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나를 집요하게 응시하며 이야기를 건넨다. 나는 작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며 상대에게 집중한다. 아무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나만의 오롯한 세계, 그것은 바로 사진이 주는 내밀한 떨림이자 매력적인 공간이다.
권영호의 카메라는 자신만의 분명한 풍경을 가지고 있어서 섬세하며 부드럽고 자유롭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의 육신을 초월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상상 속에서보다 더 지독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바로 사진의 세계이다. 사진집을 들여다 보는 일은 늘 설레고 기분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 사진집을 병중에 읽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정저우(鄭州)에서의 그 소녀가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무표정하던 소녀의 얼굴에 일순간 환한 웃음이 나타났을 때 내 마음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기쁨 같은 것들이 빠르게 스며 들었다. 그리고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무표정하게 응시하다가 손을 흔드니 그에 화답하듯 미소를 지을 때 낯선 타지의 공간이 특별한 하나의 프레임 안에 들어와 있음을 저자도 느낀 것 같다. “카메라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이 건네는 말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도 어느덧 그 이야기에 빠져들곤 한다.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이 사진에 고스란히 함께 찍힌다. (중략) 언젠가부터 나는 그 내 눈앞의 대상, 내가 찍은 대상을 보면서 시간을 떠올리곤 한다. 그 대상에게 일어난, 또는 일어날 숱한 시간, 그리고 그 흔적.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래서 내게는 시간의 흔적을 찍는 것이다.” 내게도 카메라는 시간의 압축이고 기록이다. 나는 사람들의 손이나 뒷모습을 많이 사진에 담는다. 뒷모습에는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이야기가 숨어 있고 그래서인지 내 느낌이 스며든 사진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빛이 만들어 내는 순간 순간의 이미지들을 사랑한다. 이 두 가지가 저자와 내가 일치하는 부분이라 이 책을 읽는 내내 공감되어 반복적으로 읽게 되었다. 이제 이 책은 내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풍경으로 기억되리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만나지 못 하는 무수한 풍경들을 접하고 만져 보는 일이다. 모두가 다 아는 장소가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오롯이 그 기억을 잡아 채 들여 놓는 일이다. 새벽 3시쯤 여기 실린 사진들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빛은 약했고 손에는 떨림이 있었다. 저자의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 나는 내가 가진 어둠을 담고 싶었다. 새벽 시간의 그 떨림을 그대로 담아 내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은 권영호 사진작가는 글도 사진 못지 않게 무척 잘 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곰삭여 낸 그만의 문장이 있어서 읽으면서 무척 편안했다. 사진은 내 기억과 조우하는 순간적인 기록이며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이의 사진 이야기는 그래서 더 마음에 오래 남는다. 봄내 계단을 쓸다 계단 틈으로 미처 쓸어 내리지 못 한 흙 움켜쥐고 피어난 제비꽃 꽃 지고도 자꾸 자라나는 뿌리 무시로 뻗어 억수비에도 허물어지는 않는 世. 界.
詩 정경섭 <투명한 힘> 中
![]()
![]()
![]()
|
|
p147 나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내가 느끼고 싶은 대로, 연상되는 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다. 언젠가부터 사진은 참 익숙하고도 일상적인 대상이 되었다. 사진이 그렇게 되었다기보다는 사진을 찍고 찍힌다는 행위가 그렇게 된 것 같다.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의 책을 보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광활한 자연의 장면이나, 일상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배우나 연예인들의 화보들로 가득한 “작품”집이 대부분이다. 손에 딱 잡히는 판형에 두께도 얇고 유명 포토그래퍼의 작품집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해보였다. 권영호라면 누구나 알법한 유명 작가가 아니던가. “당신의 카메라는 어떤 마음을 담고 있나요?”라는 표지의 카피가 인상적이다. 책 속에는 사진작가 권영호가 사진에, 카메라에 담는 그의 마음과 생각들이 담겨져 있었다. 중국의 지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작가가 담아낸 그들의 일상과 표정들은 참 담담하고도 따뜻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오늘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나는 이 책을 다 보고 덮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다보면 자연스럽게 자꾸 시선이 잡혔기 때문이다. 소녀와 소년들, 노인의 뒷모습, 가수와 배우들의 모습, 누군가의 손과 그림자... 모든 컷이 화보가 되는 배우들의 모습들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 시선을 끈다. 아마 그것이 사진작가 권영호의 힘이겠지. 사진이 찍히는 순간의 앞뒤 시간을 압축해서 사진에 담고 싶다던 그의 마음은 고스란히 보는 사람에게도 전달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다. 기분이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