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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던 것 같다. 이맘때 즈음이면.... 그런데 유달스레 올해, 지금은 더 그렇다. 여행가고 싶다. 다음번에 꼭 가야지.... 하면서 미루고 또 미루고. 그 미룬 자리에는 또다른 아쉬움과 서운함이 해마다 눈덩이처럼 웅크려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이름으로....... 여행 서적을 읽거나 여행에세이나 산문집에 무담시 이끌린다. 그냥 체념하게 되는것은 삶에서 시간을 내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마음이 버거운가보다. 그렇지. 이래저래 하나씩 다 따지다보면 여행......... 물 건너갔다. 어쩌면 마음 속으로 동경하는 여행만 몇년동안 계속 이어질것이다. 이럴때 내 속마음을 내가 너무 잘 아는 것이 속상하다. 속상하면서 나는 또 내가 좋아하는 시인 곽재구님의 산문집 <곽재구의 예술 기행>을 읽으며 내 마음을 토닥토닥~~~ 요동치는 마음 속 여행병을 한 켠에 넌지시 포개둔다.
시인님이 밟고 가는 길엔 아름다움이 펼쳐져있다. 그 아름다움은 난분분하지도 않다. 소박한 그리움이다. 길 따라 닿는 곳에서 만나는 찰나의 순간들을 글로 표현하는 문체들이 너무 좋다. 충분히 함께 그 여행에 동행하는 듯 착각하게 된다. 무작정 발길 닿는곳으로 가는 여행이 아닌 테마가 있는 여행 <곽재구의 예술 기행>이다. 목적지가 있지만 그 여행속에 자유로움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그 목적지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와 시인들, 화가, 음악가들의 삶이 있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속에서 시인님의 뭉클하면서 기대에 찬 마음들을 엿볼 수 있었다.
남해에서부터 시작되는 여행. 일정은 패키지 여행 같은데, 여행 속 내용은 지극히 문학적이었다. 예술기행이라 제목 붙이기엔 거리감이 느껴졌다. 제목은 '옥의 티'지만 뭐 어떠랴. 남해 금산에서 섬진강 지나 화개장터, 선운사 동백, 금강, 다산 정약용의 숨결이 머물러있는 곳 강진.... 왜 나는 정계에서 은퇴하고 강진에서 칩거하지만 틈틈이 정계 복귀를 노리는 다산 정약용의 처지를 자주 비유하는 정치인이 생각날까? 문학 고장에서 나는 현실 정치를 잠깐 생각했다. 둔탁하지만 뼛 속 깊이 전율 일으키게 하는 진도에서의 소리, 통영바다, 봉평에서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과 조우, 장흥에서 마주하는 소설가 이청춘과 한승원. 한승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광스런 작가 한강의 아버지인 듯 하다.
미지의 여행이 아니라면 여행을 떠남은 우리네 삶의 끈적한 시간과 맞물린 향수 때문이리라. 전에 살던 곳을 다시 찾아감은 그 시간의 기억들을 한번쯤은 되돌리고 싶은 것이리라. 꼭 어릴적 코흘리개 친구들과 신 나게 뛰어놀던 그 큰 운동장이 지금의 운동장이 아닌 것 처럼....... 학교 옆 조그만한 문방구에선 오만가지 신기한 것들이 구석구석마다 다 낑겨 채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 문방구도, 그 운동장도 한 켠 기억속에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때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한 켠 자리에 있는 내 기억을 더듬어 꺼집어내고 기어코 찾아가는 것이다.
곽재구 시인님은 그 아스라한 기억들을 잘도 꺼집어낸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인데도 그 곳엔 시간을 거슬러 내 기억의 한 자리가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나를 데려가주었다. 그 곳에서 나는 곽재구 시인 특유의 아름다운 언어를 마음팍에 새긴다.
밤이 맑고 카랑하게 깊어졌다. 별들이 소금밭의 소금처럼 지천으로 널리 빛을 뿌렸다. 어느 별들은 눈망울을 깜빡였으며 어떤 별들은 수심에 잠긴 듯 부우옇게 빛났다. 어떤 별들은 아예 꼬리르 달고 지상의 어느 삶의 밭에 그 빛을 내렸다.
진도의 햇살은 퍽이나 감각적이다. 비늘이 눈부신 생선처럼 치렁치렁한 햇살들이 들과 산, 눈에 보이는 풍경 모두에 내려앉는다. 붉게 패인 언덕의 속살, 하얗게 부서지는 갈대의 머리칼, 새김질하는 황소의 누우런 잔등, 돌각담 사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모두가 그 햇살의 세례를 받는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밤의 별, 아침의 햇살이다. 여기에서 감각적인 언어로 만나니 더 반갑다. 언어의 바다는 작지만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꿈을 꾸는 자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글을 쓰는구나 싶다. 소설가 한승원님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소설가는 외로울 틈이 없어. 왜냐구? 주인공들의 공화국 속에 늘상 살게 되니까. 힘이 부칠때면 바다가 보이는 여관에 몸을 풀고 하룻밤 내내 파도소리를 듣지. 그러면 다시 충전이 돼"
이렇게 나는 또 미안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시인님의 문학기행 열차에 무임승차해 만족스런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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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사람에게선 삶을 대하는 여유가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뛰어난 글쟁이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항상 난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삶을 살았고, 또 그런 삶을 살길 바래왔으니까. 정처없이 떠나는 여행 따위는 왠지 모르게 나에게 맞지 않는 듯 했고, 그런 여행을 떠날만한 용기도 내겐 존재치 않았으니까… 그다지 두껍잖은 책을 통해 접한 사람들의 이름은 나에게 항상 무한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삶이 어떠했을 것이며, 그러한 그의 삶을 가능케 한 환경들은 어떠했을지에 대해.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러한 궁금증들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발벗고 나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책을 접하면서 동시에 그런 나의 생각들은 저절로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스스로 억눌렀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나와는 분명 다른, 그렇기에 글을 자신의 업으로 삼을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선배 문인들의 삶의 터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절되어 있는 우리 역사와의 조우였으며, 많은 이들에게 잊혀지고 있는 우리 나라 곳곳에 대한 탐방이기도 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누구나 디카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듯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책의 구절 구절을 읽으며 이 지역은 어떨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 것이다를 짐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태도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상상은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맛을 간직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많은 문인들의 이름이 때로는 낯설게 느껴질지라도, 이 책을 손에서 놓아버릴 수 없었던 까닭은 다름 아닌 계속되는 상상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인이라 하여 모두 가난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마을의 소문난 지주였다는 아버지를 둔 서정주에게서 ‘자화상’같은 시가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다. 일종의 현실에 대한 반항이었던 것일까. 독한 역설이라고 해야 되려나. 하지만 그의 시는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었으며, 그의 화려했던 삶과는 또 다른 질곡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문학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묶여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초월해 또 다른 현실을 창조해내는… 신동엽의 시가 그러했고 김수영의 시가 그러했다. 그들은 냉철한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았으며 그들 안에 끓는 너무도 뜨거운 심장을 주체치 못하고 우리를 너무도 빨리 떠나버렸다. 시와 함께 이어지는 지방색 짙은 묘사들 속에서 나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 서울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난 삶을 살아보지 않은 몸이 짠내 물씬 풍기는 통영 앞바다를 꿈꾸고, 항상 혼자다니며 외로움을 벗삼았던 내가 타인의 사랑 속에 묻어있는 격정을 맛볼 기회를 얻었으니, 이 정도면 만족할만 하지 않은지… 아무래도 여행을 가야할 순간이 온 것 같다. 현실의 옷을 벗어던지고 잠시나마 자유의 몸이 되어 그들에게 예술을 가능케 했던 세상 물로 목욕을 해야 할 때가 온 듯 싶다. 글쓰고 싶은 욕구,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욕구, 어쩌면 예술은 그러한 작은 욕구를 주체치 못할 때 가능한 것인가 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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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란 역시 치밀한 관찰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나 <원형의 섬 진도>를 읽을 때도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곽재구의 예술기행』을 읽으면서 또 같은 생각을 했다. 달리 말하면, 생계에 목을 맨 나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도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물을 지긋이, 또는 가까이서 찬찬히 살피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가만가만 짚어보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언제나 잰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다 밤이 되면 짚단처럼 풀썩 쓰러지는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 책은 <사평역에서>로 잘 알려진 곽재구 시인이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노래한 글들을 모아 묶은 것이다.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결국 시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시인이란 본디 겉으로 드러난 풍경을 눈보다는 마음으로 보는 사람들이니 작가의 여정은 하나도 중요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시인이 어디에 위치해 있든 그의 마음이 향하는 촉수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여 시인이 쓴 여행기는 지명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언제,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감칠맛이 난다.
"싸리꽃이었다. 내 유년의 기억을 제외하고는 가장 짙고 찬란하게 피어난 싸리꽃 무더기였다. 나는 조금 흥분했었을 것이다. 싸리꽃들은 길을 따라 어디론가 죽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그날의 그애를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조금 조급해졌으며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경사가 급한 비탈길도 그대로 달려 올라갔다. 그러다가 한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꽃 한 가지를 꺾었다. 앞으로 닥칠, 전혀 경험하지 못한 어떤 만남에 대한 추상이 마음속으로 찾아들었다." (p.25)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다양하다. 이성복 시인, 소설가 김동리, 서정주 시인, 신동엽 시인, 화가 윤두서와 다산 정약용, 김환기 화백, 작곡가 윤이상, 박인환 시인, 소설가 이효석,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 그리고 누구라고 지칭할 수 없는 진도 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 곽재구 시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아, 나는 누가 뭐래도 천상 한국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오랜 옛적부터 면면히 내려온 '한(恨)의 정서'가 내 핏줄 어딘가에서 고요히 숨죽이다가 그의 글로 인해 태곳적 우리 조상들의 삶과 이어져 꿈틀대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을 찾아가는 작가와 그 길에 동행한 김유택 시인은 이효석의 자취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고 장재인 시인의 흔적을 따라간다. 장재인 시인은 서울 덕수 상고의 영어 선생으로, 그의 부인이었던 최영애는 내면 고교의 불어 선생으로 근무하며 한반도의 동과 서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다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곤 했었다고 한다. 슬하에 아들이 하나 있었고, 아들과 아내가 아비를 만나기 위해 탔던 강원여객 직행버스는 빗길에 섬강교 아래로 추락했다. 1990년 9월 1일의 사고였다. 탑승객 스물여덟 명 중 스물네 명이 사망하였고, 장재인 시인은 그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고 한다. 그 후 장재인 시인은 사고 발생 보름 만에 열여덟 페이지에 달하는 긴 유서를 남기고 이 지상을 떠났다고 한다.
"행여 살아남아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생의 의무감을 생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저희 세 식구가 지닌 쓰라린 사랑의 메시지보다 더 생생한 삶의 경종이 어디 있겠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생을 초월한 선택이 어찌 소극적인 결심일 수 있겠습니까? 부디 처자를 따라간 저의 죽음을 애통해하지 말 것을 당부드리며, 저희 세 식구 하늘나라에서의 다시는 헤어짐이 없는 만남과 행복을 기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딜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은 함께 있지 않고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 장재인 시인의 유서' 중에서 p.219)
이 책에는 '진도 소리를 찾아서'가 두 번 나온다. 그 두 번째의 '진도 소리를 찾아서'는 책의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다. 시인에게 삶의 애환이 담긴 절절한 가락은 차마 잊을 수 없는 시요, 노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유구한 역사가 아니었을까? 시인은 어쩌면 그 노랫가락 속에서 지울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발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늘에서 몇 홉쯤의 눈물 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야 삶은 왜 이리 슬프냐. 근디 너는 왜 이리 예쁘냐. 산굽이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갈대들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회심곡 한자락을 이승의 서러운 산자락에 풀어놓고 있었다." (p.282-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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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22일에 경상북도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으로 협회에서 문학기행을 간다하던데 불참하기로 했다. 아쉽게도 주변이 너무 어수선하여 마음정리라도 하고 싶지만, 걱정이 앞서기에 불편함으로 가보았자 별로 와닫지않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대신 곽재구의 예술기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이 책은 2003년판이라 19년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년전이면 나에게도 큰 변화가 있던 시기인지라 당시의 상황들이 눈에 그려지는듯했다. 덕분에 기행의 느낌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이 책<곽재구의 예술기행>은 저자 곽재구는 "내 삶의 일정한 부분 동안의 역마의 기록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나는 가능한 자유롭게 아무런 가식 없이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들과 그 추억들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저자가 이 글들을 쓴 목적이다. 이 글들은 일부는 저자가 밝히듯 <금오문화>지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글을 읽다보면 익숙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저자의 연배가 있어 등장 인물들의 호칭이 몹시 친근할 수도 있다. 저자는 여기에 등장하는 본문의 내용은 "모두 초판본(한양출판) 시기에 해당하는 기록들임을 미리 밝힌다"라 말한다. 저자 곽재구는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시인 중 한 명으로, <곽재구의 예술기행>, <곽재구의 포구기행>의 작품으로 그를 내밀히 살펴볼 수 있다.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권해본다. 단 책들은 당연 품절중이다.(나처럼 헌책방을 이용해봄도,,, )
<곽재구의 예술기행>은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의 부제를 달고 있으며, 저자는 이 책의 글들을, "통념적인 예술기행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인 것으로의 여행'이라 보아 무방"하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이 역마를 꿈꾸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다. 기실 우리나라사람들은 모두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아름다운 것'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것들을 통해 "한 인간의 삶과 그 주변에 펼쳐진 풍경들을 통해 오늘 우리의 삶과 그 의미의 건강한 불빛들을 다시 한 번 되살려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책의 작은 바람이 될 것"이라고 작가다운 소망을 어필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목적일듯한 "대중적으로 익숙해진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서 혹은 아무런 이름도 없는 펑범한 우리 주변 이웃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지닌 정신 문화의 일면을 새롭게 답사해보고 싶은" 욕심도 내비치고 있다.
이 책이 신경이 쓰였던 이유는, 첫장부터 이성복이 나온다. 군대있을때부 읽기 시작했던 이성복의 시집들, 그때 처음 접했던 이성복의 시집들, 의미도 모른채 시집을 읽었었다. <남해금산>에 가서야, 남해의 아름다운 <남해금산>을 상상하면서, 그런데 저자는 그런 나의 '남해금산'을 찢어버렸다. 그는 <남해금산>을 "첫번째 시집보다 그 문학적 열정 및 영혼의 감응력이 떨어졌다. 삶이 그를 일찍 노숙케 한 때문일까. 돌아간 김현 같은 이가 이성복의 시 세계에 대하여 '치욕의 시적 변용'이란 상당히 매력적인 지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테마는 두번째 시집보다는 첫 번째 시집에 어울릴 것이었다. 첫 번째 시집에서 떨어진 빛의 가루들이 두 번째 시집의 책갈피를 잠깐씩 반짝이게 하는 격이었다. 어떤 평론가들은 그의 시 세계가 더욱 안정되고 그윽한 곳으로의 변모를 추구하고 있다고 떠벌렸지만 그것은 그의 영혼의 노쇠에 대한 대리 변명의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라고 평하였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또 그의 시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다만, 그는 말미에 "그럼에도 이 시집의 맨 말미에 붙은 한 편의 시는 매력적이었다."라고 말하며 이성복의 <<남해금산>>의 <남해금산>을 실어놓았다. 그러나 이미 난 삐쳤다.
글은 남해의 미조 포구에서 떠나 섬진강 화개장터르 지나 선운사를 들러 금강을 찾아갔다. 윤두서와 정약용을 흔적을 찾고, 김환기(화가)의 고향을 들러, 진도소리를 찾아떠난다, 다시 충무로, 다시 박인환의 추억을 더듬고, 봉평에서 운두령까지 더듬고,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 장흥을 찾는다.그리고 다시 진도 소리를 찾아떠난다. 그리고 저자만의 말하고자하는 것들을 적고 있다. 그의 주장엔 당연성있었다. 그렇기에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시대적 흐름과 약간의 시간차를 극복하기엔 힘을 들여야만 했었다. 이 책과 속한 그들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예술적인 것'의로의 자유로운 여행이었다. 시간이 좀 많이 지나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자연과 풍광, 산과 바다, 그리고 우리의 '것'들이 전해주는 예술적인 것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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