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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위대한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인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톨스토이를 살피며 그가 어떤 사상으로 삶을 살아갔는지 조명한다. 그리스의 시인 아스킬로코스는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것을 알고 있다."라고 언급했는데, 이사야 벌린은 아스킬로코스의 말에 등장하는 여우와 고슴도치의 특징을 구별하고 과연 톨스토이가 어느 동물에 가까운 삶을 살았는지 논거를 제시하며 통찰하고 있다. 아스킬로코스의 말을 상징적인 의미로 접근하자면 여우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고 그에 따라 적극적이고 행동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며 생각의 방향을 넓혀가는 유형이다. 반면 고슴도치는 하나의 핵심을 간파, 이해하여 모든 것들을 이 핵심에 근거한 시스템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유형이다.
작위적이긴 하지만 위인들을 여우와 고슴도치로 구분한다면 단테, 플라톤, 도스토옙스키, 니체 등은 고슴도치형이고 세익스피어, 헤로도토스, 아리스토텔레스, 푸시킨, 괴테 등은 여우형에 속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톨스토이는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울 것인가!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톨스토이의 예술과 사상을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집필한 많은 글에서 자신의 사상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고 그것을 토대로 평가하자면 톨스토이는 고슴도치형이다. 그러나 이사야 벌린은 톨스토이 자신이 드러내고자 했던 자신의 모습, 즉 겉으로 비춰지는 모습과 본질적인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은 차이가 있음을 간파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톨스토이가 그렇게 해야만했던 원인까지 제시하고 있다.
톨스토이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시선은(통일되진 않지만) 소설가로서의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사상가나 철학자로서의 능력에는 의문을 제시하거나 폄하하는 형태이다.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톨스토이를 고찰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그의 역작인 <전쟁과 평화>를 사용하고 있는데 <전쟁과 평화>는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위대한 걸작임이 분명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철학, 이념, 그리고 역사 왜곡은 톨스토이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비판하는 시선이 많다. 톨스토이의 삶을 전반기의 소설가로서의 삶과 후반기의 예언자로서의 삶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특히 후반부의 삶이 그의 사상을 많이 표현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비난과 비판에 시달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일찍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낭만주의, 형이상학, 신학과 같은 구체적 본질은 제시하지 못하는 학문을 지양하고 구체적이고 경험적이며 입증가능한 학문을 추구했다. 따라서 특정 시간과 공간에 발생한 구체적 사건을 기술한 역사에 진실이 담겨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란, 또는 역사서란 사가의 견해에 의해 큰 펀차를 보이고 사서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이 과장되거나 실질적 의미가 없는 사건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회의감을 느낀다. 그리고 변화무쌍해 갈피를 종잡을 수 없는 역사를 마치 아는 것처럼 거짓 선동하는 이들을 맹렬히 비판했다. 톨스토이가 값어치가 있다고 여긴 역사란 당시를 살아간 자들의 일상과 심리를 알려줄 수 있는 역사,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역사였다. 톨스토이는 진실된 역사를 알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진실된 역사란 인간이 제시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기존의 지식인과 역사가를 비난하는 한편 톨스토이 자신은 <전쟁과 평화>에 자신의 역사관을 주입했다. 간혹 역사적 사건을 왜곡하는 우를 범하면서까지 문학의 순수주의를 거부하고 현실과 역사에 관여하고자 한 것이다. 아마도 톨스토이는 철학자의 사색을 즐겼고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랐지만 자신이 비판한 것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거나 그가 주장한 '진실된 역사'가 무엇인지는 설명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고 생각된다.
톨스토이는 일원론적 사고를 지향했고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무엇'을 찾아 헤맸다. 달라 보이는 것들을 분해해 들어가면 공통분모인 어떤 것이 존재하고 이것을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이 형이상학과 신학과 같은 모호함을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도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톨스토이의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되는 몇몇 인물들 가운데 루소, 스탕달, 메스트르가 중요한데, 특히 메스트르는 톨스토이와 심리, 사회, 문화 종교에서 어떤 교차점도 없었음에도 당시의 사상과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놀랍도록 유사함을 띤다. 과학적 사고의 한계를 지적하고 위정자들의 거만과 허세를 비판했으며 모든 사건의 근본이 되는 어떤 것을 찾고자 하였다(메스트르가 신권주의자인 반면 톨스토이는 허무주의에 가까웠으며 이들은 초자연적 근원을 믿었다).
메스트로가 신학적 견지에서 진리를 추구한 반면, 톨스토이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경험에 근거하지만 인간의 한계로 인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의 일부를 알 뿐 인간과 사회의 인과관계나 근본이 되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 톨스토이는 일원론적으로(고슴도치와 같이) 세상을 깨우칠려 노력했지만 그의 천재적 관찰력과 사고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진실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똑똑한 여우가 고슴도치처럼 사고할려는 것으로 비춰졌다. 이미 여우처럼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 고슴도치처럼 더욱 깊게 알고자 한 것이다.
이사야 벌린이 바라본 톨스토이는 고슴도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자신의 명철함에 그는 미치도록 분노하는 여우였다.
톨스토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깨닫고 해결하고자 부단히 고민했다. 이사야 벌린의 말을 빌리자면 "그 갈등을 해소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못한 사람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문학적 측면에서 톨스토이를 접하는 일은 흔하지만 철학자로서 또는 사회학자로서의 면모를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사야 벌린을 비롯한 '전문' 철학자나 평론가는 톨스토이의 한계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많은 학자로부터 비판을 받는 내용일지라도 그의 시도는 신선하고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고슴도치와 여우>의 초반부를 읽을 때는 관심을 두었던 톨스토이의 사상이 여우인지, 고슴도치인지는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작가로서가 아닌 철학자로서의 삶에서 그가 사색하고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그 이상향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을 뿐이다. 결국 인간의 한계라는 숙제를 남기긴 했지만 톨스토이가 자신의 철학을 구축하고 능란하게 표현한 위인이란 점에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일원론, 이원론, 불가지론 등 아직까지 어떤 것도 다른 것을 설득하지 못하고 각각이 믿는 바를 추구할 따름이지만, 개인적으로 이원론(다원론)을 지지하는 입장임에도 인간과 세상을 두루 설명할 수 있는 진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톨스토이는 설렘에 그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 근원에 접근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을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를 통해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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