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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역마살이 있나 봐'
이런 생각 한 번이라도 안 해 본 사람 없다. 나도 그랬다. 어떤 인류학자가 그랬다지. 인간은 일상의 세계에서 일탈하고 싶어한다고. 하지만 일탈에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게 인간이란 존재의 숙명이라고. 그러니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특이해서 역마살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에 역마살이 있는 게 당연하다.
산을 좋아한다. 맛집 찾아 다니기, 유럽 베낭 여행, 아키하바라에서 피규어 구하기, 이런 류의 여행말고 그저 산을 좋아한다. 왜?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는데, 산에 가는 이유를 어찌 알꼬. 다소 거만하게 들뢰즈의 개념을 빌려 온다면. 노마디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에 소백산에 간 이후로 한번도 여행에 임한 적이 없다. 다만, 여행을 향한 욕구를 책으로 갈음했다. 비록 내가 전혀 좋아하는 컨셉이 아니었지만 아시아나 항공의 승무원 이야기를 담은 『그녀의 비행기 타는 법』, 자전거로 전국일주한 『두 바퀴로 대한민국 한 바퀴』를 읽었다. 그녀들의 맛집 기행과 해외여행은 전혀 부럽지 않았지만, 자전거로 서해, 남해, 동해를 돈 커플의 이야기는 심히 부러웠다.
그리고!
이 책.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은 나의 시샘을 무럭무럭 자라나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예전보다 가기 쉬워졌다곤 하나, 히말라야는 가벼운 기분으로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여기서 공간의 성스러움이 확보된다. 게다가 저자는 법상 스님. 저자의 성스러움까지 덧붙여졌다. 여기서 미리 밝혀두지만, 난 인류 사상 최고로 지혜로운 사람은 나가르주나라고 생각하기에 불교와 관련된 것을 아주 좋아라 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행복했다.
많은 여행책이 욕망의 긍정을 이야기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눈을 만족시키고, 뉴욕 레스토랑에서 혀를 만족시키고, 후지락페스티벌에서 귀를 만족시키고, 그곳에 갔다 왔다는 기록이 타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갈구를 만족시킨다. 싸이 사진첩에 @New York, @Paris, @Tokyo라는 별도의 폴도를 생성하는 이유도 결국 욕망을 긍정하는 행위이다.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의 저자인 법상 스님은 히말리야를 걷는 내내 말한다. 아상을 버리라고. 아집을 버리라고. 욕망을 버리라고.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경쟁을 부추기고, 내 생각만 옳다는 집착이 갈등을 만든다. 이러한 법상 스님의 생각은 불교적이긴 하지만,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없다. 가부장제와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에코페미니즘이나 타자의 긍정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지향과 궤를 같이하기 떄문이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굳이 스님이란 정체성이 없어도 히말라야를 걸으면 나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법하다. 히말라야 앞에서 인간은 더없이 나약하고 소소한 존재이다. 동네 뒷산에서 올랐을 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고층 아파트라도 정상에서 보기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레고 장난감보다 작아 보인다. 하지만 우린 레고 장난감보다 작게 보이는 저것을 갖기 위해 평생 아등바등 살다 행복이란 게 국어사전에 있기나 했나요, 하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허무한듸.
저자는 환경에 관해서도 주의를 환기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5,000m 정도에 만년설이 흔했는데, 이제는 7,000m 넘는 지대에 가야 만년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학자에 따라 의견은 다르지만, 보통 지구 온난화 탓이라고 한다. 스님은 불편한 삶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추우면 난방 기구를 틀 게 아니라 옷을 더 껴입고, 더우면 땀 좀 흘리면 된다고. 맞는 말이다. 회사 사무실도 여름엔 추워 죽겠다고요 ㅠㅠ
또 한가지 주목할 대목은 스님의 시선에 비친 제3세계 사람의 빈곤하지만 해맑은 삶. 히말라야 트래킹에는 가이드나 포터가 필요할 경우가 많다. 이들은 현지인, 그러니까 네필인이다. 돈 있는 세계에서 온 여행객의 시중을 더는 모습이 보기에 그다지 좋진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물질적 풍요와 행복은 상관 없다는 결론을 섣불리 낸다면, 이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다른 변형일 수 있겠지만. 충분히 일리 있다.
자본주의 세계로부터 유입된 관광수입이 네팔을 움직이긴 하지만, 네팔은 상대적으로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물결에 깊숙이 휩쓸린 상황은 아니다. 전통사회에선 공동체가 공유하는 세계관이 존재했다. 네팔은 힌두교와 불교. 이들 세계관은 모두 해탈과 물질은 1/n에 비례한다고 가르친다. 즉, 덜 소유할수록 행복해진다.
한국에도 익숙한 가르침이다. 얼마전 타계하신 법정 스님의 대표작이 바로 「무소유」였다. 물론 대학교 철학과 전공 수업에서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힌두교와 불교가 주장하는, 행(行)하나 집착하지 않는 삶은 체제를 옹호하는 권력 지향적 이데올로기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너무 삐딱하게 보고 싶지만은 않다. 그저, 적당히 소유하고 많이 포기하는 삶을 바란다.
서둘러 결론을 맺자면. 이 책은 참 멋진 여행기다.
덧. 배경이 명품인 덕택인지, 스님이 직접 찍은 사진 한 컷 한 컷이 모두 작품이다. 나도 DSLR 사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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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의 반은 성취한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히말라야로 떠났다는 티베트의 위대한 성자 밀라레빠의 외침을 듣는 순간, 저자는 모든 시간과 우주가 정지된 듯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밀라레빠의 말에 홀린 듯 네팔과 희말라야를 찾았다. 이런 사실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이 단순한 여행기나 트래킹 기록서가 아니라는 것을 넌지시 암시해주고 있다. 그랬다. 약 이 주간의 히말라야 트래킹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본 구도의 시간이었고, 이 책은 내면의 히말라야로 떠난 여행기였다. ‘여행’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아주 낭만적인 상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여행은 어떤 낭만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는 못해봤던 고생을 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러 가는 것이다. 고생이나 불편함 속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아가 더 폭넓어지고 자연이나 타인에 대해서도 더 관대해지게 된다는 의미다. 이것은 여행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렇지만 성자 밀라레빠의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의 반은 성취한 것’이라는 말과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인 법상 스님은 ‘트레킹은 흡사 구도자들의 수행의 길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걷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생각을 비우고 무심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주 중요한 수행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군데군데에서 이 말을 증명하는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무거운 몸을, 한 발도 내딛기 힘든 묵직한 몸을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해 본다. 아픈 내가 힘겹게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 어떤 한 존재가 그저 걷고 있음이 보인다. 아무런 생각도, 해석도, 판단도 붙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 상태를 바라보며 걷는다. 신기하게도 몸은 건강하고 쨍쨍할 때보다 이렇게 주춤거리며 아플 때 지켜보기는 한결 쉽다. 그리고 그렇게 아픈 가운데에도 아픔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아프지가 않다. 그저 아프다고 이름 붙인 어떤 현상이 거기에서 전개되고 있을 뿐. 오히려 그 느낌을 지켜보면서 한편에는 미묘한 즐거움이랄까, 바라봄에 대한 깊고 내밀한 차원을 누려보게 된다.
법상 스님은 이처럼 묵묵히 한 걸음씩 떼는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진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해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쓸데없이 현재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그리고 저자가 트래킹을 하면서 만나게 된 히말라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들은 가진 것이 거의 없어도 불평하지 않고, 우리가 보기에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이 느끼고 있는 행복의 끄트머리에나마 감히 내가 느끼는 행복을 갖다 댈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행복이란 무엇을 많이 가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에 달려있다는 것 같다.
히말라야에 직접 갈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우리의 내면에도 광활한 히말라야가 있다. 다만 아직 발을 내딛지 않았을 뿐. 욕심 부리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씩 내면의 히말라야를 향해 나아간다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바로 내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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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의 반은 성취 한 것'이라는 말을 남긴 티베트의 위대한 성자로 알려진 밀라레빠(1052~1135)는 12세기 위대한 시인이자, 뛰어난 수행승이었다. 다른 성자들이 여러 생에 걸쳐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반면, 그는 단 한생을 통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법상스님은 '밀라레빠'의 말에 홀린 것처럼 네팔과 히말라야로 구도자의 수행의 길과 다름없는 여행을 떠났다.
누구나 여행을 꿈꾸고 그것이 이국적인 정취의 해외여행이라면 마다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시간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로 여행을 포기하거나 보류하게 된다. 나 또한 매일매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일상에 갖힌 사람중 하나이다. 스님이 직접 촬영한 수준급의 사진과 함께 읽어보는 글들은 직접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상상속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 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나에게 여행기는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읽는 내내 누군가의 삶을 엿보고 누군가의 그런 삶을 동경한다는 것 역시 설레는 일이다. 무언가에 매력을 느끼고 그사람 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은 실천만 뒤따른다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스님이 2주에 걸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과정이 담겨있다. 특히 여정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지도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일정별로 함께 여행을 다닌 느낌이 든다. 여행기를 읽다보면 어떤 책에는 지도가 들어 있지 않은 책도 간간히 만나게 되는데 이런때에는 다른 한손에 지도를 들고 열심히 여정을 따라가야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그래서 이런 작은 친절을 베풀어주신 스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사랑은 애잔하다" 사랑과 소유를 동격으로 여기는갓에 대해 이 세상 그 어떤 대상이 영원히 '내 것'일 수 없다는 말씀과 집착과 소유를 동반한 사랑은 그 끝이 언제나 고통과 슬픔일 수 밖에 없는 태생적한계를 안고 있다고 말씀하신다.(p.29)
루쿨라에서 만난 한국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그를 그리워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애잔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마음으로 다가온다. 스님은 '사랑하되 집착하지 말라'라고 사랑의 방식도 불교의 설버을 빌어 이야기 한 대목이다. 사랑은 '내 갓'으로 만들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아집(我執)을 놓아버린 순수한 이타적인 마음,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벌써 떠났는데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와닿을 만한 '차원 높은 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옛날부터 있던곳들이 그대로인곳에 가면 모든 것이 그대로임에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히말라야도 이제는 개발과 발전으로 조금씩 원형의 모습들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염려해야 한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법상 스님께 묻는 트레킹 Q&A는 앞으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한 트레킹여행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어 유익할 것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생활인들이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것은 꼭 필요한 삶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티베트의 위대한 성자 '밀라레빠'와 같이 사바에서의 삶에서부터 수행과 전수, 입멸에 이르기까지 성자의 마음을 읽는듯한 자연과 여행을 주제로 쓴 진지한 깨침의 글을 통해 또하나의 깨닮음의 공간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또다시 습관처럼 어떠한 삶이 바람직한 삶일까?라는 풀리지 않는 근원적인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보게된다. 아무도 대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스님이 느낀 깨달음을 그곳만의 숙연함, 청한함, 무구함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여름 더위와 싸우며 시원한 히말라야로 떠나는 마음의 여행길에 두고두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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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쓰신 책이다 그래서 선입견이 존재한다 종교 이야기로 가득하겠지 근데 왜 " 히말라야야 하고 티베트불교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히말라야에 관한 불교 이야기는 낯설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종교이야기 보다는 산에 오르면서 느끼는 평범한 일상 세속에 물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은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이라 그냥 산행과 다르다 어쩌면 불교의 고행의 작은 체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까운 산에 오를 때 조차도 맨 처음은 쉽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내가 왜 굳이 이렇게 힘들게 올라갈까 ? 그냥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갈까? 아니야 올라 온 것이 아까운데 마저 올라가야지 하면서 갈등을 겪으면서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도 중반이상 올라가면 그보다 얼릉 정상에 올라가려면 급한 마음이 앞선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면 뭔가 해냈다는 즐거운 마음에 모든 괴로움을 잊어버린다 우리의 인생 또한 산에 오르는 과정과 비슷하다 돈, 명예,사랑 을 가지려고 발버둥치고 괴로워 하고 하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면 별것이 아닌 것처럼 그 순간을 지나 조금 떨어져 있다 보면 많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이 힘들 때면 산에 오르라는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다 땀을 흘리면서 산에 올라 발 밑에 도시를 보면 내가 저 조그마한 세상에 그 발버둥을 치고 살았나 하고 자신에 대해 , 세상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히말라야에 오르는 법상 스님도 오르고 또 오르면서 우리가 겪어야 할 인생사에 대해 격려도 주고 충고도 주고 본인의 내면과 사소한 즐거움 등 을 면면히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겪는 즐거움과 편의가 사실은 많은 낭비가 있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우쳐 주고 있다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소박함과 산행의 도우미 청년의 나머지 식구와 동생들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희생하는 행동과 함께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즐거움을 찾는 생활방식에 우리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기 충분하다 우린 사실 너무 많은 낭비를 하고 있으니까 그들의 순수함이 우리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대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갑자기 산을 자주 오르던 시절이 생각난다 몇 년 전 직장을 갑자기 관두고 일에 대한 매너리즘, 사람과의 관계 등 때문에 힘 들 때 주말마다 등산 가방을 매고 집 가까운 산을 오르던 기억이 난다 맨 처음 오를 때 는 그냥 올라가는 것에 집중하다가 몇 주가 지나면서 산을 오르면서 내 자신에 대해 생각도 하고 산의 냄새 꽃 ,흙 등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혼자 다닌 산행이었지만 외롭움 보다 내 자신을 찾는 충만함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산행에서 느꼈던 생각들과 희열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산행의 즐거움 , 내 자신을 찾는 시간을 생각나게 해주어 고맙다 나도 히말라야 까지는 못 갔지만 내면의 시간을 찾을 수 있는 가까운 산행이라도 다시 한번 시작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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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하면 우선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산맥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히말라야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오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산을 오르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히말라야에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엇인가는 있다는 생각이 들고 저도 기회가 되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차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법상 스님이 처음 산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한 단계씩 산을 올라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또한 그 속에서 얻었던 여러 가지 깨달음의 과정이 책 속에 나타내는 히말라야의 다양한 사진들과 어울러져 책을 보는 흥미로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사실 스님이 명상이나 수행에 관한 책이 아닌 히말라야 산행과 관련된 책을 썼다는 게 다소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법상 스님에게는 산행 또한 깨달음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인간은 자연 앞에서 작아진다고 합니다. 이 책이야말로 그 말을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는 책인 아닐까 생각됩니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맥을 보면서, 그 과장에서 만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스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다양한 깨달음의 의미를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법상스님은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를 축소시키는 것, 나를 소멸시키는 노력 등이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것을 느낌이다. 이것은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진정한 삶의 행복에 눈을 뜨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 음성이 가장 가까이 들리는 곳, 태고적 신비로운 성산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아직까지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그곳 히말라야의 여행을 기록한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확 풀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한 책 속 곳곳에서 느껴지는 스님의 깨달음의 과정을 음미하면서, 책속에 펼쳐진 히말라야의 다양한 사진을 접하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낌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겸손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큰 수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순간이 순례길이며 여행길이다. 히말라야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매 순간 순간에 거기 그렇게 언제나 있다’는 스님의 말처럼 굳이 우리 모두가 히말라야에 오르지 않더라도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길을 찾는 것이 히말라야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스님은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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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쿰부 트레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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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정비석의 '산정무한'이 오버랩 된다. 금강산 여정에서의 단풍 예찬,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탄력있는 문장. 적재적소에 한자 낱말과 한시 삽입으로 빚어낸 유창함. 봉우리, 단풍, 협곡에서 우러나는 자연예찬의 우아미와 숭고미. 그리고 호연지기!
법상스님의 히말라야 순례 기행기에서 '산정무한'과 흡사한 유려한 문체들을 발견하며 반가움이 앞선다. 금강산 대신에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향한 여정인 것이다. 법상스님은 아무래도 시인같다는 생각을 문득문득하게 한다. 심오한 불교적 철학을 시적으로 쉽게 표현한.
14일 여정의 히말라야 순례 트레킹. 현지인 포터와 동행하지만 사실상 혼자하는 도보 여행이다. 5000m가 넘는 곳에서 스님이 고산병으로 두통에 시달릴 때면 나도 함께 두통이 느껴지고 롯지(숙소)에서 방을 얻지 못해 텐트 안에서 하룻 밤 견뎌야 할 때면 등허리가 함께 시리다. 그 뿐인가. 트레킹 도중에 최악의 궂은 날씨라도 만난다치면 나도 여행자에 바로 흡수되어 같은 상황을 만난다. 그만큼 생생한 여행 기록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서 고생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이 모여드는 순례자들은 오늘도 칼날처럼 날카롭게 눈부신 히말라야 봉우리를 향해 걷는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설산으로 둘러쳐진 안으로는 여행자들과 빙산이 녹아 흐르는 우윳빛 강물과 포터와 짐꾼과 야크, 그리고 화려한 색깔들로 펄럭이는 룽다와 새들이 모두 하나되어 완전한 풍경을 이루어낸다. 그 자체로 한 편의 명상이다. 스님의 표현대로 '자연이 만들어 내는 장엄한 예술작품이요,엄중한 오케스트라이고, 설산의 대서사시다.'
'걷는 것은 곧 하나 되는 과정,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홀로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의 하나 되는 조화이자 교감이고 우주적인 근원과 연결되는 기도요, 수행이기도 하다. 스님의 자연과의 교감이요, 수행이라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밖에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순례자가 꼭 종교적이거나 영적일 필요는 없으며 반드시 대자연과의 교감과 신비에 대한 뚜렷한 체험이나 신념이 있을 필요도 없다. 그저 산이 좋고, 여행이 좋고, 홀로 걷는 것이 좋으며 작은 감수성이 있다면 길 위의 구도자가 되는 것이다.
특별한 종교가 없으면서도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것이 걷기에 대한 최고의 답이라고 생각하며 걷기 여행에 대한 자부심과 도전의 힘이 커져만 간다. 꼭 히말라야에 올라야만 순례길인가. 스님의 말씀처럼 생의 매 순간순간은 언제나 순례길이며 여행길이다. 히말라야는 우리 인생의 매 순간순간에 거기 그렇게 언제나 있다. 그리고 여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삶의 여행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수행을 하고 명상을 하건만 왜 아직도 세상은 어둡고 힘겹기만 한가. 그것은 둘 다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만족, 소유, 집착, 소유, 애욕을 그대로 둔 채 명상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축소될까 싶은 두려움, 내 돈이 사라질까 싶은, 내 가치가, 내 지위가 떨어질까 하는, 내 인기나 입지가 축소되면 어쩌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잊혀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등. 그 두려움 때문에 삶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아상의 소멸을 즐거워하는 수행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삶에 진정한 자유가 깃든다. 비워야 채워지는 삶의 아이러니. 비워야 채워지고 놓아야 잡히는 무소유가 전체를 소유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는 순례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깨달음의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스님의 걸음 속에는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 고뇌와 갈등에 대한 해결의 답이 있다. 이 한 권은 자체로 오롯한 명상이요, 성찰의 계기요, 머릿속이 환해지며 몸을 가볍게 하는 치유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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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와 관련한 책은 처음 읽어보았다.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는 점도 신기하게 느껴졌고 게다가 스님이 쓰신 글이라서 더욱 삶의 깊이가 느껴지리라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여행이라는 것도 이제는 점차 시큰둥 해져가는 것 같다. 어릴적 기차를 타면 잠드는 시간이 아까워 차장밖을 계속 내다 보고 있었다. 동생들과는 차장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갖고 실랑이를 하기도 많이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정이 2시간이면 2시간 잠을 자고 5시간이면 5시간 잠을 잔다. 사실 여행이라는 것은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과 여행지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도 모두 포함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이제는 뭔가 MAIN이 아니면 시큰둥한 시절이 되었나 보다. 아니 내가 그런나이가 된 것 같다. 준비고 여정이고 당장 여행지에 도착해서의 일이 주 관심사이니 준비와 여정은 그저 귀찮은 과정일 뿐이 되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히말라야 트래킹은 스님에게도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시간이 여유롭게 있다는 것, 밤이 되면 누구도 방해할 사람이 없다는 것, 나와 자연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자유롭게 할까.. 나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낀다. 사실 내가 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제 아무리 히말라야라고 해도 무슨 관심을 갖게 될까 P96 … 그런것을 보면 모든 것은 제 마음이 동해야 하지 아무리 좋은 것도 저 싫다면 그만이다. 그래서 때때로 삶을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방법 같은 것을 알려줘도 그것이 전혀 먹혀 들지 않는 다. … 그래서 진정으로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비우고 활짝 열 수 있어야 한다. 여유로운 삶을 잃고 산지가 꽤 오래다. 이번 주에 휴가를 마치고 나니 당장 내일 월요일에 출근할 일이 걱정이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었는데 어느덧 일이 정말 일거리가 되어버렸다. 나의 젊은 시절 대부분을 바치는 직장을 그저 호구지책으로만 삼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한심한 일 일까. 이럴 때 훌쩍 떠나라고 H 카드는 열심히 일한 당신 ~ 떠나라고 말했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스님이 말씀 하셨듯 일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내 마음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인가 보다 P125 우리의 삶에 문제가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바로 자연스러움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세상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자연스러운 진리의 삶이 내 앞에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다. 설사 그것이 내 생각과 판단에서 따져 본다면 억지스럽고 억울하며 즐겁지 않다고 느끼는 현실 일지라도 그것은 내 판단이요 해석일 뿐이지 사실 본래의 현실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진리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상황이나 사건이 내게 벌어진다. 그것은 그저 중립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상황이고 사건일 뿐이다 나쁘거나 좋은 사건이 아니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다른 일들은 어떤 느낌 일까.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예전의 직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껴질까.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난 후 스님은 차별 없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을 배워간다면 동네 뒷산의 평범하지만 차분한 아름다움 속에서도 쿰부와 칼라파타르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나 역시 대 자연의 품에서 마음껏 자유로움을 느끼고 나면 훌쩍 클 수 있을까? 여행의 즐거움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다녀와서 세상을 보는 나의 시야가 많이 넓어져 있음을 발견할 때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법상스님의 트레킹 책을 읽으며 책속에 포함된 사진도 관심 있게 보았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줄기를 보자니 웬지 서늘한 기분마저들고.. 아마도 십킬로는 훨씬 넘을 듯한 시야는 답답한 서울하늘에 비해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 진다. 좋은 글과 사진을 통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소개해준 법상스님께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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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행기를 보아 왔지만 작가가 스님이라는 사실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책을 휘리릭 넘겨보면 예상했던 것처럼 높은 고도의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이제까지 본적 없는 맑고 진한 파랑의 하늘과 눈 덮인 설산, 바람에 휘날리는 룽다가 보인다.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기 시작한다.
작가는 히말라야 등반과정과 등반을 하면서 느껴지는 인생에 대한 생각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히말라야 등반은 고도와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높은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나 이틀정도 시간을 가지고 몸이 적응할 시간을 줘야하고 섣불리 욕심을 냈다가는 욕심을 내서 빨리 간 시간의 몇 배로 등반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봉우리가 일정에 있는 날은 지레 겁을 먹고 가슴에 걱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작가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가 스스로 그 마음을 경계하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순간 해야 할 일은 발걸음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면서 눈에 보이는 자연과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니다. 그렇게 현재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내 몸과 마음의 상태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아가야한다. 내 몸과 마음이 하는 말을 잘 들으려면 마음을 비워내고 마음이 내는 소리가 울리도록 해야 하는데 비워둬야 할 자리에 너무 많은 욕심과 집착을 채워 놓아서 그 소리를 잘 듣지 못하기도 한단다. 마음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채워 놓았던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게 바로 책 제목인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이다. 가지고 싶어 하는 모든 마음을 끊고 더 작아지려하면 마음의 소리도 잘 들리고 그 상태가 자연스러운 마음가짐이기 때문에 비워낸 상태에서 사람이 유연해지고 평안을 찾게 된다. 버리려하면 채워지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생의 진리와 함께 환경오염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히말라야의 설산이 눈이 없어지는 민둥산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눈이 쌓여있던 설산들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이 다 녹아버려 산꼭대기에만 겨우 눈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편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이 지구에게는 암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기적인 암세포처럼 지구 덕에 사는 것도 모르고 지구에게 폐가 되는 것도 모르고 당장 편한 대로 하고싶은 대로 해버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작가가 종교에 몸을 담고 계셔서 그런지 사물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이 맑고 오롯하다.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지 않고 같이 등산을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듯 담백하게 전달하고 계셨다.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작가와 함께 히말라야 등반을 끝낸 느낌이 든다. 그 여정은 피자나 햄버거가 아닌 시원한 물국수 한 사발을 시원하게 비워 낸듯한 깔끔함이었다. 많은 공감을 했기 때문에 한동안 이 깔끔한 여운이 지속될 것 같다. |
![]() 벌써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의 성화에 남들보다 이른 휴가를 떠나는 사람믈도 있고 다른 해보다 빨리 찾아온 무더위와 장맛비로 습도까지 높다보니 도심을 떠나고 싶은 간절함이 절정에 이른다. 매년 휴가 때마다 유명 피서지로 모여드는 인파로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한다. 천정부지로 솟은 숙박료에 각종 바가지 요금을 감수하고 서라도 꼭 떠나야 할지 짐짓 망설여 진다. 올해는 시원한 계곡에 텐트치고 각자 좋아하는 책 서너권씩 싸들고 계곡물에 발 담그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좋으리라여기며 가족들 의견을 타진 중이다. 여름철에 장엄한 설산 히말라야의 절경과 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법상스님의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이 더위를 잊는데 제격일 게다.
“세상에서는 ‘내가 확장되는 즐거움’에 빠져 살지만, 여행을 떠나 삶을 관조하게 되면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깨닫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작아짐의 즐거움은 곧 정신적 차원의 무한한 확장을 의미한다. 나라는 아상과 에고가 작아지고 작아져 무아(無我)가 되었을 때 비로소 온 우주와 하나 되는 우주적 참된 자아와 만나게 된다.” 사실 알고 보면 이 세상 모든 문제가 '나'로 부터 시작되었으니 세상모든 것이 그저 잠시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가는 것일 뿐. 소유도 명성나 권력도 가족도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잠시 왔다가 100년도 안 되는 잠깐 사이에 사라질 뿐인데 욕심 과 집착 때문에 정작 중요하 삶을 재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여행을 통해 자기의 에고와 아상을 겸손히 비우고 내려놓게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디에도 구속됨 없이 자신의 자유로운 삶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 속의 히말라야이며 생의 매 순간이 언제나 순례길이며 여행길 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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