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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예르다가 죽은 채 발견된다. 주택관리사인 마리안네는 독거노인이나 친인척이 없는 죽은이들의 장례절차를 대신해주는데 예르다의 짐속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악셀 랑네르펠트의 친필 사인이 수록된 다수의 작품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고 이에 호기심을 느낀 그녀는 랑네르펠트 일가에 연락을 취하고 예르다가 그 집안의 가정부였던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예르다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크리스토페르 산데블롬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존경받는 작가의 어두운 과거들이 하나둘 밝혀지게 되는데....
사람들에게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그는 이제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언제 어떻게 진실앞에 당당해 질수 있을지.. 세상 사람들은 그를 찬양하고 눈물흘리며 그 사람의 작품을 읽지만 그사람의 사생활은 누구도 부러워할 뭔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마도 모래판 위에 세워진 자신의 성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모질게 굴었는지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작가가 선과 악을 주로 다루는 문인이 실제로는 비열한 인간이라니...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그 일생의 업적과 흠잡을데 없는 삶이라는 평판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쩜 그런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지...
읽는 동안 쉽게 술술 넘어가기는 했지만 읽는 마음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아마도 불편한 진실때문이리라...
진실앞에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부가 모두 한꺼번에 날아간다면 그 앞에서 이성을 잃게 된다면 누구도 살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심리 스릴러 책을 읽었다. 깔끔하고 개운한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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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골목길을 홀로 걸을때 내 그림자에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 책을 만난 느낌은 책 표지부터 제목까지 온통 음산한 기분이었다. 책을 펼치면 온갖 그림자 유령이 마구 뛰쳐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대작가가 사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주 비열한 인간이었다면 어떨까?'란 저자의 발상에서 출발한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거짓으로 점철된 인생은 더 큰 거짓으로 포장할 수 밖에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과연 인간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멈출까란 생각에 섬찟함마저 들었다.
독거노인 예르다 페르손의 시신을 주택관리사인 마리안네가 발견하고, 그녀의 장례절차와 유품을 정리하던 중 노벨문학상을 받은 악셀 랑네르펠트의 작품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예르다 페르손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놓은 것도 알게 된다. 마리안네는 장례식 참석을 요구하기 위해 유산 상속자인 크리스토페르에게 전화한다. 크리스토페르는 어릴적 엄마에게 버림받고 양부모 밑에서 외롭게 자란 소년으로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메던 엄마는 아닐까?란 생각으로 들떠있다.
크리스토페프가 예르다 페르손과의 연관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세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악셀 랑네르벨트가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악셀 랑네르벨트는 오로지 명성만을 추구한 인간이었다. 그에게 따뜻한 인간미는 전혀 없었다. 자신의 가족조차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분노가 일었는데 화려하게 빛나는 노벨상 그림자 뒤의 본 모습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잔인했다. 노력하지 않고 쉽게 얻은 명성 그 명성을 지켜내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속에서 살아야했으며, 욕망으로 점철되어 잘못 들어선 길은 결국 잔인한 살인으로 더 큰 화를 불러오고 만다.
느리게 이야기는 흘러가지만 전율만큼은 짜릿할 정도로 강도가 쎄었다. 설마설마했던 일들..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숨겨진 비밀들은 느린 이야기의 흐름에 비해 이 책을 손에서 놓치 못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북유럽 문학은 주로 호러물 종류였는데 첫번째 만난 스웨덴 작가의 스릴러물이 이렇게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줄은 몰랐다. 최근에 읽은 스릴러물 중 최고로 손꼽고 싶을 정도로 명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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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게임>제목에서, 어라? 그림자로 게임을 해? 뭔 게임을 할까? 빛하고 그림자하고 대비되면서, 추리할 뭔가가 좀 있으려니 싶었다. 읽는 내내 묵직했는데, 읽고 나니 먹먹했다. 깊고 높은 산, 폭포수같이 떨어지는 구름 계곡, 끝없이 펼쳐진 하늘, 하늘과 맞닿은 바다.. 그런 광대한 자연 앞에 우두커니 있을 때처럼, 먹먹함이 밀려들더니, 파문이 자꾸 더해졌다. 내가 살아왔던, 살아갈 삶이 책에 나온 전반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왠지 실제인 것만 같아서. 데자뷰를 본 듯 했다. 마치 가봤던 장소를 발견한 것처럼. 경험한 것처럼.
<그림자 게임>은 노벨상 수상 작가 가문에 얽혀진 성공, 거짓, 희생, 보상심리, 기대, 탈취, 회피, 무시, 피해의식, 위선, 억압, 본능, 명예, 욕망에 대해, 인물 각자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릴러 소설은 흔히 사건이나 플롯 중심이기 쉬운데,<그림자 게임>은 인물 이야기, 독백, 묘사 중심이었다. 하지만, 인물 심리,생각을 잘 그려 놓아서, 퍼즐 따라가듯이, 오히려 전체 사건과 주제를 잘 떠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높고 맑은 기상과 의지, 예술적 감성를 공유하며 사랑에 골인하는 한 쌍, 드넓은 창공을 마주한 날개로 각자 지평을 펼칠 듯 했는데, 개구리가 더운 물속에 자신도 모르게 익어가듯 빠져나올 힘도 없이 고혈을 빼앗기면서 점점 퇴색해져가는 생활인으로 안주하다가, 남은 것이라곤 자기가 누려 왔던 것, 앞으로도 계속 누려야 할 것, 그게 다가 되어버리고, 결국 속물이 되어버린 여자! 둘러싼 장식 앞 위협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불리한 기억은 희미하게 지워버리고, 죽음만을 고대하게 된 늙은이를 따라가자니, 아쉬웠다. 그러한 시어머니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 같은 며느리를 또 보자니, 서글펐다. “자신에게 구애하던 남편의 태도가 예비 구매자에게 낡아빠진 집을 팔려고 혈안이 된 부동산 중개업자의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흩어졌지만 잃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삶의 알맹이는 제철이 한참 지나도 썩지 않게 절여 둔 과일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다...늙는다는 것은 지겨울 정도로 계속되는 고통일 뿐이었다...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우연한 일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확고한 조건으로 변해 버렸다..사람들은 나타나서 잠시 곁에 머무르다가 떠났다.” 부모와 가족의 모진 희생을 담보로 겨우 학업을 마치지만, 부모의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리고 글쓰기를 택한 작가. 빛나는 신인을 부인으로 만나, 그 역량을 도움받아 예술적 실험을 넓혀가며 성공에 이르지만, 생활인이 아닌, 자유 창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어야만 했던 예술인! 그 성공은 누구의, 무엇에 대한 대가였을까. 결국, 예술인으로서 명성을 지속시키기 위해 뭔가를 누군가에게서 또 빨아들여야만 하는 도둑질해야만 하는 그런 지경까지 가게 되는 작가를 보자니, 살아숨쉬는 지성 속 꿰뚫는 통찰과 혜안으로 보이는 것들이, 꼭 선한 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구나, 악에서도 꽃필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일었다. 빛으로 어둠을 가린 것처럼 되어버려, 그 빛의 이면은 깨끗하지도 밝지도 않았다. 잔인하고 추악했다.“난 몇 년간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어. 단 한 작품도. 그래서 너무나 필사적이었네...도저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어. 내가 무일푼이라고, 실패했다고 인정할 수가 없었네.” “나도 되돌리고싶어. 그 무엇보다도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잖나.” 늦게라도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던 가정부, 죽은 뒤에라도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한 것은, 어둠 속에서라도 옳다고 생각한 작은 실천, 마음의 빚을 덜기 위한 갚음을 쉬지 않았던 탓일까.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소리없이 사라졌던 인물, 개인적으로 외경심마저 들었다. 가장 앗쌀하게 등장했다 짧은 단막 비극의 주인공처럼 되어버렸으나, 소설 전체에 살아있는 무게감을 부여한 -힐리나-(작가를 쓰러뜨린 작가 지망생), 그녀가 던진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답변도. “..상당수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그들에게 명령하는 사람들이 진리의 편이라고 믿었어요. 어차피 누가 선과 악을 결정하겠어요? 어떤 각도에서 봐야 올바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거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던 사람들,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 모든 사람들, 그들은 악한 게 아닌가요?” “제 생각에 어떤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건 사람들이 자기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거예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멈출 때요.” 혼자 조용히 생을 마감한 가정부의 장례식 축사를 통해, 장례를 치러주는 주택관리사의 추도문에서, 이 소설의 저자는 넌지시 중심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실패와 동일시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행복이 무엇입니까? 깨어 있는 매순간, 날마다, 1년 내내 행복할 수가 있나요? ... 오늘날 우리가 행복을 찾기 어려운 이유가 고통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합니다...슬픔없는 인생은 베이스 없는 교향곡입니다...아마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게 아닌지,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아닌지 싶었습니다...만족하려고 하는 용기일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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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덮어버리고 싶어 몸부림 친다해도....결국엔....’ 책을 덮고 나서도 길게 여운이 남는다. ㅁ ㅁ 도대체 누가 주인공이고...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의문이 쌓이는 초반부. 그리고 주인공일것 같은 얀-에리크의 생활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노벨상을 수상한 아버지의 명성을 이어가기위해 얀-에리크가 선택한것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연구해 마치 아버지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악셀 랑레르펠트’가 직접 강연하는듯한 모습을 재현하며 강연장을 누비고 다니는것을 택했다. 강연장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유혹하고, 강연으로 갈채를 받으며 자신감 가득찬 삶을 살고 있는듯 보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어야할 가정은 자신이 바라는 이상에서 멀어져간다. ㅁ ㅁ 어떤 사건이 일어나 이것을 추리하는 과정이 펼쳐질것이라 상상했지만. 뭔가 있을듯 말듯한 궁금증을 유발한채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얀-에리크 말고 다른 사람이 등장한다. 크리스토페르. 크리스토페르의 등장은 초반부와 연결되면서 새로운 호기심과 궁금증을 보태 얀-에리크와 크리스토페르의 현재 삶, 그리고 악셀의 과거 회상이 엇갈려 나오면서 드디어 조금씩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어떤것은 갑자기 불쑥 일어나버리는 사건이 아니다. 노벨상까지 수상한 작가 악셀의 삶과, 그런 아버지의 명성을 이용해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아들 얀-에리크, 그리고 왜 자신이 버려졌는지.. 늘 궁금하지만 버려졌다는 그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크리스토페르의 장난같은 운명. 몇가지의 힌트만으로 상상했던 가문의 비밀....태생의 비밀이 아니다. ㅁ ㅁ 전혀 연관이 없을것 같은 이들의 삶이 어떻게 어떤 부분이 겹쳐지는지 후반부는 경악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며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비오는 축축한 느낌과 스산한 느낌으로 시작되는 초반부와 청명하지만 군데군데 비구름이 섞여있는듯한 중반, 그리고 모든것을 다 어둠으로 뒤덮어버리는 후반.... 그 긴 어둠 끝으로 조금씩 빛이 밝혀지는 느낌이 드는.. 잔잔한 시작과 격정적인 끝이 뒤섞인 멋진 소설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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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끝없는 여행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예정된 목표 지점에 도달할 때 즈음이면 그곳이 또 다른 출발점이 되었다. 어떤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직 끝이 있을 뿐. 그리고 마침내 끝에 도달해 보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가지 못한 곳이 너무나 많았다. <p.125>
죽은지 사흘만에 가사 도우미에 의해 발견된 '예르다 페르손' 지방위원회의 주택관리사로 근무중인 '마리안네 폴케손'에 의해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그녀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장례식에서 예르다 페르손을 기리는 데 필요한 퍼즐 조각을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 모르는 사람의 알려지지 않는 삶으로 들어가 과거를 되살려 내는 그녀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이야기가 '그림자 게임'이다. 단지 그것을 파헤치는 과정에서의 시선이 '예르다 페르손'을 향하지 않고 그녀가 모셨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악셀 랑네르펠트'를 향했던 것이 운명의 장난이라면 장난이랄까. 한 가정부의 죽음으로 랑네르펠트 일가의 어두운 비밀이 밝혀질 줄 누가 알았을까나 ~ 한 사람으로 시작해 가족 전체로 번져가는 바이러스같은 어두운 이야기.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메슬로우의 욕구5단계를 보면 1단계는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생활보존욕구, 안전욕구 3단계는 사회적, 애정적 수용욕구, 4단계는 존경 취득 욕구,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뉘는데 이것만으로도 그림자 게임의 내용을 살짝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네살 때 스칸센 놀이공원 계단에서 발견된 버려진 아이, 매달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일정치 않은 금액을 받게 된 '크리스토페르'와 유일한 상속자로 지정되었다는 예르다의 유언장, 안니카의 자살,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라 불리우는 토리뉘 벤베리의 관계, 집필실 아무도 보아서는 안될 것들로 채워진 벽장. 그것들이 향하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궁금해진다. 전 세계 언어로 번역 출간된 책들 덕분에 쏟아져 들어오는 인세. 가족사업이 소규모 왕국으로 탈바꿈 되고, 자선사업의 각종 기금과 보조금을 지급할 뿐 아니라 많은 강의 요청을 받는 얀. 아버지의 명예에 편승해 살아가는 아들 '얀 에리크 랑네르페트'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불행한 '알리세 랑네르페트'는 랑네르펠트가의 후광을 입는데 그치지 않고 가족의 진정한 일원이 되고자 하지만 쉽지가 않다. 그런 그의 모습이 자식들에게 등을 돌리던 아버지와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터무니 없는 애정을 구걸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삶, 반복되는 일상들. 악셀 랑네르펠트와 그의 아들 얀, 얀의 부인 루이세와 시어머니 알리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교차 그 순서가 살짝 어설픈 듯 흡입력을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붙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 허상을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그 모든 희생에 관한 이야기, 그 결말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인 것 같다.
"요즘에 사람들은 행복에 관해 자주 말합니다. 책도 나오고, 강연도 열리고, 어떤 사람은 실제로 돈으로 사려고도 합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의 권리가 되었고 우리는 행복을 찾으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게 될 거라고 확신하며 행복을 좇습니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실패와 동일시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행복이 무엇입니까? 깨어 있는 매순간, 날마다, 1년 내내 행복할 수가 있나요? 그것이 진정 진력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요? 고통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가끔 저는 오늘날 우리가 행복을 찾기 어려운 이유가 고통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둠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어둠이란 우리가 가끔 경험하여, 결국 빛과 별을 구분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그토록 부지런히 좇는 행복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슬픔 없는 인생은 베이스 없는 교향곡입니다. 항상 행복하다고 진실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이와 달리, 만족한다고 말하는 사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만나 보았습니다. 국립백과사전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찾아보았더니, 합당한 목표나 소망을 얻거나 성취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걸 읽으면서, 아마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게 아닌지,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아닌지 싶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우리는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 순간의 환희와 감각적 황홀경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필요한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려고 하는 용기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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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실패와 동일시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행복이 무엇입니까? 깨어 있는 매순간, 날마다, 1년 내내 행복할 수가 있나요? ......아마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게 아닌지,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아닌지 싶었습니다...만족하려고 하는 용기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러나 행복이란 정말 어떤것일까? 라는 질문에는 각기 다른 답들을 말할것이다. 물질적 안정이나,사회적 명성이 행복이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고, 건강이나 가족들과의 함께 하는 소소한 순간들이 행복이라고 말하기도 할것이다.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림자 게임>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예상 문제지다. 읽으면서 내내 행복이 결과인가, 과정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이야기의 첫 부분은 놀이공원에 버려진 한 남자아이로부터 시작된다. 소년이 왜 버려졌는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놀이동산에 온 어린 소년의 행복한 유년의 기억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기억으로 바뀌었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예르다. 아흔살이 훌쩍 넘은 예르다 페르손이 죽은지 사흘만에 가사 도우미에 의해 자신의 집에서 발견된다. 독거노인인 그녀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지방위원회의 주택관리사인 마리안네 폴케손은 그녀의 과거를 추적하던 중 뜻밖에도 그녀의 과거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악셀 랑네르펠트를 향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악셀 랑네르펠트. 그는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세계적인 작가다. 그리고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대신해 강연을 하는 그의 아들과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내....랑네르펠트 가문 사람들을 중심으로 숨겨져 있던 그들의 가족사가 하나하나 밝혀지며 이야기는 예상밖의 전개를 보여준다. 예상밖이란 상식적인 수준에서 행하는 인간의 행동을 벗어남을 의미한다. 잔인하기까지 한 행동의 모든 시작은 악셀 랑네르펠트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돈과 명예를 가졌지만 자신의 명성을 지키려는 욕망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충분히 자신의 잘못을 되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명성에 집착하면서 그와 그 가족들의 인생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멈출 수도 속도를 줄일수도 없는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당위성이나 도덕심이 결여된 욕망에 의한 행동의 결과는 부메랑처럼 그 자신과 그의 가족들에게로 돌아온다. 살아가면서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욕망은 우리를 독려하고 행동 할 수 있게끔해준다. 문제는 그 욕망이 조절가능한 것인가...하는 것인데, 저자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통해 그 답을 말해준다. 바로 만족할 줄 아는 용기! 라고 말이다. 만족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 두고 두고 새겨두어야 할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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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훌륭한 작가를 알게되었다. 그녀의 글은 첫 장부터 맘에 들었고 책장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평온하게 넘어갔다. 추리/미스터리 라는 장르를 달고있는 이 책은 여타 다른 평범한 추리소설처럼 범인과 피해자의 쫓고쫓기는~ 피가 낭자하고 끔찍한 살인이 연이어 일어나 긴박함을 더하는 류의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읽는동안 끊임없는 궁금증과 긴박감은 과히 최고라 하겠다. 오랫동안 가정부로 일했던 나이든 여자의 죽음과,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시작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녀의 죽음으로인해 노벨상을 수상하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있는 나라의 자랑인 악셀 랑네르펠트와 그의 가족이 갖고있는, 숨기고만 싶은 악의 그림자를 천천히 파헤치며 쫓아간다.
사람의 내면엔..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삶엔 얼마나 많은 거짓과 위선이 도사리고 있는걸까. 또한 가족이란 이름하에 함께 생활하며 사생활을 공유하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그 가족이란 이름을 충실히 지키며 살고있는 걸까. 우리는 종종 남이 가족보다 낫다는 말을 듣기도한다. 어떻게 이런말이 그리 쉽게 입을통해 흘러나올 수 있단 말인가. 무조건적인 믿음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편이되어줄 사람, 이런 말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존재가 가족이 아니던가. 한 집에 살고있다고 해서 그들이 피와살을 나눈 존재들이라해도 자신의 삶에만 치우쳐 배우자를.. 아이들을 외면하는 현실. 진정으로 위로가 필요할때.. 진정으로 이해가 필요할때.. 진정으로 함께하고 싶을때.. 외면해 버리는 가족 이라면 이 아름다운 단어 '가족'을 버려야 한다.
<그림자 게임>은 각 장마가 등장인물이 새로등장하고 번갈아가며 서로의 이야기(숨겨진 진실)를 들려준다. 겉으로 들어난 그들의 모습은 존경과 훌륭한 작품들로인해 칭송받는 삶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훌륭한 작품 뒤에는 끊임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가족들이 있었다. 오로지 작품만을위해 서재에 틀어박혀 가족을 외면하는 가장, 그런 남편을 보며 상처받고 자신의 삶이 망가진것에 허탈해하며 자식들에게 언제나 애정을 구걸하는 아내, 그런 부모의 사랑과 손길을 받지못하는.... 후 엔 그 부모를 원망하고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자식까지. 이 조각난 가족과 그들의 삶에 엮여있는 다양하고 개성강한 등장인물들이 더해지며 내용을 풍성하게 이끌고 점점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악셀의 가족들은 자신의 명성과 성공을 이어나가기 위해... 그동안 충실히 쌓아놓은 것들을 무너뜨릴까 두려워 끔찍한 잘못을 저지르고 절대 용서받지못할 구렁텅이로 치닫게 된다. 자신의 명성을 위해선 가족마저 남보다못한 존재로 여겨버리는 악셀의 모습을 보며 분노로 몸이 떨려왔다. (딸아이의 문제에선 경악을 금치못했다. 어떻게 한 인간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악마보다도 더욱 끔찍한 모습이었다.)
인간의 내면을 아주 잘 파악하고 그것을 글로 훌륭하게 표현한 작가 '카린 알브테옌' 그녀에 대한 찬사가 거짓이 아님을 확인한 시간들 이었다.
[크리스토페르는 토리뉘의 책을 내려놓았다. 이미 오후였지만 그는 아직 침대에 있었다. 「바람이 네 이름을 속삭이다」를 조금씩 읽다가, 때로는 그저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책은 한꺼번에 다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숨겨진 세상, 그것은 그 오랜 세월 도서관에 있었던 것이다. p.353]
[왜 눈은 읽고 싶지 않은 문장을 좇고 있는 건가? 왜 뇌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해석하고 있는 건가? 한 글자 한 글자 읽을 때마다, 뭔가를 잃어버렸다. 비밀은 숱한 시간을 헤치고 가만히 그를 뒤따라 왔다. 부모님은 가식적인 행동이라는 가면을 쓰고, 얀-에리크가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은 것을 토대로 세계관을 형성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금박 표면 밑은 텅 빈 구멍뿐이었다. 그의 근본 자체가 순전한 환상에 불과했다. p.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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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미스터리에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읽은 책들이 전부 괜찮았거든요. 웃는 경관도 좋았고(경찰 시리즈 누가 내줬으면 좋겠어요.), 밀레니엄도 좋았습니다(작가가 죽은 게 정말 아쉽네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쿠르트 발란더 시리즈가 좋았습니다.(추리 부분이 엉성하게 느껴지는 책도 있었는데 발란더가 마음에 들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출판사가 뚝심있게 다섯 작품을 번역했는데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출간이 중단되었네요.) 그림자 게임은 스웨덴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카린 알브테옌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데 스웨덴에서는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조카의 딸이라고 합니다. 린드그렌은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로 스웨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작가입니다.(어렸을 때 말괄량이 삐삐 참 재밌게 봤었는데 그 원작자군요.). 카린은 린드그렌을 좋은 역할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존경받는 작가가 사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면 어떨까. 그 결과 그림자 게임이라는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젊었을 때 노벨상을 수상한 유명한 소설가 악셀 랑네르펠트의 가정부로 일했던 예르다가 죽은 채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타살은 아니고 노환에 따른 자연사입니다. 예르다는 크리스토페르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깁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크리스토페르는 혹시 예르다가 자기 어머니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따져보니 그녀가 어머니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예르다는 왜 아무 관계도 없는 그에게 유산을 남겼을까. 그림자 게임은 큰 의문을 하나 던져놓고 과거와 현재를 오갑니다. 그림자 게임은 속도감 있는 글이 아닙니다. 화끈한 액션, 숨 가쁜 사건 전개, 교묘한 트릭, 뒤통수를 치는 반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띠지에는 끝까지 계속되는 충격적인 반전이라고 적혀 있는데 제가 보기에 그림자 게임은 그런 걸 추구한 글이 아닙니다. 글을 읽어보면 저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그렇게 인물을 구축해 나갑니다.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부분이 좀 있긴 했는데 반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림자 게임은 마지막에 진상을 알려줄 때까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갑니다. 느긋한 호흡으로 주변 인물들의 생각과 감정 고통을 조명합니다. 대문호로 존경받는 인물의 영향력과 그에 휘둘리고 일그러지는 주변인물의 삶을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그려 나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파국이 닥쳤을 때 긴 숨을 내쉬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애정을 갖고 지켜본 등장인물의 끝이 좋지 않아서 약간 씁쓸했습니다. 행복해지길 바랐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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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에는 주요한 부분을 제외하긴 했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림자 게임'은 스웨덴에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아 국민 작가로 존경받는 한 작가의 삶에 대해 쓴 작품입니다. 역자의 의견 또한 그러했는데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라고 평가받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추리 소설 매니아들에게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정한 패턴으로 비밀, 추리, 불륜, 이혼, 살인, 은폐 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추리 소설과 같아 보이지만 사실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다양한 인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순수 문학 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추리를 시작하고 끝을 맺는 정확성이 없습니다. 단지 한 유명 작가와 얽혀있는 사람들의 진실이 파헤쳐집니다. 작가는 실제로 유명 작가를 집안 어른으로 두고 있는, 역시 본인 또한 유명 작가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반대로 실제 유명 작가는 추악한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점을 착안해서 1년 넘게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주요 등장 인물들은 모두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그나마 루이세가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이혼을 요구하는 모습만이, 그녀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타인의 어쩔 수 없는 요구로 인해서 사람들은 고통당합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것을, 삶을 추구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놓고 더렵혀놓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고 획득한 사람 마저도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행복할지는 몰라도 그 이상의 것은 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무언가를 갖기위해 모든 것을 짓밟고 올라서겠다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자신 뿐만 아니라 모두를 불행으로 밀어넣는 것이겠습니다. 더 감사할 줄 알고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더 생각해보게하는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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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관리사 마리안네는 사망한 독거노인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그의 유품과 장례식 일가친척을 수배하는 일을한다. 오늘도 죽은지 일주일정도 지난 예르다 페르손의 아파트를 정리하던중 냉동실에 보관된 책을 발견한다. 책은 노벨상을 수상한 스웨덴최고의 작가 악셀 랑네르펠트의 친필싸인본이다. 서재에 있는책중 또다른 악책은 빨간줄로 칠해져 책을 알아볼수가 없다. 마리안네는 예르다의 아파트에서 편지한통을 발견하고 일을 마무리한다. 이제 마리안네는 예르다 페르손의 친구나 가족을 알아봐야하는데 그녀에대해 연락할 곳은 딱 한곳밖에는 없는듯한다.
얀 에리크 랑네르펠트는 아버지의 명성으로 돈을벌고 밥을먹는 사람이다. 그는 딱히 잘하는게 없다. 뇌줄증으로 쓰러진 악셀의 재산과 재단을 관리감독하며 강연을한다. 오늘도 그는 아버지 악셀 랑네르펠트의 이야기를 주제로한 강연을하고있다. 그와중에 오늘의 목표물을 발견하고 작업을거는 얀 에리크 그는 자신이 하는 강연의 강약을 잘 파악하고 있다. 어떻게하면 관중을 사로잡고 그들의 관심을 모을수 있는지 마지막 환호하는 관중을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강연중에 그가 점찍은 여인과 하룻밤을 즐긴다.
루이세 랑네르펠트 오늘도 연락이 안되는 얀 에리크를 기다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그녀는 잘 모르겠다. 얀 에리크 랑네르펠트와의 연애는 폭풍같은 열정과 끊질긴 구애로 두사람은 연애끝에 결혼까지 했지만 지금은 텅빈껍질만 남았다. 루이세는 현실을 바라만 볼수밖에 없다. 랑네르펠트라는 이름뒤에 따라오는 많은 혜택을 버릴수 없기때문이다.
그림자게임은 명문이란 이름뒤에 숨겨진 랑네르펠트가에대한 숨겨진 진실찾기같은 책이다. 프롤로그의 소년은 누구일까 그리고 예르다의 죽음은 왜 나왔을까 랑네르펠트의 진실은 무얼까 궁금했다. 처음 얀 에리크와 루이세가 문제인줄 알았다. 그들은 현재의 문제일뿐 과거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은 다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위해 꿈을꾸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꿈을 훔치지는 않는다. 악셀은 남의 꿈을 훔치고 훔친 명예를 지키기위해 도덕성마저 버리고 패륜까지 저지른다. 그이 부인 알리세는 또다른 욕심으로 살인을한다. 토리뉘는 복수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죄를 짖는다. 예르단 페르손은 이들의 모든걸 그저 지켜볼뿐이다. 방관자 그녀는 하녀로서 지켜야할 자신의 직업을 지켰지만 남은건 죄책감뿐이다. 그녀는 결국 편지한장을 남기고 그녀가 원한 완전범죄로 끝날 랑네르펠트집안의 치부와 죄악이 세상에 알려질지.......
이글은 인간이 욕망으로 얼마나 잔혹하고 파렴치해질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완벽한 겉포장뒤의 썩을대로 썩은 랑네르펠트가의 사람들 가족이란 이름뒤에는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불구같은 마음을 품은 불쌍한 인간들만 존재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