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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부각이 되는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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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하던 로마제국이 본토인 이탈리아의 향락주의로 인한 낭비와 이민족의 국경선 침입으로 인하여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격다가 혼란을 잠재운 황제가 나오고 그가 거대한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서 황제를 2명을 세우고 그 밑에 부제를 한명씩 세워서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게 만들었던 일이 동로마 일명 비잔틴제국의 시초라고 할수가 있는데 4명의 황제가 전투를 통하여서 한명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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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하던 로마제국이 본토인 이탈리아의 향락주의로 인한 낭비와 이민족의 국경선 침입으로 인하여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격다가 혼란을 잠재운 황제가 나오고 그가 거대한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서 황제를 2명을 세우고 그 밑에 부제를 한명씩 세워서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게 만들었던 일이 동로마 일명 비잔틴제국의 시초라고 할수가 있는데 4명의 황제가 전투를 통하여서 한명의 황제로 통합이 되고 그 통합을 이룩한 황제가 동로마의 시조인 콘스탄티누스이다.


그는 쇠락을 하고있던 수도 로마를 버리고 이민족의 침략이 상대적으로 적은 아시아쪽을 중시를 하여서 수도를 옮기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게 된다.

후손의 시대로 오면서 다시 로마는 분열이 되고 서로마는 잦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멸망을 하고 아시아쪽에 기반을 두고 있는 동로마만이 로마라는 이름을 승계한다.


기독교와 비잔틴의 관계 : 시조가 기독교의 도움으로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고 나라를 통일을 이룩하였다고 전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다르다.

그당시에는 기독교의 세력이 약하였고 전투의 상대방도 기독교에 호의를 보이는 황제였고 콘스탄티누스의 군대가 실전 경험이 많은 백전노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승리를 이룩 하였고 기독교의 공인은 그 교리가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에게 유리한 교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야망에 불타던 황제가 국민들을 편안히 다스리기 위한 도구로 이용을 하였다고 본다.


세계적인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은 그 당시에는 일반 도시와 동일한 격을 가지고 있는 초기였는데 훈족의 침입을 방어 하기 위하여서 거대한 2중 성벽을 건설을 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 70페이지


도시를 보호하는 대성벽이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는 방어벽으로 오랜 시간을 사용이 되었지만 실제로 도시를 보호하는 방어벽은 그곳에 사는 시민들의 애향심과 용기가 주가 되었을것으로 생각이 된다.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었도 그러한 시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쓸모가 없으면 시설도 망가지는 것처럼 비잔틴 제국도 1000년의 세월을 유지를 하였지만 그들 나름의 굴곡이 많은 시기를 보내었다.


동,서로 나누어 지는 시기에는 누가 보아도 동쪽이 인구도 많고 기술수준도 높은 나라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부의 국가들이 흥성을 하고 그러한 세력과의 전투를 패하면서 나라는 갈수록 작아진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도 변하여 갔는데 처음에는 농민들이 주가 되는 보병에서 기병으로 다시 용병으로 변하여 간다.

그러한 이유로는 처음에는 적도 보병이 많고 상대적으로 훈련이 잘되어 있어서 적의 기마병도 보병이 상대를 하였지만 많은수의 군인들은 나라의 재력을 빨리 소모를 하므로 적은 수의 기병으로 변하고 기병으로 충원을 하던 농민들이 적어지자 나중에는 돈을 주고 이민족 용병으로 군대를 구성하게된다. 용병 들이린 돈을 바라고 전투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국민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중추를 보호하는 외곽부대로는 쓸모가 있지만 주력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정치 : 신정일치의 정치 제도 하에서는 종교와 관련이 되는 문제도 많이 발생을 하는데 황제들이 종교문제로 내분을 일으키어서 국력을 소모하는 경우도 나왔다.

경제 : 초,중기에는 모직물과 발달이 된 기술로 많은 무역의 흑자를 이루었지만 잦은 전쟁으로 경제가 망가지고 나중에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게 경제력을 빼았기어서 나라에 돈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비잔틴제국에 대하여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비잔티움 연대기를 한번 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0.11.16.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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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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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져 전해오기 시작한 이래 동서를 막론하고 꿈꿔오던 영원한 제국은 있었을까? 천년왕국을 꿈꾸지만 달이 차면 기울듯.. 어느덧 왕조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세력에게 찬란한 역사의 주인공을 넘겨주는 것이 인간이 창조하는 왕국의 역사이겠지만 여기 동과서의 교류가 이어지는 접점...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수도로 하는 비잔틴(동로마)제국은 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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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져 전해오기 시작한 이래 동서를 막론하고 꿈꿔오던 영원한 제국은 있었을까? 천년왕국을 꿈꾸지만 달이 차면 기울듯.. 어느덧 왕조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세력에게 찬란한 역사의 주인공을 넘겨주는 것이 인간이 창조하는 왕국의 역사이겠지만 여기 동과서의 교류가 이어지는 접점...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수도로 하는 비잔틴(동로마)제국은 천년을 넘게 그 수명을 이어왔다.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오랜 세월 왕조를 이어온 그 속내는 어땠을까? 100년을 넘기면 장수왕조로 꼽는 고대와 중세시대에서..그것도 동과서의 교착지점으로 북쪽의 게르만민족 등 야만족과 동쪽의 사산조 페르시아, 떠오르는 이슬람교도들로 이뤄진 사라센(결국 오스만투르크에 멸망당했지만)과의 끊임없는 무력충돌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 명맥을 이어 온 것은 어느 하나의 요소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기에 무한한 매력을 느끼는 아주 독특한 국가였음에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은 존 J노리치가 저술한 <종횡무진 동로마사>를 읽었었던 기억이 있는지라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종횡무진 동로마사>와 나름대로 비교해 가면서 책을 읽는 즐거움이 큰 매력을 안겨주기도 했었다.


물론 텍스트의 분량면에서 뿐만아니라 이성적으로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연대기식으로 서술, 풀어낸 <종횡무진 동로마사>도 큰 즐거움을 주었지만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또한 저자의 개인적인 시각이 읽는 독자들에게 자연스레 수용케 하면서 비잔틴의 역사를 저자와 같은 시각에서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느끼겠지만 비잔틴제국의 역사는 한마디로 드라마틱한 측면에서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이다. 천년을 이어오면 흔히 황제 계승등이 타 왕조에 비해 안정적이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수많은 황제들이 궁실암투 또는 반란 등으로 그 수명을 다하지 못했던 사례가 많았으며 '그리스의 불'이라 일컫는 신병기의 발명으로 이슬람의 침공에 따른 국가멸망의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극적으로 되살아 난 적도 많았었다. 또한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고 이를 국교화하면서 국가이념으로 승화시켜 점차 국론통일에 이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요소가 천년왕국의 존속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종교와 신무기의 힘만으로는 천년왕국을 이어가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바로 유연성!!


로마제국의 위기앞에서는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였으며 고대민주정치로 인한 국민들의 소요에는 전제정치로의 전환을 통해 강력한 왕권강화로 돌파하였으며 지방귀족들의 반발에 직면해서는 지배체제의 과감한 수정을 통해 극복해 냈다. 이러한 새로운 체제를 긴요한 순간에 시의적절하게 수용하므로서 도전과 응전을 통해 위기를 과감하게 돌파해 냈던 것이다. 한마디로 위기관리의 달인이었던 왕국이 비잔틴제국이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은 상당히 가독성이 우수한 책이다. 비록 본인이 역사를 무척 좋아하기때문이라도 이 책은 어느 하나 지루함을 느낄수 없이 250여페이지를 통해 비잔틴 천년을 풀어내고 독자에게 콘스탄티노플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변화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유연성으로 오랜 세월 살아남아왔던 비잔틴제국... 역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면 그들의 역사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바라보는 점은 아주 유용한 시간이 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r 2010.07.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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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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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는 나에게 정말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다. 역사에 대해 아는것을 좋아하는 나이고 그래서 우리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 역사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외 나라들의 역사는 아는게 거의 없다. 특히 유럽쪽은 더욱더 그러하다.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세계사 이후 접해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고대, 중세를 거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문명들이 발달해왔고,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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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는 나에게 정말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다. 역사에 대해 아는것을 좋아하는 나이고 그래서 우리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 역사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외 나라들의 역사는 아는게 거의 없다. 특히 유럽쪽은 더욱더 그러하다.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세계사 이후 접해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고대, 중세를 거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문명들이 발달해왔고, 그러한 것들은 지금의 유럽문화를 지탱해주는 뿌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 중심에 있었던 로마제국 그리고 로마제국 이후 그 자리를 차지했던 비잔틴제국. 그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1453년 5월 29일 새벽. 비잔틴의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에 오스만 제국의 깃발이 펄럭이면서 비잔틴은 무너지고 말았다. 395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로마가 동서로 갈라진 이후 동쪽은 비잔틴이라는 제국으로 1000년 이상 흥망성쇠를 겪어오다 결국 붕괴되고 만것이다. 비록 무너지고 말았지만 어떻게 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거 같았다. 천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신라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비잔틴과 신라를 일반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거 같다.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외세의 침입이 없었지만, 비잔틴의 경우 위치가 위치인지라 조용할 날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문명을 유지해온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책을 천천히 읽어가다보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일단 내가 아는게 없다보니 모든게 처음 알게 되는 이야기이고 그러다보니 더욱더 그러하다. 물론 이 책이 비잔틴의 천년 역사를 모두 담아내고 있지는 못하는거 같다. 책 한 권에 모든걸 담아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을테니 말이다. 저자는 비잔틴 제국 역사학의 권위자라고 하는데 한 권에 책을 통해 많은것을 이야기하려 노력한거 같다. 다만 과거의 역사라는 것이 100%의 사료는 존재할 수 없는것이고 그러다보니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도 반영되어 있는듯 보였다. 역사를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가는데 당연하기도 하지만, 비잔틴에 대해 아는게 전무한 내 입장에서는 저자의 생각대로 비잔틴을 알게 될 것이고, 어쩌면 편견에 빠질수도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다른책을 통해서 비잔틴 제국에 대해 접해봄으로써 이 책과 비교도 해보고 나의 지식도 넓혀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보면서 오랜만에 세계사 공부를 한거 같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책을 보다보니 예전에 배웠던 내용들이 조금씩 떠오르기도 한다. 비잔틴을 유지해올수 있었던 궁극적인 것은 그들의 이념이었다.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념이 흔들린다면 결국 그 나라는 분열되고 마는것이다. 이것은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게 아닌거 같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고, 그 역사를 통해 후대의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해야한다. 그들이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며 제국을 만들어갔던 그 시대의 모습을 보면서 멋지다, 대단하다, 아름답다 이런 말만을 할것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했던 왜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게 중요한게 아닌가 싶다. 머릿속에 비잔틴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채울수 있어서 좋았던거 같다. 그들의 중심지였던 터키의 이스탄불에 가서 그들의 찬란했던 모습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n****5 2010.07.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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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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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100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별로 없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 지역이자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했던 비잔틴제국은 다른 여러 민족, 국가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1000년 이상의 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과연 격동의 역사속에서 비잔틴제국이 그토록 오랫동안이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때문일까?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이 더욱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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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100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별로 없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 지역이자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했던 비잔틴제국은 다른 여러 민족, 국가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1000년 이상의 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과연 격동의 역사속에서 비잔틴제국이 그토록 오랫동안이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때문일까?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이 더욱 궁금했던 이유는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시작된 내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비잔틴의 황제와 귀족, 농민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구성원들에 대한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이 책을 더욱 궁금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시대는 로마제국에서 비잔틴제국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으로 볼 수 있는데 로마로부터 비잔틴으로서의 전환은 고대에서 중세로의 대전환이 되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잔틴제국의 성립은 그만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은 새로운 로마로 불린 콘스탄티노플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새로운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전환의 상징물로서 그 의미가 더욱 깊었고 화려한 궁전과 교회 등 장엄한 제국의 도시로서도 부족함이 전혀 없었지만 무엇보다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서 국제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로마의 전통을 계승한 비잔틴제국은 로마법을 조상법으로 여기며 국가의 기본법으로 삼아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했고 고대 로마 황제의 이념을 유지하면서 변함없는 권위를 인정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의 변화에 적응해가는 유연성도 지녔기 때문에 유구한 세월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동안 다른 역사서를 통해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보존하며 이를 유럽으로 전파하는 역할로서의 비잔틴제국을 알 수 있었지만 솔직히 그리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비잔틴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비잔틴제국의 흥망사를 다양한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접근함으로써 더욱 현실감있게 다루는 책이다. 때문에 역사에 가려진 비잔틴 사람들의 삶의 이면을 알 수 있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많은 혼란과 혁명, 주변 여러 민족과의 싸움을 거쳐 영광스러운 시대를 이룩해 낸 비잔틴제국은 결국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멸망하고 만다.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를 시작으로 콘스탄티누스 11세까지 1000년 이상 이어졌던 거대한 성벽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 책이 여는 로마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고대 로마제국의 단순한 쇠망사에 대한 역사서가 아니란 점을 들 수 있겠다.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관습에만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해 과감히 도전하며 변화할 수 있었던 비잔틴의 사람들과 문화는 1000년의 역사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이라 생각된다.

y******5 2010.07.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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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천년의 역사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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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모습을 바꿨다.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의 흥망사!     "우리는 보통 로마제국의 멸망이나 로마 문명의 멸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4-5세기의 '게르만족의 침입'이나 '로마제국의 동서 분열',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사건을 떠올리지 1,000년 후인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언제 멸망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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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모습을 바꿨다.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의 흥망사!

 

 

"우리는 보통 로마제국의 멸망이나 로마 문명의 멸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4-5세기의 '게르만족의 침입'이나 '로마제국의 동서 분열',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사건을 떠올리지 1,000년 후인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언제 멸망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엄밀한 대답은 1453년 5월 29일이다"(14).

 

'비잔틴제국'이라는 말은 후대에 역사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비잔틴 제국은 동서로 분열된 로마 제국 중 동로마제국을 가리킨다. 비잔틴제국은, 고대 로마 제국이 게르만민족의 대이동으로 서방의 판도를 잃었을 때, 콘스탄티누스 1세가 그리스 식민지인 비잔티온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한 제2의 로마 수도를 세운 뒤, 이곳을 중심으로 1,000년에 걸쳐 존속한 제국이다. 초대 황제인 아우쿠스투스 이후 로마 황제의 칭호는 끊임없이 계승되었고, 비잔틴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까지 이어졌다. 그의 죽음으로 로마 황제의 계승자는 그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의 저자 이노우에 고이치는 고대 로마의 멸망은 사실상 비잔틴제국이 멸당한 1453년임을 환기시킨다. 이 책의 제목처럼 비잔틴제국은 '살아남은 로마'인 것이다.

 

 

"비잔틴제국의 역사는 단순히 고대 로마제국 이후의 쇠퇴 과정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비잔틴제국의 1,000년의 역사를 독자적인 문명을 가진 새로운 국가의 생성, 발전, 쇠망의 역사로서 고찰하려고 한다"(15).

 

이 책은 비잔틴제국이 '살아남은 로마'로서 고대 로마의 명백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비잔틴제국은 로마제국과 구별되는 전혀 다른 나라이었음을 논증한다. 고대 로마제국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 것이 바로 '비잔틴제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로마제국의 쇠망사 안에 포함된 비잔틴제국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과 구별되는 비잔틴제국의 1,000년의 역사를 살폈다.  

 

 

"세계의 역사에서 1,00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별로 없다. 비잔틴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 지역으로 많은 민족이 오고가는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와 경쟁하면서도 비잔틴 제국은 1,00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역사의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19).

 

저자가 비잔틴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1,000년에 걸친 존속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데 있다. 저자는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주위 여러 국가가 흥망을 거듭하는 사이에 비잔틴 제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비잔틴제국 1,000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비잔틴제국의 흥망사를 살피고 있는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의 논점을 정리하자면, 비잔틴제국이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그리스도교와 결합한 로마라는 이념이다. 로마라는 이념과 그리스도교가 융합하며 정신적인 면에서 1,000년의 역사를 지탱해왔다는 것이다. "'로마'라는 의식은 비잔틴제국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였던 '로마'의 의식만으로는 제국 존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족의 멸망 위기 속에서 일어난 유대교, 그것을 계승한 그리스도교가 '로마' 의식과 결부되면서 수도를 상실한 비잔틴제국의 존손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216-217). 저자는 '로마'라는 의식을 가지면서, 특별히 정책적인 면과 법률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확실히 드러나는 비잔틴제국의 '유연성'에 주목한다.

 

둘째는 실용주의라 부를 수 있는 '열린 사회'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일개 농민에서 제국의 최고 지위까지 올라간 예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나 있었다. 비잔틴제국은 혈통이나 집안의 배경과 관계없이 실력과 운이 있으면 황제가 될 수 있는 열린 사회였다. 이것 역시 비잔틴제국이 지닌 활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78). 저자는 비잔틴제국이 열린 사회였다는 점에 주목하며, 특별히 여성의 지위에 관심을 갖는다.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하여 비잔틴제국의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입증한다.

 

셋째는 '새로운 로마'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이다. "콘스탄티노플의 사람들은 영원한 도시였던 로마의 함락을 보면서 자신들의 도시야말로 '새로운 로마'이며 로마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74). 이로써 '로마'라는 이름과 이념을 계승하면서도, 로마제국의 유산을 버리고 새로운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높은 교육 수준과 지식인의 역할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비잔틴제국의 생성과 발전과 쇠망이라는 흥망사를 읽으며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독자마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체제를 받아들인 경우에도 표면적으로는 제국의 전통과 이념을 존중했다. 비잔틴 제국이 1,000년 동안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것처럼 그들은 어디까지 이념대로 갈 수 있을까, 어디쯤에서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할까, 이념을 그대로 두고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각 시기마다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 위기에 대응하고 변해가는 것, 다시 말해 혁신이야말로 제국 존손을 위한 참된 조건이었던 것이다"(246).

 

이 책의 저자는 비잔틴제국이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혁신'이라고 정리한다. 로마제국이 비잔틴제국으로 변화한 이유는 심각한 위기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하고 변화해왔다는 것이다. '로마'라는 정통적인 이데올리기를 유지하면서도, 위기에 대응하는 그들의 '유연성'이 비잔틴제국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보수성과 유연성, 비잔틴 제국 1,000년의 역사는 표면적인 이념인 '로마'를 지키면서 계속해서 밀려오는 안팎의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살아남은 역사였다"(22).

 

 

이 책은 '비잔틴제국'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애정이 진하게 뭍어난다. 상당히 '감성적인 역사책'이라는 느낌은 아마도 저자의 그러한 애정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서적이면서도 어딘지 허술해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러한 애정에 입각한 저자의 추측성 해석이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민족이 오고가는 '문명의 십자로'에 위치한 비잔틴제국의 혁신과 유연성이 '1,000년의 역사'라는 기적을 낳았다고 하지만, 역으로 생각할 때 그들의 지정학적인 요구가 벌써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비잔틴제국은 지리적으로 그러한 특수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이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이미 안정, 보수화, 폐쇄 상황을 고집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문별이 교차되는 항구 도시는 항구 도시로서의 공동적인 특수성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멸망하고 마는 것은 어느 문명,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럽 중심적인 사관에서 볼 때, 비잔틴제국은 "아랍과 투르크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방파제였으며,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보존하고 유럽으로 전해 르네상스에 공헌하고, 그리스 정교와 문자를 동구의 슬라브계 여러 민족에게 전파해 그들이 문명을 건설하는 데 기초를 만들어주었다"(241)는 데 의미를 둔다. <살아남은 역사, 비잔틴제국>은 이러한 서구 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나름의 독자적인 비잔틴역사에 대한 견해를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집필되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비잔틴제국의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서구 중심의 사관을 벗어난 독자적인 역사적 견해라고 하기에는 결론적으로 차별화된 논지를 세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비잔틴제국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비잔틴제국'의 자리를 찾아주려 애쓴 저자의 애정에 이 책의 의의를 두려 한다.



c***1 2010.07.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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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1000년의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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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중에서도 지중해를 둘러싼 5000년의 역사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역사라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비잔틴 제국의 1000년동안의 흥망성쇠는 세계사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특히 작가가 비잔틴 제국 전문가라고 하여 얼른 찜하게 된 아이이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몇장 읽어보니 내용이 허술한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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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중에서도 지중해를 둘러싼 5000년의 역사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역사라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비잔틴 제국의 1000년동안의 흥망성쇠는 세계사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특히 작가가 비잔틴 제국 전문가라고 하여 얼른 찜하게 된 아이이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몇장 읽어보니 내용이 허술한 면이 눈이 쏙쏙 들어온다. 특히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 지중해 역사서를 여러권 읽어본 나로서는 보통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내용이 부실하다. 아무리 1000년의 역사를 책 한권에 담는다는 것이 무리라고는 하나, 너무 요약 축소해서 설명해 놓은 부분이 많을 뿐더러 단편적 에피소드로 모든 걸 설명하려는, 역사 전달자로서는 피해야 할 부분이 많이 드러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역사서에는 개인의 감정을 최대한 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 책에는 개인적인 사견도 많이 보이고 심지어 본인의 상상력으로 역사를 재현하는 그런 장면도 담겨있다. 보통 역사학자는 이런 책을 집필할 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하고 끝맺음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다고들 하는데, 이건 뭐..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수시로 드러나서 독서를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l********d 2010.07.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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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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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Roman Empire)’은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한다. 무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이 제국은 지중해는 물론 서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많은 유,무형의 흔적을 남겼다. 이탈리아 반도와 지중해 연안의 매우 넓은 지역을 장악한 로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상적인 국가로 묘사 된다.  '로마'하면 아마 많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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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제국(Roman Empire)’은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한다. 무려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이 제국은 지중해는 물론 서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많은 유,무형의 흔적을 남겼다. 이탈리아 반도와 지중해 연안의 매우 넓은 지역을 장악한 로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상적인 국가로 묘사 된다.

 '로마'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BC 8세기 경 부터 AD 395년 까지 존재했던 로마 제국을 떠올릴 것이다. 제국이 분열된 뒤 형성된 동,서로마 제국에는 대부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로마 제국 분열 후 서로마 제국(Western Roman Empire)’은 매우 짧은 수명을 유지 했을 뿐이고, 로마 제국의 명맥을 잇는 동로마 제국(Eastern Roman Empire)’은 문화와 지역의 차이로 인해 서구 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무엇보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서구 사회의 관심은 온통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유럽의 봉건사회에 쏠려 있었고, 더불어 전 유럽으로 확대 되는 로마카톨릭(Roman Catholic Church)’의 영향력으로 인해 서구 사회의 역사는 특히 서유럽에만 집중 되었다. 그로 인해 서구 사회는 다른 ()로마 제국에까지 관심을 쏟을 여력도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에까지 이어져 로마에 대한 제한된 인식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TV나 영화 등에서 대부분 로마 제국만을 그리고 있으니 그러한 인식은 더욱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

 

 동로마 제국은 대개 비잔티움 제국(Byzantium Empire)’ 또는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 이하 비잔틴 제국)’으로 불리며 이전에 존재한 로마 제국과는 다른 국가로 인식 되도록 학자들에 의해 분류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제국이 그리스어로 로마 제국을 의미하는 바실레이아 톤 로마니온(Basileia tōn Rōmaiōn)’ 혹은 임페리움 로마노룸(Imperium Romanorum)’이라고 불린(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명백히 분열 전 로마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팍스 로마나로 대표되는 로마 제국, 그 명맥을 잇는 비잔틴 제국은 비록 오늘날에는 별개의 명칭으로 불리곤 하지만 분명 로마 제국의 문화와 정신을 계승하는 로마이다.

 비잔틴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1(Constantinus I)’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수도를 옮긴 후 그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 후 테오도시우스 1(Theodosius I)’가 사망하고 제국이 동·서로 분열 되자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에 의해 1백년도 안 되어 무너졌지만 비잔틴 제국은 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이겨냈다.

 이 제국은 로마의 정치와 이념, 그리고 종교를 그대로 계승한다. 문화는 그리스권에 위치하여 그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두 문화와 세력의 완충 역할을 하였다. 비록 로마를 계승하고 있지만 제국의 문화는 그리스의 그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과는 다른 문화적 발전 양상을 보인다

 

 이상 약술한 비잔틴 제국에 관한 자료는 국내에 그리 많지 않다. 그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비잔틴 제국에 관한 (대중적인) 대표 자료는 아마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로마제국 쇠망사(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존 줄리어스 노리치(John Julius Norwich)’비잔티움 연대기(Byzantium)’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George Alexandrovič Ostrogorsky)’비잔티움 제국사(Byzantinische Geschichte 324-1453)’ 등을 들 수 있다. 기번의 책이 비잔틴 제국사를 정체와 후퇴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면 노리치의 책은 하나의 제국으로서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기번의 책으로 인해 비잔틴 제국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인식이 형성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은 그와는 다른 관점에서 그 역사를 살펴본다. 즉 제국의 천년사를 쇠망의 역사가 아니라 변화와 혁신의 역사, 독자적인 문명을 가진 새로운 국가로써 조망한다. 즉 이 책은 비잔틴 제국을 흥망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비잔틴 제국의 역사를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의 국가로써 기술한다. 로마 제국 못지않은 찬란한 문화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 역사를 생생히 그려낸다. 로마 제국과의 연결 고리를 설명하고, 이후 어떻게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 했는지 설명한다. 문명의 꽃을 어떻게 피웠고 간직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쇠퇴해 가는지 역사의 현장을 그린다. 주요 인물(특히 황제)과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 되는 비잔틴 제국의 역사는 참으로 아름답고, 장엄하게 느껴진다. 로마 제국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비잔틴 제국에 대한 관심은 특히 적은 우리나라에서 제국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간략히 조망하고자 할 때 참으로 유용 할 책이다. 이 책으로 개관을 잡고, 기번과 노리치의 책을 통해 좀 더 세세히 살펴보면 비잔틴 제국의 역사 전체를 그리는데 큰 부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f********3 2010.07.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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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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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을 읽고 역사에 관련된 책은 우선 흥미가 있다. 지나온 과정이기 때문에 흥망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서 미래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역사에 있어서 우리가 서양의 역사와 동양의 역사로 대별한다면 서양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근대, 현대의 과정을 통하여 일찍 근대화한 덕분에 세계를 석권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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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을 읽고

역사에 관련된 책은 우선 흥미가 있다. 지나온 과정이기 때문에 흥망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서 미래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역사에 있어서 우리가 서양의 역사와 동양의 역사로 대별한다면 서양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근대, 현대의 과정을 통하여 일찍 근대화한 덕분에 세계를 석권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고대 중국의 황허강과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에서 시작한 동양은 불교, 유교 등의 종교 사상과 함께 다양한 국가의 역사가 전개 되었으나 역시 전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여 서양의 지배를 받게 되었거나 정체성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서양 고대 로마제국의 변천사를 통해서 오늘 날의 서양 역사의 기본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강력했던 로마도 동•서 로마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이 중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멸망하게 되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동로마는 계속 살아남아 무려 천년 역사를 이어가게 되는데 그 국가가 바로 동로마제국 또는 수도가 비잔티움(오늘 날 지명 이스탄불)이었기 때문에 국가명도 ‘비잔틴제국’이라 불리운다.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지대로서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가는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었던 비잔틴제국. 주위 여러 국가가 흥망을 거듭하는 1,000여 년의 기간 동안 비잔틴제국이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어 나가며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변화와 실패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맹성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위대한 로마’라는 이념을 이어 받은 것을 지켜내기 위한 단단한 각오였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념과 자세를 황제를 비롯하여 관료와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같이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을 오늘 날의 어떤 국가에서도 그대로 통할 수 있는 모습인 것이다. 한 나라의 흥과 발전의 원동력은 역시 정치가와 국민들 간의 혼연일체의 한 마음이 가장 큰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로마 시대의 모습과는 엄연히 다른 그리스인, 그리스어, 그리스정교 등등도 존재하지만 그래도 로마인•로마제국이라는 이념이 우선적으로 적용되면서 살아남은 로마의 모습을 재현시키면서도 무려 1,000 여 년의 로마 역사를 지켜낼 수 있게 한 것이다. 비잔틴 역사를 저자와 같이 전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저술한 것에서도 대단히 흥미롭다. 역시 관심과 함께 연구를 하는 집념과 끈기를 갖는다면 얼마든지 도전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즉 비잔티움 현재의 터키의 이스탄불 도시에 꼭 가서, 1,000 여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줄 것 같은 현장에서 비잔틴제국의 모든 것을 현실감 있게 느끼고 싶은 것이다. 좋은 독서 시간이었다.

m***3 2010.07.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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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 이노우에 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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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이 연구하는 비잔틴사? 그간 한국에서 저술된 비잔틴사 관련 논문을 열 편 가량 읽어봤는데, 확실히 국내에서의 비잔틴사 연구는 외국에 비해서 미진한 감이 있더군요. 한국교육학술정보원(RISS)에 '비잔틴'을 검색했을 때 학위논문이 168건, 국내 학술지논문이 152건에 불과한 실정이니까요. 같은 사이트에서 '로마'로 검색했을 때 학위논문이 3,070건, 국내 학술지논문 3,016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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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이 연구하는 비잔틴사?

 

그간 한국에서 저술된 비잔틴사 관련 논문을 열 편 가량 읽어봤는데, 확실히 국내에서의 비잔틴사 연구는 외국에 비해서 미진한 감이 있더군요. 한국교육학술정보원(RISS)에 '비잔틴'을 검색했을 때 학위논문이 168건, 국내 학술지논문이 152건에 불과한 실정이니까요. 같은 사이트에서 '로마'로 검색했을 때 학위논문이 3,070건, 국내 학술지논문 3,016건에 달한다는 것에 비교하면 그 차이가 거의 20배에 달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특히 동양의 다른 나라에서 비잔틴사는 얼마나 인지도가 있을까? 하다가 찾아낸 책이 이 책입니다. 일본인이 저술한 비잔틴사 관련 교양도서 중 국내에 번역된 것으로는 일단은 유일한 것이 바로 이 책,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이더군요. 저자는 누차 강조합니다. 

 

 

왜 동양인이 비잔틴제국에 대해 연구하는가, 너희들과는 관계없는 세계가 아닌가? 워싱턴에서 연구 생활을 할 때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본문 251페이지) 

 

우리는 왜 비잔틴제국에 대해 알아야 할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먼 옛날의 일을 전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본문 253페이지)

그러게요. 동양인이 왜 비잔틴사를 연구할까요? 사실 비잔틴제국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나라입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비잔틴제국이 등장하는 대목이 딱 한번 있기는 한데, 바로 신라 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비잔틴 유리세공품인 '로만 글라스'입니다. 신라가 세계와 교역을 했다는 증거로 자주 제시되고는 하지요. 그러나 그 이후로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별로 시험에서 중요한 비중으로 출제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비잔틴제국을 알아야 할까요? 본문은 일단은 답을 제시합니다.

 

 

그렇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하나이다. 비잔틴제국 그리고 그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현대의 우리들과 많이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 이라고. (본문 253페이지)

확실히 우리와 그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21세기에 신분제가 폐지된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고, 비잔틴제국의 사람들은 4세기에서 15세기의 신분제가 엄정한 전제군주정 국가에 살았지요. 그러니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면 수많은 다른 점들을 찾아낼 수 있고, 그 다른 점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도, 비판할 점도 있을 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양인이라도 비잔틴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당성, 일종의 당위에 불과합니다. 그런 논리라면 스스로의 필요성을 역설하지 않는 학문도, 역사도 존재하지 않죠. 그렇게 치면 비잔틴제국을 공부하는 것이 부르고뉴공국을 공부하거나 말리왕국을 공부하는 것에 비해 더 중요하다는 명분론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저자 본인도, 그리고 비잔틴사를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들이 비잔틴제국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던, 그리고 그 노력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의 우리들과 많이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에' 비잔틴사를 공부해야 하는 당위로 인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것에든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흥미롭기' 때문이죠. 비잔틴사는 이러한 당위를 제쳐두고서라도 사람의 흥미를 자극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모와 정략의, 로마를 계승했지만 그리스적인 성질을 띤 화려한 천년제국이라는 점이 대표적인 매력이지요. 그 외에도 비잔틴제국이 사람을 매료시키는 점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수없이 많습니다만, 여튼 제가 비잔틴사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연구자들도, 심지어 저자조차도 대외적인 명분이 아니라 본인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비잔틴제국사가 재미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공부를 해야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싶기 때문에'라는 것이죠. 그래서 전 비잔틴 제국에 관련된 교양서를 어느정도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읽습니다. 비전문가에게 얼마나 비잔틴제국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가? 라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꽤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교과서가 아닌 입문서

 

요즘에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몇 년 전만 해도 세계사 시간에는 비잔틴제국의 의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인 듯(사실 세계사에 대한 관점을 상당부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자도 이에 대해 기술해 놓았더군요.

 

 

1. 이슬람(아랍과 투르크)으로부터 유럽을 지키는 방파제였다.

2.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보존하고 유럽으로 전해 르네상스에 공헌을 하였다.

3. 그리스 정교와 문자와 동구의 슬라브계 여러 민족에게 전파해 그들이 문명을 건설하는데 기초를 만들어 주었다.(본문 241페이지)

언뜻보면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도 곧바로 이에 대해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는 유럽인ㆍ유럽 문명의 눈으로 볼 때 비잔틴제국이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유럽 중심적인 사관에 따른 견해라고 불러야 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잔틴 사람들은 유럽을 지키기 위해 아랍과 투르크 사람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인 것이 아니며, 유럽으로 전하기 위해 그리스나 로마의 고전을 남긴 것도 아니다.(본문 242페이지)

 

뭘 이런 걸 가지고 괜히 그러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어를 조금만 바꿔놓으면 우리나라의 역사의 의의라고 해놓고 '일본이 아시아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이며 일본이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고 교과서에 서술한 것과 같은 격입니다. 역사를 배우거나 서술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태도 중 하나이지요. 사실 이 책에 대해 호평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한 가지는 바로 이 객관성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의견을 일관적으로 개진하지만,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을 견지합니다. '동양인이자 비종교인'으로서 말이지요. 물론 저자는 비잔틴제국에 대한 애정을 전혀 숨기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에 대한 비판의 날이 무뎌졌는가 하면 단적으로 프셀루스 미카엘에 대한 서술만 보더라도 절대로 아니라고도 볼 수 있지요. 또한 주안점 중 저자는 제국을 단지 역사서술의 객체로 바라보기보다는, 보편 역사의 예시로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민이 괴롭다고 서술하는 것이 양심적인 역사가의 증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사가는 국가가 지운 무거운 세금이나 영주의 가렴주구를 강조했다. 그것은 틀림이 없다. 어느 시대나 농민들은 다양한 착취와 억압에 시달려왔다. 다만 그러한 측면에만 주목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본문 146페이지)

 

위처럼 우리가 흔히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자의 이러한 서술에 꽤 감명을 받았는데, 저자의 고정관념 타파는 단지 책의 주제인 비잔틴제국에 그치지 않고 역사 일반으로까지 범위가 넓혀졌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앞에서의 호평과 달리 이 책,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 제국>은 실제로는 꽤 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는 책입니다.

 

입문서?

 

비잔틴사에 원래 관심이 있던 독자분들이시라면, 이 책이 사실(史實)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몹시 빈약하다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당장 네이버에 등록된 이 책의 서평들만 하더라도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대부분 내포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특히 이 책 두께의 세 배에 달하는 책 세 권으로 구성된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에 비하면 같은 교양서라도 이 책은 거의 박물관 팜플랫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분적으로는 꽤 세부적이지만, 아무리 봐도 전체적으로 매우 축약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지요. 그러나 저자도 이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초점을 '입문자 안내'로 철저히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적어도 그 목적은 저자의 의도에 충분히 상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이 책에 혹평이 아닌 호평을 주려고 합니다. 사실적인 측면에서 이 책의 내용은 분명 군데군데 빠져있습니다. 개별 사건의 양과 질로도 그렇고, 맥락으로도 그렇고, 심지어는 이 책의 주요 흐름인 황제들의 개인사와 치적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비잔틴사가 그 특유의 복잡다단함과 다면성으로 악명이 높은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복잡한 교리논쟁이나 치열한 정쟁과 내전에 대한 사실 위주의 건조한 서술을 입문자에게 그대로 권한다는 것은 비잔틴사에 대한 흥미와 몰입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간략한 통사를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일관된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는 인지할 수 있게 되고,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접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박물관의 비유를 좀 더 심화하여 보자면, 전시회가 열려 박물관에 처음 들어섰을 때, 현재 전시하고 있는 물품뿐만이 아니라 박물관 전체 소장품의 목록과 해설을 담아놓은 두꺼운 서적과 지금 전시회의 주요 전시물만을 간단하게 정리해 놓은 팜플랫이 있다면 이 책은 후자에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박물관에 있으면 모든 소장품에 대해서 다 알아보고 가는 편이 좋을 것이겠지마는, 해당 전시회에 생소한 모든 사람에게 모든 소장품이 훌륭하니 하나씩 다 살펴보라는 것은 대부분의 초심자들에게는 지난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전시회의 전체적인 테마를 제시하여 맥락을 이해하게 한 후 그 맥락 속에서 다른 전시물들을 보아야 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일단 비잔틴사의 큰 흐름과 흥미로운 부분들을 먼저 알아보고 관심이 가는 세부적인 사항에 대하여 알아보는 편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계?

 

그렇다면 이 책은 단지 비잔틴사에 전혀 생소한 입문자들만을 위한 팜플랫에 불과한가? 그렇다면 비잔틴사에 원래 관심이 있던 아마추어 연구자들에게는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가? 라는 물음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도 저는 이 책을 옹호하겠습니다. 입문 단계를 넘어선 아마추어 비잔틴 연구자들이 맞닥뜨리는 가장 치열한 논쟁 주제는 바로 비잔틴제국의 정체성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곧,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필두로 꼽히는 19세기까지의 비잔틴제국에 대한 경멸적인 혹평에서부터 20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제국에 대한 우호적인 학풍을 비롯한 두 거시적인 차이 뿐만이 아니라, 비잔틴이 로마를 온전히 계승했는가, 계승했다면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은 별도의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과연 그 경계는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로마 제정 초기의 원수정과 비잔틴의 전제군주정을 어떻게 구분하여야 하는가…. 이런 몹시도 전통적이면서도 고질적이고 복잡다단한 주제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에 대하여 저자는 단지 정보와 논제를 제시하는 선에서 서술을 마치고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이 아닌, 스스로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며 그에 따르는 충분한 이성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양서는 물론 논문까지도 아직도 비잔틴의 정체성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물론 역사가 혹은 연구자가 자신의 관점만을 관철하는 것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글쎄요, 이해의 틀을 미처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라면 우선 틀을 잡아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입문자나 아마추어 비잔틴 연구자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정리하며

 

이 책은 가볍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직관적인 해석 역시 일관적입니다. 그러므로 입문자들에게 더없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백하건대, 지금 이렇게 비잔틴사에 대해 잘 아는 양 본 서평을 작성하고 있는 필자도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의 <비잔티움 제국사>를 처음 완독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수고를 상당부분 절감해줍니다. 물론 이 서평은 솔직히 말해서 이 책에 매우 호의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는 역사에 대한 저자의 관점과 동양인 비잔틴 연구자에 대한 동질감과 선망이 상당부분 작용했을 터이기에, 그리고 입문서로서의 이 책의 충실함에 대해 크게 공감했기 때문일 터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단점, 곧 '사실 서술에 대한 세부사항 결여 및 본인 관점에만 충실한 서술' 역시도 다시 한 번 언급함으로써 본 서평을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d*******s 2014.04.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내용보기
몇 일간 이탈리아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책을 통한 탐험여행이었다. [이탈리아로 간 과학자]로 찾아나선 로마, 이젠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으로 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로마 이제 유적으로 남겨진 유물들,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자랑했던 비잔틴제국 시절로 여행을 현장학습을 떠나보자. 일개 농민에서 황제가 된 유스티누스 1세, 그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유스티니아누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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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간 이탈리아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책을 통한 탐험여행이었다. [이탈리아로 간 과학자]로 찾아나선 로마, 이젠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으로 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로마 이제 유적으로 남겨진 유물들,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자랑했던 비잔틴제국 시절로 여행을 현장학습을 떠나보자. 

일개 농민에서 황제가 된 유스티누스 1세, 그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유스티니아누스 양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인물이다. 문맹이었던 백부에 비해 그는 지식인이었다. 비잔틴제국은 혈통이나 집안의 배경과 관계없이 실력과 운이 있다면 황제가 될 수 있는 열린 사회였다. (p.78) 이것이야 말로 비잔틴제국이 1,000년을 갈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비잔틴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누스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누스의 도시)이었고,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한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천혜의 지형을 가지고 있어 방어하기에 좋은 요충지이기도 하다.   

비잔틴의 강력한 비밀 병기 ’불타는 물’이나 ’액체 불꽃’이라 불렸으며 공식명칭은 ’그리스의 불’이라 명명되었던 것으로 발명자는 시리아에서 망명해 온 그리스 사람 칼리니코스였다. 무너져 가는 제국을 500년 가까이 지켜준것이 바로 이 비밀병기다. 끊임없이 쳐들어 오는 외세들, 그 중 이슬람은 수도 콘스탄티노플까지 쳐들어왔다. 콘스탄티노플은 현 이스탄불의 옛 이름,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불렸으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동로마의 수도로 지정되며 콘스탄티노플로 바뀌었다가 1453년 오스만제국에 점령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연대표를 살펴보니 324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통일된 로마 황제로 즉위하였고 1453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당하며 비잔티움제국이 멸망했다 볼수 있다. 최초의 황제는 콘스탄티노스 1세이며 최후의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11세인것이 우연이라면 참으로 묘한 우연이지 싶다. 콘스탄티노플은 비잔틴제국의 수도가 아니었다. 제국 그 자체였다. (p. 207)  그것은 책을 읽는 와중에 여러번 느꼈던 점이었다. 여러 차례의 침략을 막아내고 국가의 존립을 지켜낸 난공불락의 도시, 비록 나라 이름은 바뀌었어도 로마의 후예임을 자처했던 그들, 그들에게서 우리 옛 조상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홍익인간 단군신화를 단일민족이라는 정신을 느끼기도 했다.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 책을 읽기로 선택한것이 자랑스러웠다. 딸에게 유식한 엄마로 알려지는 것도 즐거웠다. 비잔틴제국의 쳔년세월과 동시대를 지내온 우리나라의 역사 연대가 비교되어 있는 부록1을 살펴보며 그 천년이 얼마나 오랜 세월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삼국시대, 발해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 와! 비잔틴이라는 나라가 유지되는 동안 우리나라는 이렇게 네번의 변화가 있었구나 싶었다. 사람의 한세대가 삼십년인데 천년이면 몇세대를 걸쳐야 하는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역사학이란 결국 과거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p.250) 고, 비판이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옳바르게 받아들일때 역사는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지 않을것이다. 

s*******1 2010.07.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