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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공간에 스며든다. 어떠한 과학적 이유를 댈 것 없이, 기억은 선연히 공간 속에 남거나, 공간을 통해 기억을 추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건축물이나 문화재를 방문하고 직접 발로 걸을 땐 온몸으로 기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기온은 적당한데 소름이 돋는 것 같고, 반대로 울컥해 열이 올라올 때도 있다. 건축은 소중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우리 사회에 작용하고 있을까. 건축은 잘 모르지만 제목에 쓰여 있는 ‘건축’이라는 단어보다 ‘아픔’이라는 단어에 조금 무게를 실어 미리 겁먹지 않고 읽어보기로 했다. 건축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쉽고 세심하게 건축을 가르쳐주려는 저자의 노력이 초반부터 돋보인다. 건축가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공간, 건물과 건축물의 차이, 예술과의 관련성에 관하여 짚고 넘어간다. “건축은 건축물의 내부성과 도시의 공간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중성을 지닌 형태를 만들어 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도 작동하는 삶의 장치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3쪽).” 건축은 예술성과 미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내부에서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과, 외부에서 비치는 모습을 동시에 고려한다. 때로는 도시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고통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건축물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다. 이러한 주제에서 거의 빠질 수 없는 공간은 군사정권 대표 건축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김수근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1980년대 후반, 그때 그 시절을 영상으로 재현한 매체들을 볼 때 가장 잔인하게 생각했던 내용들이 담겨 있다. 고문을 받는 자가 뛰어내릴 수 없게 완전히 축소한 창문, 몇 층이나 올라가는지 알 수 없게 하는 계단참이 없는 나선형 계단, 소리를 흡수함과 동시에 벽면 너머로 전달되게 하는 타공판으로 만든 벽…… 그리고 어느 하나 치밀하게 계산되지 않은 것이 없는 ‘의도에 걸맞은’ 완벽한 건축 형태. 이런 무시무시한 공간을 만든 건축가의 또 다른 건축물인 ‘경동교회’를 걷는 저자는 선과 악이 혼재하는 건축가의 아이러니한 행보에 관해 생각한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평화의 소녀상 옆을 걷는다. 평화의 소녀상이야말로 “타자의 비극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어 만들어진 가장 명료하고 시각적인 조형물 (97쪽).” 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외진 곳에 숨어 있듯 지어져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한다. 소녀상보다 대사관을 더 보호하는 듯 보이는 국가권력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박물관의 위치와 기능에 관해 의아함을 내비친다. 저자의 세심한 관찰력은 다음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복원된 여옥사가 국내 유일의 여성 독립기념관으로 개관된 것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아픔의 기억을 다루고 응시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세월호 추모관도 마찬가지다. “도열해 있는 지상의 묘비를 보면서 일종의 부러움이 생깁니다.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 인류 역사에 있어 이보다 더 잔인한 적이 없었던 독일의 역사를 수도 베를린 한가운데에 ‘명료한 시각적 상징’으로 현실화시키고, 가해자인 자신을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전 세계에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의무를 다짐하는 명쾌한 이 선언이 어찌 부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209쪽,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 독일 베를린) 역사의 아픔을 다양한 형태와 상징으로 재현한 건축물들을 꼼꼼하게 설명하여 전해주는 글 뒤편에는 실제로 저자가 강의를 통해 시민들과 토론하고 의문점을 나눈 내용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책 자체가 일방적이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여정으로 느껴졌던 것은. 고통의 기억을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그곳을 걸으며 공감하고 위로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 94쪽, ● 119쪽, ● 226쪽, ●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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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발생했다. 그러므로 다시 발생 할 수 있다" - 프리모 레비 p.183
책 제목 그대로의 책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세월호 추모관까지. 건축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의 근대사를 함께했던 건물들이 지금의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인 세월호 추모관을 통해 우리가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책이다.
다소 불편한 책 이다. 왜냐고? 불편한 역사를, 그리고 그 불편함을 우리는 제대로 대면해 본적이 없으니까. 책 은 그런 지금의 우리에게도 한 소리를 하는 듯했다.
박종철 열사를 비롯 우리나라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고문받고 죽어야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설계사가 김수근씨라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가 경동교회를 지었다는 것도. 뭐 김수근씨에 대한 내용은 접어두고, 대공분실 자체가 고문을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 그래서 외부로는 그런 면을 철저히 감추고, 내부에서는 고문의 강도를 극대화 하고, 말그대로 목적의 효율성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기타 목적 외 부작용(피해자의 자살, 자해등)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해놓았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읽는 내내 글자만 읽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현재 경찰청 산하로 주중 9시에서 6시까지만 개방한다고 한다. 이것도 읽으면서 대체 우리에게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경각심과 그곳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라고 공개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게속해서 들게했다.
그리고 나오는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소녀상. 일본군 대사관 앞에 서있는 조각물. 신발도 신지 못하고, 두손은 주먹을 진채, 머리는 잘려 단발머리를 하고, 뒤로는 할머니의 그림자를 가진. 그 소녀상앞으로 일본 대사관이 있고, 그 대사관은 경찰차벽으로 둘러쌓여있다고 한다. 재밌네. '일본군 성노예'는 없었다면서, 무엇이 두려워 차벽으로 싸고 있으며, 소녀상을 없애려고 그 난리를 치는지. 잘못이 없다면 더 당당해야 하는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저 작은 소녀상 하나에 그토록 벌벌떠는 나라라니. 반대로 홀로코스트에 대해 철저한 반성의 태도를 가지는 독일 국민, 베를린 정 가운데 홀로코스트를 그리는 공간을 마련한 그들의 시민성이 당연하지만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편을 읽으면서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자꾸 기억에 남는다. 이 박물관을 서대문 독립공원 안의 부지에 지으려다가 '애국선열에 대한 명예를 훼손' 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대체 이 말도 안되는 거절의 이유가, 이 수모를 같은 나라 사람으로 부터 받아야 했던 할머니들의 슬픔을 어찌한단 말인가. 다시 생각을 해도 화가난다. 역시 같은 이유로 세월호라는 주제에 지겹다는 태도,말, 글등을 볼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대체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인가. 다른 나라는 선대가 지은 죄도 지금도 기억하고 반성하며 같은 역사를 되풀이 않겠다고 다짐하는데, 우리는 현재, 불과 몇년전에 있었던 참사에도 이토록 무심하다니. 어쩌면 우리의 아픔을 제대로 대면해 본적이 없기에 더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경제발전, 경제발전, 경제발전, 그럼 우리에게 남는건 무엇일까.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말할 것인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위해 무엇을 기억하고, 더 나은 방향에 대한 대안은 찾고 있는 것인가.
쉬는 날, 책에 나온 공간들을 가봐야겠다. 좋은 책이다. Good Good! 추천!
"이 세상은 악마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살기에 위험한 곳이 아니라, 그것에 맞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위험한 곳이라고 했던 아이슈타인의 말이 귓전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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