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속세를 벗어난 어느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자 모습입니다. 현실의 시인은 스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 같지만 시인에 대한 이미지는 수도원에서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수도자 같습니다. 그것은 먼저 시인의 얼굴로부터 오는 이미지 때문일 것입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시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환한 웃음만은 아닌 웃음을 가볍게 짓고 있습니다. 넓은 이마는 지혜를 담뿍 담고 있는 듯합니다. 미처 깎지 않은 듯한 수염도 수도자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시인의 철학적 깊이를 갖춘 작품 또한 수도자 이미지를 굳힙니다. 제가 보기에 시인은 우리나라 시를 철학적 경지까지 끌어올린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시인의 작품이 철학적 경지까지 다다랐다 함은 인간에 대한 탐구가 존재론적인 깊이와 사회적 넓이를 담고 있다는 말입니다. 존재론적인 깊이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면서 죽음과 주검에 대해 적나라하게 맞대면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회적 넓이는 현대 도시에서 사는 인간의 불안과 공포와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번 시집에서는 비중이 적습니다. 자신에 대해 성찰하면서 먼저 드러나는 모습은 누추함입니다. “감각을 벗어나 흘러가는 / 어떤 흐름을 /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 ”(「조개껍질」)가는 자신의 모습이 “더러운 거인 같”(「그림자」)기도 하고, “누추하게 장수하는 하루살이”(「백세주병이 버려져 있는 해질녘」)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 나는 詩의 허물이나 되는 것일까”(「여울에서」)라며 뇌까리게도 되고, “이미, 많은 내 숨결은 / 나 아닌 숨결이 되어버렸다 ”(「아지랑이」)며 탄식하게도 됩니다. 시인의 이러한 성찰은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는 행동을 낳습니다. 그리하여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 껄껄걸 웃을 만큼 / 낙천적인 해골은 누구인가? ”(「거울」)라며 묻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면서 / 모든 것이 / 나인 ”(「거울과 눈」)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더불어 죽음과 주검에 대해 고개 돌리지 않고 적나라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유골보관함 속의 / 뚜껑 덮은 유골단지들도 모두 / 투명한 유리항아리로 바꿀 것을 제안 ”(「태양의 납골묘」)하기까지 합니다. 그림자 개울에서 발을 씻는데 / 잔고기들이 몰려와 발의 때를 먹으려고 덤벼든다 / 떠내려가던 때를 입에 물고 서로 경쟁하는 놈들도 있다 내가 잠시 / 더러운 거인 같다 물 아래 너펄거리는 / 희미한 그림자 본다 그 너덜너덜한 그림자 속에서는 / 잔고기들이 천연스럽게 헤엄친다 어서 딴 데로 가라고 발을 흔들어도 / 손으로 물을 끼얹어도 잔고기들은 물러났다가 다시 온다 시치미떼기 물끄러미 철쭉꽃을 보고 있는데 / 뚱뚱한 노파가 오더니 철쭉꽃을 뚝, 뚝, 꺾어간다 /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며 내뱉는 가래침 가래침이 보도블록과 지하철역 계단 / 심지어 육교 위에도 붙어 있을 때 나는 불행한 보행자가 된다 / 어떻게 이 가래침들을 피해 길을 가고 어떻게 이 분실된 가래침들을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가 어제는 눈앞에서 똥 누는 고양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끝까지 똥 누는 걸 보고 이제는 고양이까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수줍음은 사라졌다 뻔뻔스러움이 비닐과 가래침과 광고들과 더불어 도처에서 번들거린다 그러나 장엄한 모순덩어리 우주를 이루어놓고 수줍음으로 숨어 있는 이가 있으니 그 분마저 뻔뻔스러워지면 온 우주가 한 덩어리 가래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