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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푸줏간에 걸린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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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평론가의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몰락의 에티카>를 읽고 평론이 이런 거라면 읽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고른 것이 <푸줏간에 걸린 고기>였다. 문학동네 평론집은 그 외에도 많았고 당시 강의를 하고 있던 황종연 선생님의 책도 있었으나 굳이 신수정 평론가의 책을 집은 것은 윤성희 작가의 <거기, 당신>에 실린 “무릇 당신이란 항상 거기 있는 존재
"책 이야기 <푸줏간에 걸린 고기>" 내용보기

  신수정 평론가의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몰락의 에티카>를 읽고 평론이 이런 거라면 읽어볼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고른 것이 <푸줏간에 걸린 고기>였다. 문학동네 평론집은 그 외에도 많았고 당시 강의를 하고 있던 황종연 선생님의 책도 있었으나 굳이 신수정 평론가의 책을 집은 것은 윤성희 작가의 <거기, 당신>에 실린 “무릇 당신이란 항상 거기 있는 존재”라는 말 때문이었다. 이미 제목으로 사용된 언어를 토씨 하나 바꾸지 않으면서 다른 의미로 바꾸는 그 자리 놓음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글을 쓰는 자는 언어를 만드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정확한 자리에 언어를 놓는 자다. 나는 신수정 평론가의 배치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당시 처음 읽었던 이 책은 첫 평론부터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로 가득했고 신형철 평론가 류의 감정적이고 아포리즘 가득한 책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평론은 신형철 평론가 같은 것이라는 가설을 신형철 평론가의 평론은 단지 신형철 평론가만의 것이라는 결론으로 수정한 채 책을 덮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았다면 아무리 늦어도 2012년 내였을 테니까. 그로부터 13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 동안 훈련도 나름대로 성실히 했고 눈도 흐릿하나마 예전보다는 밝아졌으며 무엇보다 읽기도 견디기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배워가는 터라 다시 책을 펼치는데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때와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간격이 궁금했다. 나는 얼마나 나아졌는가. 이 책은 어려운 책이었는가 아니면 그때의 내가 너무 어렸던 것인가. 나는 그것을 알아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의 도입부는 서문을 제외하면 가장 읽기 어려운 글을 모아두고 있었다. 총 4부 중에 1부는 개별 작품이나 작가론이 아닌 문학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읽기 어려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보다 조금 더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으나 글을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끝까지 읽을 힘이 없었지만 지금은 끝까지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곧장 썼어도 정리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지난 주에 읽고 이제와 쓰려고 하니 더욱 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책을 나의 언어로 치환하는 작업이고 이 작업은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바람을 섞어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평론집은 내가 한 번 읽고 나만의 체계를 마련하여 독파하기에는 어려운 책이다. 아마 여러 번 읽어야 할 것이다. 다만 책을 집중력 있게 읽었다면 세목을 자세히 다룰 수는 없었어도 내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만큼 읽는 방식을 택해왔고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시간이 한정없이 길어져 버렸다. 올해부터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오래된 기억을 잊지 않고 그때 실패했던 것에 다시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고맙다. 책의 서문에 신수정 평론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내게만 보였던 것이 있는 사람은 평론을 쓸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도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고 나만이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모든 책에 있다는 사실은 모든 책이 나를 기다린다는 말처럼 들려서 좋다. 아무래도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누가 나를 기다려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이 책은 다시 읽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다시 이야기를 쓰겠다. 내 눈에만 들어온 이야기를.



2023년 12월 16일부터 2024년 1월 14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g*******1 2024.09.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