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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자란 탓에 뱀을 볼 기회가 많았고, 뱀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일본 작가 가와카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는 어렸을 적 공포의 대상이었던 뱀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다뤘을 것 같아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가톨릭을 비롯하여 개신교나 이슬람과 같은 일신교가 세력을 얻지 못한 탓인지 다양한 신을 숭배하는 경향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영적 존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문학에서도 환상문학에 속하는 그런 작품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가와키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는 ‘뱀을 밟다’, ‘사라지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이야기’ 등 세 개의 중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입니다. 하나 같이 현실에서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기묘한 이야기들입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들인데, 고대 전설이나 신화와 달리 무게감 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세 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포유류는 물론 파충류와 같은 동물들, 식물들 나아가서는 생물과 무생물, 기체와 액체 그리고 고체까지도 이 이야기 속에서 서로 넘나들고 있습니다. 즉 복잡다단한 것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교환하고 서로의 역할을 바꾸기도 합니다. 즉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이 서로 돌고 도는 윤회라는 개념을 도출해냈는데, 따지고 보면 매우 과학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은 몇 가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생명을 다하면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생명체의 구성요소가 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무생물의 상태로 자연에 존재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뱀을 밟다’는 ‘미도리 공원 가는 길, 덤불에서 뱀을 밟고 말았다’로 시작합니다. 출근 길에 숨어 있던 뱀을 밟았는데, 뱀은 ‘밟히면 끝이죠’라고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면서 녹아내리더니 인간의 모습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뱀 인간은 주인공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자신이 주인공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는 등 살림을 도맡아 처리합니다.
잠은 기둥을 타고 천정으로 올라가 잔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집집마다 뱀이 들어와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뱀이 집을 나가면 그 집을 가세가 기운다고도 했습니다. 옛날 집들은 초가의 지붕 아래, 기와집도 기와 아래 혹은 대들보 등 뱀이 숨어있을 만한 공간이 분명했지만, 요즘에는 집안에 뱀이 숨어들 기회가 없으니 그런 이야기도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산이나 들에 나갔을 때 뱀을 만나는 것을 제일 무서워했던 것 같습니다. ‘은혜를 갚은 까치’ 등 뱀을 두려워할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와카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에서처럼 뱀과 동거를 한다면 끔찍할 것 같습니다. 또한 뱀을 세계로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끊임없이 꼬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중에는 논에 날아드는 새들을 쫓기 위하여 공포총을 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옛날 이야기도 하니고 요즈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꿈에서나 볼 것 같은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먹힐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옛날 참새들은 논에 세워놓은 허수아비가 무서와 논에 내려앉지도 못했다는 것인데, 요즘에는 허수아비의 어깨나 모자 위에 앉아 노닥거리기까지 하는 판이라서 가끔씩 총포를 쏘아서 놀래켜야 달아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참새도 간이 배이 붓는 진화를 한 셈입니다.
‘사라지다’에서 처럼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은 현대에서도 흔치 않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사람의 몸통이 줄어들어 눈으로 겨우 식별할 정도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쩌면 인간이 몸집이 줄어드는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신묘한 재주를 가진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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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무심결에 뱀을 밟았다. 흠칫 놀라 발을 떼자 그 뱀은, 덥석 다리를 물지도 서둘러 도망가지도 않은 채 ‘밟히면 끝이죠, 밟혔으니 어쩔 수 없네요’ 라는 둥 영문 모를 소리를 하더니, 쉰 살은 되어 보이는 여자로 변하여 유유히 사라진다. 그것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이른 아침 출근길에 일어난 일. ......여기는 어디인가, 이것은 꿈, 인가?
가와바타 히로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는 옛 스승과 제자의 사랑을 다룬 「선생님의 가방」으로, 작품 저면에 유유히 흐르는 그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본 작품/작가 소개에 ‘이상한’이란 수식어가 왜 그리 빈번히 출몰(!)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다시 한번 그 섬세하게 묘사된 차분한 작품을 감상해볼까 싶어 집어든 이 작품집은 보기 좋게 내 기대를 배반하여, 일순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릴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몽환적인 이야기 일색. 과연 그야말로 ‘이상한 이야기’들 뿐으로 실로 작자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길가다 밟아버린 뱀은 어느 샌가 집에 눌러앉아 ‘함께 뱀의 세계로 가자’며 끊임없이 유혹하고,(‘뱀을 밟다’) 결혼을 앞둔 큰 오빠와 작은 오빠가 차례차례 홀연히 사라지는가 하면(‘사라지다’), 가로등이 켜지고 다시 꺼질 동안 영문모를 일을 계속 겪게 되기도 한다.(‘어느 날 밤 이야기’) 그것은, ‘밤에 만나는 이들치고 변변한 사람 없으니..’란 말 한마디에 온갖 기괴한 현상이 용인되는 마치 꿈과도 같은 이야기. 꿈속에서 겪은 일처럼, 당시엔 마냥 진지하게 열중했지만 돌이켜 보면 대체 자신이 왜 그랬는지 영 석연치 않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야기들을 단지 ‘터무니없는 이야기’ 라든가 ‘아이들이 읽는 동화’라는 식으로 치부하기엔, ‘뱀의 세계는 따뜻하다구....’하는 뱀의 유혹은 소름끼치게 설득력 있고, ‘사라지면 그걸로 끝이야’라는 큰 오빠의 한탄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현실적인 무게를 띄고 다가온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 이 작품.
길을 가다가 문득 깨닫고 보니 뱀을 밟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수풀이 우거진 산길을 걷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뱀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혹스러운데, 정작 밟힌 뱀은 체념조로 ‘밟혔으니 어쩔 수 없다’며 사람으로 변하여 유유히 사라졌다? ......이것은, 꿈, 인가? 아님, 황당한 현실인가? 현실이라 하기엔 도무지 납득이 안가는 상황에, 비현실이라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그 느낌. 일순 어릴 적에 읽은 「이상한 앨리스」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려 자문을 구해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부질없는 짓. 이 작품은 그렇게(실례!) 녹록치 않다. 앨리스가 그 모든 어이없는 체험을 ‘꿈 이었구나’하고 꿈과 현실의 출구(경계)를 찾아낸 반면 이 작품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렇게 명쾌한, 만족할 만한 경계선이 나타나진 않는다.
여기는 어디일까,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답은 보이지 않는다. 꼬장꼬장 꿈과 현실을 구분지어 보려는 부질없는 짓일랑 그만 두고 그저 이 이상한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인상깊은구절] -고스가 씨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만, 어떤 것을 짊어지고 어떤 건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지, 짋어져 볼 때 까지는 모를 것 같았다. -뱀과 나 사이에는 벽이 없다. -히와코 짱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모르는 척 하더라. |
| 기분 좋게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 아무렇지 않게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히로미 님의 글에 매료되었다. 하나하나 단어의 배열들이 꼭 밤하늘의 별들처럼 은은히 반짝였다고 할까, 하나의 단어는 생동감 있게 흘러넘치고 , 또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단어들은 쳐다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없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들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나지도 않고 히로미 님의 세계와는 전적으로 다르니까. 몽환적인 은하수 같은 느낌으로 이 글을 하나하나씩 읽어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소녀를 재생시키려 하는 나가 되어있고, 큰 오빠나 작은오빠의 사라짐에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내 가 되어있다. 환상 적인 그런 분위기에 나는 기분 좋은 피아노 독주곡을 듣는 기분이었다. 일탈을 꿈 꿀 때 지겨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나는 이 책을 들고는 침대 속을 파고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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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느낀 강렬한 인상들이 대게 꿈으로 나타나곤 한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당장 재현되기도 하고 엊그제 있었던 일들이 비슷한 형상을 그리며 시일이 지난 후에 꿈속에 나타나곤 한다. 때론 어렸을 적 장소를 원형 삼아 현재의 인물들이 그 공간 안에서 노닐기도 한다. 내가 꾸는 꿈들 대부분이 그렇다. 무언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나 아쉬웠던 일들이 다시금 꿈속에 나타날 때가 많다.
헌데 그 꿈이 지나쳐 늘상 몽환이나 정신착란에 사로잡혀 산다면 차츰 현실과 몽환 사이를 헤매게 된다. 대게 심적인 부담을 안고 살아가거나 정신착란에 쉽게 흔들리다보면 점차 현실과는 괴리감이 생기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만 쏟아 놓는다면 그를 아는 사람들은 점차 그를 몹시도 싫어하게 된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란 책도 처음에는 그렇게 다가왔다. 실제적인 삶과 꿈을 오락가락 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깊숙한 몽환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을 했다. 이야기 속 히와코에게 밟힌 뱀이, 어떻게 쉰 살 가량의 여자가 되어, 자기만의 세계로 유혹할 수 있다는 말인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뱀으로 환생한 여자는 자칭 작중 화자의 어머니라며 시금치 깨무침이라든지 다시마와 채 썬 당근 나물 등 식욕까지도 돋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 두지 않던가.
그런 유혹들이 어쩌면 뱀이 쳐 놓은 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화자는 깊은 늪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어간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자와 한 몸이 되어 뒤엉키기도 하고, 때론 서로가 목을 조르다가도, 어느새 우두커니 바라만 보기에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냐 싶다. 그 사이 뱀은 자꾸만 자꾸만 자기 세계로 들어오길 요청한다. 하지만 그 강한 흡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세계를 곧잘 박차고 빠져 나온다. 그렇게 그의 일상은 뱀의 유혹에 빨려들다가도 다시금 현실로 빠져 나오는 희귀한 삶에 뒤엉키게 된다.
그게 첫 편 표제작의 중심 내용이라면 〈사라지다〉와 〈어느 날 밤 이야기〉는 그 다음 꼭지를 이루며 꼬리를 물고 있다. 신주 단지 같은 집안 물건이라든지 증조부로부터 시작해 오빠들까지도 툭하면 사라져버리는 내력을 가진 화자의 집안 이야기가 두 번째 꼭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더군다나 그 집안의 이상한 내력은 시집 온 올케까지도 혼미하게 만들어 결국 오므라들게 하지 않던가. 그런 내력이 실제 세계에도 있을 것인지 사뭇 의아해지기 마련이다.
마지막 편에 속하는 〈어느 날 밤 이야기〉는 밤을 매개로 하여 열 아홉 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연이어 쓴 작품이다. '말'이나 '카오스'를 비롯해 '도롱뇽'에 이르기까지 총 열 아홉 편의 밤 이야기는 누가 뭐라 해도 분명히 꿈이나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헌데도 그 하나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름대로 풍겨나는 게 있다. 그것은 그들 짧은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는 독특한 생명력들이다. 그 생명력에 이끌려 작은 이야기보따리들을 하나 둘씩 따라가다 보면 실제 이쪽 삶과 환상 저쪽의 삶을 분간한다는 게 부질없는 짓처럼 보인다.
실제적으로 겪은 이야기가 꿈이나 몽상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분명 허풍쟁이라며 따돌림당하게 된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일을 자꾸만 쏟아 놓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그 사람이 밉지 않다면 그 속에 뭔가 다른 게 있기 마련이다.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꿈과 몽환 사이를 오가는 것 같은데도 분명 뭔가 다른 게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저자가 얄밉지 않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극구 칭찬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도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할 정도로까지. 아마도 그 이유는 저자만의 상상력으로 실제와 가상 세계의 경계를 바람처럼 물처럼 허물고 흐르게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꿈이나 몽환 같은 가상 같은 세계에서도 현실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충분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인상깊은구절] 어째서 내가 뱀이 되지 않고 그 사람들이 뱀이 되었는지, 실제로는 그들이 뱀이 되었을 때 나 역시 뱀이었던 걸까? |
| 요새 일본 작가들에게 빠져있는 나지만, 이제목만큼 인상적인 것은 본적이없다. 누군가의 추천도 없었던 것이고 그냥 도서관에서 하염없이 돌아다니면서 고른 책중 하나인데 솔직히 말하면 뱀을 밟다와 그외에 단편 하나를 읽고 나머지 하나의 단편을 남겨두고 반납하고 말았다. 선생님의 가방이라는 책을 쓴 가와카미 히로미에게 그 책을 읽고 조금 반했었는데, 이책은 영 동질감이 들지 않는다. 말그래도 뱀을 밟으면 밟힌 뱀이 인간이 되어 내 주변을 맴돌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뱀의 세계를 오라고 권유하는 내용인데- 뱀을 싫어하는 나로써는 그저 징그럽고 모호하기만했다. 상상력하나는 기가막히는군 이라는 생각은 들었고, 그렇게 뱀과 동거동락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그다지 큰 감동은 아니였다고나 할까. 해변의 카프카를 읽다가 합숙을 가느라고 책을 오래 못읽었는데, 그 첫타자가 왠지 징그럽고, 간괴스러보이는 뱀에 관한 책이여서 실망스러웠다. 난 뱀과 인간의 교감보다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교감, 미움, 싸움, 사랑, 질투, 이런 일상사가 더 읽고싶은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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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카미 히로미의 책을 이미 세 권 읽었다. 〈니시노 유키히코의 연애와 모험〉, 〈나카노네 고만물상〉, 〈사랑스러워〉가 그것들이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이 작가 대중적인 듯하지만 어딘가 묘하다, 라고 여겼다. 아쿠타가와 수상작인 <뱀을 밟다>를 비롯해 세 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린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내가 읽은 세 개의 책) 이전에는 훨씬 더 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괴기스러운 존재나 상황을 동화적인 감성으로 그려내는 것이 마치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류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닮아 있기도 하다. (역자 또한 옮긴이의 말에서 이를 살짝 거론한다) 지은이의 말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창작관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최근의 글은 많이 현실적이게 되었다, 라고 여겨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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