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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별 생각없이 읽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2류 B급 하위 장르의 소설이다. 직설적인 천박함과 논리가 사라진 무대포 줄거리는 말초적 감수성에 깃댄 키치성 소설이라해도 큰 무리가 없다. 어째서 사건 전개가 그러할 수 있는지 이것저것 사실성를 따지지 말고 그냥 현재의 스토리에 반응하여 읽고 넘어가라는 거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칼잡이가 소녀에게 들고가는 장미 100송이는 어디에서 생겼으며, 101층의 시멘트 생산원료공장을 통하여 단숨에 100층 이하에 메워버리는 장면에서 그 원료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1개층에서 생산되는 원료가 100여층을 순식간에 메울 수 있는지 이런 거는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분히 위악적이면서 제멋대로 써내려간 낡고 거친 감성의 촌스러움이 무뇌아를 위한 '쌈마이'소설이라 해도 무방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 작가의 의도를 대입하면 평가가 완연히 달라진다.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138층 건물 '폐신 집합소 廢神 集合所'. 사주명리에 의하면 廢神이란 에너지가 소모된 후에 효율이 발생하지 않아 功이 없음을 말한다는데, 노력에 비해 얻어들이는 것이 별로 없던 노동착취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먹고 자는 기계같이 취급되며, 작업량이 떨어지는 노동자는 작업반장에게 멍키 스패너로 얻어터진다. "더 이상 기계가 아닌 인간이고 싶었다"는 전태일이 오버랩된다. 건물의 지배자의 이름 또한 '독재자'이니 시대적인 의미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체제에서도 구원의 은자 隱者는 있어 "혁명을 위한 핵심 키워드. 노동자들의 심장 속에 노동의 정당한 대가라는 의미를 심어주고, 이 건물 안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분노의 후폭풍을 일으키는 혁명의 꿈(42쪽)"을 심어주지만, '무력소년'으로 대표되는 힘없는 민초는 과도한 노동으로 꿈꿀 여력조차 없다.
실질적 지배자가 된 '칼잡이'는 '등급간 경쟁촉발 대회' 격투를 통한 신분상승체제로 바꾸어 체제를 유지하려 했지만, 사이보그화 된 무력소년의 손자, 복배의 아들 '주니어'는 항구적 체제존속을 기하는 '15'에 반항의 투쟁을 보인다. '칼잡이 혁명 지도자 추대의 날', 굳건해 보이는 건물에 기둥 보가 무너지고 건물이 전체적으로 흔들리는 초자연적 사태가 벌어진다. 거의 완벽하게 건물이 무너질 즈음, 소년과 칼잡이는 "그들의 어설픔과 잔임함, 근거를 상실한 분노와 해명할 수 없는 모순이 일궈낸 마지막 꿈의 한 조각(364쪽)"을 목격한다. 죽은 줄 알았던 분노의 실체 '주니어'가 잿빛 덩어리로 박제된 수많은 군상들과 함께 바닥을 뚫고 오를 때의 활력을.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삼류소설 같은 이 '무력소년생존기'의 코드에 숨은 짙은 페이소스에 쓴웃음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커피 한 잔을 빼어들고 눈을 들어 저 푸른 산위의 하늘을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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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층짜리 건물인 폐신집합소에서 벌어지는 무기력 그 자체인 한 소년의 생존기, 주원규란 내겐 낯선 이름의 작가가 그려내는 이 소설은 선택하길 잘했다 싶다.
일단의 표지의 그림부터가 뭔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듯하다.
그림을 일단 자세히 들여다보자.
소위 근육질의 몸매를 뽐내고 있는 이의 몸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구릿빛 피부도 아니요,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모자이크 같기도 하고 퀼트천을 이어놓은 듯한 인간의 터전이 인간을 몸을 이루고 있는 듯한 독특한 형상은 인간과 삶의 터전이 결코 동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것과 같다는 것이 내 짧은 소견이다.
복잡한 듯 보이면서도 이 소설의 재미를 단번에 눈치챌 수 있게 해주는 그림이다.
그럼 이 '무력소년생존기(無力小年生存記)'란 어떤 소설인가.
나는 이 책을 들여다보다가 내 노트에 이것저것 끄적거리다 미완성의 가계도를 하나 그려보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그린 가계도의 간략한 설명과 같이 무기력 그 자체인 소년이다.
어미가 실종된 후 폐신집합소 내의 42층 작업실에서 공산품 생산에 참여하며, 보잘 것 없는 간식을 얻어먹으며, 작업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에 내던져진 소년.
소년이 바라는 것은 단지 매월 말 개인의 공산품 생산능률성에 따라 나뉘는 상, 중, 하 그룹에서 하위를 벗어나 작업반장에게 멍키 스패너로 흠씬 두들겨 맞는 일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과 같은 작업실에서 일하는 칼잡이에게 도움을 받는다.
칼잡이와 엮이면서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어떤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지 짐작하지 못한 채...
비단 칼잡이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 등장하는 뱀눈, 외눈박이, 독재자, 젖가슴, 엉덩이 등등 많은 인물들이 이름 자체만으로 그들의 외모와 함께 성격 마저 짐작 가능케 한다.
영화에서였던가 어느 부족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 이름이 그와 비슷하게 지어졌다.
칼잡이가 소년을 이끌고 간 비밀결사모임에서 소년은 몽롱한 눈빛의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소녀는 칼잡이가 짝사랑을 키우고 있는 인물이었다.
소녀가 다른 이들과 갖는 차별성은 '꿈'을 꾼다는 것이다.
소녀의 꿈은 비밀결사모임의 최종의 목적(혁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칼잡이의 짝사랑의 대상인 소녀는 가계도에서 보듯 칼잡이가 아닌 소년과 관계를 맺는데 이는 결국 비극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칼잡이의 분노가 극에 달하며 소녀를 살해하게 되고 소년-소녀의 아이로 태어난 샴쌍둥이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줄 매개로 인식되어 폐신집합소의 창립기념일에 노학자, 독재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둘로 절단되는 사태를 맞게 된다.
그리하여 뇌를 차지한 쪽은 '원배'요, 남성의 심벌인 양물을 차지한 쪽은 '복배'라 불리며 한쪽은 지상(폐신집합소 내)에서 또 한쪽은 지옥이라 일컬어지는 지하세계에서 생을 이어가게 된다.
애정결핍자(칼잡이)의 칼부림으로 자신의 자식 조차도 보호받지 못하고 둘로 나뉘어 그마저 둘 다 지키지 못하고 한쪽만을 택해 지하세계로 떨어진 소년의 생은 구차하지만 그 생명력은 누구보다 질기다.
이에 비해 그와 갈등관계인 칼잡이의 생명력은 질기디 질기다.
어디나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자들은 있게 마련.
독재자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폐신집합소는 원배의 뇌가 가진 뛰어난 수리적 계산체계를 가지고 보증서를 발행, 1-15등급의 새로운 체제인 건물 '15'로 거듭난다.
원배의 반쪽인 복배가 기거하는 지하세계는 지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아수라장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삶은 존재하는 것이었다.
뇌는 없지만 무엇보다 본능에 충실한 양물을 지닌 복배는 이 아수라장에서 자신의 씨를 뿌리니 이리하여 태어난 생명은 '주니어'다.
아비인 복배와는 달리 정상적인 몸으로 태어났으나 유전처럼 전해진 고달픈 인생은 녹색 작업모란 인물의 해괴망측한 실험정신(?)으로 몸속에 철을 이식받게 된다.
과거 원배와 복배의 분리를 눈앞에서 지켜봐야했던 소년은 또다시 눈앞에서 이종결합되는 손자의 비극을 지켜볼 수밖에...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던가.
폐신집합소를 허물고 건물 15란 체제를 이룩하고, 결국엔 이 체제로 시대의 소용돌이속으로 사라지며 새로운 체제를 만들고...
작가가 소설에서 보여주려 한 것은 허물어지고, 만들어지는 체제 속에서 '가늘고 길게' 생을 이어나가는 소년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허수아비 같은 최상층의 독재자가 아니라 바로 그 아래의 핵심 brain들이다.
더불어 무력(武力)을 자신의 목적을 정당화시키는데 사용하는 일말의 무리들이다.
F라는 인물과 칼잡이로 대변되는 brain과 무력소유자가 권력창출의 핵심 인물이다.
권력의 생성과 소멸을 동시에 보여주며 나아가 권력 밖에서 모진 생을 이어나가는 우리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 독특한 소설인 '무력소년생존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 책을 단번에 읽어나갈 수 밖에 없게 만든 매력은 바로 이 소설속에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대학 때 읽었던 이문열씨의 '들소'가 내내 떠올랐다.
여기서 본 뱀눈이란 인물도 그 소설에서 만났었고, 등장인물들의 이름들도 어쩐지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하세계를 떠돌던 여느 부족도 꼭 이문열씨의 소설속에서 데려온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면 정말 재밌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이뤄지지 못할 꿈 하나 꾸면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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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꿈을 쫓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우두머리 집단에서는 한 번 맛본 권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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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원규 작가의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문학상수상작가라는 그리고 열외인종
잔혹사의 멋진 표지에 끌려서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참 책을 속도감 읽게 읽을수 있었고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를 통해 우리의 불편한 곳을 건드는 것이다.
참 기분이 통쾌하기도 하고 반면 기분이 찜찜해지는것도 사실인 것이다.
암튼 나에게 있어서 열외인종잔혹사는 주원규라는 작가를 통쾌하고 다음에 또 찾아
보고 싶은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근데 이번에 좋은 기회를 통하여 무력소년성장기라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번 책에서도 주원규작가는 어김없이 우리의 찜찜한 무엇인지 딱히 꼬집어
내기는 힘들지만 우리를 힘들게하는 부분들을 정화하지않고 막던져놓는다.
그러면 우리 독자들은 작가가 던져놓은 것들을 어떻게 요리를 하는가에 따라
많은 영양소를 얻을 수 있고 아님 그냥 얻는 것 없이 기분만 망치고 원재료마저
버릴 수 있는 책이었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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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아주 특이한 소설 하나를 만났었다. 양머리 탈을 뒤집어쓴 일단의 무리가 욕망의 도가니 코엑스를 배경으로 지옥의 카니발을 벌이는 아주 희한한 설정의 소설이었다. 그 책을 통해 알게 된 작가가 바로 신학을 전공하셨다는 주원규 씨였다. 그리고 딱 1년 만에 다시 그와 재회할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더 생경하고, 더 낯선 <무력소년생존기>라는 책으로. <무력소년생존기>에는 그 흔한 해설이나 작가의 후기 하나 없어서 온전하게 독자는 자신이 읽을 책에 대한 감상을 스스로 엮어야 한다. 뉴스를 통해 정보를 얻을까 기대를 해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달랑 얻은 키워드라고는 근현대사에 대한 패러디와 하위장르 정도? 뭐 좋다, 어쨌든 책은 작가와 독자와의 교감일 테니까 말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시대를 알 수 없는 폐신 집합소라는 이름의 138층 건물이다. 그 속에 사로잡힌 노동자들은 억압과 착취 가운데 용도도 모르는 공산품을 만드는 일에 투입된다. 반복되는 노동으로 개인의 자유는 철저하게 억압되고 오로지 가끔 관리자들이 던져주는 간식 따위에 허덕이는 열광하는 대중에 대한 스케치가 이어진다. 어라, 우리네 삶하고 아주 유사한걸? 그럼 좀 더 읽어 볼까나. 자, 우리의 주인공으로 소심하기 짝이 없지만, 생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 강한 ‘소년’이 등장해서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소녀를 사랑하는 먼저 사랑하는 이가 있으니 얼굴에 흉한 칼자국을 지닌 칼잡이가 바로 그다. 사랑에 눈이 먼 칼잡이는 그만 임신해서 아이를 낳은 소녀를 죽인다. 그전에 은자는 소녀를 이용해서 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뒤엎어 보려고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독재자에 대한 은밀한 역모를 꿈꾼다. 독재자와 노학자 그리고 땅굴을 위시한 지배 계급은 처제의 유지와 지배의 영속을 위해 소녀만이 꾸는 “꿈”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녀의 꿈을 원하는 건 역모자 은자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꿈”이 무산되는가 싶었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소녀와 소년의 씨앗인 원배와 복배로부터 그 가능성을 찾는다. 지옥에 떨어진 소년과 복배는 아수라장 속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독재자의 세상은 땅굴과 F 그리고 칼잡이의 쿠데타로 종말을 맞고, 그들은 새로운 계급 사회를 건설한다.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보증서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시스템을 창출해낸다. 상위의 계급으로 진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동자들의 악다구니가 펼쳐진다. 솔직히 책을 읽을 적에는 몰랐었는데 북글을 쓰면서, 되짚어 보니 <무력소년생존기>는 무력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의 재현이었다. 자본에 의해 철저한 계급 사회로 탈바꿈해 가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 그대로 소설 속에 녹아 있었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은 500년 전에 과거제를 통해 집안을 일으켜 세워 보겠다는 선비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다만, 시간과 방식만이 달라졌을 뿐 양극화된 신분제 사회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뭔지도 모를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마치 선진국에서 자신들의 한 달 임금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리는 나이키 운동화를 만들어내는 개도국 청소년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언감생심 자신이 만들어낸 제품을 소비할 수 없는 소외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가끔 문학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을 빚어내서 독자를 놀래킨다. 주원규 씨의 <무력소년생존기> 역시 예외는 아닌가 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에, 뭐가 이래”였지만 다시 곱씹어 보니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서사에 그만 생래적 거부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원래 사실 그대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이니까. 결말이 좀 허탈하긴 하지만, 욕망의 도가니탕 체험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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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넘기는순간 저자의 하위장르라는 형식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이 내용과는 아무상관도 없겠지만 난 왕따라는 문제도 사회적 눈으로 보고 싶다. 왕따. 이유가 많겠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더 심화되지 않 았난 생각해 본다. 경제지표를 보면 서민일수록 먹고사는 바쁘고 더 살이 찌고 잘 살수록 자기관리에 처절한 반면 그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말해준다고 할수 있다. 노동은 어쩌면 인간이 할수 있는 신성한 일의 할 부분이지만 우리는 어느순 간 노동이라는 말에 귀찮니즘을 달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고용주의 눈을 의식해 살아가 고 있다. 이로 인해서 노동이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지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의 현대의 근대사를 절망적으로 그려본 책이 아닌가 한다. 책을 접는순간 왜 이런 일이 다소 한독자로서 나만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독자로의 몫이지만 경제에 대해서 그리고 강자와 약한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어려울것이다.
138층이라는 단어가 왠지 점점 무너지는 사회현상과 비슷한 어구로 느껴진다. 어 느날 우르르 생겨난 아파트 그리고 늘어만 가는 하락인생들을 대표격으로 뜻하지 않을까. 원배와 복배라는 두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양면성을 이기적으로 보여준다 고 본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을 통해 타락해 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격앙적 인 표현과 원초적인 글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전체적인 느낌이 감흥보다는 아 그래 하는 단어가 나온다.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 의 엉켜가는 세상을 작가는 자신의 눈을 통해서 독단적이고 이기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려운 말을 할줄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소설이 말하는 바 는 알수 있다. 다만 표현력이 좀 많이 부족하고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서 아쉬울 따름이다. 점점 높아져만 가는 현대인들의 눈 그리고 그 아래로는 떨어지지 않 는 눈을 통해서 우리는 더이상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것일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도 했다. 벌써 나부터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니 말이다.
인간의 양면성과 이기적인 모습은 현대적으로 풀어낸 한편의 경제소설이라는 생각 이든다. 꿈을 가져라 말하기 보다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어필하는 내용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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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근육투성이의 몸을 과시하고 있는 듯한 사람의 모습. 그 근육 속에는 수 많은 건물들이 꽉 들어차 있는 듯하다. 제목은 '무력'인데 표지에선 힘이 넘쳐보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다보니 아이러니보다는 현재와 맞아 떨어지는 현실감이 더 커보였다.
무력소년 생존기는 말 그대로 아무런 능력이나 힘을 지니지 못한 한 소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에 이어 대를 이어서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년. 그는 몸이 약해 늘 생산량이 하위 그룹에 속하는 조금은 부족해뵈는 노동자였다. 반면 같은 층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칼잡이라는 인물은 무서워뵈는 외모 만큼이나 강한 노동자였다. 소년은 늘 그가 부러웠다. 그런 소년의 마음을 읽은 칼잡이의 접근으로 둘은 가까워진다. 소년은 그가 비밀 모임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되고 생산량에서 늘 뒤처지는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고자 그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모임에서 알게된 소녀로 인해 소년의 삶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자꾸만 꼬여만 가게 된다.
소년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남을 밟고 일어서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곳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라도 강자가 되어야 남에게 인정을 받을수 있는 곳. 그렇기에 늘 약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년은 어찌보면 그 사회에서 가장 불필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순간 혹은 자신의 피붙이가 위험에 처하는 순간이면 늘 어디선가 삶에 대한 의욕을 강하게 내비치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혼란한 사회에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되는 것이다.
무력소년 성장기는 참 독특한 책이었다. 등장인물들(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참 솔직하다 못해 거침없었다.)이나 배경들이 그랬고, 내용 전개 또한 상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쉽사리 옮겨가곤 했다. 정말이지 독특 그 자체였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내용에 집중 할 수 없을만큼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까 점점 소년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곧 지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자가 계속 더 많이 갖게 되고, 그 지위를 놓을 수 없기에 참혹한 행위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마는 사회.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보다 더 강한자 혹은 권력을 움켜쥐는 자에게 보다 더 잘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밑에서 아무 죄없이 약자라는 이유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왠지 모르게 가상의 소설 속에서 지금의 현실이 보였던 것이다. 결코 반갑지 않은 현실이.
중간 중간 좀 세다 싶고 잔인한 장면들이 조금 나오기에 살짝 거북스럽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정말 흥미로운 글이었다. 다루고 있는 내용 또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할만 하다 싶기도 했고. 보통 무슨무슨 문학상을 수상한 책들의 경우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봤던 책이었는데 의외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재미 또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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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나서의 느낌은 이 책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주원규님의 책을 처음 읽는 것이 아닌데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다르다. 소설이란 것이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것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다. 한 건물이 지하-몇 층까지 있는지 모름-에서 지상145층까지 나오는데 그 곳에서는 독재자가 굴림한다. 그리고 건물 밖의 세상이 없다. 그 곳에서 태어나서 그 곳에서 자란 소년-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로 엮었다. 제목의 무력은 無力일 수도 있고 武力일 수도 있다. 한글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는데 이 무력한 소년이 어찌하다 아버지가 되었고 태어난 아기가 몸이 붙은 쌍둥이인데 전기톱으로 분리해서 두뇌가 큰 아기는-원배-독재자에게 빼았기고, 자신은 작은 뇌를 가진 아기-복배-를 가지고 지하로 스스로 떨어진다. 무력소년 생존기이지 지하에서도 삶을 이어가서 양물만 큰 복배로 인해 할아버지가 된다. 그런데 또 이 아이가 무슨 업화인지 사지가 절단되고 기계로 사지가 용접된다. 세월이 흘러 지상에서는 독재자를 반대하는 쿠테타가 일어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 그 정권이 요상한 정치를 해서 사람의 등급을 15등급으로 나눈다. 소년과 손자는 등급 상승의 격투에서 승승장구하는데 ..... 어떠한 것이 떠오르려고 하면서도 아리송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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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층 건물의 폐신 집합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었다. 갇혀진 사람의 욕망의 끝 간데없음을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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