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이영석의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이란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영국 역사에서 '근대'로의 진보를 분명히 그려낼 수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대체로 근대라하면, <근대적 주체="">, <시장주의>, <자본-축적>, <산업주의>, <합리성>, <국민적 정체성=""> 등을 지표로 삼는데 저자가 직접 영국에 가서 찾아보니 어디에서도 그 지표적 언어들을 명확히 만족시켜주는 바를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푸념을 다시 기억해가면서 이 책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를 보면서 정반대의 방향에서 공유점을 느낄 수 있었다. 공저자 중 한 분인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은 "동아시아에 봉건제는 없었다"라고 단언했던 분이다. 과거에 동아시아의 역사를 보는 시각이 서구적 진보 사관의 틀 속에서 노예고대/봉건중세/산업근세로 단계적으로 이해되던 시각이 잘못임을 주장한 것이다. 서구의 진보 사관을 믿고 영국으로 날아갔던 한 학자는 막상 도착한 곳에서 진보의 역사가 사실상 희미한 것임을 알게 되고 반대로 진보 사관에 근거하여 근대적 모맨텀이 미약했다는 자기 비하가 판치던 이곳에서는, 알고보니 실상 과거에 봉건제란 아예 없었더라는 식의 깨달음 사이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는 듯 하다. 공저자들은 동아시아 전통 사회를 '소농사회체제'로 명명한다. 농업생산성의 급속한 증대로 발달한 향리층이 주자학과 과거제로 구성된 중앙권력과 연관을 맺으며 조선의 양반이나 중국의 향사층을 낳았지만 서구 봉건제에서 나타나는 거대토지귀족은 부재했다. 이는 서구에서는 이 귀족들이 국왕을 견제하는 의회제의 기반세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서구적 근대 모델이 동아시아에서 부상하지 못한 이유가 될 수도 있으나 동아시아 전통 사회를 단순히 '봉건 사회'라고 딱지붙이기는 힘든 형국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서구와는 다른 형태의) 근대적인 양상이 동아시아가 서구보다 훨씬 더 빨리 시작되었다는 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혼자 앞질러가기는 금물!) 이 책은 국민사, 일국사, 왕조사, (서구적) 진보사의 관점에 지나치게 함몰된 기존의 역사 서술에 대한 썩 좋은 대안으로 읽힐 수 있다. 15-16세기는 이전 시대로부터 증대된 생산성과 국제적 교역에 힘입어 동아시아적 퍼스펙티브가 형성되던 시기로 조선 시대의 혼일강리전도로 함께 소개되며, 새롭게 부상한 양반과 향신층의 강면하고 활기찬 기풍이 형성된 시기로 자리매김된다. 17-18세기는 본격적으로 현대 중국과 한국과 연결되는 전통의 형성기로, 기존의 기풍과 체제가 변질되는 국면과 함께 한다. 여기서 청나라 중기의 소설 홍루몽은 지방 향사층의 심성 변질(?)의 증표가 되고, 조선의 경우에는 신분질서의 동요와 함께 雙系적 동족집단에서 父系중심적 동족집단으로의 변질을 주목한다. 개인적으로는 미야지마 히로시 선생이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와 지방 향안에 대한 미시적 탐구로 거시적 변화까지 포착해내는 부분이 좋았다. 본의 아니게 리뷰가 좀 건조했던 듯 하다. 그러나 책마저 건조하지는 않다. 거시적 시야과 함께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도 풍부한 책이다. 개론적 책이지만 개론서다운 따분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한중일의 가족 집단의 성격(집, 지아, 이에)을 비교하여 중간집단이나 문화와의 연관을 추론해 본 부분은 정말 흥미롭다. 덧붙여 공저자들의 지상 대담도 함께 싣고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다. 혹여나 중국과 조선을 한 눈에 포착한 것이 일본 역사학계의 흉계라며 엉뚱한 트집을 잡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조선과>국민적>합리성>산업주의>자본-축적>시장주의>근대적>역사가가> |
| 조선 후기를 결정짓는 가장 큰 사건이라면 임진왜란(1592~1598)을 들 수 있다. 7년간의 전란으로 인해 그 전장이 된 조선은 전국토가 황폐화되고 사회제도를 전반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 전란은 단지 조선 하나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중국의 명 왕조와 일본의 도요토미 정권이 각각 청 왕조와 도쿠가와 막부로 교체될 정도로, 동아시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하지만 물질적인 피해가 컸던 임진왜란보다도 조선 지배층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준 병자호란이다. 조선 전기 훈구파와의 대립 과정에서 ‘사화’라는 탄압과정을 거치면서도 사림파로 성장한 재지 사족들은 주자학을 근간으로 하는 도덕정치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사림파는 몇 개의 붕당으로 분할되고 이로 인해 국제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지면서 임진왜란을 사전에 대비할 수 없었다. 결국 임진왜란 이후 정권은 동인 계열에서 분할된 북인이 장악하게 되고 광해군은 당시 국제정세를 판단하여 새로 만주 지역에서 강성해지기 시작한 후금(후의 청)과 명 사이에서 중립적인 외교를 시도하지만, 인조반정과 함께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중립외교는 중단되고 조선은 명에 일방적으로 기울게 된다. 이는 서인정권이 광해군의 도덕성을 비난하면서 그의 정책까지 함께 비난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결국 이것이 2회에 걸친 호란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병자호란 결과 왕이 직접 신하의 예를 갖추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이는 화이론에 빠져있던 당시 조선의 지배층에는 큰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었고, 이로 인한 청에 대한 반발감은 정책적으로는 ‘북벌’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발전하고, 사상적으로는 ‘소중화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기존에 있던 한족 왕조인 명을 ‘화(華)’로 규정하고, 이민족 왕조인 청을 ‘이(夷)’라고 무시하며, 조선을 한족 왕조에 버금가는 문화적 지위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소중화(小中華)’ 사상은 이후 개항을 맞을 때까지 지속된다. 이 점은 한국사 연구에서 이미 정리되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이민족 왕조인 청 역시 스스로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문화적으로는 한족에 전혀 뒤지지 않다는 것을 한족에게 주지시키면서, 이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한족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고자 했다는 점은 ‘한국사’라는 일국사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분야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러한 탈일국사적인 관점에 있다. 이 책은 중국사와 한국사를 전공한 두 명의 필자가 서로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번갈아 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중국사와 한국사를 반복적으로 배치하기보다는 양국의 역사가 동시대에 서로 교차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라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국이다. 한국은 그런 중국에 편입되지 않고 문화적으로 교류하고 군사적으로 충돌하면서 그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국가다. 따라서 양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양국의 상황이 동아시아 전반의 국제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쌍방이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 지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현재까지는 각자가 자국사에 치중되어 있어서 그런 연구가 부족했지만, 앞으로의 역사 연구에는 이러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의 두 저자가 모두 일본인이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을 모두 ‘타국’으로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중국과 조선의 상황은 중국이 주로 영향을 주는 쪽, 그리고 조선은 그 영향을 받는 쪽에 가깝다. 조선의 상황이 중국사에까지 영향을 준 것은 임진왜란 정도가 아닐까 한다. 조선사 쪽의 서술을 읽어보아도, 조선의 상황이 중국의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는 찾기 쉽지만, 중국사 쪽의 서술에서 중국이 조선의 영향을 받은 부분은 찾기 어렵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보이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지만, 반대로 양국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다루게 될 경우, 양국의 역사를 평등하게 다루지 못하고 조선사는 그저 ‘중국사에 편입된 변방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도 남는다. 또, 조선 후기 부분을 다루면서 식민사관에서 평가하는 조선 후기와 한국사의 식민사관 극복과정에서 나온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비교 등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에서의 한국사 연구에서 기존 식민사관의 극복과정은 인정하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극단적이라는 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일본인 독자를 상정하고 쓰여진 책이기에, 식민사관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학문적인 양심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식민사관을 부정하면서 등장한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도 부정하고 있을 뿐이라서, 막연하게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그 중도를 유지하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이 비록 전문적인 논의를 위한 책이 아니라 양국의 역사를 비교연구하기 위한 개설서적인 의도로 집필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애매한 태도는 이 외에도 몇 군데에서 엿보인다. 비록 아직 논의가 끝나지 않은 사안이긴 하지만, 이왕 언급된 사안이라면 양측의 논의를 좀더 깊이 있게 다뤄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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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모토 미야와 미야지마 히로시의 『조선과 중국 : 근세 오백년을 가다』는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라는 그 부제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조선 왕조와 명․청 왕조 시대를 두 개의 국사로 나누어 보지 않고 동아시아 ‘전통 형성의 시대’라는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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