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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소개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나 혼자 예상하고 기대하던 내용과, 실제책의 내용이 다른 경우는 허다하지만 이번 " 버니먼로의 죽음"만큼 전혀 다른 느낌의 책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맘이 불편했고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게 무엇일까 계속 고민하면서 읽었는데 마지막장을 덮을때까지 나는 이 책을 완벽히 이해하지를 못하겠다. 성도착증환자가 이런 모습일까?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이 생기고 여자생각만 해도 발기하는..하루종일 머리속에서 떠오르는거라고는 온통 여자,.섹스에 대한 생각뿐.. 남편의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아내는 자살하기에 이르게 되고 버니먼로는 9살 아들 버니 주니어를 데리고 자신이 해오던 화장품 방문외판일을 계속 하게 된다. 아내의 죽음으로도 고쳐지지 않는 문란한 성생활. 그런 그에게 눈병으로 인해 고통에 시달리는 아들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듯하다. 화장품 외판원. 난봉꾼인 버니먼로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직업은 없을듯하다. 아이의 눈에 비치는 아빠는 어떤 모습일까..학교도 못가고 아빠를 따라다니며 방문판매를 하는 동안에는(때로는 그 시간동안 고객과 섹스행각까지 벌이는) 차에서 기다리는 버니 주니어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책소개에서는 아내의 자살전 버니 먼로를 매력적이고 호기로운 난봉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난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던데.. 또한 이 소설을 유쾌하고 정신나간 소설이라고 애기하는데 개인적으로 결코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 얘기하고자 하는게 무엇일까,,작가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답답하기도 하고 이 책에 대한 평이 좋은 다른분들의 느낌을 전해받고 싶은 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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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먼로의 죽음. 제목엔 뭔가 심오한 뜻이 담겨있고,표지에 있는 추천의 글들은 정말 읽고싶은 마음이 들겠금 한다.하지만,정말 그럴까? 아니,그랬을까? 대답은 NO. 내 사고가 너무 경직 되어있는걸까? 이 책의 내용이 편하지도 않고,거의 분노가 일어날 지경이라면.
<닉 케이브는 우리 시대 사랑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작가중 한 명이다._추천의 글중에서> 이 사람에게 우리 시대의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묻고싶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이 세상이 어떻게 유지될수가 있단 말인지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모독도 유분수지.
소설의 도입부 부분에서는 우리 글을 읽고 있는데도 이해가 조금 어려웠다. 남자로서의 욕구를 자신의 의지대로 컨트롤 할 수조차 없는 사람.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아내의 자살이후, 아들을 데리고 떠난 여행에서조차 머릿속에는 성적인 욕망만 가득차있고 행동으로 옮기기에만 급급한 사람. 아들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다. 버니먼로의 사랑이란 가족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생물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에 급급한것으로 보여진다. 가끔씩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할때도 있고,용서를 비는 장면도 나오지만 하나의 변명에 불과한 이야기들.사고를 당한 후 보여지는 환상의 세계에서 용서를 구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장면에선 너무 황당해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무런 꺼리낌없이 이해불가의 행동을 하고 다니다가 죽음 직전에 용서를 구한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나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기때문이다. 버니의 눈을 감기 전 한마디. "착하게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어." 착하게 살기 위해서 버니는 어떤 노력을 했었고 어떤 좌절을 겪었기에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어떤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버니의 회상장면으로 유추해 본다면 그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는것.이 말만으로 본다면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성실하게 노력한 주인공의 모습이 앞부분에서 그려졌어야 하지만,그런 부분은 없었기에 조금은 소설의 끝부분에 약간의 미화가 필요해서 끼워넣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작가는 무얼 이야기하려고 했을까? <아내의 자살 이후 시작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4일간의 기이한 여행> 아니,기이한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는 할 수 없는 동물이하의 행동들로 가득찬 한 남자의 행로라고 해야겠다. 어떻게 아빠라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이런 사람에게 붙일 수 있다는것인지. 세상의 고귀한 아버지들에 대한 모독이다. 아들은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아빠이기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그런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롭다.
이 책의 소개글에 보면 성장소설,가족소설이라고 분류가 되어있다.이런 아빠를 보고 성장한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될까? 가족의 기둥이 되어야할 아빠가 이런 성격의 소유자라면 그 가족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분류만 보고 선택했다간 정말 난감해지지 않을까싶다.이 책으로 인해 처음으로 책의 분류에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난 그랬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덮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버니먼로에겐 있겠지? 아마,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장치가 숨어있을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읽어나갔다.내가 시간을 투자한만큼 의미있는 책이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러나,난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못찾겠다.
ps -아이는 부드럽게 그녀가 뻗은 손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일어난다.허리를 쭉 펴고 일어난다.-p 317 마지막 이 문장만 여운으로 남는다.아들이 엄마의 자살의 충격을 이겨내고,비정상적인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올바른 삶을 살게 되는 미래를 보여주는 문장이 아닐까 싶어서.아니, 꼭 그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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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우울증과 가정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는 않는 남편의 모습은 현재 어느부부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아내들의 우울증에 남편들은 오히려 외면을 하고 딴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내는 나락 으로 떨어지고 점점 자신의 세계에 빠져 헤어나올수 없다. 많은 아내들이 외로움과 무관심속에서 힘들어 하고있는게 실정이다. 이소설을 읽으면서 원초적 본능은 이해하지만 버니의 죽음을 보면서 통쾌했다고 말 하면 너무한다는 말을 듣겠지만 속이 좀 시원했다. 마지막에 가서야 후회를 하는게 사람이라지만 진작에 왜 깨닫지 못했는지 난 이소설을 남편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니 부부가 같이 읽어보고 대화의 시간을 가져 보는것 또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봉꾼, 세일즈맨, 데드맨 총3부로 이루어진 내용은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아내의 우울증 앞에 이렇게 초 연한 모습을 보일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여자들의 섹스의 대상으로 밖에 보지 않는 그이 어린시절이 궁금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린아들은 아내의 죽음앞에서도 친구들과 여자와 어울리는 아빠를 그저 좋은대상 으로 본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바라보는 버니주니어의 생각은 점점 바뀌어 간다. 죽음의 순간에 지난날 의 모습이 스쳐지나가고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배운것이라고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었다. 자신 의 아들조차 그렇게 될까봐 걱정하는 모습에 사실 좀 내가 위안이 될 정도였다.
많은 독자들이 작가의 사람의 본능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다는걸 공통점으로 내세울것 같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니깐 말이다. 세상에 이런 아버지가 있나 싶은 정고로 초반에는 울화통이 터질지경이다. 왜 죽는순간 그걸 께닫았을까.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버니주니어의 인생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설로 그냥 스 쳐지나가기에는 이세상의 모두 아내들이 불쌍하게 보였다. 나 또한 결혼과 동시에 허무함을 느껴기에 많은 주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울점 없는 아버지지만 그래도 그 사람 자체를 사 랑하는 아이를 보면서 역시 순수한 마음을 알수 있었다. 모험보다는 버니의 불쌍한 인생을 보는것 같아서 안 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아이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수밖에 없는 상 황속에서도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다 아팠다.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까지 거침없이 내뱉는 작가 의 글에 경악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외설스럽지 않았고 경건한 순간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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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아내의 자살로 그는 홀로 아이를 돌봐야하지만 화장품 외판원인 그는 실제로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없는 체면 다 챙겨 아내의 장례식에서 장모님에게 아이를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렇게 아이는 아빠에게 버려진다. 4일간의 아빠의 낡은 차. 반 미치광이의 아빠와 동행이 시작되지만 버니의 혼란스러움은 극을 향해 치달아간다.
어느 날. 아이에게 나타난 엄마의 영혼은 내 눈시울을 단번에 적셨다.
버니가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해서 그를 향한 약간의 동정심을 남겨두긴 싫었다. 나는 엄마이니까...아이에게 남겨진 백과사전과 차갑고 어려운 세상이 너무 어둡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작가는 호주 출신의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접해본 것 같지 않지만 문체에서 다분히 그의 음악성도 느낄 수 있다. 난무하는 외설스러운 유머. 그의 추잡한 온갖 상상들을 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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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정서 차이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보수적인 편인데, <버니먼로의 죽음>에서는 서구의 지나치게 개방적인 면모를 까발리고 있었다. 주인공 ’버니 먼로’자체부터 그러하다. 소설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는 온종일 불순한 생각만 한다. 그런 이야기를 조용히 참고 들어야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아마 그런 ’불편’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러한 불편은 소설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버니 먼로는 아내가 자신에 지쳐 자살을 하고, 어린 아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우면서도(남들이 보기에는 눈을 지푸릴 정도로) 불순한 상상과 그러 인해 피어오르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결말은 비극적인 죽음이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 당연히 있을 것만 같은 따뜻한 결말이 없자 나는 고전적인 소설의 독자로서 배신을 당한 양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토록 열린 결말에도 아직은 보수적인 독자였다. 버니 먼로는 온갖 비난의 시선을 받으며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후, 아들과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는 화장품을 방문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고객을 고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늘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온갖 상상을 한채 바라본다. 그런 그의 눈빛에 동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당연스레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의 눈빛에 쉽게 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저쪽 세상’에 전혀 공감도 가지 않고 계속 지켜보기도 싫었다. 대체 버니 먼로가 세상을 사는 이유는 저런 상상을 죽도록 하기 위해서란 말인가. 하지만 소설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전개로 이어나간 것은 작가의 타고난 능력이었다. 꽤 두꺼웠지만 이 책을 읽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작가의 필력으로 퇴폐적인 버니 먼로의 시선을 담은 점은 조금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많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토끼’라는 뜻의 귀여운 의미를 가진 ’버니’ 먼로는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시선이 아빠의 시선과 엇갈렸다. 그래서 버니 먼로의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는 듯 했다. 귀여운 토끼만 보이던 표지를 다시 보니 변기 위에 토끼의 모습이 보인다. 표지는 음침했고 제목과 소제목은 버니 먼로의 비극적인 결말을 직시하고 있었다. 작가는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개방적인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뮤지션이였으며 연기자이기 하였고 직전에는 우화소설을 쓴 적도 있었다. 그의 그러한 개방적인 마인드에 따르는 도전정신은 부럽지만, 나는 그의 열린 사고에는 많이 뒤쳐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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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일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세상에, 특별한 재능과 노력으로 두 가지 세가지 일까지 성공적으로 해내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두가지 직업을 가지기도 하고, 때로는 직업과 취미를 높은 수준으로 해내기도 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눈에 띄고 관심을 받는 사람들은 아마도 연예인들이 아닐까?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단지 노래하고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꼭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버니먼로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쓴, 닉 케이브 역시 그런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가수겸 영화배우, 또 작가이니 말이다. 가수이자 영화배우이고, 또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작가이기도 한 닉 케이브,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어떤 세상을 담고 있을까?
![]() <버니먼로의 죽음>은 한 여인의 자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화장품 외판원인 남편과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가족을 꾸리고 살고 있었던 여인. 이 여인이 죽음을 맞이한 후 남겨진 아버지 버니먼로와 아들의 이후 이야기들을 담은 이야기이다. 별 볼 일 없는 화장품 외판원의 삶을 살고 있는 버니먼로에게 아내의 죽음은 아들과 단 둘이 남겨지는 거대한 충격과 책임감으로 다가오고, 폐암으로 삶을 마감해가는 아버지에게도,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아버지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이라 말하는 아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부정이자 마지막 자존심. 버니먼로는 바로 그 마지막 하나의 자존심이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아들과 함께 화장품을 판매하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점점 추하고 망가진 모습만을 아들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끝없는 절망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여정. 아들은 아버지에게 길을 안내하고, 아버지는 창꼬치에게도 물건을 팔 수 있는 능력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상실감을 이겨내려 하는 의도와 전혀 다르게 엇나가는 그 길은, 버니먼로에게는 살고자 했으나 죽게 만드는 좌절을 안겨주고, 아들에게는 위대한 나의 아버지가 사실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짓을 일삼는 난봉꾼에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게하는 과정으로 바뀌어 버린다. 어쩌면 조금은 희망적이고, 마지막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시작한 길이 돌이킬 수 없을만큼 어긋나버리는 과정, 그리고 결국에는 폭력과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버니먼로의 죽음>은 그래서 삶의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삶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세상에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버니먼로의 죽음>에서 버니먼로는 자신이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잘 나가는 세일즈맨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고분분투하고, 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어긋나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낼수록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 몰두한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 할 수록 절망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유일하게 원초적인 욕망만이 잠시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듯이 말이다. 때문에 여정이 끝나갈수록, 그리고 아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처참할수록 이성을 벗어던지고, 성적욕망에만 사로잡혀가는 것이다. 점점 이성을 상실하는 버니먼로의 모습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들이고, 이 비극이 다시 그를 성적 욕망만으로 채우는 악순환. 이야기는 그렇게 삶에 대한 책무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한 남자가 끝없이 이어지는 좌절과 고통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잃어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함을 가지고 있다. ![]() 이 책의 어느 구절처럼, 착하게 사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인생은 착하게 살기보다는 살아간다는 바로 그 생존의 의미를 찾는 것 만으로도 때로는 힘겹고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한 순간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사치이고 무가치한 일인지도 모른다. 착하게 사는 것과 그 이상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요구하는 세상에서 버니먼로처럼 나약하고 별볼일 없는 인간은 어쩌면 난봉꾼이나 사기꾼이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세상에 자신을 남기기 위해 난봉꾼이 되고 사기꾼이 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버니먼로가 아내를 잃고 무능력한 화장품 외판원인 자기자신을 책망하며 세상의 무게와 고통을 두려워만 하는 대신, 아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한번쯤 믿었다면, 그 신뢰의 눈길마저 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신뢰의 눈빛을 보내는 아들의 믿음을 한번쯤 자신도 믿어보았다면, 그토록 대책없이 무너져 내리지만은 않지 않았을까? 착하게 살며 사회에 기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생존이라는 인생의 숙제 앞에 아들과 함께 손을 잡고 서 있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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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리뷰를 쓰기 난감한 책이다. 난봉꾼 세일즈맨 데드맨 딱 세장으로 된 소설
제목에 모든것이 이미 나타나 있다. 직업이 세일즈맨이지만 하는 짓은 난봉꾼 이며 결국 죽는다. 특이할 만한 점이라면 모 저런인간이 다 있을까 싶은 존재가 끝없는 파국으로 치닫다가 죽기직전에 정신차린 다는 점 정도....
아내가 죽고 장모에게 떠넘기려면 애까지 달린채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여기저기 찔러보는 주인공 너무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난봉꾼 보이는 여자마다 마음속으로 옷을 벗기고 은밀한 부위의 모습을 상상하여 어떻게 한번 같이 자볼까 생각하고 수작걸고 멸시당하며 쫓겨나거나 그럭저럭 성공하거나 잘못되는건 모조리 세상을 욕하고....
세상이 사람을 착하게 살기 어렵게 만든다기 보다 이렇게 세상을 착하지 않게 살기가 차라리 어려우리라
이 책을 덮고 기억에 남는 사실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옆에서 아빠를 욕하지 않고 지켜주는 아들의 존재 천성이 난봉꾼인 주인공이 눈에 보이는건 여자 뿐이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뭐라도 해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게 해주는 존재 아들이 있기에 그나마 그정도 난봉꾼으로 그치지 않았을까 ?
또 하나는 다 죽어서 정신차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이런 난봉꾼 조차도 후회하고 정신을 차릴수는 있다는 정도
한 인간의 가장 처절한 모습을 보여줌으로 인간사의 한면을 보여준다면 모르겠지만 휴가철에 유쾌하게 읽기엔 좀 부담스런 소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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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인상 책소개, 서평에서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리란 말을 많이 들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다. 책 표지를 보면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책이다. 검은 바탕에... 변기가 있고, 변기 위에 TV가 있는데 TV 화면에는 토끼가 나온다. ♧ 이야기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 난봉꾼 2. 세일즈맨 3. 데드맨 1부는 여자와 섹스에 집착하며 술에 절어사는 버니먼로의 일상이 그려진다. 책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삶... 그리고 그런 그로 인해 상처받은 그의 아내 리비.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녀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하지만 2부 세일즈맨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화장품 외판원인 버니는 고객리스트를 받아 고객을 찾아다니며 화장품을 판매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잘 먹히던 그가 자꾸 일이 꼬인다. 3부 데드맨 버니는 점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미치광이로 변해간다. 어쩌면 그게 그의 진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 소감 버니는 현실과 환상 속에서 비틀거리며, 가끔씩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의 인생이 처음으로 꼬이기 시작했다고 느꼈던 놀이공원. 아버지와 함께 골동품을 팔러 가던 시간. (이유는 아버지인데, 이걸 단순했다고 표현한다는 것이 참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여자와의 문란함을 아들에게 보여주었던 현재의 버니와 비슷한 아버지이다. 지금은 폐암을 앓으며 지독하게 불행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아버지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 하지만 그는 이 아이를 어찌할 줄 모른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내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한 인간의 불행한 인생이랄까? 아내의 자살로 당황한 버니는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데... 물론 여행 내내 아들에게 신경을 잘 써주진 않지만, 욕이나, 호칭 따위를 너무 한국스럽게 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정신없게 빠져들어 읽었다. 낯설면서도 독특한 시간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