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머스 칼라일'이라는 이름은 내가 한참 우찌무라 간조의 글에 빠져 있을 때 몇 번 부딪힌 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크롬웰에 대한 말을 할 때 나왔던 것 같다. 책을 읽어보니 왜 이 두 이름이 가까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칼라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있는 영웅이면서 자신의 이상에 가까운 영웅으로 크롬웰을 강력하게 변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점에서 이 책은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처음부터 책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라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는 점, 저자와의 시간적, 공간적 차이가 주는 제약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 마지막으로 저자는 당연히 알고 있는 것으로 언급하는 기본적인 지식(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식)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이 어려움을 준다. 옮긴이가 책 서두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이 책의 내용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 왔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오해할 만한 소지가 다분히 있는 책이다. '영웅'이나 '숭배'라는 단어는 현대인들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독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에 대한 뛰어난 성찰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어떠한 인간을 말하는가? 칼라일은 인격적 성실성과 도덕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영웅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영웅을 알아보고 그를 존경하고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자질을 가지고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몇몇 영웅들에 대해 강연한 것이 이 책의 내용인 것이다(그가 말하는 최고의 영웅은 예수라는 것이 책 속에 암시되어 있다). 칼라일에 대한 이해, 특히 그의 종교적 배경(기독교 칼뱅주의)과 열정적인 그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읽을 때 책의 내용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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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 선생님의 존함을 알게 된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번역은 반역인가' 를 접한 이후 번역의 매력과 중요성을 실감하며 여기까지 왔다. 박 선생님의 여러 고전 번역서들을 통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나의 자아와 사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흔히들 '철학' 하면 일반인들에겐 사주팔자 보는 약쟁이 같은 인식이고, 종교인들에겐 '오만한 무신론자들' 이란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이 당대에 꾸준한 사색을 통해 자기만의 견고한 사상을 완성한 그들을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제 왕권과 의회정치가 대립하던 중세 영국,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극히 제한되어 있던 시대에서 칼라일 등의 철학자들은 늘 '어떻게 하면 인간이 본질적인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이 '영웅숭배론' 도 그 노고의 결과물 중 하나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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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를 떠나, 역사가의 뇌리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생각 가운데 하나가 “역사는 위대한 영웅이 이끌어 나간다”는 영웅사관이다. 우리가 위인전을 읽고 매스컴에서 방송되는 사회명류의 동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영웅사관의 영향이 적지 않다. 19세기 영국의 문인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은 영웅숭배와 영웅의 유형에 대한 논의로 유명하다. 강연집《영웅숭배론》(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 1841)에서, 칼라일은 영웅은 우주의 질서를 깨달아 성실로써 대응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 논하고, 역사에 있어 개인의 역량을 강조하였다. 그는 11명의 영웅을 신으로 나타난 영웅(북유럽 신화의 오딘), 예언자로 나타난 영웅(이슬람의 무하마드), 시인으로 나타난 영웅(단테, 셰익스피어), 성직자로 나타난 영웅(루터, 녹스), 문인으로 나타난 영웅(존슨, 번즈, 루소), 제왕으로 나타난 영웅(크롬웰, 나폴레옹) 등 여섯 가지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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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은 종종 사람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백이라면 번영에 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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