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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 그림 민화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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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또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實用畵)를 말한다. 조선 후기 서민층에 유행하였으며, 이규경(李圭景:1788∼1865)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이를 속화(俗畵)라 하고, 여염집의 병풍·족자·벽에 붙인다고 하였다. 대부분이 정식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나 떠돌이화가들이 그렸으며, 서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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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또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를 말한다. 조선 후기 서민층에 유행하였으며, 이규경(:1788∼1865)의 《오주연문장전산고(稿)》에는 이를 속화()라 하고, 여염집의 병풍·족자·벽에 붙인다고 하였다. 대부분이 정식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나 떠돌이화가들이 그렸으며, 서민들의 일상생활양식과 관습 등의 항상성()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였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되풀이하여 그려져 형식화한 유형에 따라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민화는 정통회화에 비해 수준과 시대 차이가 더 심하다.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 민화를 검색하면 이와 같이 친절하게 설명되어져 있다. 민화는 이처럼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였고, 창의성보다는 비전문가에 의해서 되풀이되는 정통 그저 그런 그림이라고 우리는 이때까지 알고 있고 그렇게 배워왔다. 조선의 정통회화는 북송의 영향을 받아 사대부들에 의해서 완성된 문인화를 정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폭의 화선지위에 담겨져 있는 산수는 일반민중이 인식하는 그냥 산과 물을 표방하지 않고 그 속에 고매하고도 도도한 조선 선비정신이 깃들여져 있는 사상에 가까운 예술이다. 그래서 우리는 겸재나 완당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속에 담겨져 있는 그들의 사상을 엿보고 이를 음미하면서 참 예술이라 평한다.

 

하지만 약간만 시선을 돌려보면 이런 문인화에 비해 색감이나 피사체의 선택등에서 어이없는 그림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바로 문인화와 차별짓는 속화라는 이름으로 남겨져 있는 민화들이다. 민화는 작가미상인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면서도 대동소이하게 비슷한 플롯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손을 통해 수없이 전사 되면서 하나의 형식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주제나 양은 실로 어마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다. 민화는 조선 계급사회에서 사대부가 아닌 주로 일반민중들의 애환을 담고 있고 그들이 소장하고 그리고 전래되었던 대표적인 민중예술이다. 문인화가 고매한 사상을 내포한 경건한 예술쪽에 가깝다면 민화는 일반민중의 희노애락을 담은 잡학적 성격을 가지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병풍이나 부채 그리고 창문등에 우리 시선이 와닿는 곳은 어디던지 민화를 대할 수 있다. 이런 노출성에 의해 그동안 민화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왜곡되고 폄하되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국내보다는 오히려 외국에서 우리의 민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면서 정작 이제야 우리의 눈에 민화가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백년이라는 영겁의 시간을 거슬러 와서 이제 민화를 바라보는 눈이 제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민화에 홀리다>는 제목처럼 책을 읽으면서 절로 민화에 홀리게 한다. 그 만큼 민화라는 자체가 우리 일반 민중의 일부였기에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춘향전에서 시작되는 한대목에서 부터 거실의 병풍 그리고 도자기의 도안 의상에 이르기까지 민화는 현대에 와서 제대로 대접받으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저자는 민화의 역사적 발전과 민화의 특성 그리고 민화와 현대가 한데 어울려져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즉 민화라는 극히 옛스럽고 고정화되어 있는 객체에 현대라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글로벌화를 접목시켜 시대에 맞게 변할 수 있는 민화의 힘을 보여준다. 이런 민화의 힘은 조선 사대부들의 문인화에 비해 민화만이 갖고 있는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민화는 상상과 현실이 공유하는 공간이자 객체의 은유와 직설이 마주하고 있는 장이다. 또한 과장과 생략, 사실과 비사실을 통해서 민화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점은 조선후기 상업자본이 발달하면서 계층간의 경개가 모호해지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고 인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또한 당시 일반민중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바램이라는 수요가 민화의 공급을 가능케 했으리라 추정된다. 또한 포스터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민화의 특성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민화가 현대로 재 탄생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의 눈에 새롭게 들어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민화의 대표격인 호랑이의 그림만 보더라도 기존 사대부들의 호랑이 그림에선 전혀 느낄 수 없는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두려움이나 경건함 같은 것은 일체 보이질 않고 심지어 연암의 호질에 나오는 북곽선생을 조롱하는 친근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미 화가의 눈에는 호랑이가 더이상 호랑이가 아닌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나 아버지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호랑이 뿐 아니라 사슴, 토끼, 꽃, 새등 주요 사물들이 하나같이 과장되고 추상화되면서도 그 본질적인 이미지 전달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 민화와 일반 민중의 삶은 이런면에서 동시대적이고 동공간적이다. 이처럼 민화는 아무런 제약이나 한계, 금기사항도 없는 세계를 만들어 냈고 바로 이점이 당시 민중들의 삶을 그림 한폭에 집대성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200년전 한폭에 민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당시 민중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혹은 바램을 잠시라도 엿볼 수 있을까 혹시나 이런 민중의 삶이 지금과는 단절된 삶일까? 아마도 200년전 민화나 현대에 다시 재탄생하는 민화의 주제나 형식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는 지금도 일반민중의 삶과 바램이 지난날 우리선조들의 삶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의 평화, 입신양명, 무병장수, 부부애, 자식사랑등 우리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극히 소소한 바램들이 수백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바로 민화를 통해서...

 

▣ 저자는 자본주의 학문의 꽃이라는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어느날 민화 사랑에 빠져 민화에 대한 각고의 노력으로 이 책이 출간되게 되었다. 그동안 민화에 왜곡된 사실을 올바르게 자리잡게 해줄 좋은 양서라고 해야겠다. 이 책 한권으로 민화에 대한 모든것을 이해한다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나름 민화란 어떤것인가에 대한 작은 대답은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현대와 고대의 민화사진등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한층 이해감이 깊어지고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민화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처럼 말이다.  

l******e 2010.09.01.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민화에 홀리다/이기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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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민화는 문자 그대로 온 백성의 그림이 되었다.’민화, 조선 백성의 그림이며 전문적인 화원의 그림이 아닌 아마츄어들이 그린 그림이라 그런지 더 정감이 가면서도 실생활 깊숙히 파고 들었던 그림들이 그림이상의 ’뜻’ 을 포함하고 있어 더 좋은 듯 하다. 민화를 예전에는 달력이나 그외 오일장날이면 장 한귀퉁이에서 숫자도를 그려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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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민화는 문자 그대로 온 백성의 그림이 되었다.’
민화, 조선 백성의 그림이며 전문적인 화원의 그림이 아닌 아마츄어들이 그린 그림이라 그런지 더 정감이 가면서도 실생활 깊숙히 파고 들었던 그림들이 그림이상의 ’뜻’ 을 포함하고 있어 더 좋은 듯 하다. 민화를 예전에는 달력이나 그외 오일장날이면 장 한귀퉁이에서 숫자도를 그려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그때는 그림에 숨은 뜻을 잘 알지 못하여 그저 숫자를 이상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인가 보다는 신기함에 구경을 하기도 했는데 백성의 그림이어서인지 값어치가 그리 크진 않았다. 그려서 가져가는 사람들도 적었을뿐더러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마져도 지금은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우리 관심에서 벗어난 사이 맥이 끊긴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정말 똑같게 그려낸 그림처럼 내게 다가왔던 그림을 만난적이 있다. 그림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던 예전에 학원장님이 그린 카피한 ’민화’ 였지만 정말 세밀하면서도 똑같고 한점 가지고 싶던 그림이 있었다. 한참 그때엔 ’동양화’ 나 그외 서예에 빠져 있던 시기라 그런지 그런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적 미술시간에 모자이크나 그외 방학숙제를 하면 난 꼭 달력에 있는 ’민화’ 를 잘 그렸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림솜씨가 뛰어났던 것은 아니지만 숙제 후 결과도 좋았다. 늘 보아오던 편한 그림이라 더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월속에 잊고 있던 민화를 이 책을 통하여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민화의 탄생은 ' 급속하게 형성된 부와 그 과정에서 고양된 자의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의 그림은 당시 도화서 체제로는 감당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서울에 거주하는 부잣집이야 어떻게 해서라도 도화서 화원의 그림을 챙길 수 있었겠지만, 지방은 사정이 달랐다. 자연스레 수많은 돌팔이 화공이 필요했을 테고, 지금 우리가 보는 민화는 그때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돌팔이 화공들에 의해 그려진 민화가 단지 그림으로서만 존재한 것이라 아니라 그 속에 깊은 뜻을 가지고 있어 서민들은 더 안방이나 그외 집안 곳곳에 글그림으로 혹은 병풍으로 치장을 하지 않았나싶다.

민화, 그 속에 숨은 깊은 뜻 찾기
모란은 부귀영화를 뜻한다 한다. 그래서일까 예전에 친정엄마의 혼수품에 보면 유독 '모란' 을 수 놓은 것들이 많았다. 베갯잇이며 이불 옷덮개 앞치마 수저집 골무등 수를 놓을 수 있는 부분엔 모란이 무척 많았다.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은 '부귀영화, 무병장수,과거급제및 성공, 다산' 등이 아니었나 싶다. 진시황제도 불로장생을 위하여 불로초를 찾기 위하여 그 많은 시간을 보내었듯이 백성들이야 어떠했을까. 장원급제를 뜻하는 '잉어', '희득연과' 까치가 연밥 위에 내려 앉아 연씨를 쪼아 먹고 그 옆에 갈대꽃을 첨가한 그림은 과거 시험에 잇달아 합격하라는 뜻이란다. 지금으로 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로 포크나 화장지를 주는 것처럼 과거시험을 치룰 사람에게 줄 그림으로는 딱이었던 듯 하다.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모란과 고양이가 함께 잇으면 정오목단이라 하여 아침과 저녁에는 고양이 눈이 둥글지만 정오엔 가늘어지고 햇빛이 가장 왕성하며 모란이 활짝 피는 시각이기도 하여 모란처럼 부귀가 활짝 피어 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다. 수거모질은 돌 옆에 국화,호랑나비,고양이를 배치하여 장수를 의미했다고 한다. 다산을 의미하는 그림으로는 석류 그림 유개백자는 다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상이라 한다. 사물이나 꽃 동물 등으로 좋은 뜻을 표현한 그림인 민화는 그 그림을 걸어 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뜻에 가까이 근접한 생각을 가지게 하지 않았을까. 꿈을 이룬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였기에 백성들에게는 친숙한 그림이 되었을 것 같다.

민화가 단지 그림에 뜻을 감추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기도 한듯 하다. '18~19세기 조선은 얼핏 보면 평온했지만, 그 내면은 급류가 휘몰아치는 격동기였다. 지배계층은 지배계층대로, 피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대로 변화와 부침을 계속했다.' 정조시대에 문화부흥기를 거쳐 세계의 변화에 발맞추듯 그림속에 등장하는 꽃이나 사물도 변화를 거듭한듯 하다. 사실적이던 표현은 좀더 변형을 거쳐 이상향을 나타내거나 호랑이는 동물의 왕인 맹수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로 표현되어 좀더 거리감을 좁히기도 한 것처럼 인간과 가까운, 신이지만 인간의 생활상과 별반 다르지 않게 표현된 그림들을 보면서 그들이 표현한 '해학과 웃음' 을 본다. 그 그림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리이다. 어찌보면 그 시대에는 그들이 '이단아' 처럼 보였겠지만 지금으로는 앞서가는 '선구자' 였던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선보이지 못한 '추상화' 를 우리 선조들은 해학과 웃음을 가미하고 깊은 뜻까지 넣어 우리가 간직한 '꿈' 을 실질적으로 표현해내지 않았나싶다. 그러면에서 보면 그들은 꿈을 그려주는 이상향의 작가들이었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의 표현이나 그림이 뒤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때 빛을 보지 못한 그림과 표현들이 지금시대에 컴퓨터를 만나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어쩌면 그림도 '우리것을 가장 잘 표현해 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화는 비유의 보고다. 은유와 직유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환유의 수사법을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 활용하여 울림을 극대화했다. 민화 제작에 관여한 이들은 분명 마술 같은 비유의 힘을 꿰뚫어보았음에 틀림없다.'  김홍도나 신윤복등 도화서의 화원의 그림들도 다시 조명받고 있다. 그들의 그림이나 일대기는 소설속에서 다시 재탄생되어 우리를 즐겁게 하고 그 시대의 그림들에 다시금 관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돌팔이 그림쟁이도 많았을 것이며 그들에 의해 탄생한 그림인 민화도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시대가 그림을 원했고 시대에 맞는 그림을 그려냈던 수많은 아마츄어들의 그림들이 많다는 것은 그를 즐겼던 우리민족의 여유로움에 또한 촛점을 맞추고 싶다. 시와 그림 글씨를 즐겼고 그와 더불어 판소리를 즐겼던 우리민족의 '흥' 은 어느새 '빨리빨리' 라는 조급증에 밀려나 여유로움을 잃어 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그런 여유로움속에 간직되어 있던 문화의 우수성과 찬란함이 다시 빛을 발해보길 바라며 어느나라의 문화인지 모르는 상술보다는 시험때 '과거급제' 가 아닌 '수능대박' 을 기원하며 '꿈은 이루어진다' 는 뜻을 간직한 민화 한 장 선물하는 좋은 문화를 부활해보는 것은 어떤지 생각해보게 했다. 

 

 

 
y******2 2010.09.05.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