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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 이치코의 이름을 믿고 언젠가 한 번 꼭 봐야겠다고 벼르던 ''문조님과 나''였다. 내가 직접 보기 전 까지는 이곳저곳 다니는 만화 관련 싸이트에서 ''문조님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클릭하지도, 제목의 뒷 부분을 끝까지 보지도 않겠노라는 굳은 결심이 사실은 지키기 꽤 어려운 것이었지만 ''문조님과 나''는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조금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망설였던 중요한 이유는 책의 두께와 가격의 문제가 가장 큰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조라는 새의 사육기라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점이었다.
동물이 지속적으로 주인공이 되어 나오는 작품에 쉽게 질리는 편인데 거기에다 사육기, 그것도 새라니. 그런데도 1권 2권을 넘어서 4권까지 가다니. 이것은 아마도 보통 사육기가 아닐 것이다라는 추측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거기에다 제목도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문조와 나''도 아닌 ''문조님과 나''라니. 얼마나 문조를 떠받들어야 문조님(!)이 되는 것일까.
공포를 딛고 책을 집어 드는 것은 정말 결단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책의 두께와 가격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새의 사육기라는 사전 정보는 정정하고 싶다. 이것은 육아기이다. 시행착오와 조금은 나대로식의 육아. 그러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들어가 있는 육아기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부화를 시켜 먹이를 만들어 키운 새에 대한 끝없는 애정은 읽고 있는 내게도 전해진다. 내가 무식해서 칼슘제를 넣지 않았지, 그래서 다리가 부실한 거야 라며 몇 번이고 자책을 하고 있는 작가를 보면 징~~~ 한 마음이 든다.
내가 바쁘고, 때로 귀찮다고, 때로 뭘 몰라서, 때로 잘못 생각하여 내 아이에게 이러저러하게 했었지. 그래서 이러저러한 점이 안 좋은 거야. 라고 순간 곱씹어보며 작가에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다 그렇지. 완벽할 수 없는 거야. 힘을 내라고 하며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화들짝 놀라며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하는 생각을 곧 하기는 했지만.
공연한 감정이입인 셈이다.
사실 이런 내용은 다른 단행본의 부록이나 (원래 출발이 그렇지 않았던가!) 네 컷 짜리로 가끔 키워 넣는 보너스 페이지에나 적합할 것인데 섬세한 묘사와 무한한 애정으로 단행본 - 그것도 4권씩이나, 그것도 아직 완결되지도 않은 - 으로 만들어 낸 작가의 역량에 새삼 놀랄 뿐이다. 문조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때로 어이없기도 하지만 흥미진진하며 세심하여 그것 또한 놀랍니다.
생각해보면 만화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긴 이야기 거리가 될 법하지 않은 소재로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혹은 아기자기하게 끌고 나가고 있는 것일까. 만화이기에 가능한 세계, 만화이기에 용서받는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일까. 놀랍다. 이마 이치코여, 놀랍다. 만화여. 진심으로 거듭 놀라며 과연 문조님 양육기, 혹은 문조님과의 공존기는 몇 권까지 갈까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매 권마다 수시로 지난 과거사의 정리는 안 해 줘도 좋을 것 같다. 과거사의 정리도 한 두 번이지 자꾸 반복되니 또?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저세상으로 가버린 문조님에 대한 애정이 자꾸만 반복을 가져 오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작가에게는 진정으로 문조님일 것이다.
다음 권이 궁금해지면서도 어딘가 떫떠름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아마 그 떫떠름한 느낌은 새를 좋아하지 않고 새의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는 내 개인적 특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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