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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실재론 - 로이 바스카의 과학철학> 이 책은 부제대로 로이 바스카의 과학 철학을 그의 동료인 앤드류 콜리어가 요약, 정리, 비판해놓은 책이다. 로이 바스카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직접 경험한 바는 아니지만, 역자에 따르면 로이 바스카의 책은 매우 난해하다고 하는데 나름 잘 정제된 구성으로 그의 철학을 안내해주는 책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비판적 실재론은 초월적 실재론과 비판적 자연주의의 합성어이다. 1부에서 소개되는 초월적 실재론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해왔다는 사실로부터, 그러기 위해 무엇이 사실이어야 하는가 하는, 칸트로부터 이어지는 초월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관념론과 경험론의 양 극단을 넘어 물자체와 12 범주를 설정했던 것이 바로 칸트의 초월 철학이었다. 그러나 바스카는 칸트의 철학을 넘어서고자 한다. 칸트는 우리가 공통적인 지식을 형성할 수 있는 이유가 우리의 인식 체계의 통일성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는데, 바스카는 지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아닌 세계의 구조라고 말한다. 칸트는 물자체를 여전히 불가지의 영역에 남겨놓지만, 바스카는 이것이 옳다면 지식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식을 탐구하는 이유는 세계(자동적 영역)에 대한 지식을 심화시키기 위해서이다. 만약 그것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지식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바스카는 우리가 세계에 대한 지식을 생산해왔다는 사실로부터,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추론하고 그 세계의 구조는 어떠한지에 대해 탐구한다. 물론 철학은 세계의 구조를 밝히는 성질의 학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스카는 철저하게 기존의 과학적 실천에서 시작하는 입장을 취한다. '성공적'인 과학의 실천에서 세계의 구조를 추론해내고, 과학을 반-실재론, 경험주의, 실증주의, 관념론 등의 공격에서 지켜내는 역할을 맡는다. 철학은 과학을 심판하거나 보증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과학에 대한 옹호적 기능과 비 과학적 철학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과학의 산파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추론을 바탕으로 바스카는 초월적 실재론을 여타의 과학철학들과 비교하여 그 우월성을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초월적 실재론의 입장에서 추론했을 때 세계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 분석함으로써 세계-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꿔놓거나, 적어도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2부에서 소개되는 비판적 자연주의는 초월적 실재론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간과학을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자연주의는 과학의 방법론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이를 인간에 대한 분석에도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으로서 인간 과학의 종별성을 제거해버리는 실증주의와, 이를 거부하는 입장으로서 인간 과학에 과학적 방법론을 허락하지 않고자 하는 해석학적 입장이 있다. 로이 바스카는 이 둘의 입장을 모두 지양하여 인간 과학의 종별성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을 차용하고자 한다. 따라서 자연주의적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2부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실험이 불가능한 인간과학에서 과학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이다. 바스카는 층화된 세계에서 자연과학이 지식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실험이라고 말한다. ('가장' 이라는 말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과학에서는 실험이 불가능한데, 그것은 연구하고자 하는 기제를 제외하고 다른 것들을 제거하거나 중립화시키는 폐쇄체계의 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지만, '인간'이라는 종과 사회의 특성에서도 기인한다. 인간은 '자유'를 가지기에 폐쇄 자체가 불가능하며, 우리는 사회 속에 살아가고 이론 또한 사회에 포함되기에 사회를 고립시킬 수가 없다. 이러한 인간 과학의 한계를 극복하여 '과학'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설명적 비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이도 쉽게 제기하는 논리적 비판은 '성급한 일반화'와 '사실과 가치의 혼동'일 것이다. 우리는 사실과 가치를 두 개의 완전히 독립되고 서로 교류할 수 없는 영역으로 취급하는데, 바스카는 이를 비판한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 믿음은 지식에서 기반한다. 또한 우리는 이미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그 윤리적 기준이 충족이 안되는 상황을 그 '믿음'으로서 정당화하고 살아간다. 인간이 이러한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지식에 대한 반역은 믿음에 대한 반역으로 이어지고, 윤리적 비판으로 나아간다. '논리적'으로는 가치와 사실은 혼동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출발한다면 지식과 윤리는 구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엽적인 정보를 제외하고 이 책의 주제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했다. 전문 연구자도 아니거니와 일천한 지식으로 인해 오독과 잘못된 요약이 있을 수 있음을 주지해 주시길 바란다. 다만 2017년에 구매한 이 책이 여전히 1판 1쇄에 그쳐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철학의 역할, 인간의 자유, 지식과 윤리, 세계의 구조 따위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면 일독을 권한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로, "철학에 대한 대안은 '철학 없음'이 아니라 '나쁜 철학'"이다. 물리현상이 미치지 않는 자연이 없듯이, 철학이 미치지 않는 인문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와의 상호 교류(분석, 이해, 참여, 비판 등)에서 어떠한 철학을 품어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매력적인 선택지를 제시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2쇄가 나오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