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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화두에 대한 무게감 있는 고찰들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화두에 대한 무게감 있는 고찰들" 내용보기
아마도 학부때였을꺼다, 이 책(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말이다)을 읽은게. 그러니 역시 대강 10년 전이겠지. 상당히 얇았다. 설명대로 작은책이 맞다. 그 즈음에 과학철학에 대한 책도 좀 읽었었고, 생태주의 서적들도 찾아봤었는데, 지금보다 지식이나 이해력이 크게 낮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감수성의 측면에서는 좀 더 섬세했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말이냐면, 소위 생명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화두에 대한 무게감 있는 고찰들" 내용보기
아마도 학부때였을꺼다, 이 책(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말이다)을 읽은게. 그러니 역시 대강 10년 전이겠지. 상당히 얇았다. 설명대로 작은책이 맞다. 그 즈음에 과학철학에 대한 책도 좀 읽었었고, 생태주의 서적들도 찾아봤었는데, 지금보다 지식이나 이해력이 크게 낮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감수성의 측면에서는 좀 더 섬세했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말이냐면, 소위 생명 자체의 소중함이라는 테제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다소 감성적으로 예민하게 대응을 했을 것 같다는 거다. 이처럼 당시의 나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건... 그 책이 상당히 불편했다는 기억때문이다. 얇음과는 상관없는 난해함도 문제였지만, 한마디로 지독히도 기계론적인 생명관이 서술되어 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왜 그 많은 생태이론가들이 이 책을 어느정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정보를 축적하고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물리량을 분자단위에서 헤아리고 있는 저자의 논의가 어이없어 보였고, 물리학의 기반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도 솔직히 고깝게보였다. 아다시피 슈뢰딩거는 DNA이중나선의 발견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의 여러부분에서도 언급은 되지만, 그 분자수준에서의 선구적인 헤아림이 왓슨과 크릭의 DNA발견을 견인했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런 면에서 생명체를 기계적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시각의 선구자로 슈뢰딩거가 더 강하게 각인된 건 아닌가 싶었다. 또 하나 불만은, 이건 슈뢰딩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소위 생태론자들의 얄팍함에 대한 것이라고 해야 옳을텐데, 슈뢰딩거가 이야기했다는 네겐트로피(네거티브 엔트로피)라는 개념에 대한 근거없는 선호가 그들의 글에서 많이 언급되는 거였다. 제레미 리프킨 류의 엔트로피 논의가 또 생태주의에서 주요한 한 가닥이다보니, 어찌보면 염세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그런 논의에 약간이나마 제제를 가할 수 있는 논지를 제공하는 슈뢰딩거를 선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실체나 가능성에 대한 성찰이나 연구는 하지 않고, 그냥 아전인수격으로 자기유리한 논의만 짜맞추는 것 같은 근본론자들에 대한 불만, 그게 슈뢰딩거에 덧씌워있었던 거라고도 하겠다. 첫번째 실린 굴드의 글을 보면서 나름대로 고무됬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글들은 난해함의 수준이 더 높아서... 좀 힘들었다. 책을 다 본후 생각해보니, 사실 굴드는 저자들 중에서 슈뢰딩거가 던진 주제에서 가장 거리가 먼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였던 것이다. 발생론/존재론적인 주제가 슈뢰딩거의 것이라면, 진화생물학자 굴드는 형태로/기능론/상호작용론/역학의 대가일테니까. 뭐, 그렇게 보면 굴드가 슈뢰딩거의 환원주의를 싫어하는 것도 당연할 듯하다. 하여간,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슈뢰딩거 이후에 눈부시게 발전한 환원론적 과학의 결과들에 대한 고찰들이라 하겠다. 어렵긴 하고, 환원주의적이라고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고 나같은 놈이 가볍게 무시하기에는 저자들의 사색의 수준이 충분히 높고 또한 자유롭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갈래로도 나눌 수는 있겠지만, 내 기억에 남는 주된 논의는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뉘어 진다. 1. 생명의 기본을 이루는 분자구조의 탄생과 관련된 생물/물리학적인 논의, 2. 인간의식이나 이미 발생한 생명체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진화/적응에 대한 논의. 너무 대략적으로 나눈것 같긴 한데.. .하여간 그렇다. 1번의 경우는 열역학과 분자생물학, 혼돈이론 등에 대한 이야기가 논의되고 있고, 2번의 경우는 진화론이나 정보이론, 그리고 슈뢰딩거 이후의 양자론 등도 이야기가 된다. 만프레드 아이겐이라는, 다소 우파적인 냄새가 강하게 나는 생물학자는 1번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언젠가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초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즉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혹은 근대적인 용어로 표현해, 단백질이 먼저인가 핵산이 먼저인가, 기능이 먼저인가 정보가 먼저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유전적 입법부이자 기능적 집행부를 포함하고 있는 RNA 세계가 이 딜레마의 탈출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나는 최초의 RNA분자가 어떻게 세상에 등장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백질이 먼저인가 핵산이 먼저인가... 이런건 소수의 동업집단 내에서 통하는 유머처럼 들려 재미있었다. 하여간, 이 문장과 함께 1번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로부터 분자생물학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사실, 지놈에 대한 분석이 다 되고 나서도 여전히 그럴꺼라는 사실, 그리고 단백질이라는 놈과 핵산이라는 놈이 애초에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 DNA라는 놈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개체의 발생이나 생장을 결/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이야기들이 쭉 적혀있다. 뭐, 이 논의들 자체가 이미 10년이 넘는 옛날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개괄적으로 현대 생물학의 한계지점과 도전지점에 대한 브리핑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글들이라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2번과 관련하여, 스콧 켈슨과 헤르만 학켄이라는 이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현대 분자생물학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니 아마도 그 때문이겠지만, 모든 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큰 미해결 과제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그것은 복잡한 생명체가 어떻게 시공간적으로 조정을 거치는가 하는 것이다. ... 생명의 수수께끼는 분자생물학을 통해서 풀려왔다. 하지만 생명에는 세포 반응 화학 이상의 것이 있다. ... 가령 뇌에서 각각의 신경 세포는 생각하지도 냄새를 맡지도 활동을 하지도 기억을 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그것들은 서로 협력해서 시간적으로 응집된 집단을 만들어 우리가 인지기능이라고 부르는 것을 생성하는 듯하다. 생명체에서의 조정을 이해하려 할 때 본질적인 질문은 기본적인 상호 작용이 어떤 형태를 취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며 왜 그런 식으로 있는지 하는 것일 것이다." 역시나 매우 인상깊은 문제제기였다. 지금의 내 존재가 가장 최초로 지구상에서 발생한(이게 사실이라면) 원시세포의 운동으로부터 결정된 것이라는 식의 지독한 결정론을 믿는 이들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알게 모르게 생물학적으로 결정론적인 작용이 있을것이라고 은연중에 많이 생각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은 내 몸을 이루는 세포들과 그 DNA만이 아니라는 것, 나라는 존재는 open system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생물학의 주요 주제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런 논의로부터 진화(세포수준에세 개체군, 그리고 의식까지)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발전하고 있다.
e****s 2005.01.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