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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이 개최되고 있는 요즘, 공공시설 어느 곳에서나 삼엄한 경비와 만날 수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협력 증대를 그 목적으로 걸고 있는 APEC 은 궁극적으로 미국 중심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려는 조류와 맞물려 있다. 무역에 있어서의 장벽을 철폐하고, 자본이 보다 증식하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려는 이러한 노력 속에는 노동에 대한 고려가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질을 그리고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최소한의 안전망도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행되는 노동유연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아님이 틀림없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제2 차 세계 대전 이후, 물론 영,미 중심의 선별주의적 모델과 스웨덴 중심의 보편주의적 모델 등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공공부문에 대한 지출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곤 했었다. 하지만 현재 복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낡은 사상 마냥 여겨지고 있다. 복지는 국가경쟁력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를 중심으로 행해지던 수많은 급부들은 해체를 요구받거나 이미 해체되어 버린 실정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국가만이 복지의 주체이던 시대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사회 모든 세력이 복지의 중심으로 우뚝서는, 복지국가에서 복지사회로의 전환이라고 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와 민간은 분명 서비스에 있어서의 차이가 존재한다. 후자에 의한 서비스는 그 질의 측면에서 전자에 의할 때보다 뛰어날 수 있지만 공공성 부문에 있어서는 취약하다. 그렇기에 기존의 서비스는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경제력을 소유한 이들과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 것조차 버거운 사회 저소득층으로 분리되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복지라기 보다는 하나의 특권이자 동시에 낙인찍는 기제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현실은 어느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더욱 아이러니 한 사실은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복지를 지목한 것이 복지에 있어서는 취약하다 말할 수 있는 미국에서 주도적으로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의료보험조차도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다며 거부된 땅에서 거대한 복지를 말할 수 있을지.. 이 역시 미국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전공 교수진 대부분이 미국에서 공부를 했기에, 대학에서의 수업 역시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스웨덴의 복지 모델에 대해 다룬 몇몇 책들이 존재는 하지만, 그 상세함에 있어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복지국가로서의 스웨덴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자세히 담고 있다. 정부중심의 모델에 대해 거부감이 심화되어 있는 요즘, 이 책을 읽는 것이 다소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웨덴은, 1980년대 이후 모델에 많은 수정이 가해졌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로선 본받을만한 점을 지니고 있다. 80%를 넘어가는 기혼 여성의 사회활동율이 보여주듯, 남녀 평등 측면에 있어서만도 스웨덴은 다른 국가를 앞서 나가고 있다. 거기에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듯 매년 증가하고 있는 스웨덴의 출산율은, 출산대란을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하겠다.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였으며 급격한 산업화에 성공한 국가이다.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와중에서도 농민의 수 역시 크게 감소하진 않는, 이 시기 사민당은 적녹동맹을 통하여 자신의 세력을 급격히 확대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증가하는 화이트칼라층을 포섭하기 위하여 이들을 위한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쪽으로 자신들의 노선을 선회하였고, 이는 사회주의화를 선포했던 강령에 있어서의 수정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이는 분명 지금까지도 사민당이 스웨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민당의 선택이 언제나 일사분란하게 행해졌던 것은 아니었다. 페미니즘에 기반한 뮈르달 부부의 전락이 페미니즘적 요소를 다소 희석시킨 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민당 내부에 존재했던 갈등을 보여주는 예 중 하나라 할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의 복지는 하나의 안이 정책으로서 받아들여질 때, 최초의 급진적인 색채가 많이 퇴보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정권 쟁취를 목표로 하는 정당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딜레마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모델의 기본은 항상 카레비와 비그포르스의 이론 틀 안에서 행해졌으며, 렌-메이드네르 모델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그 중심에 두고 있었다. 근본을 잃지 않는 이러한 자세가 있었기에 스웨덴의 보편주의 모델은, 이미 1960년대 폐기처분(?)된, 영국의 베버리지형 보편주의보다도 긴 수명을 자랑할 수 있었다.
물론 스웨덴 역시 남녀 평등이라는 이면 뒤에 감추어진 수많은 성차별적 요소를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와중에 발견했다. 또한 전세계를 강타한 생산력, 국가경쟁력을 향한 집념으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했다. 특히, EU 에 가입한 이후로부터는 지금까지 구축해왔던 복지 모델에 많은 부분 수정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스웨덴은 강력한 복지국가이다. 많은 스웨덴인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곧 자신들을 위한 복지서비스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민당을 선택하고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스웨덴 페르손 총리 역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중요한 것은 세금을 걷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라고... 그런 면에 있어서 이미 복지국가로서의 가시적인 성과(?)를 한 차례 구축했던 스웨덴은 대다수의 스웨덴 사람들이 복지에 대한 필요성에 동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많은 부분 앞서 있지 않나 싶다.
일본인 저자는 마지막 부분을 통해 이러한 스웨덴 모델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국에 시사하는 바까지 친절하게 언급해주었다.
위기는 하나의 기회라고 하였다.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권 안에 두려는 세계의 움직임은 분명 우리에게 하나의 위기이자 기회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체성이 아닐지 싶다. 스스로의 행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을 때, 수많은 요소 중 '복지'도 하나의 요소로 거론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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