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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단 한 번 열렬한 순수를 위해
"생에 단 한 번 열렬한 순수를 위해" 내용보기
『철수』의 이야기는 이렇다. 때는 1988년. 대학의 임시직원인 나는 외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가족구성원과 살고 있으나 알고 보면 비루하다. 누명을 쓰고 형을 사는 아버지, 간병일마저도 알콜중독으로 중단한 어머니, 대학도 나오지 않고 컴퓨터 천재도 아니라 살아가기 버거운 열 살 많은 오빠, 현재로서는 꿈을 꾸는 열 살 적은 동생. 집안에서 실질적으로 제 구실을 하는 사람은 나
"생에 단 한 번 열렬한 순수를 위해" 내용보기
『철수』의 이야기는 이렇다. 때는 1988년. 대학의 임시직원인 나는 외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가족구성원과 살고 있으나 알고 보면 비루하다. 누명을 쓰고 형을 사는 아버지, 간병일마저도 알콜중독으로 중단한 어머니, 대학도 나오지 않고 컴퓨터 천재도 아니라 살아가기 버거운 열 살 많은 오빠, 현재로서는 꿈을 꾸는 열 살 적은 동생. 집안에서 실질적으로 제 구실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나에게는 철수가 있으니,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삶의 도식성과 도덕적 우월감을 남기고 가버린 광물성의 남자이다. 나는 군에서 휴가를 나온 철수와 손잡은 후 바로 섹스를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도식은 나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사건의 발단이 철수네 집에서 그의 어머니에게 들켜버린 섹스라면, 중심축이 되는 갈등은 군에 있는 철수에게 그의 어머니가 싸준 닭을 들고 면회를 간 일이다. 군인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철수는 둘이었고, 나는 자신이 만나러온 진짜 철수를 찾기 위해 눈 덮인 산길을 걷고 또 걷는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철수, 동사해버린 여자의 시체 같은 닭을 자꾸 나에게 내밀고. 나는 철수의 닭을 철수가 변을 볼 변소에 버린 것으로 의무를 다하고 집에 돌아와 앓는다. 그리고 1998년, 과거에 스쳐지나갔을, 미래에 또 우연찮게 마주칠 사람들과 뒤엉키며 살아가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일찍이 공무원으로 재직한 바 있는 배수아의 소설에는 가난이 저변에 깔려 있다. 그녀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 고독이라면, 고독과 가난은 마치 쌍둥이인 양 붙어다닌다.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까봐 울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자신과 오빠의 과거를 회상하는 나는 단도직입적이다. 나는 가난해서, 오빠는 친구가 없어서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노라고. 가난은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나 소설이라기보다는 문화 에세이 같은 『당나귀들』에서도 빠지지 않는 소재이다. 카프카의 삶이나 심지어 고골리의 「외투」까지 연상되는 단조로운 일상과 비감한 가난에의 정조를 통해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독과 가난은 어쩌면 한몸일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족을 타인과 진배없이 여기게 된 데 (내 가족은 오래 전에 알았을 뿐이며 앞으로의 시간 어느 모퉁이에서도 만나지 못할 어떤 사람들과 먼 미래의 어느 날에 내가 우연히 알게 될, 지금은 알지 못하는 어떤 불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가.-p.19) 에도 그네들의 경제적인 무능력은 포함이 된다. 나는 바로 그 가난 때문에 여름의 휴가기간도 반납한 채 염료공장에서 일을 한다. 학교 일이 끝나고서는 근처 식당에서 일하느라 범죄사회학 강의 한 번 들을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가난하니까 고독하고, 고독하니까 가난하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삶이 아닐 수 없다. 우선은 철수의 성이 ‘김’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수아는 철수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개입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두 명의 철수 때문에 면회를 바로 하지 못하고 에둘러가는 동안, 김철수는 결코 흔한 이름이 아니라며 역설의 깃발을 내걸은 것. 고요. 감옥 속의 고요. 이 세상이라는 시간의 감옥. 둥지와 계급의 감옥. 결코 타인의 언어로 변화되지 않는 코드의 감옥. 육체의 감옥. 추락하는 순간에도 놓을 수 없는 땀이 밴 손의 감옥. 철수의 감옥.-p.82 나에게 있어 철수란 보편화된 질서가 아닐까. 따분한 것을 권태없이 받아들이는 철수라면, 어떤 부조리에도 항거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기분대로 이 세상을 사는 인종과는 반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정작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비교하여, 나머지 식구들이 딱히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지도 못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삶은 모두 다 감옥에 다름 아니다. 섹스 이후 철수가 나를 향해 갖게 된 책임의식도 결국에는 굴레이자 공식에의 적용이다. 일 더하기 일이 이가 되지 않으면 언제든 복잡다단하게 문제를 제기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세상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있다. 철수, 그때는 내가 너의 닭을 먹을게. 기꺼이 너의 변소가 될께. 살아가면서 한 번은, 어느 한순간만을 열렬히 순수해질 수 있으니 그때에.-p.79 나는 철수를 거부하면서 언젠가 한번쯤은 받아들여야 할 숙명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재미와는 무관한 비극이 도처에 널려 있는 세상이라지만, 철수는 반드시 있어야 할 기준이자 표본, 잣대가 아닐까? 이탈할 궤도쯤은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내 안에 있는 나는 무엇인지, 어떤 추악한 것인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되는 것이 두려워 화형을 행하는 꿈. 이는 90년대에 접어들어 대거 등장한 ‘자기에의 탐구’ 소설 중에서도 배수아 소설의 내피와 외피가 일치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 소설의 계보가 비교적 일맥상통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 본능은 끊임없이 자신을 화두로 삼고저 한다. 갈등은 어디까지나 내부 소행이며, 인물 군상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생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아버지는 독이 묻지 않았을 것이 자명한 종이를 씹어삼키며 ‘왜 죽지 않는가’에 대한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며, 오빠는 저 먼 일본 땅에서 불법체류자로서의 삶에 최선을 다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 다른 아버지, 또 다른 오빠가 있다. 1)은 내가 철수가 훈련받는 곳을 찾기 위해 버스를 타면서 바라본 창밖 풍경이다. 나는 일찌감치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2)는 나와는 정반대의 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검증된 철수라 해도, 거기에는 또 다른 철수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 3)은 1998년 범죄사회학 교수여도, 아니여도 상관없는 사람과 애정행각을 벌이면서 목격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철수가 투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그 옛날 면회를 갔던 날의 어느 한 풍광이 나의 기억을 침입한다. 원한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죽여버리는 비틀어진 성정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로즈가든에 죽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철수도, 인식하는 한 만나지 않았던 지명수배자들도 나에게는 모두 다 불감한 관계. 물론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나와 또 다른 나의 관계는 어떤가? 늬앙스로 보면 또 다른 나의 출현마저도 감흥없이 일어나는 게 영락없이 불감하지만, 내가 나를 본다는 것만큼 극단적인 자기애가 있을까? 한편, 인간은 절대적으로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다.

[인상깊은구절]
1)내 가족은 오래 전에 알았을 뿐이며 앞으로의 시간 어느 모퉁이에서도 만나지 못할 어떤 사람들과 먼 미래의 어느 날에 내가 우연히 알게 될, 지금은 알지 못하는 어떤 불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가.-p.19 2)같은 부분이 반복되는 잘못된 필름처럼 구별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더러운 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집 앞 길에 나와 앉아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울고 있었다. 버스가 여러 번의 모퉁이를 돌아 산길을 넘었을 때 여전히 같은 집 앞에서 같은 어린아이가 여전히 울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아이는 아까의 그 아이와 같은가.-p.59 3)철수는 자라서 철수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나 또한 자라서 나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흰 벼랑에서 떨어진 또 다른 철수와 나는 비 오는 빈집의 창 밖을 소리없이 지나갈 것이다.-p.79 4)그때 어두운 창밖으로 내가 지나간다.~내가 나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지나쳐갔다. 냄새도 없었고 떨림도 없었다.-p.92
d*******s 2006.03.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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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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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둘러보다, '철수'를 추천하는 글을 보고 새삼 생각나서 오랜만에 책장을 펼쳤습니다. 98년에 쓰여진 글이니, 아마도 제가 읽은지 적어도 5년은 지났을 법 합니다.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그만한 세월이 흘러 생각이 바뀐 탓인지 읽는 동안은 낯익음은 느끼는데 뒷내용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책장을 다 덮고 나서야, 아 이런 결말이었지.. 이러니 뒷내용이 잘 떠오르지
"멀리 있을, 나" 내용보기
블로그를 둘러보다, '철수'를 추천하는 글을 보고 새삼 생각나서 오랜만에 책장을 펼쳤습니다. 98년에 쓰여진 글이니, 아마도 제가 읽은지 적어도 5년은 지났을 법 합니다.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그만한 세월이 흘러 생각이 바뀐 탓인지 읽는 동안은 낯익음은 느끼는데 뒷내용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책장을 다 덮고 나서야, 아 이런 결말이었지.. 이러니 뒷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지,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스토리적 완결성이 극명히 들어나는 글은 아니니까요. '철수'는 88년에 있었던 일을 98년에 쓴 책입니다. 그리고 전, 98년에 읽은 글을 05년에 다시 한번 읽어본 셈이지요.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어느 집 어느 순간 어느 자리에... 여전히, 그렇게 존재하고 있을 모습-무의미함. 의무감을 가지려했던 철수라는 이름의 시간, 가지게 됐을지도 모를 미래. 주인공은 미래를 생각하고 살지 못합니다. 과거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인... 가난하고 고독하고 무심한 나날. 주인공의 남자친구인 철수 또한, 그렇게 광물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철수가 '변화'하면서, 시간을 의식하면서, 가장 인상적일- 혹은 그저 그런 날들 중인 나날중 하나인 날이 지나가게 됩니다. 철수가 대변하는 존재론적 깊이 따위야 사실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순간에, 또 다른 나를 만날 기회가 있겠습니까. 이 책에서처럼- 찰나의 순간, 평생 한번 올까한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죠. 그러나 삶에 있어 쉬 만날 수 없다해서, 무의미한 일은 아닌 걸 겁니다. '철수'는 분명 삶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의미있는 사색의 순간을 보여줄 수 있는 책입니다. 책에서 평론가는 배수아씨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라 평했더군요. 사실 그런 문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녀의 소설엔 시리어스한 유쾌함이 있다는 것. 그거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합니다. 물론 느껴지는 것이 그것 하나뿐이겠습니까만, 중요한건 어쨌거나 재미 아니겠습니까. 사실 배수아씨 글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인데요. 재밌는 사실은 '제일 기억에 남지만' '제일 재밌게 읽은 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기억에선 많이 잊혀졌었지만 이 '철수'가 오히려 더 재밌게 읽은 축에 속하지요. 제가 말장난도 좋아하거든요. "날 태워봐. 기름을 바르고 내 몸에 불 붙여봐. 마녀처럼 날 화형시켜봐." 사실 책이란 삶을 잘 포장한 말장난일겁니다.
r****o 2005.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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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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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소설을 처음 접한것은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라는 소설을 통해서 였다. 단 한권의 소설로 나를 사로잡았고 그녀의 작품을 섭렵하리라 마음먹었다. 철수, 중편소설이라 금새 읽을것만 같아 주말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했던대로 그녀의 문체는 술술 읽혀갔다. 그녀의 초기작인듯 싶었지만. 나에겐 전에 읽었던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보다 더욱더 냉소적이며 톡톡 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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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소설을 처음 접한것은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라는 소설을 통해서 였다. 단 한권의 소설로 나를 사로잡았고 그녀의 작품을 섭렵하리라 마음먹었다. 철수, 중편소설이라 금새 읽을것만 같아 주말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했던대로 그녀의 문체는 술술 읽혀갔다. 그녀의 초기작인듯 싶었지만. 나에겐 전에 읽었던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보다 더욱더 냉소적이며 톡톡 쏘는 그녀의 문체에 반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대학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며 밤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가 있고, 그녀의 시점으로 철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철수, 그는 그녀에게 무엇이었을까. 그둘은 그냥 같이 밥먹고 같이 차마시고 영화보고 그것뿐 그 어떤 사이도 아니었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철수의 집에서 그녀는 원하지도 않았고 좋지도 않았던 첫경험을 했고 그로 인해 철수는 그녀를 속박하려 들었다. 그로인해 그녀에게서 철수는 점점 멀어졌다. 책임지고 싶었다는 철수는 이미 예전의 철수가 아니었다. 그녀에겐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고 철수와는, 변해버린 철수와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에겐 전화통화 몇번밖에 하지 않은 얼굴을 알수없는 시간강사가 더 편안한 대상이었으리라.

[인상깊은구절]
아버지, 못을 드세요
m*****4 2004.03.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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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수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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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몇 권의 책을 고르고 담는 과정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김탁환씨의 평론이 보란듯이 적혀 있었다.  김탁환씨가 평론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선택하리만치 그의 열렬한 독자라고 할 수도 없다.  여하튼, 나는 '김탁환' 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는 이유에 적지 않은 비중을 실었고 이 책을 읽기로 하고, 구입했고, 받았고, 읽었다.  그런데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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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몇 권의 책을 고르고 담는 과정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김탁환씨의 평론이 보란듯이 적혀 있었다.  김탁환씨가 평론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을 선택하리만치 그의 열렬한 독자라고 할 수도 없다.  여하튼, 나는 '김탁환' 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는 이유에 적지 않은 비중을 실었고 이 책을 읽기로 하고, 구입했고, 받았고, 읽었다.  그런데 완전 뒷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은 김탁환이라고 버젓이 적혀있던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의 글은 엉터리였다.  김탁환이 아니고 박철화다.  어떻게 박철화가 김탁환이 되어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이전에 나는 단 한 번도 작품의 평론가를 보고 작품을 선택한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가 뭔가 석연치 않은 잘못된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일본 인형같은, 아니면 전설의 고향 촬영을 마친 듯한 배수아의 약간 섬찟하기까지한 흑백사진이 한 면에 실려있다.  이토록 크게 작가의 사진이 실릴 이유는 무엇이지?  사진을 지나 책장을 넘겼다.  <철수>  철수와 영희에서 만난 친근하고 쉬운 철수를 기대했다.  큰 오산이었다.  아니, 큰 오해였다.  철수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배수아를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 책은 내가 읽은 배수아의 작품으로 처음이다.  또한, 마지막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읽고나서 이리도 모를 느낌의 책은 처음이다.  가장 분명한 하나는 뭔가 명확하지 못한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이 내 안에 생겼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책에 관해 무어를 어떻게 써야할지 모를 느낌이다.  두 손 부 발 다 들고 나는 완전 모르겠소이다!     
 
   <철수>는 어둡다.  뭔가 표출되지 않은 분노와 고민이 그득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침침하다.  일본으로 청소용역을 떠나는 오빠, 알콜중독자 엄마, 감옥에 갇혀 가족들이 독이 묻은 편지지에 편지를 써주기를 바라는 아빠.  담담하고 무표정한 화자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 철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슬픔과 고통, 권태로 찬 처연한 현실이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은 환각이 된다.  어디서부터가 환각이며 현실인지.     
 
  나는 작가만의 도식에 사로잡힌 듯한 글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이 딱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배수아의 작품은 더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무슨 아이러니한 일인 것인지.  아무튼 나는 몇 작품을 더 읽어 볼테다.  이 모를 작가와 그녀의 작품세계를 좀 더 들여다보고 싶다 해야할까?  이 작품만 이런 것인지 아니면 모조리 이리도 난해난 모습의 글들인지.  따지고 보면 난해할 것도 없는 글인데 왜 이리 혼란스러운 것일까?  배수아는 단지 친절하지 못한 작가일 뿐인 것인지 아니면 겉멋만 잔뜩 들린 작가인 것인지.  친절하지 못한 작가라는 것은 그녀의 다른 작품을 읽는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 하다.  음....  그건 그렇다손치더라도 겉멋들린 작가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섣부르지 않냐고?  솔직히....  잔뜩 폼잡아 쓴 듯한 느낌을 여러군데서 느꼈는데 억지로 결부시킨 듯한 알지못할 말들(뭔가 심상찮은 느낌의 말들)이나 난해하고 모호한 표현을 즐기는 듯 했다.  어쩌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배배꼬인 말투도 그녀에게 혐의를 두는 내가 유죄일지도.  아무튼 나는 배수아라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해야겠다.
 
        
  "날 태워봐.  기름을 바르고 내 몸에 불 붙여봐...."
   마녀처럼 날 화형시켜봐.  쓰레기 봉지로 날 포장해서 소각로 속으로 집어던져봐. 
   나는 다이옥신이 되어 너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내 얼굴을 면도칼로 가볍게 긋고 스며나오는 피를 빨아봐. 
   고양이처럼 그 맛을 즐겨봐. 
   그래서 나는 피투성이가 되고 싶어.
       
               -  이 글은 책의 뒷통수에 새겨진 글귀다.
                   난 뭔소린지 모르겠다, 아주 몰라.  전혀 몰라....
                   누구 배수아씨의 지인되는 분이나
                   그녀의 작품을 섭렵한 분 있으시면
                   이 여자, 배수아에 대해 말 좀 해주소.
m*********m 2007.07.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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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내 고독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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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에게는 마녀같은 냄새가 난다. 새 학기의 시작때, 나는 왠지 악다구니가 있어져야겠다는 뜬금없는 마음을 집어먹고 엉뚱하게 도서관으로 향했고 웃기게도 집어든것이 그녀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한 문학잡지서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그땐 정말 아무렇지도 않던 것이 다시 읽으면서는 어떤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는것을 느꼈다. 내가 책속의 그녀와 같은 나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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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에게는 마녀같은 냄새가 난다. 새 학기의 시작때, 나는 왠지 악다구니가 있어져야겠다는 뜬금없는 마음을 집어먹고 엉뚱하게 도서관으로 향했고 웃기게도 집어든것이 그녀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한 문학잡지서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그땐 정말 아무렇지도 않던 것이 다시 읽으면서는 어떤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오는것을 느꼈다. 내가 책속의 그녀와 같은 나이가 되었기때문일까. 책속의 '나'가 처한 그 어처구니없이 꼬이는 상황에서의 느낌을 조금은 알것 같았다. 철수 라는 흔하고 흔한 이름에 둘러싸인 불안하고 아슬한 인간 본연의 간극. 나에게 개밥그릇의 요구르트덮밥을 힘차게 먹을수 있게 했던 그녀가 이제는 차갑게 식은 닭시체를 변소에 버리고 있다. 너의 죽은 닭이 되고 너의 변소가 되어줄까, 나는 쓰레기속에서 살았거든...하는 그녀, 그리고 다시는 널 용서하지않겠어 라던 철수, 너무 괴롭구나, 독이 묻은 종이를 나에게 보내다오. 그것을 삼켜버릴테니...하던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에게 못을 삼켜요 하는 그녀...일본의 하수구를 청소하고 있을 오빠, 그리고 게이가 되겠다던 그녀의 동생은 언니 나 박제가 되어가나봐...하며 떨어진 머리칼을 센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서늘하고 무감동한 불특정의 3자들일 뿐이다. 언제나 배고픔과 빈곤을 느껴야하는 사람들...부정하려해도 그것을 숨길수 없다. 매몰차게 암사당하는 슬픈 현실...그러면서도 나는 철수같은 그리고 그녀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까 심히 두렵다. 아직은 모르고 싶은것이 있는것이다....

[인상깊은구절]
피곤. 그렇다. 그때 스물네 살이었지만 나는 피곤했다. 변기에서 일어서는 정도의 쇼크에도 어지러움을 느낀 지는 오래되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면 손잡이를 잡은 채로 서서 잠이 들었다. 립스틱을 칠했어도 감출 수 없는 그 입술의 건조함, 충혈된 눈과 공복의 구토감. 거친 얼굴과 혓바닥의 공포. 지금 내 입술과 손바닥을 가만히 만져보면 묘하게 차갑고 싸늘하며 나 자신에게도 느껴지는 한없는 거리감이 있다. 언제인가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너무 차가와 절망감에 몸이 떨릴 지경이다. 너의 입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달아오르지 않고 너의 몸은 미끈거리는 얼음 같다.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감동을 느낀적이 없는 늑대소녀의 눈동자를 갖고 있다. 너의 심장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보면 텅 빈 허공에 바람소리만이 들린다.' 그렇게,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나는 시간을 살아남았다.
YES마니아 : 로얄 k********r 2004.12.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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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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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여자 아이의 이름은 늘 영희였고, 사내 아이의 이름은 철수였다. 철수와 영희는 다정하고 친숙하다. 교과서 안에서 내가 함께 놀자며 부르는 친구들은 모두 영희 아니면 철수였다. 이 십 여년이 흐른 21세기의 오늘, 철수는 특별한 이름이 되었다. 세기가 바뀐 이 시대의 부모들은 더 이상 자신의 아이에게 철수나 영희라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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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여자 아이의 이름은 늘 영희였고, 사내 아이의 이름은 철수였다. 철수와 영희는 다정하고 친숙하다. 교과서 안에서 내가 함께 놀자며 부르는 친구들은 모두 영희 아니면 철수였다. 이 십 여년이 흐른 21세기의 오늘, 철수는 특별한 이름이 되었다. 세기가 바뀐 이 시대의 부모들은 더 이상 자신의 아이에게 철수나 영희라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고유명사이면서 남자 아이의 대명사격으로 이해되는 ‘철수’를 되뇌어 본다. 배수아가 선택했던 평범한 한 남자, 철수는 나의 남자 친구다.

배수아 소설의 제목은 늘 매력적이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인형, 검은 저녁 하얀 버스, 포도상자 속의 뮤리……. 수수께끼 같은 소설의 제목이 내 눈동자를 스쳐가면, 이미 책장이 넘겨진다. 철수도 그러했다.

철수.

천구백팔십팔년의 나는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의 임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바쁘지는 않지만, 뜨개질을 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하지도 않은 나는 저녁엔 설거지나 청소를 한다. 대학이 방학에 들어가면, 염료공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한다. 스무살 중반의 여린 여자 아이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상을 나는 담담히 견뎌낸다. 불평을 한다거나 지겨운 넋두리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차분한 어조로 혼잣말을 하듯 소설이 쓰여지고 있다. 벗어나라는 무책임한 충고를 던지려는 순간, 그 무의미함을 깨닫고 입을 다문다.

헤어날 길 없는 생활의 초라함이 나를 갉아먹는다. 곧 무너질 듯한 균열을 지닌 것은 집이 아니라 그 안에 몸을 기탁한 나였다. 부서져가고 있는 내 옆에는 철수가 있다. 철수라는 이름이 그러하듯, 지극히 평범한 그는 모든 것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철수는 그저 친구일 뿐이었던 나와의 관계를 특별하게 변화시키려 한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철수와 관계를 가진 후, 나는 철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었음을 깨닫는다. 군대에 간 철수에게 면회를 가는 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철수를 깨닫는다. 이름은 같지만, 내가 사랑한 철수는 이미 찾을 수 없었다.

배수아의 소설은 늘 나를 낯선 곳으로 인도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론 현기증을 동반한다. 괴이함에 두통을 느끼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러나 홍등 아래 전시된 정육점의 육질처럼 처연한 고독과 외로움이 보여 외면할 수가 없다.

k****h 2011.06.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내용보기
나는 배수아를 좋아한다. 그녀의 문장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서 이다. 그녀의 작품중 가장 유명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인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를 읽고선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전에도 그녀의 잛은 단편을 좋아했지만 '나는...' 이 확실하게 나를 그녀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의 심리를 발가 벗겨서 가시같은 문장으로 살에 누르지만, 고통스럽게 긴 연설이 아닌 따끔따금하
"그녀는 살아남았다." 내용보기
나는 배수아를 좋아한다. 그녀의 문장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서 이다. 그녀의 작품중 가장 유명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인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를 읽고선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전에도 그녀의 잛은 단편을 좋아했지만 '나는...' 이 확실하게 나를 그녀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의 심리를 발가 벗겨서 가시같은 문장으로 살에 누르지만, 고통스럽게 긴 연설이 아닌 따끔따금하게 찌르는 그녀의 문장은 위트가 넘친다.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경쾌한 문장으로 글을 쓴다. 김영현이나 배수아와 같은 차세대 젊은 여성작가들이 더욱 그러한 것 같다. 하지만 배수아를 하루키의 아류 작가로 보면 안될 듯 하다. 그녀는 하루키가 가진 쿨한 감성을 지녔지만, 하루키의 부유함에서 비롯된 허무적 감성을 거부한다. 그녀의 소설에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특히 여성)이 쿨하게 버텨나가는 삶의 땀방울이 보인다. 이번에 읽은 '철수'라는 소설은 그녀의 작품중 1998년에 초판된 것으로 초창기의 작품인듯 하다. 여기선 철수의 여자친구(?)가 화자로 등장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현실의 고통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또는 거부하려는 심리, 그리고 현실을 넘어선 꿈의 세계가 동시에 뒤틀려서 펼쳐진다. 이 소설에서 진실과 꿈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메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리지만 그러한 것은 주인공의 인식이 현실을 거부 또는 무시하려는 반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가 무얼 하려던간에 그녀가 인식한 세계는 추잡하다. 철수의 부모님 그리고 그녀의 엄마, 마지막으로 철수 까지 '배려'가 전혀 없지만 위선적인 태도를 그녀를 대하지만, 그녀는 그 모듯것에 진저리는 친다. 오히려 한 번도 대화해보지 않은 한 시간 강사에게 더욱 인간적인 유대감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보인다. 여기서 보여지는 그녀와 그녀의 환경은 우리의 주변과 무엇이 다를지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을 삭제하고 우리의 삶 속에 소설을 투영했을때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동일성에 놀라지 않을까? 배수아의 소설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뉠수 밖에 없다. 어둡고 절망적인 현실을 보여주면서 거기에 비춰진 인간의 '잔임함'을 보여주기에 싫어하는 사람도 아주 많다. 그녀는 '사랑'이란 가치없음을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 '위선'이라고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녀는 '희망'을 꿈꾸게 하기 보단 그 속에 감춰진 '불가능'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배수아의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위선'과 '불가능'을 넘어서 살아간다. 꾿꾿히 살아간다. 하루키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자살하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꾸역꾸역 살아간다. 그 '생존의 집념'이 내가 배수아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철수에서 처럼 주인공은 결국은 살아갈 것이다. 더러워도, 비참해도... 살아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니까. 그것이 배수아 소설의 매력인 것이다. 이 책 철수에서도 그녀의 매력은 살아있었다. redpurple.com 레플

[인상깊은구절]
그렇게,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되어 나는 시간을 살아남았다.
w******e 2004.02.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