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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가입해 있던 동호회에서 누군가 '두 명의 파블로'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읽으면서 카잘스에 대한 궁금증이 반짝하고 일었었는데 얼마 전 운좋게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게 된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보니 도저히 그를 알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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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게 된 책. 파블로 카잘스의 전기를 다룬 책은 세계적으로 대략 70여 권 정도라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앨버트 칸이라는 영국 작가가 카잘스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전기형식으로 풀어 쓴 이 한 권만이 번역출간되어 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양장도 아닌데다 페이지 수도 적고 무엇보다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는 나로서는 구식 느낌이 물씬 나는 표지에 실망감마저 들어 오래된 책을 너무 비싸게 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억울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받고 보니 나름 9쇄를 찍은 출판사의 스테디 셀러 도서라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는데 아마도 나처럼 꾸준히 파블로 카잘스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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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카잘스는 오랜 세월 피아노를 연주해왔는데 80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매일 아침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중 두 곡을 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고 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확고한 원칙 주의자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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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알려주는 가장 완벽한 기교의 정석. "가장 완벽한 기교란 전혀 기교처럼 보이지 않는 기교다."
누군가 가장 완벽한 연기는 연기하지 않는 것이라 했던가.
그것은 다시 말하면 감동을 주는 예술이란 재능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열정 또한 비범함을 타고나야 비로소 제대로 발현되는 것인가 싶다. 어린 나이에 이미 거장의 면모를 갖추었음에도 평생을 음악가로서 어떤 곡을 연주하는 데 있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 무엇인가를 연구했다는 카잘스는 스스로가 그 좋은 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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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카잘스의 명성에 걸맞게 당대 최고라 불리우던 이름들, 외젠 이자이, 자크 티보, 알프레드 코르토와 같은 전설적인 연주자들 외에도 그가 음악을 하며 만났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 동료들에 대한 찬사도 흔히 볼 수 있는데 특히 '가레타'라는 작곡가에게 느꼈던 연민을 회상하는 부분은 카잘스의 천성적인 선한 마음씨와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가레타는 안타깝게도 40대 후반에 사망하게 되는데 카잘스는 그의 아내가 일생동안 오케스트라에서 지급되는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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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 박사와 우정을 나눈 일화도 뻬놓을 수 없다. '슈바이처 박사'라고 하면 어릴 적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만났던 인물이어서인지 카잘스보다 훨씬 이전 시대를 살았던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와 서신을 왕래하고 직접적 만남도 가졌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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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구보다도 카잘스와 함께 한 수많은 음악 친구들과의 일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외젠 이자이와의 추억이었다. 당시 이자이는 이미 연주를 그만 둔 지 한참이나 지난 상태였지만 카잘스는 그의 은퇴무대로 열렸던 마지막 연주회가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수준이었고 이자이 또한 그로 인해 몹시 괴로워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콘서트를 몇 달 앞두고 직접 브뤼셀로 찾아가 그를 설득한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건 이자이에 대한 카잘스의 깊은 우정도 우정이지만 아버지의 연습과정을 지켜본 아들이 카잘스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그가 '비극'이라고까지 한 외젠 이자이의 축제곡 준비 과정이다.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며 전설적인 명연주자로 칭송받는 그가 단 한 번의 연주무대를 앞두고 음계연습을 몇시간씩 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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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카잘스 하면 첼로와 함께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르는 것이 크게 두 가지라 볼 수 있는데 바로 그가 태어나고 자란 땅 '카탈루냐'와 첼로를 무기로 일생을 건 투쟁을 하게 한'스페인 내전'일 것이다.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이기도 하며 곧 그의 전 생애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두 개의 대주제라할 수 있는데 먼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거의 모든 행간마다 묻어나는 카탈루냐와 그 곳 사람들에 대한 긍지와 깊은 애정이다. 자신의 연주회에 오는 청중들이 조국 경제 성장의 최일선에 있는 노동자들이 아닌 기득권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같은 '노동자' (그는 자신을 '예술계 노동자'라 칭했다)의 입장에서 그저 아쉬움을 느끼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갖 모험과 좌절을 감내해 가며 기어코 노동자들을 위한 오케스트라를 설립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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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인 '스페인 내전'은 나로 하여금 카잘스의 생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출발점으로 세계 대전의 규모에 가려져 제대로 알지 못하고 넘어간 세계사의 단면이다. 독일 나치당의 히틀러와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 무솔리니의 지원을 등에 업은 프랑코가 국민투표로 결정된 정부에 반대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전 에스파냐를 전쟁의 광풍속으로 몰아 넣음으로써 2차 세계대전의 단초가 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프랑코가 이끄는 반란군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폭적인 지원 외에도 영국과 프랑스같은 유럽 강대국들이 히틀러와 맺은 조약에 의한 외면 덕분에 초반의 열세를 뒤집고 이내 세력을 키워가다 결국 3년 만에 수도 마드리드까지 함락하게 되면서 스페인에 오랜 독재 국가 시대를 열었다. 이로 인해 카잘스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신과 같은 이유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공화국 정부군과 그들을 지지한 민간인들처럼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인'프라드'에서 기나 긴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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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잘스가 '세계의 진정한 양심'이라 일컬었던 슈바이처 박사에 대한 또 한 번의 언급. 그가 음악적 완성 만큼이나 강력하게 염원한 것은 에스파냐에서 독재가 청산되고 카탈루냐가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는 것이었겠지만 그 골자는 모두 '자유와 평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음악가로서의 싦을 선물받은 댓가라 하기에도 너무나 고단하고 험난했던 카잘스의 긴 인생여정을 들여다보며 생전에 그가 그토록 바랐던 프랑코 독재의 종식과 자유 민주 국가로서의 스페인의 현재를 지구 반대쪽에 사는 나는 아무런 비용없이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좋은 시대, 좋은 환경에 태어나 편하게 사는구나 싶은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 모른다고 하더라도 명연주자로서의 역할 또한 더없이 충실했던 카잘스이기에 음악과 음악가들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 확신한다.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이 책이 리커버판으로 새로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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