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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라디오에서 그런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어두운 겨울 밤. 지나가는 검은 고양이가 그 빠른 몸놀림으로 피하지도 않고 그자리에 있더란다. 그걸 본 여학생은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총총 걸어가 고양이를 부르기 위해 열심히 야옹야옹 거렸다. 그걸 본 쓰레기 버리러 나온 아주머니가 혀를 쯧, 찼고 여학생은 좀더 가까이 갔다. 그리고 그건 고양이가 아닌 검은 봉지라는 걸 깨닫고는 얼마나 낭패와 함께 창피를 느꼈다는 사연이었다.
이 사연처럼 화려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이 곳에 우리는 고양이라는 녀석과 공생하고 있다. 물론, 인간들은 고양이를 침범자로 하지 , 공생자로고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책을 펼치기전 표지와 책을 펼치기 위해 문을 여는 뜻한 또다른 포장에 깜짝 놀랬다. 아직 글귀도 읽지 않는 사항에서 난 그만 그 매료에 빠져버렸고, 빠르게 읽어나갔다.
작가는 고양이를 키운다. 그렇다고 한마리가 아니다. 그녀가 만나는 고양이는 공생자와 반려다. 그 시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다. 내 반려묘가 들었어도 아주 환영할 책이 아닐까? 사람 사는 것과 길고양이들이 사는 것은 결코 다른것은 없다. 살기 위해 끈질기게 움직이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해방촌 고양이라는 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의 일상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게 풀어져 있다. 그 곳에서 고양이들도 사람같다.
사람들 처럼 성격이 다양한 고양이들은 작가들과 함께 공생한다.
이 책을 다 읽고서야 작가가 황인숙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글은 사람의 마음을 온순하게 하거나 포근하게 하거나 따뜻하게 만들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아, 정말 두근거리는 시제목이지 않는가. 늘 카페 벼룩시장에서 죽치고 있다가 나오는 중고물품이나 사료를 날름하는 시인이라니. 정말 정감있다. 동질감이 마구 생겨났다. 네이버 모 고양이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내자신과 너무 비슷해서 책에 나오는 작가의 일상이 왜이리 재미있고 옆에 친구가 조근조근하게 말해주는 일상같을까? 매력이 가득 묻어있는 책이다. 우리의 이야기였고, 작가의 이야기였고 지금 이 텁텁하고 무뚝뚝한 도시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온도보다 더 높은 온도를 지니고 있고 찹쌀떡처럼 귀여운 발가락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추운 겨울 날 꼭 안으면 따뜻한 난로가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포근하게 잘 수 있는 그런 안락함.책은 마치 그런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했다. 사람은 많다. 그리고 고양이도 많다. 책을 다 읽고 짐정리를 하기 위해 문을 열어뒀다가 반려묘가 보이지가 않아 사색이 된 오늘.
나는,장롱 안에서 편히 잠들고 있는 녀석을 발견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지금까지 힘이 없다. 비오는 날 머리에 꽃달고 달려가는 어떤 여자처럼 그 높은 아파트 계단을 모두 밟았는데,녀석은 하품만 하면서 날 바라본다. 피식, 해방촌 고양이 책을 덮고 웃었던 그 미소를 나는 오늘 한번 더 웃고 말았다.
자, 따뜻한 책을 만나보는게 어떨까? 잔잔한 미소와 함께.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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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사람들을 세 부류로 분류한다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고양이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동물이어서, 좋아하는 사람들은 뒤통수만 봐도 귀엽다며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동물로 칭송한다. 반면에 싫어하는 사람들은 눈이 무섭다며 피하거나 길고양이가 더럽다, 재수없다는 이유로 괜한 해꼬지를 하기도 한다.
나는 무관심에서 매우 좋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우연히 발견한 아파트 화단의 새끼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고양이들이 무엇을 먹는지 알아야 했으므로 고양이 카페에 가입했다가 그곳에 올라오는 고양이들 사진을 보고 매력을 느꼈고, 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했거나 구조한 길고양이 사연을 읽고는 길고양이의 퍽퍽한 삶에 눈을 뜨게 되았다. 이후 보호소의 고양이 한 마리를 반려동물로 맞이해 집사생활을 시작하면서 고양이가 얼마나 예쁜 동물인지 새록새록 체험하며 산다.
이 책의 저자인 황인숙 님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내겐 한참 선배인 분이다.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면서, 카페 벼룩시장에 나오는 물품 구입을 위해 먼 거리의 지하철 여행도 마다 않는 집사님이다. 때로는 경제개념이 좀 부족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책없이 여겨지기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렇게 앞뒤 재지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분이어서 고양이에 대한 시선과 애착도 변함 없는 순수함을 고이 유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1부는 온전히 고양이 얘기로 가득 차 있다. 길고양이의 삶을 알게 된 이후 비가 오는 걸 반길 수 없었는데, 황인숙 님도 역시 그랬었나보다. 고양이 털에 대한 생각, 길 고양이 밥을 주며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 하는 신세 등, 내 마음인지 황인숙 님의 마음인지 헷갈릴 정도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2부~4부는 산책, 여행, 책 등 일상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분 정말 소박한 마음을 지닌 작가라는 것이 느껴진다. 1958년생이니 50대의 나이인데도 세상 때가 덜 묻은 듯 마음이 자연 같다. 때로는 날카롭기도 하다. 필요한 곳에 비판하고 받아들일 수 없음을 표현한다. 한 마디로, 비판정신과 지식을 갖추고 세상을 바른 눈으로 보는 고운 심성의 소유자인 것 같다. 작품이 좋아도 권력에 야합하는 소설가의 작품은 읽기 싫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뚜렷한 맑음을 지닌 분의 책은 찾아서 읽고 싶어진다. 고양이를 매개로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분이 좋다. 이분의 또 다른 책을 읽고 싶다. |
![]() 어릴적 목재로 지은 집들이 야트막한 담을 맞대고 줄지어 늘어선 우리 동네엔 쥐들이 참 많았다. 오죽했으면 방학숙제로 쥐약이나 쥐덫을 이용해 잡은 쥐들의 꼬리를 셈해 가져오게 했을까. 쥐로 인해 자연스레 집집마다 고양이 한 두 마리씩은 키우게 되고 고양이를 볼 때마다 자꾸만 흉물스런 쥐의 주검이 겹쳐 고양이도 쥐도 싫어한다. 황인숙 시인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곁들인 책에서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 뿐아니라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측은히 여기며 춥거나 비라도 오는 날이면 오매불망한 고양이들 걱정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모처럼 장시간 외출을 할라치면 고양이들 밥부터 챙기는 그녀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까맣게 잊고 지냈던 할머니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 할머닌 온 동네를 통털어 제일 마음씩 곱고 인물 또한 좋으셨다. 어렴픗한 기억속에 할머닌 늘 고운 한복차림에 웃는 모습뿐이다. 음식은 함부로 버리면 벌받는다고. 마루밑에 먹다 남은 밥을 찌꺼기를 가져다 놓으시며 쥐라도 먹으라고 하신 할머니. 과거 해방촌이라 불렸던 곳이 아마도 어릴적 동네모습과도 흡사하다. 가난하지만 이웃간에 정이 오가고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냄새 나는곳. 그곳 이야기와 감명 깊게 읽던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요즘 애완동물을 키울라치면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미용에 먹이며 간식에 철따라 유행하는 옷도 구입하려면 상상을 초월한다. 그녀의 남다른 고양이 사랑을 보고 한 친구는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력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마땅하다’고 강변한다. 여지껏 내가 품고있던 생각을 친구의 입을 빌어 말한것 같아 속이 다 후련다. 허나 그 말에 시인은 ‘그런데 친구야, 이걸 말하고 싶어. 가령 잡지에서 매월 2만 원이면 지구촌 오지의 어린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안내를 보고 후원신청서를 보낼 확률은,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것. 이 역시 고양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고양이한테도 돈을 쓰는데 사람한테 안 쓴다는 건 엄청난 가책을 받게 되는 일이거든.’ 이라고 말한다. 곰곰히 반추해 보니 동.식물사랑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으며 어려운 사람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 그대로 그녀의 말이 백번 옳다.그녀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녀는 왜 굳이 예쁘고 앙증맞은 만화속 케릭터 같은 외국산 고급 고양이가 아니라 그 흔한 거리고양이를 키우는지,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밑에서 밤잠을 자고, 먹을 것을 찾기위해 거리를 배회하고, 사나운 사람들의 폭력과 굳은 날씨에 불안해 떠는 지저분한 길고양이를 사랑하는지, 게다가 영양가 없어 보이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 활동에 밤잠과 바꾸고 고양이 먹이를 싼값에 사기위해 먼거리를 마다 안고 갔다오는 지극정성,춘겨울 잘 지내고 씩씩하고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고양이를 보고 참으로 뿌듯해하는 그녀에게서 정말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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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력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마땅하다고 강변했다. 그가 자선이나 후원에 기꺼이 사람이라는 걸 몰랐으면 내가 짜증을 참을 수 없을 말이었다. 그런데 친구야. 이걸 말하고 싶어. 가령 잡지에서 매월 2만 원이면 지구촌 오지의 어린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안내를 보고 후원신청서를 보낼 확률은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것. 이 역시 고양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고양이한테도 돈을 쓰는데 사람한테 안 쓴다는 건 엄청난 가책을 받게 되는 일이거든."
어릴 적 8년을 키웠던 도둑고양이는 결국 자유를 찾아 도망갔다. 매일을 물고빨고 키웠었다. 씻겨주고, 밥을 챙겨주고, 유난히 좋아했던 **소세지를 베어 물어서 먹이면서 나름 애지중지 키웠던 고양이였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왜 그랬는데, 우리집이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서면 언제 따라 나왔는지 후다닥 내 다리 밑을 지나서 앞집이고 뒷집이고 담을 넘어서 도망가곤 했다. 그때마다 고양이의 꼬리며, 다리를 붙들고 늘어져서 제발 가지말라고 소리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사랑을 줬음에도 우리를 떠나려고 했던 건 그 삶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때론 집착처럼 느껴졌을지 모를 우리의 사랑이 배부르다 못해서 사랑에 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8년만에 집을 떠난 그 고양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쪽이 아리다. 무엇이 그렇게 고양이를 갑갑하게 했던 것일까... 고양이가 원했던 삶은 어떤 형태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해방촌 고양이지만, 사실 고양이의 이야기보다는 고양이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작가 황인숙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책을 통해서 황인숙 시인을 알게 됐고, 그녀가 이전에 썼던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를 알게 됐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사람과 어울림을 즐겨하는 사람. 본인은 그런 것들이 어색하고, 생소하다고 말하지만 이미 그런 것들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해오던 사람. 이것이 바로 황인숙 시인이 독자에게 보여준 인생이다.
고양이는 날카롭고, 도도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강아지보다 애교가 많다. 그리고 유난히 버려지는 도둑 강아지보다 도둑 고양이가 많기 때문에 고양이들은 작은 정에 울고, 웃는다. 어쩌면 바로 이런 고양이의 삶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볼을 비비고, 그루밍(고양이가 자신의 몸을 핥는 것)을 하는 것은 때로는 인간의 모습을 닮아 있다.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좌절하는 인간. 어쩌면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인정 받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 때문에 언제나 외면을 꾸미고, 내면을 키우는 것.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책 초반의 내용과 달리 중반부를 넘어서면 고양이의 이야기보다 황인숙 작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드러난다. 옛시절의 이야기. 지금은 과거가 되었지만 결코 인생에서는 과거가 될 수 없는 시간의 이야기 그 시간에서의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 고양이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과 애정 표현때문에 듣게 된 친구의 타박은 우리가 흔하게 들을 수 있고, 애견가가 아니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그것도 인생이 아닌가 꼭 반드시 고양이를 위해 불품을 사지 않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고양이한테 쏟는 시간을 주변 사람들에게 쏟는 다고 해서 그것만이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의 시각에서 하루 종일 자신의 몸 닦는 일에만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가 한심하고, 그러한 고양이의 삶이 느긋하여 부럽겠지만 그렇게 느긋하고,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이었다면 이 세상에는 도둑 고양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릴 적 그 고양이를 나는 아직도 키우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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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부로 이루어진 책인데요 저는 가장 2부에서 나오는 더듬더듬 나들이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끔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때 저도 그냥 무작정 길을 떠나고 싶은데요 운전을 해서 자가용을 가지고 나가기 보다는 그냥 대중 교통을 이용하되 그렇게 복잡하거나 답답한 시내가 아니라 약간 외지로 나가는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하염없이 정처없이 바깥 풍경을 구경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떠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이렇게 도보로 또는 전철로도 충분히 나들이 할수 있다고 하니 새롭고 신선하네요 안될거라고 생각해서 도전해 보지도 않았던 일상탈출을 여기서 배우고 갑니다. 가까운 친구 한명과 함께 한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초행길에 혹시라고 모를 일에 대비하듯이 가족이 아니고 친구와 함께 떠나는 짧은 여행같은 소중한 시간들을 가지고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조만간 꼭 이런 나들이를 천천히 계획해 보고 싶습니다. 더듬거리면서 다닐지라도 참 좋은 여행일것 같습니다. 3부에서 말하는 사노라면은 우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나도 사노라면 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가끔 있습니다. 누가 하라고 한것도 아닌데 지난 시간들을 들추어 보게 되고 또 어릴때 추억속에서 한참을 헤매고 다닌적도 있습니다 꿈이 아니겠지 하고 깨면 안되는데 하고 붙잡고 싶은 순간들도 간혹 있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서 저 혼자만의 사색에 젖어서 한참을 가만히 꿈속같은 옛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모두가 꿈같지만 이젠 지난 과거인데요 앞으로 인생도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 보겠지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라도 충실히 살아야 하는게 맞습니다 그게 바로 현명한 삶일거라 믿습니다 매사에 충실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4부에서도 이렇게 멋진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처음에 고양이로 시작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를 알게 되고 나를 다시 보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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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부로 이루어진 책인데요 저는 가장 2부에서 나오는 더듬더듬 나들이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끔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때 저도 그냥 무작정 길을 떠나고 싶은데요 운전을 해서 자가용을 가지고 나가기 보다는 그냥 대중 교통을 이용하되 그렇게 복잡하거나 답답한 시내가 아니라 약간 외지로 나가는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하염없이 정처없이 바깥 풍경을 구경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떠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이렇게 도보로 또는 전철로도 충분히 나들이 할수 있다고 하니 새롭고 신선하네요 안될거라고 생각해서 도전해 보지도 않았던 일상탈출을 여기서 배우고 갑니다. 가까운 친구 한명과 함께 한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초행길에 혹시라고 모를 일에 대비하듯이 가족이 아니고 친구와 함께 떠나는 짧은 여행같은 소중한 시간들을 가지고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조만간 꼭 이런 나들이를 천천히 계획해 보고 싶습니다. 더듬거리면서 다닐지라도 참 좋은 여행일것 같습니다. 3부에서 말하는 사노라면은 우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나도 사노라면 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가끔 있습니다. 누가 하라고 한것도 아닌데 지난 시간들을 들추어 보게 되고 또 어릴때 추억속에서 한참을 헤매고 다닌적도 있습니다 꿈이 아니겠지 하고 깨면 안되는데 하고 붙잡고 싶은 순간들도 간혹 있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서 저 혼자만의 사색에 젖어서 한참을 가만히 꿈속같은 옛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모두가 꿈같지만 이젠 지난 과거인데요 앞으로 인생도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 보겠지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라도 충실히 살아야 하는게 맞습니다 그게 바로 현명한 삶일거라 믿습니다 매사에 충실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4부에서도 이렇게 멋진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처음에 고양이로 시작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를 알게 되고 나를 다시 보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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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고양이 가족을 보았다. 우리 집은 3층인데, 옆 집은 2층이라 옆 집 옥상이 훤히 보였다. 그런데 그 곳에 집주인 허락도 없이 고양이가 살금살금 들어섰다. 그런데, 얼씨구? 그 고양이 뒤로 그 고양이를 똑닮은 작은 새끼들이 살그머니 따르는 것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 모두 다섯 마리나 되었다. 더위에 지쳐 축 늘어진 어미를 둘러싼 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애처롭게 울어댔다. 고양이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한 행동이라고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왜 이렇게 줌기능이 떨어지냐며 자세하게 찍히지 않는 고양이 사진을 보며 투덜대는 일이었다. 그 동안도 미약하게 고양이 소리가 돌림노래처럼 울렸다. 미야오오오옹.
그 고양이들은 순식간에 자랐다. 하나도 귀엽지 않았다. 냄새나게 똥만 여기저기에 싸댔다. 어느 날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자기들이 스스로 도망쳤는지 주인이 쫓아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자그맣게 자신의 존재를 울어대던 고양이들은 또다시 길고양이가 되어 여기저기에 흩어졌다. 만약 작가의 집과 우리집이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어쩌면 작가는 내가 자라는 모습을 모두 보아온 그 고양이를 보고 애처롭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한테 그렇게 호의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지금도. 작가가 바라본 고양이들은 모두 ’친구’ 같았다. 그렇게 조용하고 애교있는 녀석들이 없었다. 얼마전에 본 웹툰 ’어서와’에서도 사람으로 변신하는 고양이를 보았다. 여기저기에 있는 고양이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소소한 작가의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내가 무관심했기에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소소하게 다가오니 더욱 친근했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이젠 작가의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고양이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앞발을 귀엽게 문지르는 고양이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곳곳에 깔려있는 주황색의 일러스트들이 내 마음도 따뜻하게 물들였다. 시인의 이야기들은 모두 깔끔하면서도 미소를 지을 정도의 가벼운 웃음을 건네주고 갔는데, 그래서 더욱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모두 시인인 작가가 담백한 언어로 내 놓은 노을지는 저녁에 조심스레 귀가한 따뜻한 마음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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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적부터 곤충이든 동물이든 인간 이외에 꼼지락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다 무서워했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움츠러들며 몸을 똘똘 말아버리는 쥐며느리조차 무서워 손으로 만지지 못했던 내가 어느날 큰 맘 먹고 강아지를 안아보기로 했던 날이 기억난다. 어떤 느낌일지 전혀 짐작조차 못했던 나는 친구의 손에서 넘겨진 강아지를 잡자마자 떨어뜨릴뻔했고 다행히 친구가 아직 손을 놓지 않아 그 강아지는 무사히 친구의 품으로 되돌아갔던 기억속에는 내 손에 느껴지던 강아지의 콩닥거리는 심장과 꼬물거리는 장기들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며 지금까지 내 기억의 한곳에 깊숙이 새겨져있다. 그랬던 나도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또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읽고 듣고 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어가고 좀 더 대담해지기도 했다. 깜깜한 밤의 어둠속에서 눈을 빛내며 쳐다보던 고양이가 이제는 조금 덜 무섭고 밝은 낮에는 길에서 만나는 길냥이들을 쳐다보면서 놀래키지 않으며 사진찍기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겨난건가.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대단한 문화유산이나 예술품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내가 고양이에 대한 글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고양이가 달라져보이더니 이젠 제법 많은 것들이 보인다. 물론 여전히 고양이를 기를 생각은 없고, 간혹 길에서 마주치는 고양이가 이뻐보인다 해도 먹이를 주거나 할만큼 고양이 애호가가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길을 걷다가 발견하게 되는 고양이의 자태를 가만히 쳐다보게 되었을뿐이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마음이 사라지자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던 고양이는 사라지고 대신 우아한 자태를 뽐내거나 나를 무시하고 자기 갈길만 재촉하거나 때로는 나의 관심을 눈치채고 나를 쳐다보곤 하는 고양이만 만나게 될 뿐이니 그게 반가울뿐이다. 그래도 역시 나는 고양이와 그리 친하지 않다. 그런데 또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니 뭔가 어색하다. 고양이에 대해 연구하려는 것이나 고양이를 키워보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고양이 이야기가 어디 단지 고양이에 대한 백과사전이 아닌 이상 고양이의 이야기일뿐이겠는가. 그들의 생활습성을 통해 바라다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기에 이 에세이는 고양이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삶의 다양성이 담겨있는 것이다. 저자는 첫머리에 고양이에게 정성을 쏟는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라고 했는데 왠지 그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자식만 감싸도는 이기적인 이들이 있는 것처럼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중에도 그런 편협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저 간결하게 자신의 일상생활을 적어놓고 있는 것 뿐인데도 그 가벼움속에 깊이가 있다. 어렵지 않은 글을 마음 편히 읽고 있으려니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의 어리숙한 모습도,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는 투덜거림도, 골목길의 무서운 아줌마들을 피해다니며 고양이 밥을 챙기는 모습도, 어린시절부터 인사나눔으로 알고 지내는 소녀의 성장과 조금씩 잊혀져가는 그 추억들에 대해서도 함께 공감하며 즐길 수 있어서 그런걸까? 내가 고양이를 키우게 될 일은 없겠지만 이제는 확실히 고양이에게 친근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내가 자신을 해칠까봐 신경이 곤두서 나를 노려보는 고양이를 만나면 잠시 흠칫,하겠지만 경계심을 가진 고양이에게 괜히 다가선다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유없이 까칠하게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고양이도 없으리라는 확신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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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의 시는 재미있다. 통통 튀고 발랄하고 어디론가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자유롭다. 그녀의 시를 읽다보면 소녀가 된다. 우산을 하나들고 멀리 날아가는 그런 어여쁜 만화 캐릭터라고나 할까?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의 표지그림 같은) 그녀가 내 놓은 이 책. <해방촌 고양이> 제목부터가 마음에 쏙 들더니 책이 온 날 나는 더 좋았다. 재생용지로 이쁘게 만들어서 책냄새도 좋고 선물하기 좋게 따로 하드커버지로 포장되어 있다. 색감도 좋다. 약간똥색(?) 이런 색 좋아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기분이 가볍고 좋다. 고양이에 대한 모든 것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시인을 통해서 나는 스무살 즈음에 고양이를 만났었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라는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 80년대 초입이었다. 그녀의 시를 통해 나는 밤고양이를 좋아하게 됐었다. 그녀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이 이렇게 이어진다. <해방촌 고양이>로. 그녀는 비를 좋아하고(비에 대한 많은 시들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젠 비가 싫단다. 순전히 고양이 때문인데....., 너무 많은 비가 고양이의 쉴 자리와 먹거리를 곤란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걷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그냥 좋아하지 않는다. 의성어와 의태어들이 모두 동원되어야할 만큼 온 몸으로 좋아한다. “발바닥에서 발목을 거쳐, 종아리와 무릎을 거쳐, 허벅지와 둔부와 허리를 거쳐, 척추와 경추에 이르는 몸체를 양팔의 휘저음에 맞춰 걸을 때, 나는 문득 숙연하다. 걸음, 걸음, 걸음! 나는 살아있다. 살아서 걷는 것이다. 필경은 유한한 걸음을 지금 걷는 것이다! 한 걸음마다 생명을 펌프질하는 듯한, 짐승같이 순수한 기쁨을 나는 느낀다.” 이 정도는 돼야 걷는다고 할 수 있으렷다. 이런 표현은 어떤가? “한 입 베어물면 복숭아 향내가 진동하는 풍미 가득한 달콤한 즙이 입가에 질질 흐를 정도로 부드럽게 솟구친다.” ‘야옹겔지수’ 이런 말 들어봤나? 바로 고양이한테 들어간 최소생계지수이다. 이게 높아져 걱정인데도 자꾸자꾸 고양이 물품을 사는 철없는 박애주의자. 이게 시인의 모습이라니... 읽다가 웃음이나와 혼자 낄낄거린다. 고양이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책을 좋아하고 봄빛에 취하고 그러다가 추격자를 피해 친구를 배신하는 소소한 생활의 이야기들 풋풋 웃음이 난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꼭 들고양이가 세상을 향해 뻗뻗하게 고개를 들고 꼬리를 치켜 올리며 한 줄로 요염하게 걷는 것 같다. 집도 없이 밤을 거닐고 있으면서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은 듯한 표정을 지닌 검은 털이 달빛을 받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그런 들고양이 한 마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