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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사랑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이야기한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 20년 전 처음 읽고, 그 후로 매년 꼭 한 번 씩 다시 읽어 보는 소설이다. [독일인의 사랑]은 19세기 영국에서 한 독일 언어학자에 의해 씌어진 책이다. 저자인 막스 뮐러는 저명한 소설가도 아니고, 이 책이 그의 유일한 소설이다. 반면 그의 부친은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와 [겨울 나그네] 등 불후의 작품을 남긴 독일 낭만주의 시인인 빌헬름 뮐러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이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문예출판사 판이 격정적인 감정의 흐름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플라토닉 러브'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책은 주인공 ‘나’ 와 그가 사랑하는 ‘마리아’의 현생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한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나’와 ‘마리아’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의사가 고작이며, 소설 전반에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갈등도 없고 절정도 없다. 한마디로 정겨운 시골 저녁길을 걷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최근 읽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구성과도 조금 비슷한 감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단조롭고 술술 읽히며 더욱 감상적이다. 이야기 초반부에 이미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마리아를 통해 그녀의 죽음을 예감하고, 이 소설이 비극이 될 것임을 독자는 눈치 챈다. 알고 보는 영화는 재미가 반감한다고 하지만, 이 책은 결말을 예상하고도 전혀 감동이 줄어들지 않는다. 내가 만난 소설 속, 사랑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거짓 없는 사랑이 이 책 속에 들어 있다. 나는 [독일인의 사랑] 속 마리아와 ‘나’의 사랑을 닮기를 원했다. 그들은 내 사랑의 롤모델이었다. 마리아와 주인공 ‘나’가 나눈 마지막 대화는 아직도 내 마음에 뭉클하게 울림을 준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는 결정의 순간을 마냥 미루려는 듯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애한테 왜 태어났냐고 물어보십시오. 꽃한테 왜 피었느냐고,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 “신은 당신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주셨지만 그 고통을 당신과 나누도록 나를 당신에게 보내신 겁니다. 당신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어야 합니다.” …… “아, 하느님, 나의 이 축복을 용납해 주소서.”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은 처음 읽은 그 날부터 내 사랑의 이상향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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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헷갈린다. 방학 때 혼자 버스 타고 외숙모외삼촌네 공부하러 다니던 중1 때(개인과외랄까, 외숙모께는 사회를, 외삼촌께는 수학을 배웠다) 그집 작은 방 책장에서 본 책이 엄마보다 세 살 위, 아빠와 연세가 같은 외삼촌이 학창시절에 읽던 오래된 판본의 <독일인의 사랑>이었는지 <첫사랑>이었는지. 제대로였다면 헷갈릴 수가 없다. 막스 뮐러는 독일인이고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인이다. 이 소설은 동양학자이자 비교언어학자로 유명한 막스 뮐러가 남긴 유일한 순수문학이다. 완전히 다르니까 도저히 헷갈릴 수가 없는데 아직도 기억하지 못한다. 읽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미스터리를 푸는 기분으로 시작. 아마도 이 책이었다고 굳게 믿는 중이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지만 꼭 안 중요한 것도 아니다.
없는 감수성을 빌려와 쓰자면, 내게 한 마디 해주기 위해 너는 수십 번 머리와 가슴으로 말을 고민하는 사람이고, 나는 나름 생각을 거쳤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툭툭 뱉어내는 사람이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고 본능적이다. 책은 내가 더 많이 읽지만 그게 너보다 내가 더 똑똑하다거나 지혜롭다거나 하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읽은 책에 관한 얘기나 읽고 있는 책에 관한 얘기를 너와 나는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문자도 통화도 엄청나게 해대는 그런 커플은 아니다. 대학 때는 함께 도서관에도 종종 갔고 우리가 아직 친구였을 때 너는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나를 무려 토요일에 만나기 위해 일부러 도서관에 와서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지만 네 맘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던 나는 재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고 차 타고 떠나는 나를 지켜보던 네 모습을 백미러로 보았다. 이 소설은 우리가 처음 만난 스무살, 다시 만난 스물한 살, 친구들끼리 함께 간 여름여행 후 연인이 되기 시작한 스물두 살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소중한 편지와 사진들, 빛 바랜 꽃바구니와 이제는 상해버린 샴페인이 들어있던 화이트데이 꽃바구니, 친구집을 빌려 촛불폭탄과 꽃다발과 와인으로 장식한 1주년 기념파티 등이 신선한 향기였을 때. 감수성이 말랑말랑해서 터질 것 같던 때. 사랑을 해서가 아니라 원래 내 감수성이 그정도일 때. 그래서 작은 일에도 서운하고 울고 따지고 토라지고 그랬을 때.
너무 진한 사랑소설은 이제 좀 부끄럽다. 화내는 것조차 귀찮고 에너지가 든다. 요즘 관심거리는 주로 어떤 상황에 대한 너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그것도 내 예상을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푸하하. 만약 완전 반대 입장이라도 함께지만 여전히 타인이라서 이해하자 치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정치성향은 좀 같았으면 하는 이상한 바람이 있다. 나는 부모님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게 많이 답답할 것 같다. 아, 이래서 종교적 갈등도 생기는 구나 싶다. 이해가 불가능할 경우 내 삶에 들여놓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랑에 대해 나는 할 이야기가 없다. 아무리 예쁘게 치장하고 또 치장해도 더는 추억할 에피소드가 없다. 내게 사랑은 과거가 아니고 우리 사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더이상 예쁜 엽서나 긴 편지지에 너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지 않고 너 또한 그렇다. 가끔 받기는 하는데 쓰기는 진짜 싫더라. orz 진지한 대신 애틋함은 증발했고 사랑이 불길 치솟는 감당못할 감정만은 아니라는 걸 너도 나도 안다. 네 맘까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나만큼이나 너도 많이 까야 하는 양파같은 남자라서. 수많은 영화를 둘이서 봤지만 그것들은 모조리 함께한 시간으로 치환되거나 증발되었다. 하지만 어떤 책도 동시에 읽거나 함께 읽지는 않는다. 그런 적이 없다. 영화 <더 리더>에도 <소피의 선택>에도 남녀가 함께 책 읽는 장면이 나온다. 소피(메릴 스트립)가 폴란드어로 한 줄 읽으면 네이든(케빈 클라인)이 영어로 번역해 한 줄 읽는 울프는 울프라서가 아니라 책이라서가 아니라 와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로맨틱하다. 해보고 싶을 만큼은 아니지만 어딘가 울컥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한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 뭐 다른 게 있나 싶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채 읽는다. 아마 이 소설의 주제는 두 국가의 민족성 차이가 아닐테고, 더군다나 독일인만의 특수한 사랑을 그려낸 것만도 아닐 것이다. '기독교적 사랑' 그러니까 플라토닉한 사랑을 풀어내는 점에서 지드의 <좁은 문>과 상통한다. 그치만 지드를 엄청 좋아하고 <좁은 문>을 특별히 애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 소설은 어디를 애정해야 할지, 반이나 이해하긴 한 건지 의심스럽다. 기독교적 색채, 육체와 영혼을 초월하는 사랑, 도덕적 순수(동정이나 순결을 의미하는 것 아님) 등을 대사를 통해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점은 신선하지만, 그 의미가 간결하고 뚜렷한 문장으로 마음에 쏙 박히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하물며 여주인공 이름은 동정녀와 동일한 '마리아'다. <독일인의 사랑>은 그녀를 맘에 품고 다가가는 한 남자의 마음과 상황을 독백 아니 일기로 담아낸다. 그녀는 몸이 성치 않아서 육체적 사랑이 불가능한 나머지 나를 멀리하거나 피한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다가가고 또 감싸안는 한 남자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회고록과 같다. 8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시간 순으로 간다. 그렇다. 이걸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소설이라면 <폭풍의 언덕>, 헨리 제임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까지 알고 있다. 쉽게 읽히지 않고, 느릿느릿하면서도 그 독백을 따라가기가 숨차서 포기한 적도 여러 번이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이 소설은 아마 그 중에서 가장 짧은 작품일 것이다. 소설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러니까 이런 생각. 이 독백 아니 회고는 <독일인의 사랑>의 주제에 가장 근접한 문장일 것이다.
이 사랑은 육체와 영혼 둘 중 어느 하나를 앞세우는 법이 없다. 그녀는 몸이 성치 못하다. 그는 몸이 성하다. 그런 차이가 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랑은 육체만으로도, 정신만으로도 온전할 수 없다. 그녀는 성치 못한 몸을 가졌지만 사랑은 죽음으로도 파괴될 수 없는 것이며, 죽음으로 승화되어 불멸한다. 그런 온전한 사랑을 갈구한다. 침묵이 사랑을 지켜준다. 상당부분 준 만큼 바라는 사랑의 거래성과 대가성을 조심스럽고 확실하게 비판한다. 에즈워드의 시를 인용하여 드러내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 육체를 욕망하는 사랑, 정신의 위안을 바라는 사랑, 부모와 자식, 부부간, 박애 등 모든 애정을 능가하는 가장 고귀한 곳의 사랑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의미를 사랑이라는 한 단어 속에 쑤셔넣는가. 가장 사랑다운 사랑은 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으면서 사랑가는 또 왜 그리도 많은가. 비록 내게는 가져보지 못한 큰 사랑의 울림과 그 속에 든 고결한 의미가 한꺼번에 다가오지는 않았어도 분명히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구석이 있다. 여전히 사랑 앞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재단하고 또 끼워넣으려는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인형처럼 맞추려하거나 맞춰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는 대로 삶과 죽음과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이란! 그런 게 과연 있긴 있을까. 없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이 간결하고도 순수한 소설이 사랑받는 것 같다.
'독일인의 사랑'의 독일인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 문화적 차이에 의해 이해되어야 하는 제목이라고 역자가 전한다. 사랑의 형태와 의미와 철학에 국적이 있을 리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묻자.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럼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니, 당신은 어떤 대답을 기다리는가. 기대하는 대답과 직접 듣게 될 대답은 같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마리아가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기만 해도 너무 숨차고 피곤한 세상이다.
순간 내 존재의 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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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다시 읽는 <독일인의 사랑> 10대 시절 읽었던 독일인의 사랑과 지금 읽는 독일인의 사랑은 느껴지는 감정이 전혀 틀리다.그때는 그저 젊은이의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야기는 단순하게 주인공이 나이가 들어도 잊혀지지 않는 아니 잊을 수 없는 첫사랑 마리아에 대한 사랑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 책에서 말해주는 철학적인 면을 아마도 어린 나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랑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든 철학적인 인생으로 받아들이든 <독일인의 사랑>은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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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 고전 읽기의 즐거움
고전을 읽는 것이야 말로 오래된 지혜로 다가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들었습니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읽게 된 것도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2. 번역에 관해서
수많은 번역서중에서 특히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하드커버 <독일인의 사랑>은 유려한 번역, 읽으면서 큰 부담감 없이, 그리고 독일어를 잠시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독일어 특유의 자잘한 재미들이 우리말로 잘 번역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번역의 유창함은 둘째치더라도 읽으면서 들었던 미묘한 주인공간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일말의 부조화가 느껴지지 않는 아주 부드럽고 훌륭한 번역이었습니다.
3. <독일인의 사랑>이 말하고 있는 것
막스 뮐러의 Deutsche Liebe는 <독일인의 사랑>이라고 번역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독일인의 신학>이라는 책이 본문에 언급되며 이 <신학>이란 말에 대구로서 <사랑>을 사용한 것 같은데요, 인간의 신에 대한 의문과 이를 풀어 설명한 <독일인의 신학>의 대칭되는 개념으로서의 인간의 사랑, 운명적인 끌림을 이 책을 통해서 보이려 했던 것 같습니다.
4. <사랑>이 무엇이었던가?
사랑한다는 것은 본래 신과 인간이 지닌 매우 자연스러운 성품이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떠한 이론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파란색을 보며 왜 파란색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구차하듯이 왜 사람은 사람에게 끌리게 되는지에 대해서 아주 간단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 사랑이라는 당연하고도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에 대해서 막스뮬러는 두남녀의 평온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운명적인 만남과 당돌한 선언들, 즉 "나의 모든 것는 당신의 것, 당신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라는 커다란 명제에 대해서 거스르는 여주인공과 그 명제에 순응하는 주인공의 심경이 드러나며, 결국은 그 명제에 거스리는 것보다는 순응하며 복종하는 것이야 말로 신이 창조한 사랑에 대한 올바른 인간이 태도임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이 사랑하며 서로에게 예속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을 때, 이미 시간은 지나가 버렸고 이 순수한 순종의 정신은 기억속에 남아 8장의 회고록으로 남겨진 것이 이 글의 줄거리라 하겠습니다.
5.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알게된 것들.
때로는 저도 제 삶에 대해서 "왜" 그런가 묻기도 합니다만, 어쩌면 그남자와 그여자의 말 그대로 우리가 순응하며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을 때 외워야 하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어떠한 치열한 삶의 의미에 대한 "쟁취"보다는 "믿고 받아들임"이야 말로 때로는 인간 생애를 가볍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단어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점 : 3.8 / 5.0(만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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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은 언어학자인 막스 뮐러의 유일한 소설로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전달하는 고전 작품이다. 흔히 고전이라 말하면 한 번쯤 들어봄직한데 나에게는 생소한 작품인지라 순전히 호기심만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가을이라... 웬지 사랑을 논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만. 하지만 페이지에 비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아무리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독일인의 사랑>처럼 지나치게 순전한, 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사랑의 모습은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스토리 또한 서서히 데워지는 물처럼 은근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지루하더라도 고전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끝까지 읽는 것이 이 책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 드리는 중요한 팁이라 할 수 있다.
왜 고전일까. 이 책을 덮으며 왜 <독일인의 사랑>이 고전이라 불리우고, 수많은 명사들에 의해 추천되어 왔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 비밀은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보여진다.
"고요하고 밝은 저녁이었다. 산봉우리들이 저녁 노을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산 중턱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계곡에서 회색 안개가 올라와 높은 지대로 떠오르면서 갑자기 환해지더니 구름바다처럼 하늘로 뭍결쳐 올랐다." _p.107
시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듯 이 책의 언어들은 마치 시를 읽고 있는 듯한 운율과 묘사로 넘쳐난다. 한국어로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번역되었겠지만 책에서 느껴지는 운율이 독일어로 묘사 되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라는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사랑의 감정이 그러하리라. 마치 새가 노래하듯이, 또 마치 춤을 추듯이 세상의 사물이 온통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사랑의 감정을 고스란히 언어로 담아내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고뇌하고, 때로는 격정적인 사랑의 모습 또한 언어로 잘 표현되어 있다.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머릿 속에 그려보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직설적이고 과한 사랑의 언어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보석처럼 빛나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은 사랑의 감정과 더불어 성숙해 가는 인간 내면의 모습인 것 같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서툴다. 소유하고만 싶고, 그것은 나의 전부여야만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지만 숱한 여정을 통해 성숙해가지 않는가. 이 책의 주인공 또한 마리아와의 교감을 통해 서툴고 미숙한 사랑의 모습에서 점차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
나의 것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랑이 아니라 그 '무엇이든 너의 것이 되고 싶은 사랑'. 이 사랑의 모습은 두 주인공의 대화에서도 옅볼 수 있듯 기독교적 관점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자기희생적이며 숭고한 사랑의 모습은, 마치 십자가 위 그리스도 예수의 조건없는 자기희생적 사랑을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기적인 사랑이 넘치는 지금, 가치있는 사랑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인의 사랑>은 분명 지루한 소설이지만 - 기승전결이 극적이기 않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책을 덮고 곰곰이 그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 보고 있노라면 분명한 감동과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메시지의 전달은 직설적이지 않다. 은근하고 깊게 우려진다. 그렇기에 <독일인의 사랑>은 명불허전, 바로 고전인 것이다. 인색하고 때로는 과하게 넘치는 우리 방식의 사랑, 그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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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영혼에 영원한 동경을 느끼는 한 소년의 정신적 사랑을 묘사한 이 작품은 순수한 사랑의 감동을 전해주며 사랑의 참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