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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물결 철석이고, 갈매기 소리 귓전에 가득하고, 새파란 하늘과 싱싱한 공기가 온 몸을 씻겨줄 것 같은 섬!
한 사흘정도만 머물다 온다면, 그 곳은 에너지 충전소이고, 추억의 공간이며, 그리움의 장소가 되어주겠지?
<열 여섯의 섬>에 나오는 서이에게 과연 '섬'이란 어떤 곳일까? 서의가 느끼는 섬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막막하다, 답답하다, 발이 묶이다, 고독, 징검다리, 벗어나고 싶다,' 정도일 것 같다.
서이의 삶은 '섬'이다, 사방은 넘을 수 없는 물벽들!
섬에도 꽃이 필까?
섬에서도 서이의 꿈이, 삶이 피어오를까?
아지랑이 같은 서이의 공상만이 무성하게 피오르는 섬.
공상은 서이의 몇 안 되는 비상구.
두 언니만을 데리고 섬을 떠난 엄마.
열 여섯의 서이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술안주를 만들며 술시중을 들었고, 아버지의 술주정은 늘어만 간다.
아들을 바랐지만 줄줄이 딸만 낳자 이름도 지어주지 않아, 셋'이라는 사투리인 '서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열 여섯 소녀.
컴퓨터도 없는 집, 영화관도 없는 섬.
서이의 공상이 컴퓨터요, 책이요, 영화관이다.
어느 날, 바이얼린을 들고 섬에 낯선 여자가 온다.
서이는 여자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여인이 보고 온 다른 나라 이야기들을 듣고,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간다. 이제 서이의 고독은 끝나는 것인가! 서이에게 열 여섯은 아프고, 외롭고,절망스럽기 짝이 없지만 여인의 만남으로 서이의 열 여섯은 면한다. 그것은 또 다른 세계로 이어주는 다리이며 다른 공간으로 옮겨주는 배가 된다.
우리들도 열 여섯의 섬을 지나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깊고 깊은 절망 속을 헤쳐 나와 환하게 웃을 수 있다. 절망과 방황의 날들 속에서도 꿈은 어딘가에 숨은 듯 웅크리고 있다가 서서히 나왔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열 여섯의 어둔 길을 더듬더듬 걸어나왔기 때문이다.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열 여섯,
헝가리의 넓은 초원도,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오래 된 성에도, 히말라야 산 속에도, 바이칼 호수 근처에도 열 여섯은 늘 존재한다. 열 여섯이 있기에 삶은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에서 인상 깊었던 '한창훈'의 첫 소설을 읽었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급하게 몇 권을 빌려 오느라 내용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빌려 왔다. 한창훈의 소설을 3권이나 빌렸다. '열 여섯의 섬'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이다. 그 가운데 이 '열 여섯의 섬'을 가장 먼저 읽었다. 제목에서 나는 이 책은 한창훈의 에세이인 줄 알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읽었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인 서이가 어쩌면 자신일 수도 있겠고, 어릴 때 섬에서 자라면서 보았던 가까운 사람일지 모르겠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요즘 열 여섯의 청소년들은 이런 내용에 쉬이 공감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물질적인 풍요와 다양하고 발달된 여러 매체속에 살고 있는 도시의 청소년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40세 이후의 세대가 읽는다면 자신의 열 여섯을 되짚어보며 과거 속에 잠시 머물다 올 것 같다.
섬에서 살았던 작가 한창훈.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통 푸른 바다뿐이 그곳에서 위태로운 첫발을 떼었고 말을 배웠다. 세상이란 일년 내내 파도치고, 바람 불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사람이 빠져 죽고, 고구마밭을 매고, 철새가 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섬을 떠나 육지에 살면서 나이가 들자 그곳이 못시 그리워졌다. 그 그리움을 글로 쓰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바라의 자각'라 불리웠다.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바다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물었다.
"바다와 섬의 작가가 왜 하필 이렇게 내륙 깊숙한 곳에서 살고 있나요?
"물 소리를 꿈꾸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사막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