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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3월 벽안의 선교사가 제물포항에 발을 내디뎠다. 여자 선교사, 이 선교사는 훗날 이미 조선에서 선교를 펼치고 있던 언더우드, 우리에겐 친숙한 이름인 언더우드와 결혼함으로써 언더우드 부인이 됐다.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견문록'은 기독교 선교 백주년 되는 해 출간 한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생활(Fiften Years Amog The Top-Knots)'을 수정, 재편집한 책이다.
조선 말 외국 선교사의 책이다보니 읽을 때부터 어느정도 각오를 했다. 서양인, 개신교적인 시각이 강하게 반영됐을 것이고 그러니, 때로는 비하라고 여겨지거나 미개인 취급해서 불편하게 읽혀질 내용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보다는 종교적인 시각이 강하지 않았고, 서양우월적인 내용은 많지 않아서 뜻밖이었다. 언더우드 부인이 정말 비교적 조선을 이해하는 입장을 취했나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이 책은 종교색과 서양 우월적인 시각이 진하게 반영된 몇몇 장은 아예 삭제하고 출판한 것이니, 내용을 여과해서 출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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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견문록'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이 책이 단지 조선인의 생활상이나 선교에 관한 내용만 담고 있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 말의 파란만장한 역사적 사건들과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을 외국인으로서 겪고 이방인, 타자의 시각으로 당시의 상황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가 있었다.
언더우드 부인은 기본적으로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이었던 모양이다. 고국인 미국에 있을 때부터 선교를 위한 봉사에 열정적으로 참여했고, 선교를 위해 의대를 진학해서 미지의 나라 조선에까지 선교를 위해 올 정도인 걸 보면. 거기에 언더우드와 결혼한 뒤에 가마를 타고 우리나라 북부 지방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렇게 겪은 조선인의 민심과 생활, 역사적 사건들을 관찰하고 그녀만의 시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녀가 조선에서 겪었던 사건들만 나열해도 엄청났다.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청일전쟁, 을미사변,단발령,아관파천,독립협회 만민공동회, 고종황제 즉위, 러일 전쟁, 의병봉기,을사 조약 체결 등이었다. 망국 일보직전의 조선의 파란만장했던,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과 특히 일본의 조선 강점 과정을 지켜본 셈이다.
개신교 선교사에 서양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또 그런 시각을 삭제해서 그런지,언더우드 부인의 관찰과 판단은 생각보다는 객관적이라고 할까, 열강이나 일본에 비판적인 점이 눈에 띄었다. 무력이나 물질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제국주의적인 발상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 또한 다분히 종교인다운 발상이지만.
그녀의 조선 관찰이 예사롭지 않았던 데에는 명성황후 민씨의 시의가 돼 친분을 맺었던 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광혜원에서 부인과진료를 담당한 전력에서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언더우드 부인은 철저하게 명성황후를 옹호하고, 정치적 입장까지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녀를 진보적이고 사회를 바꾸고자 한 지혜로운 왕비라고 여기고 있었다. 개신교에게 우호적으로 대해준 정치인을 높게 평가하는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이나 조선의 총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타국인이라는 점에서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이점을 인식하고 언더우드 부인의 평가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초창기 조선 개신교 선교사의 활동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에서 선교하다 건강을 해쳐 젊은 나이에 죽어간 선교사도 여럿이었고, 전염병이 돌았을 때나 어려운 이웃에 대해 박애정신을 보여줬다. 비록 선교의 목적이라고 해도 당시 선교사들이 보여줬던 신앙심, 헌신성이나 낮은 곳으로 임했던 자세만큼은 개신교인이 아니지만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의료나 교육부분에서는 상당 부분 조선이 개화되고 계몽하는 데, 근대성을 일깨우는데 기여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을 돌이켜 보자면 요즘 우리 개신교의 세태에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양적 성장에 집착하며 물질 위주, 세속화돼가며 종교의 역할을 망각하며 대중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은 비교적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더러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언더우드 부인의 애정도 감지됐고, 더러 불편하기도 했지만 앞서 말한대로 일정부분 걸러져서 크게 거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글을 쓰다보니 그 삭제된 원문은 어떤 내용일까. 그 부분을 다 읽게 된다고 해도 지금처럼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에 대한 애정을 긍정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마음 한구석에서 일었지만 애써 눌러두려고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격동의 조선시대를 몸으로 겪었고, 조선인과 함께 했던 벽안의 외국 선교사 언더우드 부인은 조선에서 가정을 일구고, 아들 원한경을 낳았다. 그리고 1921년 서울에서 눈을 감았고 외국인 묘지에서 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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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조선잡기]를 읽으면서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 버렸다. 같은 문화권에 있어도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시각또한 영향을 받나보다. 조선 잡기를 쓴 일본인과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견문록]의 저자 언더우드 부인은 비슷한 시기의 조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다른 해석을 내어놓고 있다.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느냐 그리고 호기심과 다름의 탐구심을 가지고 관찰하느냐에 따라 이토록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호돈. 그녀의 이름은 얼마전 종영된 드라마 [제중원]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미수다에 출연했던 외국인 캐서린이 맡아 열연했던 [제중원]에서 산과를 맡았던 호돈이 바로 이 호돈이다. 그녀는 1888년 제물포 항을 통해 선교사로 온 서른 일곱의 미혼 여성이었다. 이 땅에서 봉사하며 남편 언더우드 목사를 만나 결혼하고 왕비의 친구가 되어 이땅에 남았었다. 그녀가 본 조선 사람들은 어떤 모습들일까. "상투쟁이들과의 15년"을 기록한 그녀의 기록물 속의 민비는 아주 남편보다 훨씬 강인한 정신과 높은 도덕성을 지닌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아주 비범한 외교수단이 있는 여자지만 결혼 선물로 백만냥을 하사할 정도로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조선말을 배우고, 한양에서 의주까지 가마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고 콜레라를 겪고, 왕비의 시해사건을 보고...그녀는 외국인이었지만 우리의 왕조가 붕괴되는 순간 우리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조선잡기]보다 상세하면서도 체험적인 그녀의 묘사속 삶은 창문과 천장, 내실에 이르기까지 관찰된 모습이나 불결한 여인숙과 어딜가나 넘쳐나는 구경꾼들로 인한 불편함등등의 좋지 못한 모습도 포함되어 있지만 낙천적이고 태평스러우며 감정적이지만 인정이 많고 친절한 너그러움을 지녔다고 평가되어 지고 있다. 마치 아일랜드 사람과 조선 사람은 비슷한 것 같다는 그녀의 칭찬이 반가웠다. 좋은 점과 고쳐야할 점, 불편한 점이 함께 적혀 있었지만 기분을 상하게 한다거나 나쁘게 받아들여질 부분은 없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고 칭찬받을 것은 또 기분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지적질 가운데도 애정이 담뿍 담겨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10살때 자신의 나라에서 남북전쟁을 겪고, 40대가 되어 남의 나라에서 망국의 굴욕을 함께 겪어준 그녀에 대한 고마움과 민비시해 사건의 주범 미우라가 히로시마 지방 법원에서 예심판사 요시다 요시다에 의해 석방되는 것에 분개하는 등. 그녀는 이미 피부색만 다를 뿐 우리와 함께 겪으면서 우리의 이웃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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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 저/김철 역 | 이숲 | 원제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1904) | 2008년 11월 | 페이지 320 | 488g | 정가 : 13,000원
이 리뷰를 쓰기 전에 내가 갖고 있는 종교적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나의 의지 없이 세례를 받고 어린 나이에 첫영성체를 치뤘고 중학교때는 견진성사까지 치뤘다. 현재는 신앙과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나, 내 속에 신앙이 아주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천주쟁이를 포함하여 예수쟁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살아 오면서의 욕심많은 목사와 대 놓고 상대 종교를 비방하는 종교 관계자를 보며 자라, 기독교인들에게 약간의 적계심을 갖고 있다. 다 커서는 종교를 강요하는 몇몇 기독교 인물들에게 신물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착하게 살지 않으면서 종교의 입문만을 강요하는 종교가 어찌 종교인지 여러번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님만 믿으면 뭔짓을 해도 천당에 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내가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당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언더우드 부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들의 신념에 박수를 보냈다. 종교적인 책이지만 종교적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땅에 발을 디딘 이 미국인 여성은 조선이 안 밖으로 저물어 가는 시대에 조선에 머물러 따뜻한 시선으로 평민부터 왕족에 이르는 조선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글을 써내려갔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며 조선의 정치인들도 외면하거나 해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해내며 종교적 신념에 따라 조선을 도왔다. 물론, 지극한 애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대한다고 하더라도 숨길 수 없는 기독교 문명에 대한 절대적 우월감과 서양 중심적 편견은 지울 수 없으나 이 기록은 정말 보석처럼 빛이 났다. 읽다보니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싶은 마음과 친일했다고 몰아 붙였던 많은 인물들이 어쩌면 저물어가는 조선을 살리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는 여러 마음이 생겼다. 워낙 역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하는 나이지만 조금은 시야가 트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일본에서는 자극적인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가 스무 해나 되었건만 조선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고요한 아침'에 잠들어 있었다. 그런 한쪽으로 일본은 '떠오르는 해'처럼 일어나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P.280
노벨 문학상 사상자 타고르가 일정 상 일본을 들른 후 한국에 들를 수가 없어서 적어 주었다는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에서 나왔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이 정작 우리만 좋아했었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저 조용하게 잠들어 있는 나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속상하다 정말.
책은 두께에 비해서 가볍고 언더우드 부인이 옆에서 이야기 해주 듯 책이 편안하다. 주석들이 있어서 읽기가 편하고 저자의 오류에 대한 정정 표기도 있어 재밌게 읽었다. 특히나 신문같은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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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별히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언더우드씨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우리나라에 온 의료선교사라는 것. 또 그가 이 나라에 전하러 온 종교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력을 끼친 자이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또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을 설립하였으며 성서번역에도 기여하였으며 왕실과도 교류하는 등 그의 행보들은 굵직굵직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의 아내 언더우드 여사의 그것이다. 사실 나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업적들이 궁금해 이 책을 집은 것은 아니다. 그의 아내가 썼다는 이 책을 통해 서양인이 바라본 내 조국 한국의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조선. 학창시절에는 참 많이 듣고 공부했으며 지금은 심심찮게 시대물이나 사극, 또 다큐멘터리 등에서 당대를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나라의 옛 사정을 적잖이 알고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 동안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민비 시해 사건, 갑신정변, 청일전쟁 등 크고 작은 나라의 대소사를 섬세하게 기록한 또 한 권의 역사 교과서였다. 나는 그저 서양인이 바라본 조선은 어떠했을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이 책은 실로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파란 눈이 옮겨 놓은 조선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내막은 잘 알지 못한채 안다고 믿어왔던 역사적인 사건들.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이웃나라와의 관계들.... 이 책은 낱낱이 그 때를 옮겨 놓고 있었다.
'아마 역사에 대해 기술한 책이니 좀 지루할지도' 나의 첫 마음은 이러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기는 커녕 내 나라 조선의 새로운 이야기들에 깊이 빠져 들었던 것 같다. 당시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듯 생생했다. 내가 보지 못한 내 나라의 모습이 나에게는 생경했다. 마치 아프리카 오지에 구호 활동이나 선교 활동을 나간 자들이 보고 들은 것과 같았다. 미개하고 열악한 삶의 터전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작은 민족들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실지 같은 한국인으로서 선조들의 불결함과 무식함에 대한 언급에서는 슬쩍 속상한 마음이 솟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민족을 사랑의 눈으로 보듬는 그녀와 언더우드 선교사, 또 그 밖에 많은 동지들의 희생과 봉사에 이내 숙연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 전한 것은 종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피부색, 머리색, 눈동자 색은 물론 심지어는 언어까지 다른 동양의 한 작은 나라, 그 안에서는 서양을 배척하고 개혁과 개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동양적인 것만 추구하려 했던 무리들도 있었고 온갖 미신과 허황된 믿음으로 점철된 민족들의 터전에서 그들이라고 왜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들이라고 왜 고국이 그립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들의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기에 이 나라가 한 걸음이라도 빨리 선진화 되었던 것이 아닐지. (혹자는 그들이 가져다준 문명을 달갑지 않다 할지도 모르겠다만은.) 삶의 질과 수준 향상은 뒤로 하고라도 그들이 이 나라에서 행한 많은 훌륭한 사역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이 울컥했다. 순간 목구멍이 얼얼해졌다. 그 대목을 잠시 소개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콜레라에 지천에 퍼져 병든 자들을 위해 밤낮없이 뒤치닥거리를 하는 그들을 보고 "저들은 왜 저렇게 우리한테 잘 해주지?" 라는 물음에 다른 한 조선인이 "우리들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고 답하는 대목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런게 아닐까? 서로 대화할 수 없어도 온기가 느껴지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해주고 섬겨주는 기운이 이 쪽 가슴에서 저 쪽 가슴에 닿아 전해지는 그것이 아닐까 말이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랑이 아닐ㅋ까? 내 나라 작은 동양의 한 나라, 그렇지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사랑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는 후세토록 계속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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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했던 언더우드 부인, 37세에 의료선교에 비젼을 두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품게 되고 오게 된다. 19세기 그때의 조선은 그야말로 혼란기. 청나라, 일본,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등 복잡한 정치상황 가운데 선교를 위해 온 언더우드 부인. 미혼으로 왔으나 조선에서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신혼여행으로 다른 외국인들은 꿈도 꾸지 않은 의주로 둘이 여행을 떠난다. 불안한 상황 아래, 외국인을 꺼리는 조선사람들 때문에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사히 여행을 마친다. 명성황후의 환대는 보통 사람보다 후했던 것 같다. 사실 선교사들에게 후한 선물을 내리고 챙기고 하는 것이 물론 국가를 위해 한부분도 있지만 어쩔 때는 국고 낭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왕비 입장에서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좋은 인상을 주고 언젠가는 힘을 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어쨌든 언더우드 부인은 왕비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내가 왕비에게 깊은 흥미를 느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좀 창백하고 아주 바싹 마른 얼굴에 이목구비가 어쩐지 날카로운 느낌을 주며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총명한 눈을 지닌 그는 첫눈에 아름답다는 인상은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얼굴에서 힘과 지성 그리고 강한 개성을 읽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얘기를 나누면서 보니까 그 생기발랄함과 소박함, 재치 같은 것들이 그의 용모를 환히 비추었고, 단순한 겉모습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큰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가 아주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에 나는 비로소 그가 진정한 조선의 왕비임을 깨닫게 되었다. --45쪽
언더우드 부인의 묘사를 통해 그녀의 왕비에 대한 호감을 엿볼 수 있고, 우리의 왕비가 참 품위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 왠지 자부심도 느껴졌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에 대한 노골적인 적의(?)는 아마도 왕비 편의 입장에서 써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조선 백성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고, 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는 있지만 동양인을 깔보는 듯한, 서양을 굉장히 우월하게 여기는 듯한 느낌은 곳곳에서 표현이 되었다. 원주민이라는 표현도 물론 맞는 표현인데 왠지 우리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못사는 지역을 방문한다면 분명 비슷하게 느꼈을 그런 마음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서민들이 힘들게 살고 어렵게 살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피상적인 모습을 가지고 낮게 보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우리조차도 알기 어려웠던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게 되어 좋았다. 조상들을 묘사한 부분은 재미있었던 부분도 많고, 같은 민족이 아니기에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객관적인 자세한 상황을 알기 힘들었던 시대, 언더우드 부인의 책을 통해 그 시대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기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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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들은 그녀가 쉰 세살이 되던 1904년, 조선생활의 첫15년을 회고 하면서 펴낸 '상투잽이와 함께 보낸 십오년 세월'이라는 책의 내용을 이룬다. .... 그녀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었던 앞서의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비롯해서, 고종 임금으로부터 산골 오지의 촌부에 이르는 숱한 조선 사람들의 초상을 손에 잡힐 듯한 모습으로 그려 내었다.(p315 역자의 말 중에서)
이 책은 연세학당 설립자인 선교사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의 눈에 비친 개화기 조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의 서문을 통해 이 책의 발간 목적이 한국사람들의 관습과 성격, 도덕과 정치의 분위기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게 함으로써 향후 선교사업에 도움을 주고자 한 노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견문록'이란 글자의 뜻 그대로 보고 들은것들을 기록한 책을 말한다. 지은이 언더우드 부인은 1851년에 태어나 1921년에 사망 했는데, 1888년 선교사로 조선 땅에 와서 같은 선교사인 남편을 조선에서 만나 혼인했고, 서른 해가 넘도록 격동기 조선을 바라보고 느꼈다고 한다. 조선이란 나라를 잘 헤아리면서 평생을 살다가 식민지 조선에서 세상을 떠나기 앞서 남긴 글들은 지난날 우리 삶과 사회를 더듬어 보도록 이끄는 값진 문화유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1921년 사망할 때까지 선교활동은 물론 의료사업, 교육사업 등에 전력을 쏟았던 저자의 자세한 기록으로 20세기 초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조선에 대한 기독교를 믿는 여성 특유의 박애정신과 섬세한 관찰력이 특히 인상적이며 특히 저자가 광혜의료원 부인과의 책임자와 명성황후의 시의로 일하면서 일반인은 물론 궁궐에 계신 임금과 왕비까지 가까이에서 지켜 본 그녀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입국하였던 장소인 제물포와 서울의 첫인상을 시작으로 그 당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광과 조선인의 독특한 생활상과 풍속을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격변기의 조선이 겪어야 했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녀의 기록이기에 보다 생생하고 사실감 있게 다가왔다. 당시의 궁중생활의 일면이나 정치상황, 또한 본인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보았던 교육제도, 관료들의 생활상 등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책이 지닌 문화가치라는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의 20세기초의 생활상이라던가 문화史적으로나 인류학적 보고서로서의 가치가 높은 값진 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책을 읽어보고 당시의 외국인에 비친 조선의 모습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1897년 영국의 여성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 이 집필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일생을 여행과 여행기 저술에 바친 작가의 이 책은 '언더우드부인의 조선견문록'의 시기와 비슷한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조선을 방문한 기록을 담고있는 여행기이자 당시 조선 사회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비판서이다. 그녀는 서민에 대해서는 그들의 건강함과 소박함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정도로 좋게 생각했지만, 관리에 대해서는 “흡혈귀”라고 할 정도로 비판적이었다. 서울 및 조선의 첫인상, 왕의 거동, 북한산 여행, 조선의 결혼 풍습, 무속, 단발령 등 조선의 국내 사정과 풍습을 일본, 만주, 연해주 등의 기행문과 함께 실었다. 당시에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출간한 유럽인은 적지 않았지만 마흔이 넘어 대학에서 지리학 강의를 청강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운 여행가의 꼼꼼하고 정확한 기록이 담겨 있다. 같은 여성이고 비슷한 연대의 묘사이니 같이 읽어보는것도 보다 흥미로운 독서가 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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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의 존재를 진작 알았더라면 나의 근현대사공부는 "암기"꺼리가 아니라, "흥미"꺼리였을 텐데 하는, 뒤늦은 아쉬움을 한보따리나 던져준 책이기도 하다. 개항에서부터 해방에 이르는 그 시기(지금은 "근현대사"교과서가 따로 있는 그 시기)에 관한 이야기는 국내의 문제와 국외의 문제가 뒤범벅이 되고, 온갖 사건과 인물들이 뒤범벅이 되어버리곤 했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고, 좀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꺼리가 많을 듯도 한데, 그저 사건이름을 차례대로 줄세우기 하는 것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에 재미가 없었던 걸까...? 이 책은 그렇기에 내게 "타임머신" 같은 책이다.
글쓴이 "언더우드 부인"은 1888년 3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30년전에 한국에 온 미국 개신교의 선교사. 1년 뒤 이미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씨와 결혼을 하고, "서른 해가 넘도록 격동기의 조선 땅에 살면서 기독교 선교 활동 뿐 아니라 의료 사업과 교육사업, 사회 사업 등에 전력했"(책 앞날개)던 인물이다. 이 책의 원전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상투잽이들과의 십오년)]은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한국의 사정과 한국인에 대해 좀더 잘 앎으로서 "그녀가 유일한 진리로 믿었던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는"(p315)데 후배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쓴 것인 듯 하다. 하지만 한국어판에서는 지나치게 종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몇몇 장을 삭제한 것이라 그런지,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정도였다.
"이 책에는 대체로 세 가지의 내용이 서로 어울려 있다. 곧,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 양상과,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 다툼 사이에서 힘없이 몰락해 가는 조선 왕조의 모습, 그리고 당대 조선의 민중의 삶이 외국인의 독특한 시각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p310/편집자의글) 외국인 선교사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당시 조선왕실과 민중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던 그녀의 눈을 통해 본 조선의 모습은 무척 흥미로웠다. "격동의 시기"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듯한 모습이다. 글쓴이와 같은 선교사를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이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그런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조선의 정치현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과 그 아래에서 힘든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조선민중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다. 물론 "역사가도 아니며 인류학자도 아"(p315)닌 선교사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라 더러는 왜곡된 모습이겠지만 말이다. 불결하고, 무지한, 그러나 그보다는 더 순박하고 착한 영혼을 가진 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찬찬히 관찰하고, 그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그녀의 경험담은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폭소할 장면이 있는가하면 한없이 애처로운 장면들이 이어지는 그런 영화..
"이 작은 나라에 호기심을 느꼈"(p19)던 그녀. 신혼여행길에 만난 감당하기 힘들만큼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던 평범한 조선인들의 모습.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이중적 시선(불결,무지/순박),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감상이 얽혀져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아울러 외국인의 눈을 통해 그 시기에 벌어진 정치적 사건들을 바라보는 역사공부까지 겸할 수 있어서 더욱 괜찮은 책이었다.
*오류 ; 30쪽 각주9번에서 김윤식의 생몰연도에 대해 잘못 기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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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록들은 언더우드부인이 쉰세살이 되던 1904년 조선생활의 첫15년을 회고하면서 펴낸 <상투쟁이들과의 십오년>이란 책의 주된 내용이다. 그녀의 나이 서른아홉에 조선의 선교사로 들어와 15년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얘기들이 흥미진진하게 실감나게 펼쳐져 있다. 불과 100여년전 조선은 아직 무지하고 낙후되었으며 세계의 영향력있는 나라들로부터 끊임없이 회유와 침략과 모욕을 받았던 바람앞의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의 표현처럼 '원주민'이란..아직 미개하고 무지하지만..순수를 간직한.. 그당시 우리조선인들의 모습이다. 외국인을 곡마단의 볼거리로 여겨 우르르 따라다니는 장면에서 이제막 문을 삐끔히 열고 있는 조선의 수줍음과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미국의 문명에서 성장한 그녀가 외세의 풍파에 흔들리는 조선에서 생활의 불편함과 질병을 이기고 30년이 넘게 생활할수 있었던건 그녀의 신앙심 때문이었다. 언더우드와 늦은 결혼을 한 '릴리'가 아직 길도 제대로 뚫려있지 않고 탈것도 마땅치 않은 오지로 신혼여행을 떠난것도 그녀의 평생 목적인 '선교'를 위한 것이었다. 가마와 조랑말과 황소를 번갈아 타면서 때로는 도적떼들을 만나 목숨이 경각에 달리기도 하고 쥐와 벼룩과 싸우면서 아직 미개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의술을 펼치고 선교를 하는 생활은 참으로 그녀의 신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으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100여년전의 조선을 둘러보는 일도 흥미진진하지만 고종과 명성황후(민비) 를 만나고 왕족과 외국인의 알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돕는 장면에서는 외로왔던 왕과 왕비의 고독이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나라의 왕이라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감히 눈도 맞추지못할 지엄한 존재임에도 시대의 격랑에 휩싸여 외세에 시달리고 모욕당하는 지경이니..조금만 더 빨리 문을열고 준비를 했더라면 우리의 조선의 역사가 그리 허망하게 일본에 넘아가는 지경은 아니었을텐데.. 선교와 의술을 위해 조선에 온 언더우드와 부인은 단순히 조선의 여행자로서만이 아니라 그격랑의 역사속에 같이 숨쉬고 때로는 역사의 한페이지속을 장식하는 주요인물로 조선에 수많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종교와 의술이외에도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우고 미개를 깨우쳐주기 위해 진실되게 조선을 사랑했던 벽안의 외국인들... 그들로 인해 부정적인 변화도 있었겠지만..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시기에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도 한것이다. 그리하여 언더우드부인은 드라마와도 같은 조선에서의삶을 지성과 종교와 사랑으로 승화시켜 이렇듯 백년후에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있는것이다. 선교를 하는 종교인들의 편견에는 앞뒤가 좀 막힌듯한...고지식할것만 같은 그녀의 글에는 유머도 번뜩인다. 그녀의 초기제목처럼 남자의 상투는 조선의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상징이지만 총명한 여자의 손아귀에 상투가 잡히면 그것은 참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도구가 된다고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아낙이 술취한 남편의 상투를 틀어쥐고 술집에서 끌어내어 집으로 돌아갈때는 가히 그만한 도구가 또 어디있겠는가.. 또한 조선인이 대식가이면 잔치를 기다리는 며칠동안 굶으면서 기다리기도 한다고 적었다. 일본인은 미적인 감각만을 고도로 계발하여 손바닥만한 잔 몇개에다 쥐꼬리만한 음식을 내어놓아서..현미경으로 보아야 할 지경이라고 표현한것에는 그녀의 유머가 보통이 아님을 짐작케한다. 또한 조선사람들은 백원을 벌어 천원어치를 먹고 일본사람은 천원을 벌어 백원 어치를 먹으니 어찌 부자가 아니되겠느냐고 적을때는...100년후 우리들도 먹을것에 이리 아낌이 없으니..달라진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표지의 그녀의 얼굴은 자애로움 그자체이다. 맘좋은 이웃아줌마같은 그녀는 이책의 독자들이 조선은 정치적불안,나쁜정부, 반란,산적떼, 전염병에 시달리는 나라로, 선교사들이 발진티푸스,천연두,이질 따위의 무시무시한 병으로 죽어간 나라로만 받아들일까 걱정하며 단지 이런 일들을 쓰는것은 어려움과 댓가가 크면 클수록 그보상도 더욱더 가치있는 일임을 나타내기 위해 적었노라...며 조선을 걱정하고 있다. 조선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선교사들이..제몸하나 뉘일곳이 없어 근심하던차에 가까스로 마련된 외국인묘지에..그녀도 묻혀있다. 언더우드가 세운 학교는 지금 대한민국의 우수한 학교로 남아 뜻을 잇고 있고 그자녀들 역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조선의 극심의 격동기에 들어와 질병과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과 의술로써 하나님을 말씀을 전파하고 실천한 그녀의 희생과 용감한 모험에 감사드리고 이 번영의 땅밑에 그들의 희생과 사랑과 실천이 있었음을 가슴깊히 기억해 두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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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분이 쓴 글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다룬 내용에 크게 공감을 느낀 일이 있다. 절판 된 책을 만난 기쁨을 표현한 장면이 담긴 글이 특히 기억이 난다. 절판이 되어 오랫동안 찾던 책을 극적으로 만나면서, 이런 좋은 책이 다시 출간 되 길 희망 한다는 간곡한 요지의 글을 표현한 글이었는데, 읽으면서 깊이 공감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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