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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정보 없이 본 영화의 충격이 심했던 터라 소설은 다행히 잘 납득하면서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나 그 때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 특유의 약간 미친 듯한(?) 이해하기 어려운 오묘한 느낌이 있는데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도 그렇고 이 책도 역시 그러한 기운이 있습니다. 헌터톰슨에 대한 정보를 읽고 이 책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읽고 읽어서 그런지 꽤 재밌고 괜찮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책을 읽을 때 이 글을 쓰는 작가의 기분이나 느낌을 상상하며 읽기도 하는데 이걸 읽으면서 톰슨처럼 상상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일러스트도 참 톰슨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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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괴한 장례식만큼이나 특별한 문체와 내러티브는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거지'싶은 공포와 혐오를 불러 일으킨다. 도입부에서는 과연 이런 전개가 저널리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싶을 정도이지만, 역시 고기와 글은 씹어야 제맛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일종의 앙가주망이기도 한 그의 작품은, 스스로 밝히는 것처럼 '무모한 광기의 실험'으로 평가 받을 만큼 시끄럽고 횡설수설하는 폼을 유지한다. 굳이 콘텐츠 속으로 들어간다면 6,70년대의 미국을 관통하는 약물 문화의 흐름을 시대의 변화상에 절묘하게 대입한 보고서 쯤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렇게 인생을 밀어붙여도 결국 운좋게 살아남을 수도 있었던 시대라는 게 한편으론 부러웠다. 그러나 곤조 박사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건 이 순간이다. 끝간데 없는 광기와 방종의 무지개 뒤에서 발견한 바로 그것을 우리가 어느새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널리즘의 의미를 곱씹어본다면 헌터 톰슨의 이런 작법이 그냥 쉽게 나온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생전에 헌터 톰슨은 이 작품에서 한 구절만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마다 이 부분을 즐겨 읽어주곤 했다고.
"...바로 그거였다. 낡고 약한 기운에 맞서 당연하게도 승리한다는 확신. 스타일 구겨가며 싸워 이겼다는 뜻이 아니다.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우리의 에너지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우리 편, 내 편 갈라서 싸울 필요도 없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모든 힘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그저 높고 아름다운 파도에 몸을 맡기고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라스베이거스의 가파른 언덕에 올라 서쪽 혹은 지난 날을 바라본다.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면, 그는 그 높이 솟은 파도의 정점을 거의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곳에서 결국 파도는 부서졌고 되돌아왔다."
원문을 읽어보니 마지막 문장은 저렇게 표현하는 게 더 의미가 명료한 것 같다.
내가, 우리가 가진 공포와 혐오는 무엇일까. 이 사회에서 두렵고 진저리 나도록 싫은 건 무엇일까. 헌터 톰슨은 닉슨 정권의 관료주의 파시즘을 경계하며 신나게 놀 수 있었던 자신의 처지에 감사해했다. 그렇다면 그가 공포와 혐오를 발견한 곳이 라스베이거스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D.C도, 월스트리트도 아닌 라스베이거스였다. 우리는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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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헌터 S. 톰슨’이라는 이름은 일요일 아침이면 꼭 챙겨보는 MBC의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알았다. 자신의 유해를 대포에 넣어 지구 밖으로 발사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권총 자살한 작가라고 한다. 실제로 그가 죽은 후 그의 유해는 대포에 넣어져 발사되었으며, 장례에 들어간 비용은 그의 절친한 친구인 영화배우 ‘조니 뎁’이 전액 지불했다고 한다. ‘조니 뎁’이 출연한 영화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협오’와 ‘럼 다이어리’라는 영화의 원작자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고, 도대체 이런 괴짜같은 작가가 쓴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 궁금해져서 좀 더 자극적인 제목의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라는 작품을 택하게 되었다. 게다가, 책의 뒤표지를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박민규가 “그저 졌습니다 형님, 하고 어깨를 떨구며 이나하고픈 작가가 있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헌터 톰슨일 것이다. 풍문으로만 듣던 그의 소설에 대해서도 내 생각은 그저 한 가지였다. 국내 도입이 시급한줄 아뢰오! 유언대로 그의 유골은 이 지구를 떠났으나 그의 글은, 또 그의 영혼은 이제 막 우리 곁을 찾아왔다. 더 이상의 고렙은 없다. 곤조계의 몬스터 ‘헌터 S. 톰슨’ 형님이시다!”라고 거든다. 정말이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약 빨고 쓴 소설’이라는 딱 여섯자로 압축된다. 사실 줄거리라 할만한 내용도 없다. 언론한 박사인 주인공과 그의 동행자인 변호사가 민트 400이라는 모터사이클, 듄 버기 오프로드 경주대회와 지방검사협회의 향정신성 의약품과 약물에 관한 세미나를 취재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여 한껏 약을 빨아대며 취한 정신으로 벌이는 사건들이 무의미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가 순수 문학으로서의 소설이 아닌 저널리즘의 형태의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당시 미국 사회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무익하게 시간만 낭비한 셈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수천 명의 경찰들이 시민이 낸 세금으로 라스베이거스를 며칠 구경할 수 있는 싸구려 핑계거리였다. 아무도 배운 게 없었다. 적어도 새로운 것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뭔가 깨달은 게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방검사협회가 가혹하고 역동적인 현실로부터 10년은 뒤쳐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추악한 1971년에 이르러서야 ‘약물 문화’를 막 발견한 것처럼 난리를 피우다니.” 저자는 미국 내에서 약물 문화가 이슈화되기 훨씬 전부터 약물을 경험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소설 속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중독 상태를 오랜동안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에 약물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몸소 경험한 약물에 대해 친절히 그 효과와 그에 따르는 해악을 밝히기 위해 이 소설을 집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 25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소설에서 딱 한 페이지 분량에 진지한 성찰과도 같은 내용이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 “과연 그렇다. 하지만 제정신이란게 뭐지? 특히나 닉슨이 정권을 잡은 암울한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제정신이라니? 우리 모두 이제 생존 여행에 휘말려 들었다. 60년대를 활활 불태웠던 각성제는 더 이상 없다. 감각을 자극하는 약물은 한물갔다. 이게 다 티모시 리어리가 전파한 약물 여행의 여파였다. 그는 자신의 말을 너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던 냉혹한고 잔인한 현실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미국을 공격하고 ‘의식의 확장’을 팔아먹는 데 여넘이 없었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다녔고 성직자 수업까지 받았던 그에게는 LSD가 아주 논리적이었겠지만∙∙∙∙∙∙결국 그가 자신을 망쳐버렸다는 데서 그나마 위안을 삼기에는 그가 망가뜨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자기가 자초한 일이었다. 애처로울 정도로 애시드를 밝혔던 그들은 3달러 주고 1회분으로 평화와 이해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손실과 실패는 결국 우리의 손실이자 실패이기도 하다. 리어리는 스스로 망가짐으로써 자기가 형성에 기여한 바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히 허구라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영원한 불구자들, 실패한 탐구자들. 이들은 애시드 문화가 본질적으로 담고 있는 낡은 오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누군가가 혹은 적어도 어떤 세력이 터널 끝에서 횃불을 들고 있다고 악착같이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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