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측하는 즐거움을 남기지 않고 죄다 보여 주는 회화는 재미없다" 화가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감상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추측을 하며 관람하는 그림보기는 분명 즐거움이다. 총20편의 그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권부터 읽어 온 지라,그림이 주는 '무서움'이란 코드는 더이상 낯설지 않다. 오히려,이렇게 시리즈로 이어질 만큼 그림 속에 숨어있는 무서움이 많았던가 반문할 정도이니까 말이다. 차이라고 한다면,전편에서의 무서움의 코드가 사람에 대한 욕망의 드러남이라면,무서운그림3의 무서움 코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적인 코드의 무서움이라고 할까?
이번 무서운 그림의 대표코드는 그리스신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티첼리의 비너스 부터 루벤스의 메두사,브뢰겔의 이카로스의 추락 그리고 켄타우로스까지..사실 보티첼리의<비너스의 탄생>을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 속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너스의 탄생은,요즘말로 표현하자면,원하지 않던 아이의 출생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 간사해서,신화 속 이야기를 듣고 나니,비너스의 모습이 왠지 우울해 보인다. 무표정의 모습이 여성스러움의 전형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니.. 알고 보는 것과 잘 알지 못하고 보았을때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도,나는 무섭다. 무서움을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은 몇가지나 될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무서워서 무섭기도 하고,슬퍼서 무섭기도 하고,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무서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무서운그림 시리를 접하기전의 무서움이란 그저 하나의 단어였는데,그림들을 통해 느껴지는 무서움이란 많은 색깔들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았다. 고야의 그림 <마드리드,1808년5월3일>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공포와 아픔의 무서움 그 자체였고.실레의 그림<죽음과 소녀>는 무언가 죽음을 예언하는 듯한 공기의 압도당하는 무서움이 그림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가장 큰 무서움은 무관심의 무서움이였다. 브뢰겔의 그림<이카로스의 추락>을 통해서였다. 며칠전 그리스신화를 통해 이미 그림을 보았지만,그림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되지 않은 터라,그림 속 어디에 이카로스가 있을까 궁금헸었다. 그런데,자세히 보면 보인다.추락하고 있는 이카로스가 그리고 그에 추락에 누구도 시선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이카루스의 아버지 다이아달로스부터 죽임을 당했던 탈로스가 자고새가 되어 이카루스의 추락을 지켜 볼 뿐~ 정말 무섭고도 소름돋는 그림이고 이야기이다.
그림의 접히는 부분들과,전편의 책을 참조하라는 부분의 반복적인 인용이 다소 거슬렸지만,브뢰겔의 그림과 레핀,실레 그리고 앙소르의 그림을 보면서 불편한(?)마음은 접기로 했다. 이카루스의 추락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났으니 나에게는 반가운 책이였다.
|
|
![]()
무서운 그림 3 - 위험한 진실의 명화들~ 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다시 만났다 3권 그렇다 이 무서운 그림을 시리즈로 읽는 것이 이번이 세 번째다 1권과 2권은 나왔을 때 바로 알아서 봤는데 이 세 번째 책은 우연히 알게 되어서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 번째 책을 끝으로 저자는 더 이상 이 "무서운 그림"시리즈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 시리즈를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 서운한 생각이 든다
책의 표지에 있는 그림을 자세하게 보지 않았는데 책의 끝 부분에 이 그림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축 늘어져서 잠이 아름다운 여인의 가슴 위에 유인원 같은 것이 앉아 있다 책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표지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 유인원처럼 보이는 것이 악마라고 한다 "몽마"라고 해서 한자를 자세히 보니 "夢魔" 란다
영국의 화가인 헨리 푸젤리가 그린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책 기이할 정도로 축 늘어져 있는 여인의 형태가 그다지 자연스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이 들었다기 보다 기절하거나 유난히 힘이 없이 늘어진 팔과 목부분을 보면 죽은 것처럼도 보인다 저자는 조금은 에로틱하게도 보인다고 했지만 글쎄~~
이 책에는 이런 느낌이 드는 그림이 많다 그야 당연히 제목이 무서운 그림이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이었던 이아손의 배신에 치를 떨며 그에 대한 복수로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려는 메데이아도 그렇고 저자가 메데이아와 비교하면서 예로 든 오이와의 그림 또한 괘나 인상적이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인상적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 책에서 가장 무서운 그림은 이렇게 사람이 죽거나 악마가 나오는 그림이 아니었다 언뜻 봐서는 즐거운 파티를 그린 듯한 "전의 거리"였고 그보다 더 무서운 그림은 평화로워 보이는 전원을 배경으로 젊은 부부가 있는 "앤드루스 부부의 초상"이라는 그림이었다 그림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그 그림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을 알게되면서 이 책에서 이 그림만큼 무서운 그림은 없는 거 같았다 아마도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더욱 와 닿았을 것이다
예술작품을 보는 것은 보는 자체만으로도 좋지만 교양적인 면이나 지식을 쌓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자신은 이런 책들처럼 그림이나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책을 싫어한다고 한 적이 있다 작품을 선입견 없이 자신의 눈으로만 감상하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이 그려진 시대적 상황이나 화가가 그린 의도를 전혀 모르고 그림을 본다면 제대로 그 작품을 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 그 사람이 앞서 이 책에서 가장 무서운 그림이라고 했던 젊은 부부의 초상을 본다면 그 사람에게 그 그림은 그저 평화로운 전원을 산책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그림~ 물론 책의 표지에 실린 그림을 비롯하여 몇몇 작품들처럼 그림 자체가 이미 끔찍하거나 무섭게 그려진 작품들도 다수 있다 하지만 보여지는 그림이 아무리 평화롭고 아름답게만 보여도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의도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들을 종합하여 볼 때 더욱 무서운 작품들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그림이라고 생각된다
|
|
무섭도록 빨리 읽혀지는 책이다. 그림이 무섭지는 않다. 그림이 담고 있거나 혹은 숨겨놓은 진실을 맞닥뜨리기가 무서운 것이지.
처음 책을 받아들고 후루룩 훑어 넘겨본 20장의 그림들이 이제는 생생하게 살아나서 신음하고 울고 웃는다. 평면위에 그려진 그림들은 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읽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자의 풍부한 이야기가 곁들여진 그림을 보는 것은 마치 훌륭한 영화 몇편을 보고난 뒤의 느낌, 아니 영화가 줄 수 없는 그 이상의 이야기를 선물받은 듯한 감사함이다. (좋은책을 만나는 것은 마치 과즙을 한입 가득 베어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림이 담고있는 역사적사실과 숨겨진 뒷이야기들은 또 꼬리를 물어 어디론가 벌써! 독자를 유인하여 간다. 이는 화가들에 의해 이미 계산되어진 것일까, 아니면 저자의 의도인가? |
|
무서운 그림3. 나카노 교코, 세미클론. 무서운 그림 시리즈 완결편. 2와 다른 제목을 붙여볼까 하다, 그림만 바뀔 뿐 책의 구성 자체는 크게 바뀌는 건 없어서 이대로 쓰기로 했다. 절대 제목 고민하기 귀찮아서 아니다. 진짜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에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스리슬쩍. 이번에도 그림만 보면 대체 무엇이 무서운지 알 수가 없지만, 책의 설명을 보다보면 스산해지는 이야기가 책을 가득 메우고 있다. 총 20개의 그림과 함께 나카노가 이야기를 푼다. 1권과 2권을 이미 읽은 사람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듯. 고로 마음에든 그림 두 개만 소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선 날 사로잡은 첫 번째 그림은 26쪽에 나오는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 매우 아름답고 청초하게 생긴 처녀의 모습. 이 아름답고도 청초한 아가씨는,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뒤 아버지를 살인했다는 죄목으로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모두의 앞에서. 여기까지면 처녀의 안타까운 사연에 단순히 동정심을 품고 끝나겠지만, 나카노는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녀의 사연은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첸치가는 부유한 귀족 가문으로, 신실함이 크지 않아 교황에게 밉보인 상태인 상태라고 한다. 얄미운 첸치 가도 무너뜨릴 겸, 그리고 그 재산도 획득할 겸, 교황은 죄를 만들어 버렸다고. 다행히 첸치 가문의 막내는 살아남았지만 그 모든 재산은 교황에게 가버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일리는 있는 이야기다. 부를 위해 끔찍한 이야기를 날조하고, 고문을 통해 그 날조된 이야기를 강요하고, 대부분의 관계자를 처단한 뒤, 아무렇지도 않게 그 부를 누리는 교황의 모습을 떠올리면 매우 오싹해진다. 청초한,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베아트리체를 보다 보면 더더욱. 그다음으로 사로잡은 그림은 94쪽에 나오는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어린 예수. 젊은 마리아. 늙은 요셉. 요셉과 마리아는 사실 혼인을 약속한 사이다. 당시 어느 정도의 나이차가 적정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 큰 차이는 나지 않았을 듯. 그런데 이 그림만 보면 할아버지와 손녀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터다. 이렇게까지 요셉이 늙어버린 건, 마리아의 신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정인 상태에서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는, 그 후에도 처녀성을 유지해야 했고, 그걸 드러내기 사람들은 요셉의 ‘남성성’을 거세해 버린 것이다. 사실은 젊고 혈기왕성했을 요셉이 이렇게까지 꺾여버린 걸 생각해보면 어째 좀 씁쓸하다. 오쟁이 쓴 것도 억울할 텐데, 남성성까지 꺾다니, 당신들의 피는 대체 무슨 색인 거냐. 이러고 대신 화내주고 싶다. 비슷한 의미에서 188쪽에 나오는 아미고니의 ‘파리넬리와 친구들’도 씁쓸하다. 변성기 전 목소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거세당하는 카스트라토는 심지어 생식의 목적이 없는 성생활은 금지되었다는 이유로 가정조차 꾸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성당에서는 카스트라토를 고용해서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종교를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인격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모습이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 모를 만큼 기분 나쁘다. 아르테 신작 소설 ‘보기왕이 온다’에서 정말 무서운 건 인간이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안에 흐르는 악의가, 사람까지 잡아먹는 보기왕보다 훨씬 무서웠다. 이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명화의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인간의 악의가 무섭다. 저자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도 명화 자체의 무서움보다는, 그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악의의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명화를 좀 더 풍성하게 읽고 싶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 이미 알고 있던 그림을 재해석하고, 모르고 있던 그림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연히 서양 명화에 흥미를 붙일 수 있을지도. 덧붙이자면 가끔 일본의 옛그림에 대한 소개도 나오는만큼, 일본 그림에 대해서도 조금은 흥미를 붙여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술 관련 교양을 쌓는 당신에게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
3권을 다 읽다보면 서로 이면적인 모습도 보게 되어서 그림의 역사적 배경이나 화가의 개인사 같은 것들을 알게되어 유익한 시간이였다.이런 이면이 숨어있었고, 의미도 알게 되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