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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슬픔과 그로인한 사회적 반항이 시에 녹아져 있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입니다. 김병연의 조부 '익순'이 역적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사형당하고, 그 일 때문에 그의 집안은 폐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김병연은 자신의 처절한 운명의 굴레 속에 해를 보기 싫어 삿갓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다니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그의 마지막을 그와 어울리듯, 그의 시와 어울리듯 객사로 끝마쳤습니다.
한자의 수를 맞춰 시를 짓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일 터인데, 김삿갓은 자신의 천재성을 시에 나타내 굉장한 은유와 비유가 있는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리고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의성어를 사용한 전혀 새로운 시도 지었습니다. 틀에 박힌 것에서 탈피한 그의 시가 여태껏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고 할 만 합니다. 어쨌든, 팔도를 돌아다니는 것만도 힘든데 만나는 사람들의 죄와 잘못을 꼬집어 시로 그들을 책망한 김삿갓의 즐거운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삶의 역경과 고난을 만날 때 우리는 운명의 차가움에 주눅이 들어 방 구석에 처박힐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김삿갓은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조그마한 집안에 머물기를 거절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세상 속으로 걸어 갔습니다. 그리고 걸으면서 만나는 세상 속의 부조리를 힐난했습니다. 잘 못 된 것은 잘 못 됐다고 말했고 더러운 것을 보곤 더럽다고 말했습니다. 훈장들의 야박한 심성을 꼬집어 시를 지었고 양반들의 표리부동을 비판하며 여러 시들을 지었습니다. 노인들의 우매함과 고리타분함, 아집 등을 비판하며 시를 지어 그들을 조롱했고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좁은 마음을 비판하며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제겐 너무나 시원한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조선 후기 봉건적 제도 속에서 자유와 정의를 묵과한 채 양반의 그늘에서 그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민중의 삶이 슬펐는데 김삿갓은 그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요즘도 기득권층의 표리부동과 아집과 부패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김삿갓처럼 은유적인 비판으로 그들을 비판하지 않고 절대적 비판으로 재비판을 양성하고만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에겐 김삿갓의 풍자와 은유를 비슷하게나마 따라해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을 수 있는 시인이 정녕 없다는 말입니까?
김삿갓의 삿갓
박진현
김삿갓의 삿갓은 단어의 물통인가. 물을 붓듯 양반의 요강에 침을 뱉네. 삿갓의 얼굴은 정의의 실체인가. 해맑거나 어둡거나 드러나지 않으니. 그 누가 그 속에 있는 정의를 보았는가. 그 누가 그처럼 호기롭게 부정을 꾸짖는가.
김삿갓의 삿갓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네. 몇 백 년전의 양반들이 오늘날도 살아서 백성의 식량을 앗아가고 수염을 기르고 있으니. 내가 김삿갓의 그 삿갓을 뺏어 쓰고 내가 단어의 위치를 조절한 문장을 만들어 공의의 시를 짓겠는가. 아니면 당신이 짓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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