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대에는 [광장]이, 20대에는 [화두]에 심취하게 만들었던 작가 최인훈. 관념적이며, 이즘적이라 어렵다며 싫다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작가의 글이 참 좋았다. 수능을 준비하면서 여러 장르의 책들을 잡학다식으로 읽으려 노력했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원래부터 잡학다식이었다. 그래선지 무거우면 무거운대로, 가벼우면 가벼운대로 줏대없이 읽을 거리들을 좋아했는데, 작가의 글은 진지함이 묻어나면서도 한없이 머물게 만드는 요소가 있어 좋았다. 보통 무거움은 블랙홀처럼 빠져들게 만들거나 헤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습성이 있는데 반해 작가의 가볍지 않음은 움직이지만 머무르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의 깨달음이 있었다. 문학이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지 않으려면 "개인"을 어떤 의미에서건 팔아넘겨서는 안된다 라고 말하는 작가에게선 늘 김수현 작가가 말하던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자존심"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고, 예술은 자기가 표현한 것을 동시에 끊임없이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말하는 데서는 까미유 끌로델 같은 폭발적인 천재성이 발견되어 지기도 했다. 어느쪽이건 그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최인훈이기 때문에 읽어내게 만들고 피해가고 싶은것조차 다가서게 만드는 존재감이 있는 작가, 최인훈, 그는 [길에 관한 명상]이라는 에세이식 글 속에서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털어놓기 시작했다. 인터뷰식도, 일기식도 아니기때문에 처음에는 소설인줄만 알았지만 읽다보니 묘하게 또 빠져들게 만들고 있었따. 대전에서 여름을 나는 두달 동안 집필된 [광장]은 1953년을 산 이명준을 1960년을 산 최인훈 작가가 집필했다 점과 41년 영국에 평화교섭을 위해 왔으나 포로로 종신형을 받고 94세의 나이에 자살했다는 루돌프 헤스에 관한 내용까지 덧붙여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들었다. 무엇이 94세의 다 산 생을 스스로 멈추게 만든 것일까. 체제에 대한 반발인가, 삶에 대한 저항인가, 자신에 대한 포기인가. 자살은 하나의 의미로 해석되어지지 않았다. 1936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한 명의 작가는 세월이 지난 오늘 날에도 교과서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벼운 것을 좋아하는 우리조차 매료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