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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제정 러시아에서 노동자, 농민을 선동하여 반러시아운동을 하고 있는 보로딘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황제의 입장에서 볼때 체제를 뒤 흔드는 그는 눈의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를 잡기 위해 경찰력을 총동원했으며 드디어 그를 체포하게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황제가 아끼는 크로포트킨 공작이었다. 러시아 귀족이고 지리학자이며 진화론자이기까지 했던, 그시대 대표적인 지성인이었던 그가 반정부 활동을 벌인 것이었다. 그는 차르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친구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1876년 탈옥을 감행한다. 물론 성공을 하였고, 그는 친구들의 도움에 크게 감명을 받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며 그 결과 『상호부조 : 진화의 한 요소(Mutual Aid : A Factor in Evolution』이란 책을 저술한다. 그의 생각은 “인간은 원래 선하고 자비롭게 태어났으며 단지 사회가 인간을 타락시켰다고 보는 것이었다” 그는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켜 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s of Virtue)』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크로포트킨이란 이름을 가진 아나키스트의 모습을 진화론 책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3대 아나키스트 중 한 명이었고, 우드콕이란 사람은 그에게 아나키스트 왕자란 칭호까지 헌상했다.
나는 이 책(우리 시대의 아나키즘)을 다 읽고 국내 유명 검색 사이트에서 ‘아나키, 아나키즘, 아나키스트’란 검색어를 이용해 검색해 보았다. 상당히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이 검색어와 관련된 사이트가 많았던 것이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 이 단어에 커다란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나키즘이 무엇일까? 우리가 학교에서 간략히 배운 대로 무정부주의 운동인가? 이 책에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있고, 이 단어에 대한 역사와 사람, 현대에 담겨진 모습 등 내가 전에 알고 있던 아나키즘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어 있고 편협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본문의 시작은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벌어진 반자본주의 집회로부터 시작한다. 이 날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그곳에서 열리는 날로 수천 명의 시위대가 전 세계에서 모인 것이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외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국가의 속성을 띠어가는 초국적, 지구적 기업들의 진로를 방해하고자’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반자본주의 운동을 하니 공산주의자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부 이론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레닌과 국가사회주의’를 외치는 마르크시즘에는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에서 우리는 그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어떤 공동체라도 에리트나 관료집단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반대한다. 그래서 탈중앙화한 공동체를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친지역화(prolocalization)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책의 두 번째 장에서는 아나키즘의 어원에서 시작하고 있다. 아나키즘이란 말은 고대 그리스어 아나르코스(Not leader, chief)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단일 국가의 중앙집중화한 권위의 필요성에 대한 거부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정부라는 말을 국가와 동의어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선험적인 반대를 통해 아나키즘이 거부하는 것은 정부 그 자체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복종할 것을, 그리고 필요하다면 국민들에게 생명을 바칠 것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주장하고 요구하는 주권질서의 개념이다. 현대 국가는 자국시민들을 공개적으로 살해한 예를 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주 목격하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나키스트들도 같이 이야기한다.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즉 국민의 자유로운 결정을 방해하는 국가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특히나 ‘국가내 기득권층의 이익이 위협받을 때마다 국가는 그 야만적 본성을 드러낸다’라는 문구에는 섬짓함까지 느껴졌다. 그러므로 불북종은 무책임한 국가권력에 맞서는 도덕적 명령이라는 그들의 행동준거는 정당성을 가지는 것이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아나키즘의 철학적 성향이나 뿌리에 대해 쓰여있다. 철학에 있어 별 차이가 없어보이는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의 결정적인 이별점은 어디인지. 두 이념사이에는 무엇을 공유하고 무엇 때문에 갈라지게 되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크로포트킨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미하일 바쿠닌와 마르크스의 갈등관계 등을 통해서 그 차이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국가에 대한 아나키즘의 불복종운동이나 폭력사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페인 시민전쟁, 1968년의 학생운동, 사파티스타에 이르기까지 아나키즘사 전체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나키즘의 미학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는 등 여러 예술분야에 걸친 아나키즘의 또 다른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놀라웠던 것은 서문 때문이었다. 아니 서문 그자체가 아니라 서문을 쓴 사람때문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영남대 법학부에 계신 박홍규교수가 서문을 썼다. 법학자이면서도 법이외에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저술활동을 하시는 분이지만 아나키즘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지난 8월달에는 아나키즘에 대한 책을 출판한 것이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이 책에 나와 있는 문구 중에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다.
“자유 없는 평등은 전제주의이다.... 우리는 오직 자유를 통해서만 완전한 경제적, 사회적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Alison Blunt & Jane Wills,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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