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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고1인지라 청소년소설이 눈에 들어온다. 더구나 청소년성장소설이라면 일부러라도 찾아서 보려는 편인데 달고나이벤트로 온 5권중에 이 책이 있었다. 표지부터 왠지 끌리는 색감하며 차분하게 읽기전 이미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중 이번 달 연재하시는 권하은 작가님 책임을 알던날 왜그리 반갑던지. 연재글에 재미를 붙이며 (연재글은 신문도 안보던 나) 권하은 작가님의 답글에 정을 붙이다보니 왠지 이 책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기어이 이 달 독서계획에 넣었더랬다. 내친김에 북켄드 리스트에도 올렸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는 서글프다. 막 슬픈게 아닌 서서히 체념을 해버린 아이, 어차피 인생은 뭐 다 그런거 아냐 식의 자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서글픈 아픔이 묻어나는데 정작 본인은 그리 아프다 생각지 않을 정도로 만성이 되어 있다는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아버지는 전과자인데 젤 나쁜건 훔치러간 집에서 바지 혁대를 끌른 순간부터다.어머니는 몇 번의 가출을 하시더니 아예 다른 사람과 산다. 보증금으로 그나마 아이가 기거할 방은 있다.
어릴때부터 항상 늦는 아이였다. 발육이 늦고 그러다보니 매사 늦는게 정상적인 아이. 그래도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잠시 고모집에 기거했을때(고모가 자처해 맡아 줌) 거기서 고모네 아이들에게 질투도 느끼고 고모에게 사랑받고자 애썼던 기억이 있는데 그후론 될대로되라는 식으로 살아간다.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것도 없고 특별히 더 자포자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안에만 갇히도록 군중 둘이 놔두지도 않는다. 자신들의 군중 속의 고독을 나를 통해 의지하고(어쩜 자신보다 못한 나이기에)해소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개는 그저 헤에~ 하면서 듣고 있을뿐이니까.
여기서 군중은 반친구인데 군중1은 남자 군중2는 여자다. 이름을 외우고픈 마음도 없고 일부러 안외우려 하지도 않다보니 가장 마땅한 지칭이 군중이다. 이 군중은 바퀴벌레에게도 통용된다. 바퀴벌레에게 순번을 매길뿐 별다른 의미가 없다. 산다는게 용할만치 심드렁한 삶이지만 배고픔만큼은 고통이다. 그건 본능이기에 처절하고 서글프고 비참하다. 폐지를 비롯한 박스와 고물을 주워서 생계를 꾸리려다 토박이인 고약한 할매에게 모진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부모가 없다시피한 나에게 담임은 지독히도 고약을 떤다. 집안형편이 안 좋다고 다 너같을 순 없다는게 담임의 생각. 그렇기에 도둑누명을 쓰고도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 많은 모욕과 체벌을 감수하는 내 태도가 담임의 비위를 더 거슬릴뿐이다. 내가 가만있어도 어차피 담임은 나를 범인으로 몰아갈 거라는 생각과 돈도 필요했고 또 자신이 담임의 그런 태도를 보려고 지갑을 슬쩍한 것도 사실이니까.
군중1은 전교1등인데 나와는 차원이 다른면에서 공허함과 우울과 허무를 안고 있다. 시시콜콜 나는 얘기를 안하는데 약속도 안한 상태서 먼저 집에 갔다고 따지는 아이. 때문에 그게 귀찮아 할 수 없이 기다렸다 귀가를 하니 남들 눈에 참으로 이상타 싶으면서도 친한관계로 보여진다. 군중1은 아픈 가족사가 누나가 투신자살을 했는데 가끔 나에게서 투신자살을 할 당시의 누나 심경을 본대나 어쨌다나. 암튼 군중1은 사고도 합리적이고 자신의 용돈으로 괜찮다해도 배고픈 내 위를 잘도 달래준다. 대꾸가 없어도 자신의 얘기를 잘도 해댄다.
군중2는 마트사장인 아버지를 두었는데 다른곳에도 점포를 가지고 있단다. 발레리나를 목표로 체중감량에도 신경을 쓴다. 어느날 나에게 군중1과도 친구니 자신과도 친구를 해얀다며 대답을 안하니 괜시레 삐진척한다. 결국 자신아버지의 불륜을 알아내기 위해 나도 모르게 이용했는데 나는 이용당한지도 몰랐고 알았어도 상관없다. 나중에 울며 사과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결국 군중2의 아버지 마트서 물건을 훔친건 나니까 말이다. 그 훔친 물건을 죽은줄 모르는 고약한 할매네 집에 갔다 주었지만 그런말조차 하기 싫다.
표지를 보면서 캔버스화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 아이가 벼랑끝에 앉아 있는걸 조금이나마 어렴풋이 상상은 했지만 그냥 좋게만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자리했나보다. 결국 표지는 벼랑끝에 앉은 아이처럼 조마조마한 위태위태한 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다. 거기서 뛰어 내리면 투신일테고 거기서 마음을 바꿔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안심이 되는거다.
아퍼서 죽었는지 굶어 죽었는지 아님 노환으로 죽었는지 그 누구도 모르는 할매가 키우던 서너 살 짜리 손자를 할매의 리어커에 태운다. 자신이 마트서 훔쳐다 준 물건들중에 상하지 않은 것들을 함께 싣고서 할매의 물건중에 라디오를 발견하고는 리어커에 매달고 길을 걷는다.
캔버스화를 신고 벼랑이라 여겨지는 곳에서 굳건이 일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긍정적인 표시 같아서 못내 안심이 된다. 그자리가 바닥이어서 바닥을 튕기며 솟구쳐 오를 것을 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건 오롯이 내 생각일 수도 있다. 좀 더디면 어떤가. 항상 발이 닿지 않는 느낌을 갖으면 좀 어떤가. 어느곳에선가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이 다가올 수도 있고 더구나 군중1이나 군중2 같이 스스로 다가오는 군중들도 있는데 말이다. 좀더 나를 잘 이해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담임만 잘 만난다면 위안이 되어 좀 바뀔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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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하늘을 걸어 다닐 순 없잖아. 이러다 우주속으로 빠져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심장이 두근두근, 설레임 때문이 아닌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 만 같다. 이렇게 읊조리는 책 속의 '나'인, 이 아이는 나에게 군중10정도의 번호도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저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일테니까. 집 안에 함께 있는 바퀴벌레에게조차 번호를 붙이는 아이를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하면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고 생각했다. 이름이 아니라 숫자를 붙임으로써 존재감을 없애려 한 것이 아니라 나의 곁에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느리게 산다고, 말을 더듬는다고 생각이 깊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들의 지금 상태를 '발이 닿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정확하게 짚어낸 아이다. 다른 성장소설들과 다르게 이 책은 한없이 우울하다. 하지만 철학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내가 디디고 서 있는 곳이 현실이 맞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만든다.
죽지 않고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삶에 선택권이 없는 것이 아이는 내내 슬펐나 보다. 행복하지 않은 시간들, 그렇다고 죽을만큼 불행하지 않은데 부모의 손에 의해 삶을 선택 받았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을까. 한 여자의 품 안에 있는 아기를 보며, 군중1에 의해 아이의 생명이 타인에 의해 지속 되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잖아. 분명 타인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지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막연하게 B시에 살고 있는 엄마를 찾아 떠나는 길에 혹여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소중한 것을 또 잃게 될까, 버림 받게 될까 두려워서일 것이다. 이건 '나'가 살아있다는 분명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 이 책을 잡자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그래서 한 아이의 인생을 너무 쉽게, 봐 버린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타인이 쉽게 해 내는 일도 이 아이는 너무나 힘들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해내는데 이렇게 숨을 몰아쉬듯이 읽어버려도 되는 것인지, 조금씩 다가가야 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저 멀리 높은 곳에서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발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뛰어내릴 수도, 이곳에 계속 앉아 있을 수도 없는데.......아이의 아픔이, 잠시 나의 곁에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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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은 작가는 인터넷 서점의 연재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 그 소설 역시 청소년 소설이었기에, 청소년들의 심리를 참 잘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보기도 했다. ![]() '발이 닿지 않는 아이'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 소설이다. '나'라는 1인칭 시각으로 자신의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참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혼자 동떨어진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소년. 아버지는 전과자로 감옥을 드나들다가 지금은 강간미수범에 살인미수범으로 감옥에 있고, 어머니는 몇 번의 가출을 거듭하다가 집을 나갔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사는 18살 소년.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지갑을 훔치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인간이하의 모욕을 견디기도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혼자 살아간다. 고물을 줍기도 하고, 편의점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며. 어려서는 친척집에 맡겨지기도 하고, 시설에 있기도 하면서 못 먹고, 얻어 맞으며 자랐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크지도 못하고, 외소한 외모에 하는 일은 굼뜨기만 하다. 오죽하면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군중1', '군중2'로 여겨질까. 소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다른 사람들은 소년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 소년에게 다가오는 학급 동료인 '군중1'과 '군중2'. '군중1'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 '군중2'는 부유한 가정의 소녀. 아무도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 소년에게 왜 그들은 다가왔을까. 그것은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도 소년 못지 않은 아픔이 있기때문이다. 세 사람이 꾸며 나가는 이야기는 밋밋하고 무미건조한 이야기처럼 다가오지만, 그들의 이야기에는 서로 같은 아픔이 있기에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느껴지는 것이다. 마음이 아파도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끼니를 거르기를 밥먹듯이 해도 배고프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엄마를 만나러 가기는 가지만,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알지도 못하고, 구태여 찾으려는 마음도 그리 많지 않은.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땅을 밟고 다니지만, 소년의 발은 땅에 닿지 않아서 허공에 둥둥 떠 다니는 것과 같다. 소년은 절대 발이 닿지 않아서 둥실거리며 떠도는 것과 같은. 아니, 두 발이 땅에 완전히 닿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어딘가 외롭고 아픈 그런 소년인 것이다. 너무도 암담하고 힘겨운 삶이고, 자칫하면 탈선의 길로 떨어져서 영영 올라오지 못할 것 같은 일상들이 계속되지만, 그래도, 그 길의 끝까지는 가지를 않고 되돌아오곤 한다. 소년은 자신의 일상도 힘겨운데, 고물을 줍는 할머니의 네 살배기 손자를 거두어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고맙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 이 소설을 읽는내내 지금 우리 주변에서 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소년과 같은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좀더 큰 마음으로 세상의 가려진 곳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들었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인 소년이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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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빚어낸 웰 메이드의 느낌 보다는
열여덞살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저마다의 욕망으로 번득거리며, 모두 어른이란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듯 하다.
누군가 그랬던가 어른이 된다고 해도 그다지 많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단지 아이가 몸만 큰 것 뿐이라고(아, 아마도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에서 나왔던 것 같다) ^^
간혹 등장하는 삶에 대한 성찰과 성의 있는 캐릭터 묘사가 돋보인다.
"극복과 체념은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서 엄청 헷갈린다. 하지만 진짜 극복이란 정말 어려운 일이며 심지어는 마른 하늘에서 치는 날벼락을 맞고도 살아남길 기다리는 게 더 확률이 높다. 반면에 체념은 아주 쉽다. 체념이란 놈은 사람이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이 가져다주는 공짜 선물이기 때문이다. 때로 공짜 선물은 안 받느니만 못하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 역시 체념으로 양쪽 호주머니를 꽉 채웠음을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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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백석예술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미술신문', '미술세계'등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풍부한 미적 감각과 정제된 문장이 돋보이는 장편소설 '바람이 노래한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는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짧다. 작품 역시 하나밖에 소개가 되어있질 않았다. 그 하나의 작품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데뷔작이란다. 십대의 사랑을 기존과는 전혀 다른 톤으로 다루고 있어, 청소년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소개된 작품.. 청소년 문학이긴 하지만 조만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껏 두 편의 장편소설 밖에 써내지 않은 권하은 작가의 두번 째 소설. 당신과 나의 청춘은 이렇게사랑스러웠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던 하늘색 표지. 어쩌면 고백이고 독백이며 웃음이고 울음이다 라는 또 다른 문구와 함께 사랑스러운 소설이라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이 눈에 띄었다.
작가 권하은이 순전히 '나'를 위해 쓰였다고, 작가 권하은이 독자 권하은을 위해 쓴 것이라고 표현한 장편소설 '발이 닿지않는 아이'. 작가는 뛰어난 서사완급 조절과 감정을 절제한 문체로 한국 현실의 가장 낮은 부분을 18살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다. 아버지는 강간미수범으로 감옥에 있고, 엄마는 집을 떠나 어디 있는지 모르는 주인공. 가족 없이 견디는 고등학생의 삶은 위태롭고 우울하기만 하지만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청소년기를 그려낸다.
꽤나 밝을 것 같았던 표지와 거기에 담긴 짤막한 문구들과는 다르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느낄 수 있던 감정은 바로 우울함이었다. 조금 어둡게 느껴지기도 했던 그 우울한 감정은.. 그래서 꽤나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다시한번 표지의 그림을 물끄러미 보게 되었다. 하늘색 표지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커다란 냉장고를 하나 사서 귤로 꽉 채울 거다. 그게 내 유일한 미래 계획이다. 라는 책 안의 문구가 작은 글씨로 함께 적혀있었다. 그저 밝아보였던 하늘색이 어째 좀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어딘가에 걸터앉아 있는 한 아이. 얼굴은 눈 아래 부분만이 그려져 있었는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어느 곳인지도 모르는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은.. 그냥 스쳐지나갔던 표지의 느낌을 180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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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의 남자아이. 고등학생.. 과거 그 시절 소년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아팠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 느껴지는 쓸쓸하고 외로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작품의 주인공을 맡은, '토끼'같은 그 아이는 꽤나 달랐다. 겉으로 보기엔 어렵고 힘겨운 삶을 지내는, 특별히 원하는 것도 하고싶은 것도없는 심심한 느낌의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이 작품이 인위적이지 않은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 전하고 있던 작품의 주제였다.
칙칙하고 우울하고 위태로워서 이 소설은 사랑스러웠다. 칙칙한 척, 우울한 척, 위태로운 척하는 소설들이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혹은 문학적으로 세공된 정서는 표가난다. 이 작가는, 대상을 완전히 타자화하지도 않고 섣불리 자기화하지도 않으면서 윤리적인 거리를 유지해냈고, 이 드문 능력 덕분에 이 소설이 이렇게 사랑스러워졌다. 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짤막한 평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작가 권하은이 독자 권하은을 위해 쓴 작품이라는 소설 '발이 닿지않는 아이'. 주인공 '토끼'는 독자 권하은의 내면과 많은 부분이, 아니, 거의 대부분이 흡사하다며 작가는 거울을 통해 보듯 독자의 내면을 그려냈으며 더이상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진솔하게 말했다는 그녀의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독자의 분신인 토끼가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했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들어 울고 싶어지는 날 주섬주섬 꺼내들어 읽을 책이 권하은에게 한 권 생겼다는 그 말이.
하지만 개인적으론 주인공 '토끼'가 그저 희망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작가에게 그렇게 다가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누구나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한가지 쯤은, 혹은 말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물론 말하고 싶더라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건 언제나 마음 한구석 깊은 공간을 꽉 메우고 있어 사람의 감정을 건드린다.
작가 권하은 씨는 작품 안에서 '토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 내 끼니를 걱정해주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매일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이런 행복감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뭔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게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무척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녀는 독자 권하은을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했다. 그렇지만 분명 나도 독자 중의 한사람이다. 작가가 독자인 '나'를 위해 쓴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서 비록 내 취향에 온전히 꼭 맞는 작품을 만들어 준건 아니지만, 독자인 '나'는 그녀가 하고있던 이야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그 꽉막힌 느낌을 알고 있으니까, 사람은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도 가질 수 있는 거라고.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니 그냥 그걸로 됐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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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고백이고 독백이며 웃음이고 울음이다 라는 작가의 소견이 눈에 맺힌다. 당신과 나의 청춘은 이렇게 사랑스러웠다는데......작가가 말하는 당신은 독자를 말하는 것일까. [발이 닿지 않는 아이]는 성장소설이되 성장소설이 아닌 듯 하였다. 칙칙하고 하수구 냄새나는 세상에 삐딱하지도 바르지도 않은 시선으로 서 있는 소년이 있다. 아빠는 강간범에 도둑놈이고 엄마는 아들을 버리고 달아나 다른 사내와 딴 살림을 차리고 산다. 몇 놈이나 바뀌었는지 알 수는 없다. 선생은 맨날 매타작에 인격적으로 제자를 구타하고 사람들은 소년을 도둑이라 부른다. 사실 소년은 남의 것을 훔친다. 그것도 별 죄의식 없이. 하지만 전문적인 털이거나 유흥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다. 고물을 팔아 몇 푼 건지고, 때때로 도둑질도 하고 마트에서 알바도 하는 등. 소년은 넉넉하지 않지만 부양가족 없이 혼자 자립하며 살고 있었다. 물론 배고픔은 있다. 그에 비해 소년의 고물상 생계비의 라이벌인 할머니는 어린손자를 부양하고 있다. 삐딱하게 기울어진 소년의 시선도 동정과 사랑이 배여 있음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알 수 있다. 비록 세상은 이들에게 따뜻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적어도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보다는 따뜻한 심장을 데워가며 사는 이들이었다. 작가의 시선이 좋은 까닭은 그들이 스스로를 동정하지도 비관하지도 그렇다고 허풍을 떨면서도 아닌 3자보듯 자유로우면서도 때론 쿨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감정적이기보다는 정리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어 불필요한 가슴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도둑질을 자주 한다. 가장 간단하게 뭔가가 생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라는 독백은 시원스럽다. 배워온 도덕적 잣대로 보면 타박받을 행동이지만 소년의 입장에서보면 옳고 그름을 배움에서 찾기보다는 생존에서 찾는 것이 더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는 미워하지 않게 된 아비와 어미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저 자신의 오늘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오늘을 굶지않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소년이다. 게다가 형사로부터 아비의 탈옥소식을 들었으면서도 제법이다. 교도소를 네 번이나 갔다오더니 이젠 탈옥도 할 줄 안다. 라니. 자기 아버지가 아닌 어디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 보듯 하고 있다. 어쩌면 소년에게 보이는 모든 이들은 참견하고 싶지 않은 구경거리 정도는 아닐까. 희노애락을 잃어버린 소년의 일상에 죽어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손자를 데리고 나오는데서 일말의 희망을 발견해낸다. 마치 원빈의 영화 [아저씨]에서 아저씨가 제3자 구경하듯 삶을 살다 옆집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것처럼. 그런 면에서 [발이 닿지 않는 아이]란 멋진 제목이다. 세상에 발을 대고 있지 않은 아이의 세상살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잘 설명되어져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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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보고 생각난 것은 ‘마음 붙일 데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제목으로 쓰다니 좀 재미없는 일이다. 뭔가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것도 생각났다. 그것은 자신을 ‘발없는 새’ 라고 한 장국영이다. 발이 닿지 않는 것이나, 발이 없는 것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발이 닿지 않을 때는 과감히 내려오면 된다. 아마도 발이 땅에 닿았을 때 균형을 잃고 넘어질까봐 두려운 것일 거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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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으면 편하다. 하지만 외롭다.
그만 쉬고 싶다고 생각될 때 손에 쥐게 되는 책이 성장소설 이다.
이 소설도 아마 그쯤에 분류될만한 책이지만 그리 편하진 않다. 성장소설에 분류된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인지 이상하게도 희망조차도 가질 수 가난한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작든 크든 억지스럽게 희망을 얘기하며 끝을 맺는다. 이런 아이러니함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그 희망을 찾아 읽게된다. 헐리우드식 영웅주의적 영화가 싫으면서도 보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작가의 통찰들은 마음에 들었고.. 누구나 이해할 수있는 수준의 글이라 읽기도 쉬웠지만..찜찜함이 남는 건 어쩔수없다.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자란 아이가 고등학교 때 현실에서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우등생과, 발레리나를 꿈꾸는 여고생과 같은 학교를 다닌 것은 불가능할테니... 초등학교도 들어가기전에 세상은 이미 나뉘어져 있을테고..
소설에선 주인공 자체도 자신이 처한 사항이 크게 개선되리라 생각지 않으며 조금 더 애정을 둘 상대를 데리고 오면서 마무리 짓는다. 어떻든 해피엔딩인 거다. 근데 삼십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이 소설의 이런 희망이 싫어진다. 이 아이가 현실에선 어떤식으로 살아가게 되고 어떤식으로 인생을 막내릴지 뻔히 보이기 때문에.. 이미 사회에 대한 깊은 체념으로 어떠한 투쟁도 보이지 않고 거기에 대해선 전혀 논하지 않고... 단지 그냥 그걸로 됐다.. 는 말에 너무나 우울해졌다.
- 나는 그렇게도 끔찍해하던 동정이 내안에도 있다는 것을 지금 막 알게 됐다. 알 거 다 알아 닳고 닳은 내게도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 거다. 이게 사랑으로 바뀔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원래 변덕스럽고 말도 안되는 것이니 오히려 희망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세상이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답지 않냐고 묻는 노래는 무척 아름답다. 그냥 그걸로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