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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재앙'은 거짓말같은 진실이, 진실같은 거짓말이 화자와 시점을 달리하는 여덟 개의 이야기 속에 녹아든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인디언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구에서 유입된 가톨릭과 인디언 토착문화의 갈등, 소수민족으로서 인디언의 정체성 문제를 촘촘히 짜여진 태피스트리로 만들어 작은 그림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큰 그림을 가진 이야기로 완성된다.
바이올린 선율이 기이하게 울리는 동안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기 옆에서 한 남자가 총을 분해하고 다시 재조립한 후, 잠든 아기의 옆에서 울린 알 수 없는 총성으로 시작한다. 그 사건은 플루토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으로 일가족 다섯 명이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었다. 부모, 십대 소녀, 여덟 살과 네 살 소년이 살해당했고 유일하게 아기만이 생존하여 후에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이 사건으로 가열된 한 무리의 백인 남자들이 명백한 증거도 없이 인디언 몇 명을 잔인하게 목을 매다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복잡한 거미줄 무늬 같은 그들의 관계도가 시작된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프랑스 여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소녀 에블리나, 인디언 부족 판사 쿠츠, 인디언 사이비교주와 결혼하여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던 윌데, 인디언은 치료하지 않는 편협한 백인 여의사로 알려진 로크렌이 돌아가며 자신의 관점에서 여덟 개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들의 모든 이야기 속에는 홀리 트랙이라는 인디언 소년의 교수형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고, 몇 세대에 걸쳐 그의 죽음을 회피하거나 기록하거나 참회하는 인물들을 통해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며 한 부분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큰 그림으로 인물과 내용이 겹치면서 전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 인디언 혼혈들을 중심으로 백인사회에 적응해가면서도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강제적으로 자신의 터전과 문화를 빼앗겨야 했던 인디언들의 고통스런 아픔과 서구사회에서 들어온 기독교와 인디언 토착문화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혼혈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각 개인사와 역사가 어우러져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고 있다.
'비둘기 재앙'은 복잡하게 얽힌 가계도를 파악하며 읽는데, 사실은 중반까지 고생을 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들과 혼혈인디언들, 백인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전 세대와 후세대를 이어주는 사건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들려주는 각기 독립된 이야기들을 큰 그림으로 이해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 읽은 후에는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소수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알리는데, 적극 참여하고 있는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아름다운 노력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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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콩쿠르상, 나오키상, 이상문학상 등 매년 주목하게 되는 문학상이 있다. 최근에는 퓰리처상까지 눈여겨보는데 비록 퓰리처상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후보에 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그런 연유로 2009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라 경합을 벌인 『비둘기 재앙』이 번역되었다고 하기에 단박에 관심이 갔다. 두툼한 두께감에 살짝 부담이 가긴 했으나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무척 집중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복잡하게 전개되는 구조에 더 긴장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계도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고 거미줄처럼, 실타래처럼 엉켜드는 인물 구조에 정신을 못 차리면서 이야기에 조금씩 매료되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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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땅을 침입자(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들은 모든 걸 빼앗았으니까)에게 빼앗긴 인디언들. 그들은 넓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 비좁은 보호구역 안으로 내몰린다. 광활한 그곳은 그들이 농사짓고, 사냥하고, 잠을 자던 곳이였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상냥한 얼굴로 접근하고는 등 뒤에서 칼을 휘둘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보호구역으로 내몰렸다. 슬픈 인디언의 역사이다.
'비둘기 재앙'은 인디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그 구성이 이리저리 엉킨 실타래를 보는 것 같아 어지러웠지만, 조각조각 나뉜 이야기 속에 숨겨진 한 줄기 길을 따라가는 건 대단한 즐거움이였다. 이 역시 작가가 책 속에 숨겨둔 많은 읽는 즐거움 중 하나였을테지만 말이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에블리나'가 있다. 그녀에게는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는 인디언 중산층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아버지, 즉 외할버지 '무슘'과 그의 형제 '샤멩과'가 함께 산다. 에블리나의 이모 제럴딘은 부족 판사인 안톤 바질 쿠츠와 결혼하고 제럴딘과 안톤 판사는 말썽꾸러기인 피스집안의 아들 코윈을 양자로 받아들인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과거에서 현재로 교차하고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옛날옛날 비둘기가 하늘을 뒤덮어 재앙으로 불리던 그 시절부터, 에블리나가 고질라 수녀를 짝사랑하게 되고, 무슘이 에블리나에게 고질라 수녀가 왜 수녀가 되었는지 참혹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인디언 처녀를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했던 피스 집안 남자 때문에 빌리 피스는 잘못된 신앙의 길에 빠지고 만 월데는 독으로 남편인 빌리 피스를 죽이게 된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엉키고 저렇게 엉켜있지만 결국 가르키는 것은 단 하나다. 진실.
진실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등장인물마다 다양하다. 누구는 일기를 쓰기도 하고, 누군가는 바이올린을 켜기도 한다. 어떤이는 나지막하게 읊조리고, 누군가는 값비싼 우표를 수집한다. 그렇게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흘러가는 흐름이 눈에 잡힐듯 다가온다.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어떤 사실만이 빛나고 있는데 결국 그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한 '진실'일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그 무엇에도 결국에는 진실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그런 것이라고.
나는 역사가 삶 속에서 어떻게 저 혼자 흐르는지 생각한다. 부켄도르프 가 사람들, 와일드스트랜드 가 사람들, 피스 가 사람들, 그들 모두의 배경에는 그 목매단 사건이 뒤엉켜 있다.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볼때 복잡하지 않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모든 일들이 뒤엉켜 있지 않을런지. 하지만 우리의 모든것이 끝날때 명확하게 빛나는 것은 단 하나의 진실일 것이다. 루이스 어드리크는 바로 그 점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는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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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무섭다, 조류공포증에 도시비둘기를 두려워하니 심장이 마구 두근거린다. 그냥 보아도 무섭고 푸득 날아오르는 조류 곁에 있다면 온갖 바이러스를 뒤집어쓰는 기분이 들어서 더 무섭다. 과장된 불안과 공포지만 강력하다.
<사랑의 묘약>에 이어(실제 이어진 내용이 아니라), 선주민의 삶을 다시 경험할 수 있어서 기쁘다. 오래 전 건조한 사회학/역사책으로 배운 북미대륙 선주민들의 삶이 이번에도 고달프다.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겼다니 더 귀하다. 논픽션처럼 읽지 않으려 애쓰며 읽었다.
법이 멀거나 없고 폭력은 가까운 시절,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사적인 복수가 따랐다. 그래도 삶은 이어졌다. 운명이라 믿은 만남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도주도, 온 힘을 다한 애정도, 다른 이에게 끌리는 감정도 평범하고 현실적인 드라마 같다. 잔뜩 긴장한 기분이 잠시 풀린다.
역사의 어떤 내용은 지독하고 지겹게 반복된다. 누구를 무엇을 탓해야 할까. 오랜 마녀사냥의 역사와, 비난한 대상을 외부에서 지목하고 시선을 돌리고 잔혹하게 구는 집단 광기는 인간 집단 어디서라도 흔하디흔한 일일 뿐인지.
“극도의 굶주림 속에서 그들은 하얗게 칠한 상업용 운반기의 벗겨질 것 같은 표면을 보았고, 불에 탄 밀 아래로 녹색 풀밭을 보았고, 피를 빨아먹은 이처럼 다시 살이 차오른 버펄로를 보았고, 그 거대한 짐승의 무리가 무성히 자란 풀밭을 발굽으로 납작하게 짓이기며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고개를 들자 하늘은 새 떼로 뒤덮여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새들은 낮게 날았고, 천둥처럼 몰려왔다.”
소설이 반가운 이유는, 모든 비정한 과거를 낱낱이 드러내고 밝히고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의 억울함을 갈래갈래 풀어주는 듯한 문장을 따라 읽으며 사회시스템과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계속 했다.
인질극, 전쟁, 말 같지도 않은 신화 위에 세워진 사이비 신앙 공동체, 동조하고 찬양하는 이들. 20세기도 21세기도 한편에서는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끊임없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개발/활용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강력한 종교의 영향 아래 착취당하는 삶이 있다.
더 무겁고 어두울 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지만, 툭 치고 나오는 위트가 즐겁다. 읽은 앞부분을 다시 펼쳐 보게 한 복선과 암시가 결론에 이르면 어두워진 하늘에 드러나는 8개의 별처럼 반짝인다. 잘 모르는 이들의 삶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본 화면처럼 떠오르는 여행이 가능한 것이 글이고 문학이다. 새삼스럽지만 대단히 아름답다.
내게도 오래 보관한 수집품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 잊고 사는 걸 보면 물질이란 생각보다 가치가 덜할 지도 모르겠다. 죽는 순간 생각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인간을 가두고 빼앗고 죽인 인류의 역사, 오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거리만큼 먼 무관심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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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모여 하나의 구성체를 이룬다. 묻혀져 있던 인디언 마을의 진실들이 사건의 주인공들이 나이들고 세상을 떠나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더 이상 누구의 흠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닌 공공재로서의 사실로 수용되면서 세상은 화해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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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처음에 확 끄는 면은 확실해서 상당한 두께에도 쑥- 읽히기는 하는데,
다 읽고 난 감상은...... 뭐랄까...... 촣은 소재를 가지고, 늘어지게 구성한 것은 아닌가 싶은 느낌이다. 다 읽고 나서의 감상이 그렇다는 거다.
특히 그 당시에는 최신 pc?적이었을 수도 있었을 에피소드는 그 당시 평론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사족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주제는 꽤 괜찮은 듯한데 다 읽고 나면 좀 늘어진 듯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고
편집 별이 2개인 이유는 오타인지 번역이 어색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구절이 두어개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