어른들을 많이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인터넷 시대가 활짝 열린 2000년도에. 휴전이라는 평화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원도는 피서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동네가 되버렸다. 그 고장 출신마저도 강원도 출신이라고 공공연히 드러내길 꺼리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휴전 특유의 긴장감때문에 오히려 더욱 강원도에 대해 알기를 꺼려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본인은 여자라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최전방에 나가본 군인이라면 내 말을 잘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고속도로를 따라 군사지역을 구분하는 철조망들이 쭈욱 늘어서 있고, 길거리는 휴가나온 군인들로 바글거린다. 제법 한적한 바다로 가다 운이 좋으면 포병대대의 사격훈련을 구경할 수도 있는 곳이다. 북한과의 전쟁은 우리나라의 상처이자, 일상이자, 우리나라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굳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잠수함 사건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강원도는 전쟁의 긴장감과 아픔을 그대로 품고 있는 고장이다. 아니, 그 자체가 일상이기에 아픔도 없다. '순이'에 나온 어른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듯이 밥먹고 살기 급급한 사람들에게 전쟁은 그저 생계의 전환일 뿐이다. 순이의 할머니에게 전쟁은 그저 각자 남한군과 북한군으로 나눠진 아들들의 죽음뿐이다. 이 소설은 6. 25 전쟁의 옳고 그름을 멋대로 재보지 않는다. 그저 양양사투리처럼 덤덤하고 묵묵히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국사교과서엔 설명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신화이다. 눈 앞에 생생히 어른거리는 50년대의 삶 속에서 우리나라가 전쟁국가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이 책의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할머니-어머니-순이 순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제사를 지낼 때 철이와 순이가 겪는 차별대우 장면은 우리나라 사대정신이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정신적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여실히 담아낸다.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까지 휘두르지만 사실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숨기려 할 뿐인 남성들. 그 욕설과 주먹과 발길질을 감당해내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내고 그 속에서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는 여성들.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한지 따지지 않는다. 누가 착하고 누가 불행한지 알 수 없다. 남성들은 이 책을 읽고서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을 것이다. 사대주의와 세대차이와 극단적으로 다른 의견 속에서 순이할머니와 순이어머니가 두 눈에 독기를 품고 싸우면서도 문득 서로를 보며 웃는 이유를 아마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으리라. 전세계의 사람들이 모르고, 남성들이 모르고, 심지어 우리나라 여성들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교감을 '순이'는 멋드러지게 표현했다. 땅을 깊이 파면 천국이 나온다는 영이의 말에서 유독 가슴이 아팠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가르쳐준 사회의 존재에 대해서 명확히 시사하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결국 교회에 갔을 때 본능적으로 할머니를 보고 싶어한 순이의 예감은 적중하리라. 그러나 자신이 익힌 문자를 통해 어린시절 그토록 믿고 경외했던 천국과 미국이 자신을 배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 속 그녀는 아직 6살 철모르는 소녀이기에. 이 책을 보는 여성들은 소설 속에 자신의 소녀시절을 두고 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설빔을 입은 순이의 모습을 담아낸 겉표지 의외에 어떤 일러스트도 실려있지 않다. 오직 문자에 의존한 채, 머릿속으로 강원도의 순박한 이미지를 끌어내야 하는, 그러나 가시처럼 군데군데 달려와 박히는 현실을 이해해야 하는, 어른들의 동화인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들춰보면서 아무리 갑갑하더라도 소설 속 순이는 행복하고 순수한 채로 두자. 우리는 순이와 달리 순수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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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님의 <순이> 를 읽어 보았다. 순이, 영희, 철이, 분이...우리네 이름들이다. 어릴적 교과서에서 익히 보는 이름들이다. 그 중에서도 순이는 어딘지 해방과 6.25시기를 거쳐서 어린시절을 보낸 대한민국만의 순이들로 자연스럽게 부합된다. 그래서 저자인 이경자님도 순이라는 제목을 붙였나 보다. 안타까운 일들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살짝 기억나게 하고 구수한 사투리와 할머니의 말투가 시종 우리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줄거리는 정말 순식간에 읽어나갈 정도로 단순하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사계절의 1318 청소년 문고로 나왔지만 오히려 30대 중반 이상의 성인들이 읽으면 어릴적 추억도 되살아나고 킬킬거리다 눈물짓다 그렇게 읽어나갈 것이다.
엄마는 어린 딸인 순이만 보면 그 아이의 애교도 싫고 밀쳐내기 바쁘다. 그런 순이의 상대는 매번 할머니가 된다. 할머니는 입냄새도 나고 욕도 많이 하시고 싫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순이를 가장 이뻐라 하는 분이다. 아버지는 술만 먹었다 하면 순이엄마를 삼일에 한번씩은 개패듯이 패고 살림을 망가뜨리는 위인이다. 그저 농사일이 싫고 자신이 더 배웠다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속에서 울화가 터지는 인물이다. 그걸 애꿎은 가족에게 화풀이를 한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묵묵히 농사를 짓고 자식을 키우고 손주들도 보았지만 이런 아들을 볼 수만은 없을 터이지만 그렇다고 아비를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못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뒤에서는 온갖 욕을 퍼붓지만 실상 할아버지가 쯧 소리만 내도 꼼짝을 못하고 쉬이 수그리는 양반이다. 며느리인 순이엄마에게서도 폭력을 휘두르는 아들땜에 위신이 살지 못하고 며느리가 독한 소리를 하면 눈물만 흘리며 또 욕을 하는 우리네 참고 어려운 일만 했던 할머니 그대로이다.
순이는 내년이면 학령기에 접어드는 아이이다. 할아버지는 중대 결심을 하시고 아들내외를 떠나 산으로 떠날 계획을 하신다. 할머니는 순이를 데려가고 싶어하시고 순이는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해 버린다. 얼마전에 방송에서 한 아빠가 이혼을 하고 세살밖에 안된 딸아이를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께 맡기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이를 이제는 데려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제 정이 있는대로 든 상태...매일 손녀만 보면 눈물이 난다. 이 녀석이 없으면 어찌 살꼬...그 할머니의 눈물이 순이 할머니의 눈물과 겹쳐진다.
친정어무이도 내 딸이 어렸을 때 키워주셨는데 아기때 한번 커피잔을 엎은 아이를 두고 더 이상은 못 키우겠다고 니 딸 얼굴에 화상 입을 뻔 했다고 하셔서 그 얼마후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아이 둘의 엄마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우리 어무이도 아마 더 정이 들면 나중에 떼기 힘들 까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때는 엄마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백번 이해가 간다. 엄마가 딸을 키워야지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키우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사회가 그걸 도와주지 못한다. 암튼 순이는 빨갱이가 있고 군인이 있는 그 시대 어린 아이들과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인 이경자님이 1948년생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것이다. 순이는 지금 우리 할머니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손주인 우리 딸들이나 아들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이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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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후, 강원도 양양에서 6살 순이의 삶이 한 편의 흑백 영화처럼 잔잔하게 그려졌다. 과잉 감정도 절제도 허락하지 않은 채, 담담히. 책을 읽기 전에는 가난이 혹은 여자라는 부당함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굴곡진 여인네의 삶에 포커스를 맞췄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순이는 6살에서 초등 입학하는 시점에서 끝나고 있다. 넓대대한 얼굴에 쪽 찢어진 눈이 예쁘진 않지만 귀염성 있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표지의 순이는 그러나 저렇게 깔끔한 모습은 아니다. 늘 땟국이 흐르고 옷에는 흙을 묻히고 무릎은 헤진 바지 차림을 주로 했다. 먹는 것을 보면 눈을 희번덕거리고 것이 순이의 본 모습이다. 이 책에서는 지리적 배경인 강원도 사투리가 많이 나와 말의 재미를 전한다. 문학작품에서 점점 사투리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아 아쉬웠으나 순이에서는 대부분이 사투리인 대화에 적응하기가 오히려 힘들 지경이었다.^^ 순이는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았단 이유로 구박을 받는다. 꼭 주워온 자식 마냥. 그랬던 순이 엄마가 이해되는 대목이 나온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엄마들이 내가 죽도록 싫은 점을 자식이 닮으면 미워하거나 부딪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닐 미워하는 줄 아너? 난 니가 안 미워! 니가 괄시받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거여. 어머니는 순이 얼굴을 씻기며 속으로 말했다. 사람이 욕먹었다고 못 크는 건 아니여. 어머이두 외할머니한테 매두 맞고 욕두 먹구 그랬어. 싫어서 욕하구 때리는 건 아니여. 어머니는 속으로 말하면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고 미리 만들어 둔 새 바지로 갈아입히고 헝겊 자투리로 만든 가방도 주었다.’ (131쪽) <순이>에서는 큰 사건이 없이 전개된다. 그러면서 작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게 많았던 듯하다. 고부갈등, 이데올로기, 가정 내 폭력 등을 비롯하여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을 넘어 미국이 천당으로까지 미화되고 있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이 이 부분 정확히 알고 읽어야 될 것이다. 순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문자를 익힌 후, 어린 시절 그토록 믿고 경외했던 천국과 미국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배신감을 느끼게 됨을 마지막에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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