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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K 비극적인 실존형태의 미니멀적 저항 박바로가 마이클 K는 남아공에서 백인지배하에 정원사가 되어 그럭저럭 연명하고 살고 있다. 그는 입모양이 기형이었고 조상대대로 물려준 가난으로 기숙학교에서 배고픈 채 그리고 어머니 정에 그리운 채 살아왔다. 이런 그는 자신이 사는 이유가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어머니가 자신의 돈을 털어서 자신의 고향, 프린스 알버트로 돌아가고자 하여 마이클을 설득시킨다. 어렵살이 경비병들을 피해 어머니의 고향으로 내려가려 하지만 가는 길에 어머니가 한 병원에서 숨진다. 그들은 딱 한번 어머니의 시신을 보여주고 어느새 불에 태워 화장된 어머니의 재를 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어머니의 재 단지를 가지고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한다. 마이클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점점 야위어 간다. 고향으로 가서 어렵살이 어머니의 옛주인인 피사기의 집을 찾았으나 거의 폐허가 되어 있었다. 거기서 배고파서 곤충, 도마뱀, 새도 잡아먹고 후에는 염소 떼를 쫓아서 허기를 떼우기도 한다. 하지만 염소를 먹은 후 그는 자신을 위해 큰 동물을 사냥하는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한다. 그 전에도 말했듯이 굶주림은 생존에 위해가 가지 않는 한 더 이상 큰 문제가 아니었고 연명에 필요한 정도만 필요했을 뿐이었다. Hunger had turned them into animals who stole from one another’s plates and climbed the kitchen enclosure to rifle the garbage cans for bones and peelings. Then he had grown older and stopped wanting. Whatever the nature of the beast that had howled inside him, it was starved into stillness. 아래 지문을 보면 굶주림의 노예도 그가 경계했던 부분 인 듯하다. He was not sure that he wanted to become a servant to hunger again; but a hospital, it seemed, was a place for bodies, where bodies asserted their rights. 그러던 중 탈영한 피사기의 손자가 찾아 온다. 그는 공생을 요구하지만 결국 자신의 몸종을 부리려는 듯 프린스 앨버트 시내로 나가서 물건을 사오라고 시킨다. 하지만 여기에 응하지 않고 피사기의 집으로부터 걸어 나간다. 그리고는 막 만난 자신을 노예화하려는 피사기 손자의 의도를 탐탁하지 생각하며 그곳으로부터 걸어나온다. Already it was hard to believe that he had known someone called the Visagie grandson who had tried to turn him into a body-servant. 떠도는 도중 거주지 불명의 사람으로 분류되어 기차를 타고 자칼스드리프(Jakkalsdrif)란 노동수용소에 갇혀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로버트는 수용소에 대해 여러가지를 말해준다. 보초병이 그를 동정하고 친철하게 대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라고도 말해준다. You’re a baby. You’ve been asleep all your life. It’s time to wake up. Why do you think they give your charity, you and the children? Because they think you are harmless, your eyes aren’t opened, you don’t see the truth around you. 마이클은 사실 역사의식이 희박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그럴 만한 교육도 받지 않았으며 그럴만한 지능도, 현실감도 부족한 인물이다. 어쨌든, 이곳을 탈출하면 브랜드블레이(Brandvlei)의 가혹한 노동현장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듣게 되지만 여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마이클은 탈출을 시도해 성공한다. 그는 탈출할 때의 기분을 이렇게 말한다. He walked all night, feeling no fatigue, trembling sometimes with the thrill of being free. 그는 다시 피사기의 집으로 돌아와 호박씨와 멜론씨를 심으며 몰래 만들어놓은 자신의 토굴에서 산다. 그는 피사기의 집에서 물건을 가져오려고도 안 한다. 이런 부분은 반 문명적, 반 유물사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But he was wary of conveying the Visagies’ rubbish to his home in the earth and setting himself on a trail that might lead to the re-enactment of their misfortunes. 그는 한편으로는 쟈칼스드리프에 남겨둔 로버트와 그의 식구들을 걱정한다. He thought of the camp at Jakkalsdrif, of parents brining up children behind the wire, their own children and the children of cousins and second cousins, on earth stamped so tight by the passage of their footsteps day after day, baked so hard by the sun, that nothing would ever grow there again. […] That is why it is a good thing that, I, who have nothing to pass on, should be spending my time here where I am out of the way. 그러면서 자신이 거느리고 돌봐야 할 아무것도 없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산속의 게릴라들이 피사기의 집 주변에서 캠핑을 하며 자신이 기른 농작물을 당나귀에게 먹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광경을 보면서 그는 그들을 따라 갈까 생각하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His heart was pounding. When they leave in the morning, he thought to himself, I could come out of hiding and trot along behind them like a child following a brass band. 하지만 그는 그들을 따라가는 것을 그만 두고 피사기의 버려진 농장에 남는다. 이런 부분은 참여문학 쪽에서나 유물론적 입장에서 보면 지탄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쪽도 저쪽도 가담하지 않은 마이클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곧 당도한 정부군은 비를 맞아 정체가 드러난 그를 잡아 끌고가 인근 병원에 그를 입원시킨다. 거기서 만난 군의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면서 2부가 시작된다. 그 군의관은 마이클에게 먹이려고 너무나도 노력한다. 언젠가 마이클로부터 들은 호박이야기로 호박을 음식으로 내주기도 한다. 군의관은 이렇게 말한다. I have watched him, I know! He is not of our world. He lives in a world all his own. […] thought, that you should have survived thirty years in the shadow of the city, followed by a season footloose in the war zone and come out intact, when keeping you alive is like keeping the weakest pet duckling alive, or the runt of the cat’s litter, or a fledgling expelled from the nest. 군의관은 마이클이 살아있는 것이 기적처럼 생각하며 노엘에게 그의 사망진단서를 써줌으로써 마이클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한다. 노엘은 철의 시대에 유일하게 iron man이 아닌 사람어서 장점인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원칙은 있었다. 그의 거절로 몸이 호전을 보인 마이클을 노동수용소로 보내고 거기서 신체에 무리가 가게 벌을 받아 다시 병원으로 호송되어 온다. 그러던 중 군의관은 노엘에게 묻는다. ‘Can you remind me why we are fighting this war? I was told once, but that was long ago and I seem to have forgotten.’ ,노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We are fighting this war, so that minorities will have a say in their destinies.’ 이런 부분은 나중에 마이클이 호박씨를 지니고 다니면서 자연의 정원사인 ‘지렁이’를 자신에 비유하면서 생각하는 부분과 대조를 보인다. 어쩌면 이러한 설정들이 군의관이 도망친 마이클과 가상으로 대화하는 부분에서 다시 강조되어진다. It was an allegory—speaking at the highest level—of how scandalously, how outrageously a meaning can take up residence in a system without becoming a term in it. Did you not notice how, whenever I tried to pin you down, you slipped away? 마이클은 최소한의 저항을 하면서 자연에 숨어 황무지를 초록으로 덮고 싶어한다. 그는 이미 노예를 만들어내는 체제에 관심이 없다. 그 체제 때문에 자신이 택할 수 밖에 없던 직업인 정원사가 언제나 존재하는 대지와 연결되면서 문명에서 자연으로 퇴행을 한다. 서문에 쿳시가 이렇게 써 놓았다. War is the father of all and king of all. Some he shows as gods, others as men. Some he makes slaves, and others free. 마이클은 그의 무지하고 소박한 저항으로 사회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한다. 유물론적 사관에 반하는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생활을 보여준다. 그는 먹는 것에 연연하지 않지만 최소한을 먹어 연명하면서 자신이 구속이 되었을 때 힘을 보충해 항상 소속된 곳으로부터 탈출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는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펌프도 정부군이 폭파해버리면 차수저를 구부려서라도 물을 조금 떠먹겠다는 소극적이고 만족적인 모습으로 전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최소한의 저항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한다. 자신은 전쟁을 해서 왕으로 살아가는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다. 그리고 잃어버린 왕좌를 되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남들이 버린 황폐화된 땅을 초록으로 일구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그리고 그가 취할 수 있는 자유였던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는 주인공, Meursault는 사회로부터 자신이 소외되지만, 마이클 K에서는 자신이 사회를 소외시켜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형태를 취하는 듯 보인다. 어쩌면 그의 저항이 정말 ‘미니멀’이어서 혹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어서 더 역설적으로 눈길을 끌었는지 모른다. 이런 저항은 일제 시대의 청록파 시인들이 보여주었던 자연주의와 닮은 꼴을 보여주어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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